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유시민과 버드리

마을이장 2018.08.12 17:35 조회 수 : 1611

 

 

   

 

 

 

 

 

하루 전 중거리 왕복 뛰고 와서 몸이 제법 뻐근한 토요일.

역시 하루 시작은 요즘 가장 애용하는 진공청소기로 작업장을 한 번 빨아들이고

커피를 내리고 모니터 앞에 앉아서 광고메일을 걷어내고 몇 가지 검색하고 헤드라인들만

휘리릭 째려보고 다음으로, “이제 뭐하지?”

누구를 만날까?

미친 척 하고 숲으로 들어가서 사진이라도 좀 건져볼까?

한 평 텃밭 풀 뽑고 세차 하까?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작은 방에 ‘제습’ 켜 놓고 잠을 잘까?

분명한 것은 무엇이건 집중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궁리를 하는 것이다.

집중해야 하는 일은 밥벌이 일이거나 과업, 둘 중 하나다. 여름에 일로 나를 학대한 경험이

많았는데 이번 여름은 제법 멍하다.

 

 

 

 

 

밥벌이 촬영 하면서 유튜브 켜 놓고 짧은 시사팟케스트 하나 건성건성 듣다가 자동적으로

다음 클립으로 넘어갔는데 유시민의 책 광고 팟캐스트로 넘어갔다.

역시 별 생각 없이 BGM으로 듣는데 두 가지 대목이 내 귀가 주목하게 만들었다.

시작 설레발을 치는 중에 이번 책이 어찌 나오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면서 돈이 급해서

급전 당긴 일을 해결한 책이라는 대목이 나왔다. 전세금이 너무 많이 올라서 출판사로부터

선 인세를 억 단위로 받았다.

(방백 : 어! 이 촬영도 땡겨 쓴 돈 땜빵인데. 그런데 액수가 좀 다르군.)

내가 그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미루어 짐작했던 대로 인세라는 것이 겉보기 엄청나게 많아

보이지만 축적된 30년 정도의 임금으로 치환하고 주변 신세와 부채를 제외하면 외화내빈할 것이다.

그의 인지도와 이력과 스펙과 영향력으로 볼 때 30년 임금을 30억 정도로 계산하는 것은

GNP 3만 달러라는 나라에서 무리한 산정은 아닐 것이다.

 

 

 

 

 

다음으로 그가 출퇴근 글쓰기를 하는 이야기가 들어왔다.

왜 집에서 작업을 하지 않는지는 나 같은 20년 프리랜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지점이다.

대학생 시절 즈음에 좋아했던 마그리트와 뭉크 같은 화가들도 출퇴근 방식으로 작업장에서

스스로 정한 시간 동안 ‘노동’을 했다. 무엇인가 창작을 하는 영역에서 일 하는 사람들 중

작업답게 작업 하는 사람들은 대략 출퇴근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문학예술 종사자와 자발적

프리랜서 밥벌이들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한없이 나태해지기 십상이다.

나 역시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일이, 어떤 시기에는 그런 방식으로 일을 했는데

언젠가부터 이런 자세가 깨어졌다. 지난 12년 이상 사무공간과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은 같았다.

일을 제대로 한다면 나 역시 낮 시간 동안 손님맞이하는 일을 자제하는 것이 맞다.

막상 저녁에 집에서 집중하는 작업량이 더 많았다. 일 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가

무너진 것은 오래전이다. 이런 일상은 좋지 않다. 개선하려면 일상의 원칙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

출퇴근 글쓰기를 하는 그의 이야기에서 ‘과업’을 설정하고 진도를 나가야 하는 이른바 ‘작가’ 라는

직업인을 느꼈다. 나는 스스로 작가라는 생각이 없다. 매일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무엇보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 그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글을 읽는 것도 쓰는 일과 같은

과업이자 노동이다. 그 일이 직업이라면 그렇다.

그래서 포괄적으로 나의 나태함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반성을 넘어 ‘나의 직업’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극히 주관적이나 각설이 ‘버드리’를 유튜버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환생한 부처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리띠가 아닌 ‘돈다발 띠’를 두른 그녀의

말과 행동은 수백만 번의 수치심을 겪은 이가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 같은 상태였다.

같은 직업인 중 부끄러움을 청중들 몫으로 만드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지자체 축제장 같은

곳을 스치며 간혹 보면 그렇다.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곁눈으로 보게 만드는.

무엇보다 그녀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었다.

너는 뭐가 그리 지킬 것이 많냐?

결국 너도 나와 같은 것이 필요한 것 아니냐?

그럼 그에 합당하게 살아라.

무엇보다 그녀는 지독하게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 하지 않으면 그녀가 내려놓은

잡념들이 일어서서 악귀처럼 그녀에게 달려들 것이기에 그것들을 물리치는 전사처럼 각설이를 놀았다.

설명이 없어 다소 이해에 문제가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세이스트 호시노 미치오가

알레스카에서 곰에 찢겨 죽은 ‘죽음의 방식’에 대해 ‘그런 삶을 살았다’고 추도한 어느 작가의 글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는 밤하늘의 명징한 북극성처럼 새겨진다.

