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道 / 목덜미

마을이장 2013.10.09 22:40 조회 수 : 11295

 

 

 





우렁찬 함성 소리와 함께 아들들이 입장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것을 알지만 부모들의 심장은 이 순간
짜릿함과 시큼함으로 두근거린다. 이미 제 각각의 장소에서 이곳으로 오는 동안도
가슴은 뛰고 있었다. 그래봤자 이제 5주가 지났을 뿐인데.
하루 전에 도착해서 다음 날 낮 동안 보낼 훈련소 인근, 예약해 둔 펜션에 짐을 풀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구례 읍 월성정육점에서 고기를 구입했고 쌀은 순영이 형님 것으로,
집밥처럼 해 주고 싶어서 된장과 고춧가루 등을 챙겨서 아이스박스에 집어넣었다.
열무김치와 깻잎김치 등도 챙겼다. 송이버섯 시즌이라 잠시 고민했지만 너무 과소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이곳 지리산 자락 오미동보다 결코 예쁠 수 없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를 바라고
오르는 길은 멀다. 아주 멀다. 나는 500km를 이동했다. 27사단 이기자부대 신병교육대대.
지난 40일 동안 내가 하루에 최소 세 번은 들어가서 소식을 확인하고 글을 쓰는 카페.
나의 인터넷 시작 페이지를 10년 만에 네이버에서 다음으로 바꾸게 한 불가항력적인 그 어떤 힘.
8월 27일 춘천 102보충대에 들여 놓은 것을 시작으로 10월 7일 훈련병 수료식까지의
시간 동안 나의 일상과 업무 처리 능력은 가동을 멈추었다. 아이의 첫 소식을 받고 나는
프로파일링을 하는 수사관의 자세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2013. 9. 14 부모님께
평소의 말투대로 편지를 작성할까 했지만 기분 상 존댓말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어색하지만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지 1주차가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매우 정신이 없습니다.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습니다.
여유 있게 일어나서 부팅하고 웹툰 보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총탄위에
실어놓은 듯 빠르게 가면서도 때로는 느리게 갑니다. 편지나 일기는 부모님들이 확인하니
밝고 맑게 쓰라고 하지만 그냥 제 기분 그대로 솔직하게 쓰겠습니다.
어차피 두 분께서는 제가 그렇게 맑고 화창한 성격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던 지금으로서는 지난날이 그리울 뿐입니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에는 지난날을 그리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도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여기선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부팅할 컴퓨터도 없고 볼 만화나 화집 그리고 내 22만 원짜리 은색바디의
새끈한 곡선을 가진 아름다운 닌텐도도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로 낮에는 몸을 굴리고(물론 항상 몸을 쓰지만) 저녁에는 강의를 듣습니다.
북한은 적이고 미국은 친구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올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빨갱이여서 여기로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뭐 어찌되었든 이렇게 있으니 있는 동안은 동기들과 함께 잘 헤쳐 나가려고 합니다.
전부 온 마음으로 수료식을 기다리는 듯합니다. 저 역시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어서 부모님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밀린 만화가 보고 싶어 죽겠습니다.
이곳에는 만화도 그림도 편히 그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일주일째 아무 것도 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스토리 구상을 하려해도 머릿속이 정신이 없어서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아니 그냥 있는 것도 잊어버릴 지경입니다.
위에 써놓은 것을 보면 제가 우울증이라도 걸린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죽을 정도로 힘이 들거나 하진 않습니다. 아직은… 지금으로선 집이 그리울 뿐이고
제 손때 묻은 물건이 그리울 다름입니다. 새벽의 공기를 가르고 일어날 때면 지난날에
대한 향기를 맡고 싶습니다. 여튼 저는 아직 건강하게 지내고 있고, 이곳에 살아 있으니
잘 지내십시오.
PS 이거 편지지 디자인 구려요.











훈련소에 들어 간 이후 훈련소 카페에 아이의 글은 두 번 올라왔다.
생활관 별로 아이들 스스로 일상의 기록을 하루에 한 명씩 순서대로 올려준다.


