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새와 잡가

마을이장 2018.11.29 21:59 조회 수 : 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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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31일에 이 방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 전에 읍내에서 2년을 살았다. 구례 13년 중 이 방에서 10년 6개월 잠을 잤다.

대략 11년의 흔적은 거울이 붙어 있던 자리로 남았다. 사람 흔적의 퇴적층은 이삿짐이 모두

빠져 나간 빈 벽에서 짠하게 느껴진다. 작은 방이었다. 조명 이외의 가전제품을 두지 않았다.

기계음과 빛이 없는 상태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간혹 여행에서 호텔이나 부산 본가의 방보다

누추한 이 방이 가장 편안했었다. 화려함과 편리함은 대부분의 경우 ‘내 방’을 대체하지 못했다.

15평 남짓한 이 집은 현재 비어 있다. 겨울이라 쉽게 나갈 것 같지 않은데 방 2개, 부엌 겸 마루,

화장실과 욕실로 구성된 낡은 샌드위치패널 집에 관심 있는 분은 메일로 연락 주시라.

월세 25만 원이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 장수1길 4-1 이다. 대문과 현관문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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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듯하게 이삿짐을 실내와 비가림 가능한 마당의 이곳저곳으로 집어넣고 손을 멈추었다.

생각보다 시간을 제법 잡아먹었다. 하루 전에 나는 내 차로 일곱 번 오가며 박스 기준 70여 개를

옮겼는데 막상 집을 비우고 보니 짐의 부피는 생각보다 많았다.

결과적으로 세 곳의 짐을 한 곳으로 합치는 일이니 역시 예상대로 집 마당은 고물상 전경이다.

이제 버리는 일만 남았다. 필요를 최소화하는 것은 사람의 결정이다. 3년 후에는 지금의 부피

30%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나 장담은 힘들다.

2018년 11월 28일, 작업장으로 이미 사용하던 공간으로 살림집을 더하고 첫 잠을 청한다.

누워서 보니 천정이 높구나. 매우 피곤했던 탓인지 늦은 커피를 마셨음에도 잠을 잘잤다.

잠자리는 일단 합격인 모양이다. 한옥이라 역시 외풍을 좀 더 느꼈다. 11월 29일 이 마을

아침 기온은 영하 3도였다. 영하 5도 이하로 내려가면 실내텐트를 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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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와의 전쟁이다.

지난 한 달여 전부터 이 마당에 그놈에 새가 등장했다. 어디에 집을 지은 모양이다.

문제는 거울 류와 하루 종일 마주하고 싸우는 것이 그놈의 특징이다.

그 동안 낮이면 마당에 주차한 내 차의 백미러와 운전석과 조수석 유리는 새 화장실이었다.

며칠 비닐을 씌워두기도 했지만 그것도 씌우고 벗기기 귀찮은 일이었다.

공사로 인해 무얼까? 트럭이 함께 주차하자 그놈의 새는 무얼까?의 백미러를 더 좋아했다.

손님이 오면 그 차 백미러도 여지없이 똥 발사.

3류가 놀러 와서 사뭇 확신에 차서 제시한 솔루션이,

“매 사진 같은 것을 붙이면 됩니다.”

첫 아침 나를 깨운 것은 마당에 주차한 차유리와 싸우는 그놈의 새새끼 소리였다.

이사했으니 하루 종일 마당 주차라 잡학다식한 3류의 안을 약간 쪽팔리지만 시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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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참혹했다. 3류 말을 들은 내가 바보였다.

처음에는 타짜가 화투장 보듯이 그림 감상을 하더니 잠시 후 여지없이 똥을 발사했다.

낮에 단카방에 결과를 항의했지만 하루 종일 3류는 말이 없었다.

오후 늦게 등장해서 새도 새대가리가 아닌데 흑백사진이라 시체로 인식한다는 둥 횡설수설했다.

새가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콩에 청산가리를 묻힐 것인지 여부는 나의 인내심과 성품이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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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의 전쟁은 미루어 두고 하루 종일 내 작업장을 세팅하는 일에 집중했다.

원래 사용하던 ‘잡가의 방’은 옷장과 여벌 냉장고와 옷가방에 빼앗기고 잡가는 창고로 쫓겨났다.

정말 잡초 같은 인생이다. 그러나 창고도 잡가가 작정하고 꾸미면 다시 잡가의 방으로 변신한다.

<호모루덴스> 시절 지리산닷컴 주민들로부터 기증받은 책과 집에 있던 소량의 책과 지난 2년 동안

생긴 책들을 한 곳으로 집결시키니 그렇게 버리고 버렸던 책들이 다시 제법 쌓인 꼴이다.

책이란 정말… 읽지 않으니 팔리지 않는 것일까? 그래 나도 책을 좀 읽자.

무릇 잡가는 책을 읽어야 한다.

 

해가 저물자 3류는 뻔뻔하게 전화를 걸어 와서 일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이사 끝나고 정리 끝났을 것이란 머리를 굴리고 전화를 한 것이다.

내 작업 공간만 겨우 빠듯하게 일 할 수 있게 만든 상태다. 우리 집 전체 정리는 1년 걸릴 것이다.

일단 금요일 오후부터는 바로 미루어두었던 일을 좀 시작하자.

이러나저러나 일할 공간은 대략 거칠게 준비되었으니.

12월이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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