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염천잡설

마을이장 2018.08.01 22:47 조회 수 : 1090

 

 

  

 

 

 

 

덥다.

시골의 더위를 경험해 본 사람들을 알겠지만 정말 간명하게 덥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에어컨 실외기 기분 나쁜 바람과 먼지, 냄새 같은 것이 없다.

건물이 없으니 숨어들 그늘은 당연히 없다. 물론 나무 그늘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로 이동을 한다. 뙤약볕 내리쬐는 포플라 나무 가로수 사이로 먼지 일어나는 자갈길 위를

걷는 사람들은 70년대 풍경일 뿐이다. 주차해 둔 차 안으로 엉덩이를 밀어 넣는 ‘뜨거운 체험’은

하루에 몇 번씩 한다.

대부분의 주민을 이루는 노인들은 마을회관에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다. 나도 10년 정도 지나면

입장해야 할 피난처다. 전기세를 감당할 마음과 물질이 부족한 노인들은 노인정이 답이다.

따라서 야외형 ‘유산각’에 부채를 들고 지나가는 방문객을 희롱하는 시골 노인도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머물다 간 다음 날 오전에 내가 먼저 한 일은 행주를 빨아서 빨랫줄에 너는 일이었다.

단지 인상을 살짝 찡그릴 정도의 악력으로 얇은 천 쪼가리를 쥐어짜는 동작만으로 등짝으로

가느다란 땀이 한 방울 에로틱하게 흘러내린다. 에드리안 라인 감독이었다면 느리게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길게 잡아내었을 것이다.

 

 

 

 

 

짜다.

옥돔이다. 누군가 보내 준 제법 양질의 마지막 옥돔을 냉동실에서 불러내었다.

요즘 저녁 밥상의 절반 이상은 물에 말은 밥과 마른 멸치, 명란, 청양초 간장 정도다.

작고 오래된 벽걸이 에어컨이 걸려 있는 우리집 표현으로, ‘컴퓨터 방’ 문을 꼭꼭 닫고

그 공기가 마루로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파수한다. 그래서 불을 피워 반찬을 만들기 위해

마루로 나서는 길은 여간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피워도 스팸이나 계란 정도를 굽는 식이다.

최대한 짧게. 국과 찌개는 가급이면 피한다. 아무래도 뭔가 근기 있는 음식을 먹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옥돔을 징발했다. 이미 염장된 생선에 나는 굵은 소금을 더

뿌린 상태로 해동을 시킨다. 더우면 짜디짜게 먹고 싶은 본능이 작동한다.

미리 구워 놓고 집 안에서 냄새와 연기를 뺀다. 이렇게 생선 한 마리 굽는 빈도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다.

 

 

 

 

 

무기력.

해야 할 일은 있으나 집중해서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 아직 많이 맞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하루를 날리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메일 확인과 지리산닷컴

확인까지만 하고 바로 작업 파일로 진입하지 않으면 대략 그날 나는 일과 멀어지는 날이다.

요즘은 계속 그러하다. 몇 가지 몸을 필요로 하는 동작을 하고 컴 앞에 앉으면 팟캐스트를 듣거나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라이브 공연 영상을 본다. 그 동작에 어떤 목적의식이나 의지는 없다.

그냥 짤방에서 출발해서 5부작 다큐멘터리를 거쳐 김용의 무협지에 당도하는 전혀 맥락 없는 눈굴림이다.

신용문객잔. 명화다. 마지막에 인육방 요리사가 동창의 우두머리를 난도질 하는 장면은

당시로서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 시절을 거쳐간 무수한 영웅들. 당시 임청하는 신이었다.

그리고 다소 이른 시간에 가장 최소한의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한다. 내일은 새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며.

 

 

 

 

 

7월 31일.

아침에 전화기 관련 미션으로 읍내에 머물렀다. 월인정원이 김밥을 사러 간 사이에 차 안에서

기다리며 밖을 바라본다. 얼마나 대단한 하루가 진행될지 과시하듯 구름은 위로 위로 향하고

최근 구례의 하늘은 청명하다. 매우. 그러나 나는 카메라를 들 엄두를 내지 않는다.

몇 년 사이에 햇볕에 노출되었을 때 극심하게 힘들어 하는 나를 느낀다.

그렇다고 신새벽에 카메라를 들고 노고단을 올라갈 풋풋함도 없다. 그래서 사진이 없다.

아, 최근은 전부 아이퐁 사진. 며칠간 37도 정도가 수치적 최고 온도니 40도 39도 찍는

다른 동네보다는 열등하다. 그러나 구례는 분지라 평균적으로 제법 한다.

 

 

 

 

 

광의면 작업장으로 와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를 학대하는 몇 시간으로 정한다.

제법 큰 냄비가 보리차를 끓이고 그 사이에 마당 주차의 장점을 살려 세차를 한다.

바닥 시트를 불러내어 수돗가에서 솔로 빡빡 문지른다. 고양이가 오줌을 싼 의자를

호수로 적시고 역시 솔로 빡빡 문지른다. 라운드티셔츠는 벗었고 바람막이로 햇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작업을 한다. 습수되지 않는 재질의 바람막이 안에서 땀이 내 몸을 간질이며

전체를 적신다. 먹지 않을 김치 까지 씻었다. 그냥 버릴 수 없으니 씻어서 버리기 위해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씻고 씻는다.

시계를 본다. 정오가 넘었다. 배가 고프다. 그러나 나의 미션은 조금 더 남아 있다.

점심을 해결하고 나머지 일을 할 것인가 그냥 한 시까지 끝을 낼 것인가.

계속 달리자. 손님은 두 시에 온다고 했으니 그 전에 밥 먹고 샤워까지 하고 차분한 척,

작가인 척 화장하고 모니터 앞에서 시원한 보리차를 마시는 폼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가지는 강하다. 태양에도 비에도.

텃밭 아랫도리 풀을 작정했는데 접었다. 풀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번 제거로

심한 풀은 벗어났다. 나는 해가 갈수록 여름의 짙은 초록이 무섭다.

 

 

 

 

 

토마토는 비가 없어 녹아내리지 않고 끝없이 하늘로 하늘로 향하지만 더 이상 그 높이를

지탱할 다른 높이를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꺾거나 끈으로 유도한다. 열매는 많지만

그늘 속 열매는 계속 초록이다.

 

 

 

 

 

그리고 실내로 들어와서 에어컨을 켜고 샤워를 하고 라면을 하나 끓이고 오전에 읍에서

사 온 김밥을 앞에 두고 약간 늦은 점심을 청한다. 하늘이 이리 된 것은 저 김밥을 포장한

일회용 종이와 라면을 만든 재료, 틀어 둔 에어컨 때문이다. 지금 고통을 피하기 위해 내년의

더 큰 고통을 초대한다. 다른 수가 없다. 아니 다른 수는 있지만 나에겐 여분의 참을성이

남아 있지 않다. 살아 온 날 보다 남은 날이 분명히 적을 것이기에 지구의 미래는 자포자기다.

그래서 이 여름, 주민들을 위한 이장의 사진다운 사진은 현재까지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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