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다음에 밥 한 번 합시다

마을이장 2018.07.22 10:12 조회 수 : 1140

 

 

 

 

 

 

낮에는 주로 작업장에 나가 있다. 많은 변수가 제거되었기에 다시 반복적 일상이다.

관리, 점검 목적이 일차적이지만 작업장에 가면 뭔가를 하게 되고 시간을 보낸다.

무엇보다 작업장 에어컨은 모두 신상이다. 첫 끼니이자 점심은 간장에 물을 타서

마시는 것으로 대신한다. 구체적 업적 없는 가난한 선비의 점심으로 적절하다.

 

 

 

 

 

내가 그런 것인지 사람 일반이 그런 것인지 폭염에 약간 가학적 성향을 보인다.

물론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수십 개의 택배를 만들고 땀으로 샤워를 하고

다시 뭔가 이왕 버린 몸을 더 굴릴 장면이 없는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검은밀가루를 판매 중이고 하루걸러 택배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또한 끝이 나리라.

밥값에 대한 채무자 의식은 조선 사람들의 특질이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 그 인식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위도식하거나 막연히 노는 일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스스로가 한심스럽고 그렇다.

2개월 째 밥벌이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삶의 전환이나 발상의 전환,

성실한 월급쟁이로 변신하는 혁명, 아는 농가에 일용직으로 ‘일 나가는’ 방안 등을

구상해 보지만 ‘그들은’ 나의 변신 아이템을 “에이~ ” 하고 농담으로 치부하곤 했다.

그래서 ‘심야식당’ 류의 요식업을 정말 한 번 해볼까 라는 견적도 내고 메뉴도 생각해

보곤 하지만 한낮 기온이 36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작은 분지 마을에서

나의 실행력은 태양에 녹아버린다. 약간 어처구니없는 소리가 되겠지만 오로지 밥벌이에만

집중하고 안달복달하는 삶을 사는 것도 괘안하겠다 싶은 생각도 한다.

그러나 그리할 수 있는 종자가 아님은 이미 판명 되었다. 이 또한 팔자다.

 

 

 

 

 

개미약이다. 피라미드 꼭지점에서 가장 하단으로 죽음을 전파하는 방식이다.

나는 시골에 살고 있고 작업장은 한옥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처음 하는 일은

점처럼 찍혀 있는 장판 위의 개미 사채 몇 마리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일이다.

텃밭과 공구리 마당 틈 사이의 풀을 뽑아 올리면 개미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온다.

어쩌면 우리는 지하의 거대한 개미 왕국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각한 상황은 아니나 한옥 기둥과 서까래 보존이라는 과업을 위해 개미들에 대한

대규모 살상을 결정했다. 젤타입의 독극물을 용기에 한 방울 담아서 개미 이동 통로나

개미집 입구에 놓아두는 것이다.

이 독극물은 무얼까?의 검색 추천에 의해 결정된 개미세계에서는 원자폭탄이다.

실내 보다는 현관 라인을 따라 설치하고 개미구멍에는 한 방울 씩 짜 넣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개미들은 약으로 돌진했고 두 시간 후에 나가보니 약에 새까맣게

모여 있던 개미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퇴근할 즈음에는 현관라인과 집 가장자리를

항상 줄지어 이동하던 개미들이 사라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폭탄 투하 후 오일 째다.

나의 결정으로 인해 사망한 개미는 최소한 십만 단위일 것이다.

이후로 밤마다 개미대왕 백 마리에게 린치를 당하는 꿈을 꾸고 있다.

 

 

 

 

 

유튜브의 문제점은, <네이마르 엄살 영상>에서 출발했는데 <자본주의 5부작> 같은

다큐멘터리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거나 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역시 허망해진다.

그래서 컴퓨터로 밥벌이 일을 할 때는 음악도 켜지 않는다.

역시, 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게 되었는지 과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감독 데이비드 린의 카메라 구도는 항상 수평적이다. 그것은 나의 미감과 정확히 일치한다.