나의 현재는, 내가 살아 온 방식이 축적된 합당한 결론이다.

 

 

 

 

 

며칠 사이 약간 누그러졌다. 여름은 결국 갈 것이다.

일요일 아침부터 마트로 가서 몇 가지 장을 봤다. 작업장에서 몇 가지 반찬을 만들 생각이다.

해 지는 시간에 집에서 불을 피우고 무엇인가 반찬을 장만하고 나면 한순간 녹초가 된다.

오늘은 아예 일요일 낮 동안 3일 정도 먹을 반찬을 만들 생각이다.

마른 멸치를 칼로 다진다. 국이나 국수가 아닌 찌개의 경우 나는 다싯물 보다 그냥 멸치를

몇 개 썰어 넣는 방식을 선호한다. 된장찌개를 완성형으로 준비한다. 야채를 썰어서 된장통으로

넣고 반죽한다. 1인분 4회 정도 먹을 분량이다. 한 숟가락 뚝배기에 넣고 짧게 끓이면 된다.

여름 된장은 좀 짜게 끓이는 편이다. 그래봤자 어릴 적부터 먹었던 그 경험 그대로의 맛이다.

음식을 준비할 때 미루어 둔 생각을 하는 편이다. 무념한 칼질 속이나 청소 중에 조금 더 큰

단위의 삶의 방침에 대해 고민하는 방식은 적절하고 권할 만하다.

 

 

 

 

 

여름 동안 배가 많이 나왔다. 주범 중 하나가 바로 이 칼국수다.

면을 좋아하고 특히 칼국수를 좋아한다. 여름 칼국수는 멸치 국물에 파, 마늘, 청양초 몇 개

넣고 단백하게 끓인다. 매우 뜨겁기에 여름에 적절하다. 오뎅 볶기 전에 한 장 빼두었다.

육개장을 끓이는 중인데 사태살만 길게 삶는 중이라 실내는 덥고 국수는 뜨겁다.

현관문 열어 두고 최근에 다시 피는 대문 기둥 상사화 훔쳐보며 점심을 해결한다.

간혹 혼자 먹는 밥을 준비할 때 나는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마련하는 편이다.

내가 일상으로 가장 많이 표현하는 단어이거나 개념은 ‘살림’일 것이다.

집구석에서 밥 안 해 먹고 자주 집 밖에서 잠을 자면 그 집은 집이 아니다. 자산 가치만 있다.

내 사는 문제로 생각이 많은 최근이다. 생각이 곧 고민은 아니다. 생각이 고통 또한 아니다.

그래서 밥 준비와 청소 같은 일을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위대한 업적 없어도 구성원으로서

1인분 몫을 하겠다는 소심하고 실현 가능한 목표 같은 것이다.

그래봤자 내 입으로 들어가고 내가 누울 자리 치우는 일이다.

 

 

 

 

 

밥 먹고 식힌 고기를 손으로 찢는다. 왜 칼로 썬 고기와 손으로 찢은 고기 맛은 다른 것일까.

고추기름도 내었다. 그러나 고사리와 토란대가 없으니 제대로 된 육개장은 아니다.

있는 채소 넣고 부추무침 생각으로 산 놈을 그냥 막판에 소재 부족을 이유로 육개장으로 투하했다.

콩나물까지 들어갔으니 소고기국과 육개장 중간 즈음의 국이 만들어졌다.

두 사람이 3회 정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인근 식당에 냄비 들고 가서

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음식이란 아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일단 이 여름은 지나야겠다. 주로 모든 장소의 에어컨 속에 존재하나 이 여름이 쉽지 않음은

항상 느낀다. 앞으로 맞이할 여름은 더 힘들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시민과 버드리의 ‘그런 삶을 살았다’를 드문드문 생각한다.

 

 

 

 

 

육개장 식히는 동안 오뎅 볶고 소시지를 계란 옷 입혀 구웠다. 이건 두 번 정도 먹겠다.

너무 일찬으로 밥을 먹어서 오늘은 두세 가지 만들어 본다. 집에 있는 두어 가지 찬을 더하면

오늘 저녁은 진수성찬이 되겠다.

지난밤에 주변 친구들 카톡 방에서 성삼재에서 별을 보자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지리산 자락에 살면서 지리산을 모르고 산다. 지난 밤 성삼재 주차장에는 쏟아지는 유성을

바라고 온 인파와 텐트와 음주가 난무했던 모양이다. 월급쟁이들 여름 끝나고 몇몇이 보온병에

커피 좀 채우고 군것질 몇 가지 들고 아, 긴팔 상의 준비해서 성삼재에서 별을 보자.

별비가 쏟아지지 않아도 별 관계없을 것이다. 아주 멀리는 모르겠고 가까운 미래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이 여름을 어찌 보냈는지도 이야기하자.

금년 가을에는 몇 년 만에 뱀사골이나 달궁계곡 단풍 소풍도 한 번 가면 좋겠다.

 

 

 

 

 

한낮이 뜨겁고 노을이 강하다.

광복절을 기다린다. 결국 그 날 이후로 여름은 접어들더라.

그리고 출퇴근 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각설이처럼 솔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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