생각 / 방향

마을이장 2016.04.28 09:32 조회 수 : 1556

 

 

 

4월 15일 금요일. 후배가 화엄사 보제루에서 그림 전시회를 한다고 하여 몇 년 만에

화엄사를 찾았다. 화엄사 아래 마을에 사는데 화엄사를 지독하게 찾지 않았거나 거부한 것이다.

보제루 옆을 돌아 각황전에 인사하고 대웅전 앞에 올림픽 금메달처럼 수집해 놓은 초파일용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인간들 참 바라는 것도 많구나.”

 

나는 2월말부터의 감기부터 화개 노점상까지 6주 정도의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몇 년 중 가장 좋지 않은 구간을 지나는 중이었던 탓인지 타인의 소망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2013년 8월 24일에 쓴 글이 있다.

 

가끔 노동에의 의지나 크리에이티브가 유한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것은 물론 내가 나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이란 불안감일 것이다.

 

며칠 전에 우연히 내가 한 말을 마주하고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은 제법 당혹스럽거나 맥 빠지는 상황이다.

사실 내가 나에게 실망한 시간은 제법 된 듯하다.

자신감을 상실했다거나 뭐 그런 차원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 가까울 것이다. 자신감이란 목적의식이 있을 때 발동되는 것이다.

역시 문제의 근본은 나는 지향하는 방향을 상실했다는 것에 있는 듯하다.

 

 

 

 

 

며칠 전에 누가 이런저런 생각이 담긴 매듭 팔찌를 건네주면서,

‘소원을 빌면…’ 이라는 표현을 했고 나에게 구체적인 소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화엄사 대웅전 앞에 내 걸린 등과 내 손목에 매듭이 채워진 것은 같은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지나 간 시간을 되돌아보고 가늠하곤 했다. 거의 운전을 하는 동안 그렇다.

그런 고민은 어쩌면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짓’에 대한 분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고민에 해당하는 생각들은 결국 나의 생존에 관한 걱정이 출발점이다.

늙은 수사자는 어디로 가서 최후를 맞이할까.

 

 

 

 

 

더 이상 조직이나 사회에 필요한 인력이 아닌 상황을 누구나 맞이할 것이다.

물론 당사자는 그런 상황을 일단 부인할 것이고 소용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임금생활자 경험이 지극히 짧은 나는 내 일에서 ‘개기는’ 경우가 드물다.

‘한다’와 ‘하지 않는다’는 결정이 있을 뿐이지 시간을 때운다거나 하는 일은 백해무익이다.

내가 한 일의 최종 책임자는 항상 나였다.

이곳을 감상하는 누구건 ‘뭔 웃기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라고 생각을 하더라도

나는 명백하게 나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지 제법 되었다.

피상적으로, 또는 이곳에서 이미지로 바라보이는 나는 자유로운 영혼인 것처럼

보일 것이기에 그러하다. 실제 그런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나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가지지 않거나 못한다.

나는 사구砂丘에 빠진 개처럼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래서 간혹 ‘혹시 나도 우울증일까?’ 라는 의심을 한다.

 

 

 

 

 

예정하지 않았던 어떤 결정 앞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런 결정을 하기에 좋지 않은 시기였지만 ‘결정’은 대부분 그런 좋지 않은 시기에

사람 앞에 턱을 괴고 앉아서 떠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리산닷컴 휴식년을 포함한 9년의 시간 동안 내 마음에 가장 많이 남았던 짓이

무엇이었는지 글을 뒤지고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다.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그 짓’이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바라보아야 할 방향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장’이라는 닉네임으로서 내 마음 속에는 <몸뻬 패션쇼> 그날 하루 동안의

정신없었던 일들이 활짝 웃는 엄니들의 사진을 보면서 울컥한 지점이 생기는 대목이었다.

<연곡분교이야기>는 물론 긴 호흡의 프로젝트였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현재로서 나에게는 ‘아직은 말 할 수 없는’ 이면의 아픔 때문인지 약간 힘들기도 하다.

<맨땅에 펀드>는 치열했던 만큼 다시 그 순간을 맞이할 자신이 없다. 경운기 사고 그 순간,

책임자로서 내가 이빨을 앙다물었던, 여전히 보상하지 못하는 부채감 같은 것들.

<송석헌 또는 권헌조> 어르신과의 이별 또는 기록은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웠지만

마지막을 기록한 이후의 상실감 같은 것들.

그리고 정말 많았던 일들과 에피소드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

그러나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사라질 마지막 가치’들에 대한 글과 사진으로의 기록이다.

그 일이 돈이 되건 말건 그냥 하는 것이 사구砂丘에 빠진 개 신세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런 생각 등등… 하느라 소홀했다.

느닷없이 묻지도 않았는데 주절거렸다.

죄송.

 

 

 

여유 되시면 위 음악 죽이고 아래 유튜브 영상 하나 보시기를.

워낙 유명한 공연이라 이미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어느 날 어떤 공연에

귀와 마음이 머무는 일이 간혹 있는데 어제 오늘 저는 아래 공연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일 큰 형님이 짐짓 힘 빠진 척 동생들을 바라보고,

실제 1인자인 그 아래 동생은 언제나처럼 예우로 큰 형님을 받들어 모시고,

다른 벗들이자 동생들도 ‘내가 잘났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내려놓고

단지 그들의 놀이를 즐기는 그런 장면.

더 늦기 전에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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