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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여하튼 2주일 전 무렵 광의면 순영이 형님 집으로 갔다.

무슨 일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이야기를 끝내고 차로 돌아오니 박스가 실려 있었다.

곳간지기 진주 씨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거 또 뭔데! 이러지 마라니까!!”

“흑보리요.”

“자꾸 이런 거 넣지 마라니까. 글고 왜 이리 많아!”

“나눠 드시래요.”

 

항상 그런 건 아닌데 이 집은 사람이 오면 빈손으로 보내는 경우가 드물다.

뭔가 수확한 것이 생기면 갈무리해서 돌아가는 차 안 뒷좌석에 누워 있기 일쑤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런 경우를 불편해 한다. 그것이 이 집의, 이 농부의 문화라는 것은 알겠지만

내가 필요할 때 요청하는 경우도 있기에 특정한 시기가 오면 이 집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모니터 앞에서 한 시간 수고와 들판에서 한 시간 수고를 동등하게 비교할 일은 아니다.

며칠 지나서 다시 순영이 형을 만났다.

 

“묵어봤어? 보리.”

“아뇨. 그날 이후로 집에서 밥을 못해 먹었어요. 계속 손님이라.”

“잡솨 봐. 묵고 어쩐다 저쩐다 말을 해줘야지.”

 

그날 저녁, 아마도 삼사일 만에 집에서 밥을 했을 것이다. 낮에 무얼까? 엄니의 텃밭

열무김치를 받았기에 고민 없이 보리밥을 열무에 비벼 먹을 것이라 생각했다.

외식이 잦은 날들이 이어지면 밖에서 메뉴를 교체해서 맛난 것만 먹어도 입안이 개운하지 않다.

열무는 끝물인지 가늘지만 약간 질겼고 검은보리(나는 검은보리라 부르겠다)도 한 알 한 알

입 안에서 잡힐 정도로 거칠었다. 톡톡 터지는 맛이 있었다. 어린 시절 먹던 보리쌀 맛이 났다.

왜 기억나지 않나? 그때는 혼식장려운동으로 도시락에 흰쌀밥은 지적을 당했다.

우리집은 보리쌀이었다. 음식은 문화요 경험이라 나에게 잡곡은 보리쌀이다.

나는 보리쌀을 좋아했다. 지금도 우리집 밥은 흰쌀밥이다. 밥솥운전권을 가진 남자라 혼곡이나

압력취사 밥을 거부하고 꼬들꼬들한 쌀밥을 고수하고 있다. 현미 싫고 오곡 싫고 콩도 싫고

완두 시즌에 완두는 오케이다. 그러나 내가 자발적으로 섞어 먹는 유일한 잡곡 보리.

열무와 된장국 투여하고 고추장 쓱쓱 비벼서 두 그릇을 비웠을 것이다.

배는 부른데 속은 편했다. 그런 말 거의 하지 않는데 앞에 앉은 여자에게 말했다.

 

“착한 음식 먹은 기분이다.”

 

 

 

 

 

무얼까?의 보리차 판매를 위해 내가 준비하려고 한 사진은 식은 밥에 냉보리차를 붓고

마른 멸치와 풋고추 몇 개 오른 개다리소반 밥상 사진이었다. 여름 밥상으로 어린 시절부터

나는 간혹 그렇게 먹었다. 구례로 오기 전 평생 도시에서만 살았는데 그렇게 먹었다.

물론 그 결정권과 음식세습권은 부모에게 있다. 월인정원은 아주 간혹 내가 물 말은 밥에

단지 마른 멸치 몇 개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으로 한 끼 해결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장마가 왔고 실행하지 못하던 그 밥상 사진을 7월 3일 화요일에 작업장에서 실행했다.

혼자 출근했기에 혼자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아예 내 점심을 그리 먹을 생각이었다.

손바닥 텃밭으로 갔다. 최근 주변의 입퇴원으로 자주 오지 못하고 와도 장시간 머물지

않았던 탓에 손바닥 텃밭은 역시 풀밭이 되어 있었다. 이 대수롭지 않고 버려진 손바닥 안에는

그래도 몇 종류의 채소가 살고 있다.

 

 

 

 

 

며칠 만에 텃밭에서 수확한 결과물이다. 물론 다른 켠에 상추 종류는 좀 더 있지만

상추는 뭐 상추나무가 되더라도 한 번 따 내고 다시 올라오는 것을 먹으면 된다.

가지 두 개와 토마토 네 알과 고추 열 개 남짓 건졌다. 상태가 껍질이 앙상하고 질기다.

