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노래는 끝이 났는가

마을이장 2016.03.08 22:03 조회 수 : 1268

 

지난 토요일은 몇 년 만에 찾아온 감기와 가장 격렬하게 만나는 중이었다.

화개에서 월인정원의 수업이 있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픽업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점심 무렵에 몸을 일으켜 라면이었나? 여튼 한 그릇을 속으로 밀어 넣고 무얼까?에게

얻은 약을 한 봉지 털어 넣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사실 밤에 깊은 잠이 힘들었다.

몇 놈이 둘러서서 사람을 계속 두들겨 패는 것 같았다. 외투를 입고 잤다.

속옷 상태로 잠을 청하면 이불을 끌어당겨야 하고 그러면 몸이 너무 더워서 땀으로 샤워를 한다.

더워서 이불을 차버리면 어깨로부터 기침이 시작된다. 그래서 외투를 입고 이불은 덮지 않고

난방만 한 상태에서 몸을 뒤척이는 것이다.

그렇게 가고 있던 3월 첫 토요일 어둑한 시간, 작은 알람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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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알림이다.

조카다. 누나 딸. 어질한 가운데 ‘바르셀로나’ 라는 단어만 명료하게 눈에 들어왔다.

잠이 깨었다. 아, **이 바르셀로나에 있구나. 왜 갔지?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안이다. 거의 꾸미지 않으니 어찌 보면 여중생 같은 얼굴이다.

나이가 스물여섯인가? 초등학교 때 한국을 떠났다. 무심한 외삼촌이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생명공학 계통을 전공하고 있을 것이다. 녀석의 페이스북은 온통 <어벤져스>로

장식되어 있다. 1년 전인가 2년 전에 대전의 카이스트에 잠시 다니러 왔을 때

‘한국적 방식’의 학교를 힘들어했다.

녀석이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을 적에는 평범하고 느린 아이였을 뿐이다.

누나와 자형은 녀석의 ‘느림’을 걱정했지만 사는 나라가 바뀌면서 녀석은 비범한 아이로

새롭게 ‘발견’되었다. 사는 곳에 따라 비범함은 사장될 수도 발견될 수도 있다.

여하튼 나는 몽롱한 감기 기운 속에서 녀석이 바르셀로나에 있다는 아이폰의 그 단순한

메시지 하나에 마음이 약간 흔들렸다. 그 감정은 오십사 년을 산 남자의 상투적인 감기와

이십 대 조카의 당연한 젊음이 어색하게 조우하는 순간 생긴 예기치 못한 파장이었다.

그리고 누운 자리에서 하루 전 화개를 찾은 노老 영화감독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찾았다.

사진을 찍고 저장하고 닫히는 그 짧은 순간, 역시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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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부터 80년대를 풍미한 노 감독은 빨간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몸매는 청년이었다.

때로 청춘의 어느 대목, 내 기억의 한 갈피를 차지한 사람은 나의 기억 속에 박제된다.

그의 영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여전히 내 손에 꼽는 한국 영화다.

그에 대한 내 기억의 정점은 그 영화 포스터에 멈추어 있는데,

그는 칠순이 넘은 노인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나에게 그것은 느닷없는 세월이었다.

1996년, 김근태 선생을 위한 어떤 공간에 같이 있었다는 얄팍한 실마리를 던지면서

이야기를 이어갔고 김근태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잠시 함께 한숨을 쉬었다.

우리들의 이야기 속 대부분은 오래된 벽장에 진열된 먼지 쌓인 트로피에 관한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배웅하면서, 나는 점점 한기가 심해졌고 내 기침은 적어도 이십 년의

궤적을 가진 쇳소리처럼 머릿속에서 울렸다.

 

“이곳으로 한 번 모시고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그럽시다. 재미있겠네요.”

 

청했고 그는 선선히 응했다.

그 길로 구례로 올라와서 다음 날 조카의 바르셀로나 알람 때까지,

나는 80년대에 이미 죽은 사람처럼 거의 24시간을 누워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뒤척이며 음악을 찾고 들었다.

에릭 클랩튼. 1945년생이다. 유튜브에는 그의 공연 영상을 중심으로 그의 친구들의 40년이

오롯하게 담겨 있었다. 같은 노래를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사람들이 부르는 모습을

몇 분 간격으로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잔인한 일이었다. 흔적의 불편함 같은 것.

지미 페이지, 제프 벡, 마크 노플러 등이 보였다. 템버린 두들기는 레이 쿠퍼는 예나

지금이나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들은 잘 벼린 칼날로 번뜩였고 지금은 모두 칠십 노인이 되었다.

 

노래는 끝이 났는가?

나는 최근에 스스로 포장이 덧 씌워진 낡은 기계가 된 듯 이 질문을 던진다.

너무 이르지 않나?

그런가.

부를 노래가 없다면 공연은 끝 아닌가.

그냥 이렇게 감정을 나타내고 싶었다.

우울하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 뱉어 내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이다.

지금.

그래서 별일은 아니다.

 

 

 

jirisan@jir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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