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 괜히

마을이장 2018.10.11 23:18 조회 수 : 522

 

 

   

 

 

 

 

한로(寒露) 무렵 풀이 예쁘다. 애증이다.

마당 곳곳에 무심한 듯 필사적으로 시멘트를 헤치고 일어서려는 풀들의 투쟁이

다음 해 봄으로 미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 무렵이면, 냉방도 난방도 하지 않는

사람 살기 가장 적절한 시절이다, 담배 연기는 멀리 날아가고 어느새 양지를 찾는다.

얼핏 가을이 있을지 의심이 들고 이런 날들이 일 년의 절반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요즘 자주 하는 소리가 ‘볕 좋다’는 말이다.

 

 

 

 

 

지난 주 부턴가? 실내 털신을 신게 된다. 내 방은 난방을 하지 않으니 바닥이 차고

특히 아침이 그러하다. 아궁이 방이다. 아궁이는 포기할 것이다. 더 이상 나무를 구하지도

때지도 않을 것이다. 일과 일 사이 어디즈음에서, 산다는 일이 제법 피곤하다는 생각이 드는

어디즈음에서 바라보는 햇볕은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거나 내려놓게 만든다.

서울에서는 볕드는 방바닥을 자주 응시했던 것 같다. 방바닥을 응시하면 조금 더 나약해진다.

 

 

 

 

 

10월 11일. 늦은 성묘를 갔다. 일찍 나섰기에 오전에 두 곳 산소 일은 끝이 났다.

오도재가 보고 싶었다. 길을 그리 잡았다. 오도재에서 바라보는 긴 전깃줄을 염두에 두었으나

점심 전 빛으로는 전깃줄이 보이지 않았다. 관계없다.

단풍 전 차분한 마지막 녹색과 이른 낙엽이 어우러진 이즈음은 길을 음미하기 좋은 시절이다.

항상 추석 지나고 제법 있다가 성묘를 하는데 그 길들은 항상 좋았다.

햇볕이 바스락거린다거나 햇볕이 부서진다는 표현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도 많이 한 표현이지만

역시 그 표현이 이 계절 햇볕 찬양에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오도재 전망대에서 담배 한 대 피면서 힘겹게 갈지자 고개를 오르는 청년을 길게 보았다.

오도悟道. 깨닫다. 자뻑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마당에 깔리거나 상판으로 소용될 바위들이 여전히 뜯겨 나가고 있었다.

대략 30년 이상 산을 먹고 살고 있다. 이 산의 부피는 대한민국 곳곳으로 떠나서 대한민국의

무게 총량을 지탱하고 있을 것이다. 일상으로 내가 사용하는 도구를 이룬 물질의 근원을 찾아보면

뫼비우스의 띠에 속한 나를 보게 될 것이고 참 부질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니 여기서 멈추자.

 

 

 

 

 

포장을 다시 하건 어쩌건 어차피 눈 내리면 오르지 못할 길이다.

이 길가의 마을에 의탁해서 살아가는 일은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쉽지 않을 것이다.

 

 

 

 

 

둘레길이다 뭐다 최근에 와서야 휴천이나 마천같은 마을 이름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만

이런 곳에 여행객을 불러 돈을 마련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요즘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발상이었다.

지리산닷컴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지난 10년 이상 한 짓의 본질도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니

간혹 했던 일에 대한 반성을 한다. 그리고 재발한다.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 아름다움을

발설하고 ‘이곳은 보전해야 한다’는 쇼를 하는 일이니 우습긴 하다.

 

 

 

 

 

풍경 앞에 마음이 빠듯하다.

점심 무렵인데 그냥 굶고 산을 넘어야 할 모양이다.

 

 

 

 

 

산을 넘는 도로는 한적했고 달궁계곡 앞만 유난히 단풍이 일렀다.

일을 핑계로 이 산 주변을 돌다보면 이곳이 참 수려하다는 각성을 한다.

이 가을에는 달궁이나 뱀사골 어디 즈음을 몇 번 서성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몸과 마음이 그렇게 부지런할지는 모르겠다.

반나절 원행 길에 사진 몇 장 남기고 괜히 몇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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