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 음지에서 양지로

마을이장 2018.11.02 21:26 조회 수 : 701

 

 

   

 

 

 

 

하루 전날 밤 카페인 흡수량이 많았다.

자정 넘어 라면 끓여 먹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을 청하러 기어들어갔다.

아침 7시에 화장실 창으로 보이는 날씨는 안개 자욱하였다. 몇 초 갈등하다가 옷을 입고

커피를 내려서 보온병에 담고 집을 나섰다.

 

 

 

 

 

 

 

원래 피아골 쪽은 산책 목록에 없었다. 산을 오를 결단력은 없기에 연곡사에서 직전마을 입구까지

산책 정도일 것인데 토요일부터 단풍축제고 그 지점은 대략 절정을 맞이하였을 것으로 보이니

내가 접근할 구역은 아니다. 그러나 금요일 아침이라면 후다닥 몇 장 찍고 내려오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이다.

 

 

 

 

 

 

 

토지면 송정리는 항상 날씨 분기점인데 역시 자욱하던 안개는 외곡리 입구에서 보이지 않았다.

짙은 안개 속에서 단풍 사진을 찍고 어쩌고 하는 것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웃기는 소리다.

 

 

 

 

 

 

 

매표소 지나 연곡사 입구에 주차하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직전마을 아래까지 올라갔다.

골짜기로 해가 들어서기 전에 일을 끝낼 생각이다.

 

 

 

 

 

 

 

다리가 빠듯했다.

완만한 경사길이지만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니 종아리가 말려드는 기분이다.

그리고 목표지점 버스 종점에 도착해서 숨 돌리고 천천히 내려서면서 사진을 찍는 미션이다.

이틀 정도 후면 이 구간이 완전한 절정일 것 같다. 계곡 쪽으로 아직 염색 여분이 남아 있는 상태.

 

 

 

 

 

 

 

하루가 지나면 이 길은 차량이 통제되고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이 골짜기의 식당과 노점으로 나선 이들이 얼마간의 수입을 올릴 것이다.

그러나 걷는 중 사람들은 지출을 최소화한다.

 

 

 

 

 

 

 

머물게 하는 방안이 그 동네에 여행 온 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첫 단계다.

 

 

 

 

 

 

 

9시가 가까워지면서 차량들이 하나 둘 오르기 시작했다.

이 짧은 구간에서 차를 세우고 나를 세운 이웃이 두 명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멍청한 소리들을 나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세요.”

뻔하지 않나.

“한 번 놀러오세요.”

구체적으로 날짜를 지정하던지.

 

 

 

 

 

 

 

아침 골짜기 날씨는 추웠다.

내 주변으로는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녀들은 대부분 치열하게 산다.

 

 

 

 

 

 

 

명암 없고 채도만 있는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길 상황은 딱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역시 비가 좀 내리면 훨씬 분위기가 있겠지만 오늘 일기예보에 그런 일은 없다.

 

 

 

 

 

 

 

2013년 연곡분교 막바지 무렵에,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앞에 두고 이 길을 걸은 것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오후였고 햇살이 좋았다.

믿거나 말거나 이 아침에 그날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들렸다.

한 명 한 명 얼굴들을 소환해봤다.

 

 

 

 

 

 

 

저 모퉁이를 돌면 해를 만날 모양이다.

그러면 전혀 다른 사진들이 나올 것인데.

 

 

 

 

 

 

 

이 가을에 나는 좀 의식적으로 몇 곳을 더 돌아다닐 것이다.

금년 가을 이곳에서 단풍 사진은 11월 둘째 주 강 단풍까지 이어질 것이다.

천은사나 화엄사를 다음 주 초반에 한 번 더 방문할 것이다. 그 길은 그때가 절정일 것이다.

여력이 되면 대숲을 방문하고 이른 산수유 열매 사진도 찍을 것이다.

 

 

 

 

 

 

 

나는 지난 13년간 볼 만큼 본 탓에 굳이 찾지 않고, 가급이면 같은 장소 같은 사진을 올리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이곳은 오늘 주민으로 가입한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 내가 지루해도 계절에

충실한 사진을 반복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지속적으로 부지런할 가능성은 낮다. 아마도.

내 풍경 사진의 거의 전부는 밝은 햇살 역광 장면인데 최근 햇볕 좋은 날 사진을 찍고 싶지

않은 것은 내가 나에게 식상한 탓으로 분석된다.

 

 

 

 

 

 

 

사실 나는 싫증을 잘 내난 사람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장기적이거나 반복적인 프로젝트가 없는 것이다.

 

 

 

 

 

 

 

아, 이런 소리 하지 마라고 했지.

 

 

 

 

 

 

 

새사람은 될 수 없고 사람의 역량은 강화되지 않는다.

최근 상황에서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협업이 필요하다. 기특한 생각이다.

 

 

 

 

 

 

 

최근에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도구로서의 붓이 필요하지 않았을 때 아무런 미련 없이 붓을 잡지 않았는데 최근 간혹

어떤 장면 앞에서 물감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필요’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역시 노화 현상인가.

 

 

 

 

 

 

 

항상 행위의 원인은 필요였다.

막상 그림을 그려서 어디에 소용할 것인가. 장식도 한두 장이지.

나는 200호 이상의 큰 화면 작업을 선호했다. 그런 그림을 걸어둘 벽이 나에게는 없다.

 

 

 

 

 

 

 

그런데 햇볕은 좋긴 하구나. 콧물까지 찔찔했는데 몸은 제 알아서 볕을 쫓는다.

 

 

 

 

 

 

 

내려설수록 나무는 어리고 빛을 만난 색은 유난하다.

 

 

 

 

 

 

 

그리고 길은 묵묵하다.

그러니 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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