젊은 시절부터 비디오를 소장하고 여러 번 본 영화지만 다시 또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시나리오, 배우, 카메라, 편집만으로 구성된 영화를 보는 일은 최근에는 드물다.

뭐랄까, 보리밥을 차가운 보리차에 말아 먹는 간명함 같은 것. 그리고 흡족한 얼굴로

엔딩 타이틀을 떠나보내며 역시 미감으로 보자면 나는 보수파가 확실하다는 생각을 한다.

여름에 사막 영화는 적절하다. 이전부터 베두인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있었다.

그 동네 말린 대추는 너무 달아서 입에 맞지 않지만.

 

 

 

 

 

커피를 볶는 일은 나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지켜봐야 한다. 반자동으로 봐야 한다. 75도에서 콩을 투하하고 180도에서 버튼을 한 번

눌러주고 상태를 보고 온도와 시간을 더 올려준다. 이 작업은 시각과 청각과 후각을 모두

동원해야 하는 제법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개량하지 않기에 투하한 콩의 양에 따라

결과가 다르고 날씨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일이 이른바 로스팅이다.

200g이 적당하고 250g은 무리다. 그래서 얼마 전에 3류의 콩을 좀 망쳤다.

내 콩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로스팅을 하는 동안은 가급이면 모든 문을 열어 두기에 에어컨을 끈다.

두 번 볶으려면 최소한 90분을 필요로 한다. 기계를 식혀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 전부터 커피에 대한 내 몸의 요구가 시들해졌다. 약간 갑자기 그렇다.

하루의 시작은 제법 진한 커피 한 잔이 의례인데 감응하는 맛과 양이 확 줄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최근으로 봐서는 커피가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나니 갑자기 커피가 땡기네.

 

 

 

 

 

날이 더우니 죽자하고 결심하는 경우가 있다.

오전 동안에는 불을 피우는데 주력하는 날.

내 눈에는 옥수수수염이 말라가서 ‘때가 되었다’ 하고 거두었는데 삶고 보니 자라다 만 상태.

시기로 봐서는 더 두어도 속이 차지 않을 옥수수다. 그래서 통째로 1시간 정도 더 삶기로 했다.

옥수수 대를 푹 삶은 물은 인사돌 끕이라고 들었다. 중학교 때 심하게 신장염을 앓은 나는

옥수수수염 달인 물을 달고 살았다. 이뇨 작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리차를 잔뜩 끓인다.

하루에 한 번 끓이기 귀찮으니 삼 일 분량 정도를 끓였다. 팔팔. 실내는 거대한 오븐이 된다.

그러나 환기도 빠르다. 이런 법석을 떨고 실내의 열기를 빼 내고 에어컨을 켜고 후줄근해진

몸을 바닥에 던지고 순영이 형이 삶아 준 옥수수를 한 알 한 알 씹어 먹는다.

형네는 왜 뭘 해도 농작물이 통실통실하지.

 

 

 

 

 

그렇게 한 숨 돌리고 나의 첫 끼니 점심을 챙긴다.

요즘은 장국에 우동이나 칼국수 면을 차게 넣어 먹는 것이 점심의 팔 할이다.

물론 첫 사진에서 아무도 믿지 않았겠지만 간장물 드링킹이 아니라 냉우동을 주로 먹는다.

면만 삶아 장국에 물 부어서 먹는 것이니 간단하고 맛도 좋아 최적인데

탄수화물 과다 복용으로 배가 다시 많이 나오고 있다.

카메라 들고 밖으로 사진 일 나간지도 좀 된 것 같은데 숲이라도 걸어야 할 모양이다.

식당을 차린다면 우동과 튀김이 메뉴가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주변 사람들 평가에 의해서도 나는 면을 좀 잘 삶는 것 같다.

다음에 밥 한 번 합시다. 기약 없는 실없는 소리라는 뜻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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