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9월

마을이장 2018.09.25 23:27 조회 수 : 995

 

 

   

 

 

 

 

3일 장에서 배추 모종을 스물한 개 샀다. 금년에는 상징적이건 실용적이건 배추를 약간 심기로 했다.

하루 전에 풀을 뽑고 약간의 밑거름을 했다. 순영이 형님 숙성퇴비라 바로 심어도 관계는 없다.

그럭저럭 배추 모양이 나오면 십여 포기 김장이라기보다 김치를 담을 것이고 시원찮으면 겨울 동안

하나씩 뽑아서 푸른 채소로 먹을 것이다. 배추모종을 심는 것은 기약할 내일이 있다는 소리다.

워낙 달성해야 할 목표라는 것이 없는 삶을 산 시간이 대부분이라 그로 인한 헛헛함을 이런 방식으로

채워보는 수작이기도 하다.

 

 

 

 

 

9월 26일 현재, 9월 첫 주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일을 했거나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하는데 멍하게 있었거나.

몇 년이 지난 증상이지만 하나의 미션이 끝나고 나면 바로 다음 일로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

끝나가는 여름비가 많았을 것이고 그 사이사이 가시거리가 먼 날들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배추 모종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한 비가 왔었다. 우려했던 무 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무 싹이나 나는 단지 살아내었을 것이다. 보다 사변적인 이야기들은 생각이 나지만 주절거릴 일들은 아니다.

 

 

 

 

 

미루어오던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 미션에서 햇밤이 필요했기에 밤이 벌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추석 전에 판매를 시작할 것이니 대략 촬영 한계 시간이 임박해 온다.

월인정원이 아침 산책길에 한 가지 꺾어 온 밤송이를 다칠세라 다듬어서 무대를 준비한다.

나의 조건과 장비와 제품 촬영은 적절하지 않으니 다른 업체를 알아보라고 투정을 부리지만

관계와 관계 사이에는 돈이라는 다리가 놓이고 다리는 참 편리한 것이다.

이날은 좀 많이 촬영을 했다. 나로서는. 나는 촬영도 불필요하게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그걸 살펴보고 선택하는 시간이 더 피곤하기 때문이다. 추석맞이 제품 구성이 좀 있었던 탓에

600컷 이상 찍고 나니 몸은 방전이 된다.

 

 

 

 

 

말이 안 되는 사진을 예쁜 척 화장을 시켜야 하니 촬영 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에게 지불하는 촬영비용은 저 과자를 몇 봉지 팔아야 가능한 것인지 따위를 생각하며 작업한다.

지난 수년 간 나에게 경제적 편리를 제공한 관계이니 이번에는 추석 선물로 그냥 작업해서

전달해야겠다고 저 당시에는 생각했으나 추석이 임박해서 작업비용 청구를 했다. 또 다음으로 미룬다.

일을 한 만큼의 대가라는 것은 참으로 주관적인 것이다. 시장 가격에서 좀 떨어진 나의 태도는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 좀 형편이 나은 쪽에는 제법 청구하고 그렇지 않은 상대방에는 무료도

다반사니 누군가는 ‘그 사람 비싸다’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 사람은 그냥 해 준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관계와 관계가 모두 ‘우리’를 이루는 하나의 원형일 것이니 그렇게 지역경제는 돌아간다.

 

 

 

 

 

순영이 형님 딸 진주와 커피를 마시다가 순천으로 가족사진 촬영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

순천사진관에 피해를 주는 일이나 그 가족사진 내가 찍어주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순영농장’에서 내가 받은 것은 너무 많아서 이런 경우에 약간의 수고를 자청하는 일은 다행이다.

무엇보다 이 가족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내가 애정하는 가족들이 전국 어디에서나 똑 같은

가족사진으로 남는 것 보다 가급이면 ‘가족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사진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요일은 볕이 좋았거나 강렬했고 감 밭에 식구들을 도열시켰다.

두 사람이 만나 스물두 명이 되었다. 서른한 번의 셔터를 눌렀고 열한 장의 사진에서

나름 불만이 적을 얼굴들을 따로 가져와서 한 장의 가족사진을 완성했다.

나는 본인들도 모르는 이런 위조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한다고 수시로 떠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2017년 내 어머님 팔순 때 촬영한 나의 가족사진 작업은 아직 완료하지 않고 있구나.

