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사는 일

마을이장 2018.06.22 23:48 조회 수 : 1402

 

 

 

 

제법 게을렀다. 좀 바빴다. 돌발 상황들도 있었고.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은 '사는 일'이다. 시간 흐름으로 아래 나열한다.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셨다.

여든 하나. 대략 13개 월 만의 외출인가.

원래 단 하루도 밖으로 나가지 않은 날이 없던 분이다.

자식 입장에서 이런 요청은 가슴이 스산하다. 당연히 가야지.

30분 이상의 차량 이동이 가능한지 알 수 없어 이른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청사포 바닷가에서 휠체어를 타고 잠시 바다 내음을 맡고 달맞이고개에 있는 비교적 넓은

브런치카페 같은 곳으로 모시고 갔다.

물론 이 모든 동선은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곳을 검색한 결과다.

오래간만에 장식적인 다과를 드시고 한 시간 이상 머물렀다.

다음 날 본가를 떠나는 나에게 말씀이 날아왔다.

 

“다음에는 어데 가노?”

 

아… 정례화.

 

 

 

 

 

무얼까?는 무얼까?의 일을 하고 있다.

월인정원 작업장 보다 훨씬 험한 상태의 집이다.

흙벽을 다시 바르는 일부터 시작이다.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장기전을 진행 중이고 이미 한 달 이상 이 집 수리에 매달려 있다.

나 역시 종종 초빙되어 간다. 이 역시 사는 일이다.

 

 

 

 

 

요즘은 토지면으로 갈 일이 없다. 오로지 무얼까?의 집 수리 수행에 참가한 날이나

토지면으로 가고 그런 날은 세 번에 한 번 정도 옥산식당에서 짬뽕을 먹는다.

점심 먹고 토지초등학교 담벼락 아래 붙은 현수막 언론을 본다.

위장전입을 권하는 저 현수막은 연 중 종종 걸린다. 머릿수에 따라 지자체 교부금은 기본급이 결정된다.

연말로 갈 수로 강조되고 다음 해 예산이 결정되고 나면 1, 2월이면 시골 인구는 줄어든다.

10월경에 다시 증가하고. 반복이다. 시골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구례군은 행정단위로서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발악해도. 정해진 이치다.

 

 

 

 

 

物我一體.

일이 오래 진행될 때 무얼까?에게서 종종 보이는 화학반응 현상이다.

 

 

 

 

 

사건사고는 주말이나 연말에 일어난다.

뭐 심각한 사건사고 현장은 아니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니 사진이 그렇다.

누군가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면 당분간 일상은 재편된다. 시골에서 사는 일 중에

가장 불편한 영역은 의료다. 주말이라 일단 동네 병원으로 가서 이틀 정도 고민하다가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 결국 순천으로 병원을 옮겼다. 간단한 수술이라 하고,

마침 해당 과의 새로운 의사 부임 현수막도 걸려 있었지만 수발과 문병의 편리함을

포기하고 도시로 옮겼다. 의기소침한 환자의 손을 잡고 말했다.

 

“별 일 아녀요. 사는 일입니다.”

 

 

 

 

 

오전에 순천에서 구례로 올라오는 길이 바쁘고 마음은 빠듯하다.

빗방울이 흩날린다. 마당에 아침에 널어 둔 빨래가 있다.

며칠 일상은 잠적하고 새로운 상황들과 대면하고 있노라면

짐짓 평화롭던 일상이 바로 천국이었다는 각성을 한다.

오늘도 무사고 운전을 했고 지구는 운석과 충돌하지 않았다.

커피를 두 번 내렸고 밥을 두 번 먹었다. 그렇게 5월이 간다.

일상의 안녕은 하나의 기적이다.

安寧(안녕) - 걱정이나 탈이 없음

 

일상의 패턴이 깨지면 사람은 긴장을 한다.

없었던 일정이 끼어들고 리듬이 복잡해지면 오히려 업무효율이 높아진다.

