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굿바이 8월

마을이장 2018.09.01 19:28 조회 수 : 1037

 

 

   

 

 

 

 

많은 비가 내렸다. 서울 언론에서 구례에 370mm 정도 내렸다고 보도해 주었다.

피아골 기준이었다. 하여간에 많이 왔다. 그리고 아주 맑은 하늘이 8월 28일에 열렸다.

구름은 한계선을 두지 않고 치솟아 올랐고 습도 또한 엄청났다. 낮 기온은 분명 떨어졌지만

습도 때문에 에어컨은 망설임 없이 돌아갔다.

여름은 긴 그림자로 위세를 표현했지만 물러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2년짼가? 3년인가… 아버님 기일 음식의 절반을 구례에서 만들어 이동한다.

명절 음식도 같은 방식이다. 해보니 이 방식이 편하다. 일을 끝내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하루 전 구례 장날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고 이른바 모든 전 종류와 생선을 처리한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이상하게 생선 값이 좀 싸다는 생각을 했는데 도미가 빠졌다.

그냥 빼고 가기로 했다. 어머니는 제사상을 점검하지 못할 것이니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새우도 배를 갈라 넓게 굽지 않고 그냥 튀김 모양으로 퉁쳤다. 세월이 갈수록 가짓수와 형식은

조금씩 무너지는 중이다. 형수와 통화를 하면서 조율을 하면 대략 편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다.

방심한 탓에 생각보다 늦게 끝이 났지만 일의 끝은 항상 개운하다.

다음 날 제사 모시고 늦은 밤으로 바로 구례로 돌아왔다. 더위를 핑계로.

 

 

 

 

 

2012년 볼라벤 이후로 오래간만에 태풍을 맞이하는 모양이다.

온다는 분은 조금씩 늦어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이틀 전부터 태풍 대비를 한 꼴이다.

현관 밖에 있던 ‘굴러다닐’ 가능성 높은 물건들을 마루 안으로 넣고 휘날려 손상될 물건이나

시설은 붙들어 매었다. 그러나 농부들 노심초사와 대비에 비할 일은 아니다.

시골에 살면서 예고된 자연재해 앞에서 나조차 약간 긴장하게 된다.

마루로 들여 놓은 물건들 보다는 마루 전체 방충망이 찢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정도가

나의 가장 큰 우려였다면 유실수 농가와 하우스, 낮은 농지의 농부들은 장비를 대기하고

만약의 사태에 임하는 전시상태로 돌입한다.

 

 

 

 

 

대략 점검이나 방비를 하고 간만에 소집한 밥 친구들과 점심을 나누고 소집의 이유였던

‘뭔가를 조직하는’ 일을 주제로 커피를 앞에 두고 회의라는 것을 해보고 무얼까?의 부름을 받고

‘벽을 세우러’ 현장으로 잠시 갔다. 무얼까?의 요청 역시 태풍에 대한 방비이기도 하다.

무얼까?는 5개월째 혼자서 집을 짓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간혹 요청이 오면 돕는다.

빠듯한 반 년을 채우면 대략 일의 끝이 보일 것이다. 징한 놈.

 

 

 

 

 

그렇게 27일까지 태풍이 지나갔거나 많은 비가 지나갔다.

날씨는 일상을 유보하기 좋은 핑계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핑계를 가진 공범이니 도덕적으로 큰 흠결은 나지 않는다.

날씨가 험하면 내가 직장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전화기는 계속 구례군의 날씨 관련

경고성 문자가 쌓이고 재난문자는 이전부터 차단해 두었다.

나는 단지 음식을 장만한다. 반짝 게인 이틀 사이에 다녀간 지인이 들고 온 반건 생선을

찜기에 찌고 미루어 두었던 염장고추에 장을 끓여 부었다. 그런데 장에서 산 소금 절인 고추는

아무래도 할매들이 고추에 구멍을 내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8월의 마지막 날 아침 출근길에 다시 신호등 앞에 대기한다.

비는 또 험하게 내릴 모양이다. 초록불이다. 9월이 온다. 이제 어디로 튈까.

불가항력적 방향은 정했는데 내 다리는 확신이 있는가.

늙은 우리들.

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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