 

 

 

 

 

9월 작업의 대부분은 몇 가지 PT화면을 만드는 일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PT화면을 만드는 일은 허공을 걷는 기분이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화면을 만드는 작업은

모니터 앞에서 혼자서 궁시렁 거리게 만든다. 모니터 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료를 검색하면서

만들다보니 삼천포로 빠지는 일도 잦다. 내 일의 대부분이 파일을 납품하는 일이라 물리적 실체가 없다.

20년이 넘었는데 초창기 몇 년 작업 데이터는 CD 또는 DVD로 남아 있는데 그것이 세월이 흐른 지금

과연 온전하게 열리는지 조차 불분명하다. 그 파일들을 열어 볼 일도 없다.

지금 내 컴퓨터 하드와 외장 하나에 지난 13년의 작업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관리와 저장을 비교적 충실하고 잘 해 온 편이라 생각하는데 그것들이 과연 이후에 쓰임이

있는 것들인지 의문스럽다. 디지털데이터는 어쩌면 책장의 책과 같은 것이다.

늦은 밤 마당으로 나와 바람을 쐰다.

 

 

 

 

 

이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무얼까?의 현장에 지원 나와 있다는 소리다.

거의 혼자서 6개월째 집을 짓고 있다. 이제 끝이 보인다. 그러나 한 달은 더 가야할 것이다.

지켜보거나 몇 번의 경험으로 이제 나는 면 단위 구옥보다 읍내 아파트를 갈망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도시에 살고 싶은 생각은 없고 편리는 해야겠으니 돈 모아야겠다.

시골 신축아파트들도 2억은 넘어간다. 참고하시라.

 

 

 

 

 

십여 일 넘어서니 배추모종이 고비를 넘겼다. 이제 자리를 잡고 자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항상 퇴비가 부족한 내 밭의 배추는 다른 집 배추 절반 수준으로 성장한다.

한 해 전 9월 8일에 이 집 수리를 시작했으니 막 1년을 넘겼는데 주변 풍경은 많이 변했다.

인간은 배추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산도 키우고 둥지도 키운다. 평생을 누워 있던 소나무는 일어섰고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출퇴근길에 마당에 서서 저 소나무 상태를 살피는 일이 일과의 하나다.

 

 

 

 

 

15일은 인천에 10시간 정도 머물렀다.

동구 오래된 골목들을 촬영하는 동안 비가 드문드문 내렸고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지하상가의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업무를 처리하고 걸어 둔 내 카메라의 모습을 본다.

비에 젖기 다반사다. 두 번 병원을 다녀왔을 것이다. 9년짼가.

내다 팔면 30만 원이라도 받나. 20만 원 받나. 아, 바디만. 렌즈는 그것보다는 더 받을 것이니.

내가 가진 카메라 장비의 모든 것. 그런데 세 권의 사진집을 내었으니 나는 투자에 굉장히 인색하다.

중고를 구입했었다. 아마도 기계는 사망할 때까지 사용하게 될 것이다.

저 카메라를 보낸다고 해도 나는 다른 카메라를 장만할 것이다. 오늘 전체 사진 같은 경우는

아이폰 사진인데 편리함과 즉각적 활용 이외의 사진적 의미는 나에게는 없는 것 같다.

내 안의 문화적 중심 코드는 1980~2000 인 것 같다. 당연하다.

물건 욕심이 없는 것은 신이 있다면 나에게 내린 축복일 것이다.

그런데 화장실 참 깨끗하네. 그러나 사진 구도에서 짐작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실 필요는 없다.

 

 

 

 

 

장거리를 다녀오면 다음 날 보다 그 다음 날이 더 피곤하다. 약간의 몸살이다.

10번 배추를 계속 주목하는데 태생적으로 약한 놈은 어쩔 수 없다. 교체를 생각했으나 계속 지켜보았다.

일단 생존은 하겠으나 김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되지 않을 목숨을 두고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사람이 자신의 자식에게 주로 하는 짓이다. 그 역시 당연한 일이고 진화의 동력은 모체의

비현실적 기대감일 것이다. 생존하면 더 우월하기를 기대하고 우월하면 그것이 영원히 세습되기를 기대한다.

배추를 보면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나의 오랜 확신을 거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조금 더 희망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약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9월은 구례사람들의 sns에 아침과 저녁노을 사진이 많이 올라왔다.

9월은 아침 안개가 운해로 변하고 구름이 많고 일기불순해서 노을이 가장 예쁜 시절이기도 하다.

제법 성실하게 저녁밥을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21일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저녁을 밖에서 먹기로 했다.

집을 나서는데 노을이 예쁠 조짐이 보였다. 잠시 카메라를 챙길까 하다가 그냥 집을 나섰다.

