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을이장 2018.12.04 23:28 조회 수 : 1347

 

 

   

 

 

 

 

11월 30일 금요일은 잠시 이사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밖으로 나와서 점심을 먹었고 방치되어 있던 인화된 포스터를 폼보드에 부착하는 작업을

부탁하러 읍내 간판집에 갔는데 사장은 해외순방 중.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내가 하자고 작정하고 문구점에서 접착폼보드 5장을 사서 돌아왔다.

부착하고 칼질하고 양면테이프 발라 벽에 붙이고 하는 일이 대학 시절에는 자주 하던 일이지만

쉰여섯이 즐겨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노력> 포스터를 짐 정리하다가 만나서 먼지를 털고

다시 이렇게 손을 본 것은 순전히 지난 화요일에 누군가로부터 카톡을 받고 난 다음이다.

 

...

나한테 길든 칼을 놓고 무디고 녹슨 칼 한 자루를 받았습니다.

표류에서 탐험으로 마음을 바꾸기까지 여름 한 철이 지났습니다.

...

<노력>에 대해 마음의 짐이 무거웠습니다.

오래 성당에 나가지 못하고 있을 적에 성당 앞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숙였던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혹시 무언가 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긴 글의 일부지만 긴 글 전체를 읽고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나도 아닌 그가 왜 이리 이 일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노력> 포스터를 내 작업장에 붙이는 것은 자체로 어느 정도 고통이거나 가늠이다.

 

 

 

 

 

12월 1일 토요일. 미적거리다가 결국 광주로 방향을 정했다.

다녀와야 마음이 좀 편할 것 같았다. 행사장은 대략 만석이었지만 생각보다 북적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더 <전라도닷컴>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하는 일의 많은 대목은 기쁨보다 슬픔을 동력으로 한다. 나는 그렇다.

슬픔은 기쁨보다 힘이 세다. 또는 더 오래 간다. <전라도닷컴>을 이끌어 온 사람들은 대략

20년 이상 관계를 이어왔고 대략 16년 동안 종이잡지를 만들어왔다. 그 한계를 그들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만든다.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그들이 그 슬픔을 안다.

행사장 한 귀퉁이서 이불뭉치처럼 웅크린 불량한 자세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점심 무렵에 광주에 도착해서 구례로 돌아오니 거의 저녁 아홉시다. 지친다.

광주 시내를 약간 걸었다.

 

jacaranda.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꽃나무네요. 그곳에 계시군요.

...

사실 1년 이상 전라도닷컴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미동을 가지 않았으니까요.

그곳으로 배달되죠. 오미동은 아직은 저에겐 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마음이 그렇습니다.

200호 기념행사를 한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볼까 하는 마음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

오후에 선배의 카톡을 받고 잠시 멍했습니다. 감정적으로도 좀 흔들렸습니다.

<노력>이라는 표제 앞에 저는 그렇습니다. 연말에 중단을 선언하고 환불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못할 것 같아서. 그런데 선배의 카톡을 보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12월 31일로 지리산닷컴을 떠날 생각입니다. 2014년에 떠나야 했는데 시기를 놓쳤습니다.

...

 

 

 

 

 

12월 2일 일요일은 늦잠을 잤다. 깨었다가 또 잤다.

이사한 집 잠방의 문제점은 어둡다는 것이다. 잠은 편한데 깨지 않는다.

어쩌면 누적된 피로 탓이거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루와 마당에서 이사한 것 같은 난잡한 상황을 정리하는데 낮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농부 아들의 결혼식에 소용될 아버지의 인사말을 만들어서 전달했다.

 

세상에 나서 육십 년 살았습니다.

워낙 오래 사는 세상이라 요즘은 나이 축에도 들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세월 살아보니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지 혼자 힘으로 사는 세상이 아닙디다.

나이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닙디다. 제 집사람한테 물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도 아직 철부지 늙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세상 관습이 저를 보고 어른이라고 합니다. 그래 생각을 해 봅니다.

어른은 나이 헤아리고 쟁여서 되는 것이 아니고 등에 진 짐을 늘려가면서 되는 세월 이칩니다.

 

12월 3일 월요일은 무얼까?와 짬뽕을 먹고 부산으로 향했다.

엄마를 보고 얼마나 더 어려졌는지 확인하고 하의 내의 두 장과 바지를 하나 샀다. 도시라.

 

12월 4일은 아들과 함께 20년 전 부산 해운대 시절 사무실 앞 중국집으로 갔다.

그때 그 아주머니는 그대로 서 있었다.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20년 전 즐겨 먹던

야끼우동을 시켰고 군만두도 시켰다. 계산하면서 과거를 되새기지 않았다.

 

 

 

 

 

거의 오후 4시가 되어 구례로 출발했다.

김해를 지나칠 때 하늘은 무거웠다. 낮 동안 계속 해운대에서 운전을 했기에 많이 피곤했다.

돌아가면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일을 떠나는 방법이 집을 떠나는 것이다.

 

195호 이후의 제 삶은

그러그러한 저와

그러그러한 저를 보는 저

그렇게 둘이 동행합니다.

낯설어하는 사람으로 살다 돌아가고 싶습니다.

자우림의 고잉홈을 자주 듣습니다.

 

앞 차의 불빛만 보고 기계적인 시속 100km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속도로를 달렸다.

12월 31일로 나는 지리산닷컴에서 퇴직할 것이다. 오래 전에 결정한 일이다.

12월 31일에 자백할 일은 아니기에 오늘 말한다. 구례에 도착하면,

195호에서 멈춘 사람이 요즘 자주 듣는다는 Going Home을 내려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례에 도착해서 수요일에 촬영할 소재를 수령하고

읍내 마트로 가서 고기를 한 팩 사서 집에 당도했다.

저녁 8시가 되었다. 차에 가득한 이런저런 짐들을 정리하고 쌀을 씻어 밥을 하고

무얼까? 엄니로부터 받은 동치미와 석박김치를 내어 늦은 혼밥상을 차렸다.

 

지들이 잘나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두 집을 어깨에 더하게 되어 어른입니다.

지들 좋아서 한 결혼이지만 그 대가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과 짐의 무게에도 즐거움이 있습디다. 두 사람은,

“나 일 헌다!” 하고 자기 자신한테도 생색내지 말고 노는 것처럼 살기 바랍니다.

그러면 전라도 말로 암시랑토 안하게 가볍게 살아집니다.

이런 것을 무겁게 여기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전라도닷컴> 200호 기념품으로 만든 컵에 새겨진 말씀을 훔쳐서 혼례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12월 31일까지 간간히 글과 사진을 올릴 것이다. 별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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