2013.09.29
일어나보니 또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천은 원래 비가 이렇게 많이 오나?
겨울에 눈이 이런 식으로 온다면 정말 슬플 것 같다. 눈 하니까 생각나는데 102보충대에서
백두산 부대로 발령받은 동기들이 생각났다. 그 친구들은 제대까지 물과 얼음의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 온지 4주차가 지나가고 있다. 내일이면 5주차다.
5주차가 지나면 수료식이 있다. 지나고 보니 정말 시간이 빠르다는 걸 느꼈다. 사회나 군대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오늘 종교행사에서는 불교에 참석한 인원이 나 혼자였다.
다들 이삭토스트에 넘어가서 기독교로 가버렸다.


나는 손 편지를 한 번 보냈다.


영후.
의지와 무관한 일 또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특히 너에게는 드문 일이고 힘들기도 할 것이다.
간혹 너에게 특별하게 학생의 의무에 대한 부담을 지워주지 않고 살게 했던 것이 과연
옳은 결정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이를테면 끈기 또는 참을성에 관한 우려였지.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가는 것은 천운을 타고 난 것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물론 모든 부모들은‘아이들과 협의했다’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고등학교까지는 거의
부모들이 자식의 인생행로에 지대한 영향과 결정을 행사하였기에 그런 불안감은 있을 것이다.
항상 어느 결정의 순간에는 몇 갈래의 길이 있는 법이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지금 너의 생각과 행동 방식은 사실 4살 5살 때부터 예정된 길이었다.
너의 부모들은 통제를 선호하지 않았고 보다 더 솔직하게는 통제를 하기 위해서는 부모 또한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거나 더 부지런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귀찮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누워서 비디오를 보거나 컴퓨터 앞에 주로 앉아 있거나 먹는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일
등은 결국 아주 어린 시절부터 너에게 각인된 유전자 같은 일상의 습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네가 태어나고 스물한 살이 되도록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일상을 유지해 왔다.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그런 방식으로 살아 온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장점과 강점을 찾아야겠지.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까.
모든 부모는 착각을 한다.‘나는 꼰대 스타일은 아닐 것이다.’따라서 나의 위의 주절거림에
대해서 네가 어찌 받아들일 것이지는 철저하게 네 문제다. 무책임하지.“과정이 어찌되었건
이제 너는 스무 살이 넘었으니 네 몫이다.” 뭐 대략 그런 소리겠지.
너무 시간을 헤아리지 마라. 스스로를 갉아 먹는 일이다. 그 속에 있는 시간 동안 쩨쩨하게
굴지 마란 뜻이다. 그냥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생존방식을 찾는 것. 매 순간, 매 시기에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란 것이 꼭 만족스러운 결과인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이란 말이 있는 것이다.
그림 도구 등은 10월 7일에 전달할 것이다. 이미 자대배치를 어디로 받을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27사단 내의 어느 곳이 되겠지. 그런 계절이 되었다.
10월 7일에 얼굴 보고 긴 이야기하자. 아, 국군의 날을 맞이한 포상휴가 건에 대한
가족들의 컨텐츠 응모는 나는 힘들겠구나. 주제가 나에게는 좀 어렵네. 쏘리.

2013. 9. 25 구례에서 아빠.











매일 신병교육대 카페에 들어가서 아침편지를 쓰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나는 그 동안 서른 세 통의 인터넷 편지를 작성했다.
거의 아침에 작성하는 인터넷 편지는 어느 듯 나의 일기장이 되어간다.


2013.09.28
024편지 / 토요일이다. 지난밤은 깊이 잠들지 못했다.
아마도 너희들의 30km 행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시커먼 어둠 속에서 아이폰을 끌어 당겨
시간을 확인하고 너희 부대 카페로 들어가서 수시로 올라오는 짧은 소식들을 확인했다.
가끔 스스로 놀란다. “내가 이런 상투적인 아빠가 되다뉘! 일단 출발한 선수들은 모두
완주한 것으로 나오는데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구나. 이런 게임은 항상 완주가 중요하지.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 만나는 매듭 또한 완주 여부가 중요하다만.
아빠는 ‘완성’ 이라는 말을 자주 했을 것이다. 오늘은 9월 빵긋테이블이 있는 날이다.
마지막 주말이라는 소리지. 종근당 형이 다음 달에 서울로 빵 유학을 떠나는 관계로
송별회를 겸한다. 뭐 빵과 크림소스 스파게티, 스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좀 있다 나가서 행사 촬영을 해줘야 한다.
근당이 형의 서울행은 다시 구례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이를테면 선진문명 습득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을 차리는 것이 근당이 형과 주변 사람들의
희망이다. 모든 최고가 서울에 있을 이유는 없다. 읍내의 꼴통 형과 누나들 알잖아?
아빠가 그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두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제가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모모는 10월 커피점 영업하는 날을 알려왔는데 한 달에 14일 문을 열더라.
본인도 약간 부끄러워 하긴 했지만 모모를 누가 말리랴. 그러나 그 작은 커피점에서 모모가
커핑의 전 과정을 오로지 ‘손으로만’ 고집하면서 집중하는 모습을 너도 보았을 것이다.
오늘은 너희들 기상 시간이 정오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주말인데 조금 편한 시간을
가질 것이란 짐작만 한다. 아빠는 오늘 저녁 늦을 것이다.