노을이 예쁘면 명절이 가깝다. 나는 계속 PT화면을 만드는 일을 지겹도록 계속했고

등짝은 오른쪽으로 담이 잡히는 느낌이 왔다.

무목여행을 할 줄 모르면서 무목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슬슬 발동한다.

일이 하기 싫다는 몸의 사인이다.

 

 

 

 

 

22일 토요일까지 과업을 끝내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23일 일요일은 제수를 준비해야 한다.

최소한 3일 정도 명절로 진입하고 대한민국 전체가 일상의 손을 놓게 된다. 다른 손이 바빠진다.

이 밤으로 부산으로 출발할 생각이니 낮 동안 차례 상 음식과 두어 가지 반찬을 만들어 두고 떠날 생각이다.

 

 

 

 

 

다른 때와 달리 생선을 먼저 처리했다. 찌고 구웠다.

고마운 이가 보내 온 생선은 반건보다 조금 더 마른 상태. 찌는 것이 옳았다.

생선은 몇 년간 사용한 것 중 가장 깔끔하게 손질이 된 상태였다. 산적은 항상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종목이다.

재료를 다듬고 살짝 데치고 끼우고 굽는다. 그 모양을 유지해야 하니 굽는 중에 반죽을 조금씩 사이로 넣어서 모양을 잡는다.

여벌의 에쿠아도르産 새우를 껍질 벗겨 굽고 육전과 잡전을 굽고 제사 음식은 마무리 한다.

줄인다 해도 기본 가짓수는 있기에 들이는 시간은 비슷하다. 언제까지 이 음식들을 만들게 될까.

그 기준점은 어머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역시 고마운 이가 보내 온 전복 중 내장만 모아서 죽을 끓인다.

이것은 두 집 어머니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리고 육개장 스타일의 소고기국을 끓여 놓고 나니

서산으로 해가 넘어가려는 시간이다. 피곤하다.

그러나 집으로 가서 짐 챙기고 샤워 하고 부산으로 길을 나서야 한다.

 

 

 

 

 

추석 아침. 큰집에서 메인 차례를 먼저 모신다. 사촌 형님. 6월에 몸에 이상이 왔다.

8월 아버님 기일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집 남자들 가족력으로 봐야할 것 같다.

설 이후 처음 뵌 사촌 형은 왼쪽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고 말도 약간 어눌했다.

어린 시절 유복자 조카들을 아버지는 같은 집에서 한 동안 책임졌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사촌 형에게 열일곱 해 아래 사촌 동생인 나는 사촌과 자식 사이 어디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참 잘 대해주었다. 잠시 배를 타던 시절에는 돌아오는 길에 신기한 외국 장난감을 사 오기도 했다.

얼마 전 다녀 온 인천에서 나는 사촌 형을 기억했다.

나의 첫 인천은 사촌 형이 잠시 교편을 잡았던 시절 인천 방문이었다.

시골마을에 가끔 등장하는 수제들의 길은 거의 두 갈래다.

입신양명하거나 집안의 그늘에 사로잡힌 평생을 살거나. 사촌 형의 모습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칠십 셋 개띠. 그것은 비현실적인 나이였다. 나에게 사촌 형은 여전히 책받침으로 만든 축구공을

마분지 위에 만든 축구장에서 볼펜으로 튕겨서 게임을 하던 시절의 웃음소리가 또렷한

경남고등학교 교복 입은 말 없는 형이어야 한다.

그의 삶도 그의 나태함에 모든 책임을 묻기에 너무 제로베이스의 환경이었기에

내 앞에 선 백발의 노인은 가당치 않다. 시간은 해를 거듭할수록 마하 속도로 지나가고

포유류는 운명적으로 분투한다. 큰조카에게 추석 전 밤에 처음으로 용돈을 받았다.

그냥 사라지게 할 돈이 아니라는 생각에 외장하드를 하나 더 사야겠다.

 

 

 

 

 

그리고 다음 날로 구례로 돌아왔다. 오후에 바로 작업장으로 와서 배추를 살펴본다.

커피를 두 번 볶고 대략 청소를 하고 냉장고를 체크하고 집으로 가서 내가 만들어서 간 음식을

다시 들고 와서 차례 음식 소비 주간으로 돌입한다. 그리고 가을이다.

하반기는 힘들 것이고 개인사적으로 주변이 많은 변동이 있을 것이다.

26일 수요일 오늘. 나는 완료하지 않은 일에 돌입하지 못하고 명절 감정 수습과 내일을 준비한다.

글에서 유머감각을 회복할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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