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 능소화

마을이장 2018.06.30 18:52 조회 수 : 1042

 

 

 

 

 

사진 10장, 짧은 글.

 

 

 

능소화는 비 오는 날이 제격이다.

그것도 제법 많은 비 오는 날이 적당하다.

 

 

 

 

 

 

 

지난 가을에 입주해서 겨울 초입에 집 수리가 끝이 났을 때 순영이 형은 대문을

억누르고 있던 미른 가지의 단단한 덩굴을 보고 능소화라고 했다.

그때 나는 그것들을 모두 걷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능소화라면 그대로 두는 것이

다음 해 여름을 위해 좋겠다는 결정을 했다. 사진 한 번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 염두에 두었다.

능소화 흐드러진 집은 뭐 좀 아릿한 맛이 있지 않은가. 대단한 고택이 아니라 일상사

사람 냄새 은은한 살림집 초입의 인사로 능소화는 적절하다.

 

 

 

 

 

 

 

벗어날 수 없는 식민지 미감 탓인지 나는 이런 뷰가 좋다.

오래된 도시의 한물 간 동네 골목길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런 골목은 이십만km 이상 주행한 차를 흠집 하나 없이 골목에 세워 둔 ‘그 철저한 영감’

두세 마리가 서식하곤 한다.

 

 

 

 

 

 

 

능소화는 덩굴식물이다. 그래서 대문 기둥을 기단 삼은 능소화를 보는 일은 이곳에서 흔하다.

개인적으로 덩굴식물을 보면 건축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근거에서부터 확장을 시작하니 그러하다.

물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확장 방법이 그러하나 담쟁이 같은 덩굴식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할 때

일부러 그 시작점을 찾아서 천천히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통꽃 식물은 그 무게 때문인지 모가지 째로 땅으로 낙화하는데

땅에 누워 여전히 눈 뜬 시신 형상으로 며칠 살아 있는 듯 생기발랄하니

이런 경우 보통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처연하다’가 되겠다.

 

 

 

 

 

 

 

능소화를 처음 본 것인지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내 기억으로 능소화를 명확하게 인식한 것은 구례로 이사한 그 초여름 읍내에서였다.

 

 

 

 

 

 

 

‘본 적 없는 것을 그리워하는’ 것 같은 막연함 같은 것이겠지만,

처음 인식했을 때 내 입에서는 ‘능소화’라는 정확한 꽃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제법 내리는 비였던 탓에 우발적으로 사진을 몇 장 찍는 중에 옷과 카메라가 축축하다.

언제나 그러하듯 이 순간은 마지막이기에.

 

 

 

 

 

 

 

역시 그런 경험이 없는데,

능소화를 보면 나는 이상하게 존재하지 않는 기억과 냄새를 맡는다.

초여름 긴 장마 해질 무렵, 연탄에 굽는 소금 내 가득 한 갈치 비린내가

비 사이로 멀리 그리고 정교하게 마을의 모든 골목길을 찌르듯 날아다니던.

 

 

 

 

 

 

 

이 집은 앞으로 한 달은 더 대기 중인 꽃들이 필 모양이다.

이 집에 살던 언니가 그리 장치를 해 두었다.

 

 

 

 

fourdr@gmail.com

 

 

 

 

 

Copyright© 2007. All Rights reserved www.jirisan.com 4dr@naver.com | 지리산닷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