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 꽃, 2016 - 거절

마을이장 2016.03.18 02:24 조회 수 : 1201

 

 

3월 17일 목요일 오전.

하루 전의 손님들과 구례 산동 현천에서 헤어지고 광양 다압면 염창으로 내려왔다.

염창마을 어느 집의 요청이 있었다. 이를테면 산수유에서 매화로 공간 이동을 한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산수유와 매화 모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 이동이었고

몇 번 셔터를 눌렀지만 마음에 들어오는 사진은 거의 없었다.

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사진에 적절한 해는 아니었다. 오후에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산동 현천의 산수유는 절반 정도 핀 상황이었다. 관광 가이드의 기계적인 자세로

정해진 코스를 걷다가 딱 한 번 셔터를 눌렀지만 돌아와서 보니 그냥 그런 사진이었다.

사실 나는 이번 시즌에 다시 산수유를 보러 올라간다는 예정이 없기에 한 장이라도

사진을 건지고 싶었다. 그러나 상황은 나를 전혀 자극하지 않았고 셔터는 영혼이 없었다.

여하튼 구례 산동 산수유는 3월 24일 경이 만개일 것이다.

물론 마을에 따라서 이틀 정도 차이는 날 것이다.

사람 구경할 작정이 아니면 가급이면 주말에는 오지 마시라.

손님들을 현천마을 주차장에서 보내고 미련 없이 광양으로 내려갔다.

다음에는 강릉에서 보자고 했지만 그것은 큰 성의 또는 필요가 결정할 것이다.

 

 

 

 

 

 

 


 

꽃의 안부를 물었을 때 ‘만개’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막상 염창 언덕길에 서고 보니

이번 주 일요일이나 만개할 듯하다. 무엇보다 내 눈에 주변의 매화나무 자체가 줄어든 느낌이다.

그것은 분명히 꽃의 빈곤이 아니라 사람의 결정에 따른 나무의 감소였다.

‘만개하지 않았다’와 ‘나무 수가 줄었다’는 시각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변화다.

비루한 햇볕이었다. 비루한 햇볕을 받은 사물은 옹색해 보였다.

이 아침, 염창마을은 마치 전성기를 지난 그 어떤 옹색한 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졌다.

그 옹색함이 마음에 들었다. 나와 같았다. 물아일체의 을씨년스러움을 느끼고 싶었다.

지인의 집 마당에 차를 버리고 좀 걸었다. 나는 마스크를 하고 있었고 나의 겨울 외투 중

가장 두텁고 무거운 껍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얕은 오르막에도 나는 헐떡이고 있었다. 외투에 달린 모자를 벗었다.

 

 

 

 

 

 

 


 

만용에게

 

수입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매일반이다

모이 한 가마니에 430원이니

한 달에 12,3만 환이 소리 없이 들어가고

알은 하루 60개밖에 안 나오니

묵은 닭까지 합한 닭 모이 값이

일주일에 6일을 먹고

사람은 하루를 먹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은 봄에 알을 많이 받을 것이니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봄에는 알 값이 떨어진다

여편네의 계산에 의하면 7할을 낳아도

만용이(닭 시중하는 놈)의 학비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점등(點燈)을 하고 새벽모이를 주자고 주장하지만

여편네는 지금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니 430원짜리 한 가마니면 이틀은 먹을 터인데

어떻게 된 셈이냐고 오늘 아침에도 뇌까렸다

이렇게 주기적인 수입 소동이 날 때만은

네가 부리는 독살에도 나는 지지 않는다

 

무능한 내가 지지 않는 것은 이때만이다

너의 독기가 예에 없이 걸레쪽같이 보이고

너와 내가 반반___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보려무나!'

 

<1962. 10. 25> 김수영

 

나무는 아무런 품위가 없었다.

단지 열매를 생산하기 위해 결박당한 몰골이었다.

김수영은 구차스러웠다.

그의 구차스러움을 내보이며 우리의 숨겨진 구차스러움을 힐난했다.

나는 이상하게 옹색한 길에서 거리에서 상황에서 그의 깡마른 얼굴을 생각한다.

나는 최근 내가 구차스럽고 나에게 구역질이 나온다.

 

 

 

 

 

 

 


 

거절.

나는 거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일상적으로 가끔 거절을 한다.

나의 거절은 보통 이미 정해진 방침과 태도에 의해 망설임 없이 수행된다.

그러나 나와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 집단의 요청인 경우에만 작동한다.

초면에 거절하지 못하면 이후로는 힘들다.

아무래도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유형의 포유류인 것 같다.

가급이면 새로운 사람을 사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하는 소리의 팔 할은 모순이다.

 

 

 

 

 

 

 


 

잠시 해가 명확하게 나왔다.

꽃이 아니라 초록을 보았다.

장전되지 않은 장총 같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차를 마셨다.

시간을 가늠하고 있었다. 거절하지 못해서 오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토요일에 가계를 오픈한다니 금요일까지는 해주어야 할 것이다.

점심은 김치국수를 말아서 나왔다. 국물 맛은 깊었고 김치 맛은 날카로웠다.

감기 중에 밀가루 음식에 손이 가지 않았는데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부른 배를 데리고 다시 강을 따라 올라갔다. 이틀 후면 북새통이 될 도로다.

기온이 오른 탓인지 나뭇가지는 시간을 다투어 혈압이 오르고 있었다.

가지가 피를 토하면 꽃이 될 것이다.

 

 

 


 

저녁에는 과업을 완수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했다.

 

 

jirisan@jir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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