땅에서 뽑아 올릴 영양분이 별로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이 앙상하고 볼 것 없는 채소가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준 신神들이다.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지만 마트에서 산 싱싱해

보이는 그 어떤 채소들 보다 마당 텃밭 채소를 씹어보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유기농이다 뭐다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은 먹어보니 그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더라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위한 농작물이냐 내 식구를 위한 농작물이냐는

차이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이전에 어머니에게 물었다. 왜 반찬도 별로 없는데 집에서

밥을 먹고 나면 흡족한가.

 

“아이고 야야, 몇 백 명 보고 차리는 밥상하고 내 식구 보고 차리는 밥상하고 같나.”

 

 

 

 

 

이전에 어머니는 보리쌀을 미리 삶았다. 채반에 담아 두고 밥을 할 때 쌀 위로 덮었다.

그래서 이삼 일에 한 번 정도 따로 보리밥을 하셨다. 두 번 익히는 방식이었다.

그 정도로 질겼던 모양이다. 그러나 요즘 보리쌀은 그냥 쌀과 같이 씻어서 30분 정도 불리면 된다.

왜 검은 보린지 확연하게 보인다. 순영이 형님 도정에서 나는 항상 불만이다.

쌀도 그렇고 깨끗한 상태의 알곡을 건지기 위해 재현율이 너무 낮다. 60% 정도를 건진다.

너무 아깝다. 그래서 그의 쌀이 알알이 살아 있겠지만 그래도 아깝다.

햇보리라 물을 많이 잡을 필요는 없다.

 

 

 

 

 

밥상을 연출한다.

단지 내 먹을 밥상에 그릇을 선별하고 고추장과 된장을 지저분하지 않게 담는 연출.

연출된 ‘예쁜 밥상 사진’을 볼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은 ‘소비’에 대한 것이다.

밥 한 끼 먹는데 그렇게 많은 장비들이 필요하단 말인가. 내가 3만 달러 소득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내 눈에는 불필요한 디스플레이로 보인다.

뭔 놈에 필요가 그렇게 많단 말인가. 잘 산다고 많이 소비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지구에 대한 갑질이다. 소비량이 각 개인의 쓰레기 발생량을 결정한다.

어찌되었건 북유럽풍의 자연주의 개다리소반 보리밥상이 차려졌다.

 

 

 

 

 

나는 일상적으로 김치 종류 하나에 일품이나 두 가지 정도 찬으로 밥을 먹는다.

내 밥상이 삼찬을 넘어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정식 집을 즐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일 장을 보고 매일 한 가지 정도의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한 번의 밥상에서

모두 소진된다. 남은 찌개를 다음 날 먹는 일은 내 밥상에서는 일 년에 세 번 이하다.

그것은 습관이다. 물론 식구가 두 사람이라는 조건도 작용을 한다. 가늠이 쉽다.

좋은 일은 아니나 실제 생전에 아버지는 반찬이 많은 밥상을 쓸어버린 적도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불화했으나 당신의 그런 입장은 나 역시 그대로 물려받았다.

파 한 줄, 마늘 한 쪽 냉장고에서 썩어나가는 일은 없다. 따라서 비축도 없다.

 

 

 

 

 

이번 판매는 <농부 홍순영>의 농가 사이트에서 진행한다.

택배가 일상화된 집이니 지리산닷컴 보다는 주문 이후 진행이 빠를 것이다.

그의 농산물이 기본적으로 뭐 무농약이네 어쩌네 하는 말은 그냥 넘어간다.

이번 여름 간혹 찬물에 말아서 생된장에 풋고추 찍어서 먹는 간략한 휴일 점심 밥상을 권한다.

일종의 굿즈로서 <#하동의길>에 대한 설명을 다시 하려니 길다.

아래 지시 글을 클릭하셔서 읽어보시면 자세한 설명이 있다.

한시적으로 비매품 <#하동의길>이 굿즈로 제공된다.

사족인데 이전에 비매품 <구례를 걷다>를 중고책으로 1만 원에 팔고 있는 블로거를 보았다.

어이가 없었지만 지적하지는 않았다. 지적한다고 말 들을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하동의길>은 하동군의 요청으로 가급이면 하동 여행 가능성이 높은 구매자에게 서비스로

보급하는 것이 배포 목적이다.

★ 이장의 <#하동의길> 설명 보러가기

 

 

 

 

 

검은밀 베던 날 간만에 순영이 형을 촬영했다.

내 사진 폴더 속에서 그는 차근차근 늙어가는 중이다.

언젠가는 그에 관한 책 한 권은 쓸 생각이다. 아직은 아니다. 그와 내가 조금 더 늙고 나서.

오래간만에 농부 홍순영을 권한다.

 

★ 홍순영의 검은보리쌀 사러가기(판매 종룝니다.)

 

이장의 <#하동의길>이 포함된 배송은 화요일(7. 10)부터. 아직 책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fourd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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