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 야하다

마을이장 2018.11.10 16:39 조회 수 : 1156

 

 

   

 

 

 

 

목요일.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고 비가 내렸다. 하루 종일. 구례에서 부산까지.

바람 부는 비였다. 염두에 둔 한 곳이 있었는데 구례로 돌아오면 상황 종료될 것 같았다.

 

 

 

 

 

 

 

토요일.

아침 안개가 짙다.

운해냐 낙엽이냐. 시동 걸고 목적지를 정한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염두에 둔 장소로 이동했다.

 

 

 

 

 

 

 

무려 토요일인데 사람들이 들이닥칠 화엄사로 향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래서 일찍 시작하고 빨리 해치워야 한다.

지갑 흘린 개처럼 최근 나는 무엇인가를 찍으려 한다.

 

 

 

 

 

 

 

예상보다는 단풍이 제법 남아 있었다.

대숲이 비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섰던 모양이다.

 

 

 

 

 

 

 

대웅전 뒤에서 구층암으로 오르는 이 길이 100m 남짓 될까.

 

 

 

 

 

 

 

영화의 한 씬을 처리할 만한 거리다.

 

 

 

 

 

 

 

짙은 화장한 듯한 풍경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태생이 그러하다면 어찌할 도리는 없다.

 

 

 

 

 

 

 

이 길은 지나치게 야하다.

 

 

 

 

 

 

 

오늘 사진은 19금 판정이 맞다.

 

 

 

 

 

 

 

최근 내가 선호하는 빛 조건은 이런 것이다.

눈매가 서늘한 빛.

 

 

 

 

 

 

 

그러니까 이 길은…

사진보다 예쁘지 않다. 너무 단정적이긴 하나.

이를테면 포토제닉한 길이다. 또는 상투적 예쁨이랄까. 너무 박하나…

 

 

 

 

 

 

 

이틀 부산에 있으면서 TV를 봤다. 오래간만에 공중파나 자회사 채널에서 송출하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보니 공감하기 힘든 연출된 이쁨에 열광하는 소비층을 보았다.

비판적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나와 다른 세상에 대한 탐구의 시선으로 보았다.

 

 

 

 

 

 

 

뭐랄까…

세상은 어떤 측면에서 놀라운 진화를 하고 있고 어떤 측면에서 절망적 퇴행을 보이고 있다.

누가 살고 누가 죽을 것인지 가늠이 되었다. 융성하는 현상과 반응에 내가 있지 않으니

나는 당연히 멸종에 보다 더 접근하는 중이다. 궤도를 따르고 있다.

 

 

 

 

 

 

 

비판적 시선이 아니라 탐구적 시선이었다는 자평은 나의 공감 여부와 별개로

이해를 바탕으로 시장이 요구하는 제품을 기획할 필요는 있기 때문이다.

밥상이 그곳에 있다는데 반대로 뛰쳐나갈 용기는 없다.

진정성을 포기할 수 있다면 숟가락은 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어떤 대상을 정확하게 담겠다는 목적이 아닌데 나의 사진에서

포커스가 좁혀지는 경우는 ‘이런 것을 좋아할 것이다’는 ‘편집’이 먼저 개입한 것이다.

오래간만에 TV를 보니 소비자들은 기꺼이 그 가짜 현실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시골이, 구례가 돈을 벌기 위한 길은 가짜 현실을 파는 일이 될 것이다.

이미 있는 자연 조건에 가짜 현실을 접목시키는 뻔뻔함을 필요로 한다.

여행객들의 버킷 리스트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따위 일들이다.

 

 

 

 

 

 

 

여전히 간혹 나에게 ‘왜 무엇인가 기획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한다.

왠지 마을만들기나 지역 발전 로드맵 같은 것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렇게 보일 소지는 분명 있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은 아니다.

마을만들기나 지역발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발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곳 빈민은 아무리 봐도 대략 상대평가 기준 도시 빈민보다 행복하고 풍족하다.

1.5평 쪽방에서 불에 타 죽는 그런 곳이 아니다. 인구 절벽, 지방 소멸을 경고하지만

이곳은 소멸되더라도 도시보다 욕망에 절박하지 않다.

이런 곳에서 왜 더 잘 살자는 욕망을 기획할 것인가.

 

 

 

 

 

 

 

그래서 나의 관심은 나와 가족의 안위로 좁혀진다.

이 가을, 셔터를 누르는 중에 간혹 엄마가 생각났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이 가을에 찍은 사진을 수십 장 인화해서 엄마 방을 꾸며줄까.

엄마의 침대 교체를 위해 부산에 잠시 머물렀지만 엄마는 하루 종일 잠을 잔다.

 

 

 

 

 

 

 

우리 세대의 화두는 점점 좁혀진다.

너나 할 것 없이 부모님의 기저귀를 주문하고 치매를 걱정하며 요양원 비용을 계산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우리의 상황이 될 것이라는 예정을 받아들인다.

 

 

 

 

 

 

 

잘 사는 일을 어느 정도 달성한 국가의 백성들은 잘 죽는 일을 고민하는데

삶의 고민이 죽음이니 삶도 죽음도 고단하기는 같다.

 

 

 

 

 

 

 

아! 이래서 마누라가 글은 가급이면 쓰지 마라 그랬는데…

 

 

 

 

 

 

 

여하튼 내 말인즉슨…

좋은 길에 혼자 있다 보면 당신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그러나 꼭 오실 필요는 없다고.

 

 

 

 

 

 

 

어쩌면 이곳에 제때 당도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뭇가지가 더 앙상하고 낙엽이 더 쌓여 있어도 그 또한 제때일 수 있다.

 

 

 

 

 

 

 

지난 13년 동안 단 하루도 공사를 멈춘 적이 없는 이 오래 된 절집에서,

그 모습을 프레임 밖으로 편집하기 싫어 의식적으로 오지 않았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에서.

 

 

 

 

 

 

 

누군가는 처음 만난 ‘그 아침’을 마음에 인화한다.

내 엄마의 ‘그 아침’은 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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