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이른 저녁

마을이장 2018.12.21 00:08 조회 수 : 1034

 

 

   

 

 

 

 

토요일이 동짓날인가.

해가 짧으면 걸음이 분분하고 마음은 모서리에 선 위태로움에 예민하다.

월급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교할 수 없는 자유분방을 누리지만 제 몫의 등짐은

필연적이기에 나 역시 항상 지금 내 앞의 무엇인가를 마주하고 있다.

간혹 내 곁에 없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아니, 그들이 불현 듯 나에게 다가올 때가 있다.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운전을 하다가 어느 길모퉁이를 돌 때

음악을 들을 때

무심히 눈을 던지 책장의 어느 책에서

밥을 먹다가 톳무침 앞에서.

 

 

 

 

 

 

 

010-5608-****

010-4236-****

011-770-****

010-5284-****

010-9166-****

010-5312-****

여전히 내 전화기에 남아 있는 번호와 이름들.

지난 몇 년 사이에 나 또는 우리 곁을 떠난, 이른 저녁을 맞이한 이들의 흔적.

코끝 시린 겨울은 그들에게 자주 기억을 호출 당한다.

간혹 전화를 걸기 위해 이름을 검색하다가 그들을 만나면 멈칫한다.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의 번호를 삭제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지난 몇 년 간 나에게 다가 온 ‘이른 저녁’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애써 참은 것이 아니다. 애써 울지도 않았다. 그냥 그랬다.

어제 있었는데 오늘 우리 곁에 없는 상황은 낯설다. 눈물은 너무 빠른 인정이다.

생각지 못한 이른 나이의 이별은 준비와 대책 그 무엇도 없다.

부인할 수 없이 죽음의 형식과 마무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대략 11월 20일경부터 지금까지 이사와 잣은 장거리 이동,

변화를 모색하는 결정들, 뜻밖의 부음들이 시간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오늘도 나는 가장 오랜 친구의 어머님이 차린 마지막 밥상 앞에 앉기 위해 구례를 떠났다.

영정사진으로 대략 사십 년 이상 지나서 뵈었지만 우리들 어린 시절의 그 얼굴이 남아계셨다.

저녁밥 먹고 본가에서 잠시 졸았다. 많이 피곤하다. 지난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나는

매일 400km 이상을 이동한 것 같다. 원래는 일 년에 한 번 하자고 약속했던 영후와의

여행을 위한 이동이어야 했지만 해가 가도록 미루고 미룬 여행은 절반 이상 그렇게 소진되었다.

목요일은 그래도 어딘가 계획했던 곳으로 다녀오자 작정하고 길을 떠났다.

미세먼지 속을 헤매는 일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들었다.

시야는 없고 모든 예쁜 것들이 사라진 풍경 속을 돌아다녔다.

무너진 것들 앞에서 몇 번 카메라를 들었다.

 

 

 

 

 

 

 

화요일. 큰 도시의 병원에 있었다.

거대한 병원은 내가 사는 곳과 다르게 지나치게 실내온도가 높았다.

산소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안에는 구례 인구 전체만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접수를 기다리고, 진료를 기다리고, 약을 기다리고, 수술실 앞에서 기다렸다.

거대한 병원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구 할은 ‘기다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기다리는 일 이외에는 없었다. 무기력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병원에서 사람들은 운명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너무 무기력해서 며칠째 잠을 자는 녀석의 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일단 일어나자.”

 

동지 지나면 이른 저녁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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