수료식이 끝이 난 지금 일단 아이들은 2주일 정도 신병교육대에 머물 것이다.
그 동안 나는 다시 매일 아침 편지를 쓸 것이다. 그리고 자대배치 이후로는 좀 더 계획적이거나
기획적인 편지를 쓸 생각이다. 신병교육대 카페에서 아침마다 편지 쓰는 아빠 중에서 매일의
뉴스 브리핑을 하는 것을 보았다. 어지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을 일부러 벗었나 했는데 각개전투 때에 박살났다고 했다.

사격은? 다른 친구 안경을 빌려서 했다고 한다. 열여덟 발 명중이라 특전사 합격이라고.
제 안경이 아니니 눈에 뵈는 게 없어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오전 11시 되지 않아서 신병대를 나와서 일단 사창리 군바리 번화가로 나왔다.
열 개의 피자&치킨 집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코미디였다. 거의 읍 소재지 수준이었다.
안경을 먼저 맞춰야 했다. 서브 안경까지 두 개를 맞췄다.
수료식이 끝나고 낮 동안 밖으로 나와서 시간을 보내며 두 끼니를 먹었다.
아이는 글에서 느꼈던 것 보다 밝았고 말이 많았다.
할머니 등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밝았다.
2주차가 지나면서부터 부대 안의 상급자들 얼굴을 그려주면서 살 길을 도모 하고 있다고 했다.
준비해간 그림 도구를 전달했다.
펜션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간만에 느끼는 자유였을 것이다.
일시적 구속은 그 동안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가족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등을 깨닫게 해 주는 최소한의 보상이다.
그리고 제대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그렇고 그런 일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잊고 살게 될 것이다.
오후 6시가 되어서 펜션을 정리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다시 사창리로 나갔다.
화장지와 비누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생수 한 통을 마련했다.
7시까지 부대 안으로 들어가면 되지만 20분 먼저 이별했다.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2주일 정도 지나면 전화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녀석은 받은 상점으로
전화를 하지 않았다. 벌점에 대비해서 비축해 두고 있다고 했다.
어두워진 사창리를 벗어났다. 최소한 일백오십 대의 차량이 춘천을 향해 어둠 속을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그 차 안에는 눈물을 찍어 내는 엄마가 있을 것이고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어둠을 응시하는 아빠가 있을 것이다.
서울 외곽순환도로를 가리키는 내비를 무시하고 춘천을 지나 단양까지 달렸다.
텅 빈 휴게소에서 라면을 하나 시켰다. 내비게이션을 다시 설정했다. 320km.
한 번도 쉬지 않고 구례까지 달렸다. 망할놈에 팔팔고속도로 진입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월요일 자정 무렵 도로에는 차가 없었다.











아이에 대한 나의 포괄적 이미지는 목덜미였다. 2003년.
10년 전. 힘든 시절이었다. 인생의 매 순간 쉽지 않았지만 1995년부터 10년 정도의
시간은 ‘살아내는’ 일 만으로도 힘들었다. 방향은 없었고 순간만 존재했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생각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는 시절이었다.
저 목덜미는 어쩌면 그런 시절 나를 지탱해 온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저 목덜미로부터 벗어나도 될 것 같다.

 

 

* 사변적인 이야기를 나열해서 죄송. 정리가 좀 필요해서. 이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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