입대 전에 갑자기 효자 되는 것 같은 현상. 지난 2개 월 정도 진행한 일을 납품해야 할

시기가 코끝에 와 있다. 나른하고 평화롭게 보낸 이전 10여일이 후회스럽지만

새사람이 되면 된다. 여전히 충분하게 촬영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6월 1일까지 촬영을 해야 했다. 거의 날씨불문하고 카메라를 들고 나가야 하는 상황.

내 마음 속의 편집디자인 완료일이 5월 31일이었다. 의외로 초조하지 않았다.

 

“되는 대로 하자.”

 

 

 

 

 

6월 8일 새벽이 되었을 때 편집디자인이 끝났다.

대략 5일째 새벽 4시경에 일이 끝났다. 낮 동안은 복잡다단하여 집중력이 없었다.

저녁 9시경에 작정하고 진한 커피를 내리면 그 효과가 엄청났다.

그러나 체력적인 데미지는 바로 느껴진다. 그래서 전 과정을 내가 완료해야 하는 일은

가급이면 하지 않으려 했으나 돈 욕심에 다시 그런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광의면 작업장으로 가거나 가야했다. 짧게라도 들러서 물이라도

줘야 하는 작물들도 있다. 그래서 동식물 모두 키우지 말자는 것이 나의 취향이지만.

이틀 만에 다른 풍경이다. 낯설다. 생경하다. 이상하다. 멍하다.

개울로 누웠던 소나무가 일어서 있었다. 다른 마을에 온 것 같다.

전반적으로 잠시 동안 혼란스러웠다. 누워 있어도 나무는 건강해 보였는데.

나무를 모르는 나로서는 판단 불가다. 나무의 결정은 아니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옛말은 틀렸다.

뿌린 것 보다 적게 거두는 경우도 흔하다.

병원으로 간 분의 부재로 인해 2주일 지연된 마늘과 양파는

잎이 ‘꼬실러져서’ 밭에서 식별하는 것도 힘들었다.

텃밭이라는 것을 언젠가부터 개인적으로는 전혀 하지 않는다.

다만 식구들이 습관처럼 무엇인가를 심으니 어쩔 수 없이 한두 번 손이 간다.

아주 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텃밭을 서른 평 정도 할 것이다.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 시작할 것이다. 지금은 하기 싫다. 그래서 수동적으로 갈무리한다.

하루 두 시간 노동, 두 시간 촬영, 다섯 시간 컴퓨터 앞. 주 4일 근무.

이것이 내가 희망하는 일상의 배분 이상형이다. 왜 지금은 안 되는 것일까?

핑계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핑계는 나를 위로하고 합리화 해주는 필요조건이다.

너무 나를 몰아세울 생각은 없다.

 

 

 

 

 

실제 거주 인구 이만 명 정도로 추측되는 마을에서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스무 사람을 넘지 않을 것이다. 일상적인 만남이라고 하면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보는 관계다.

밥을 먹자고 약속을 정해서 만나는 정도의 관계다. 사람은 왜 만나는 것일까?

주고받을 것이 있는 것이다. 무리 동물인 것이 물론 생물학적 근거일 것이다.

3류가 국가고시를 앞두고 증명사진이 필요하다고 해서 읍내 담벼락에서 촬영 중이다.

두 사람 나이는 합해서 백팔번뇌다. 이 날 김치찌개를 먹었을 것이다.

김치찌개를 선택할 때에는 대부분 메뉴 번뇌에 지쳤을 경우다.

 

 

 

 

 

14년 만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입국이 허락된 손님이 왔다.

내 나이 서른일곱 무렵에 게시판에서 만나서 19년 동안 관계가 이어지는데

포괄적으로 만난 횟수는 세 번이다. 한국에서 두 번, 일본에서 한 번.

이제 나도 그녀도 쉰이 넘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열일곱 살 이후로 더 이상 성숙해지지 않는다.

시골에서 많은 노인들을 접하면서 나의 이런 생각은 점점 공고해진다.

원래 착한 사람과 원래 못된 사람이 있을 뿐이다.

14년 만에 만나서 확인한 것은, ‘원래 많이 먹는’ 습성이었다.

2박 3일 있으면서 천은사 산책 한 것 말고는 작업장에서 수다를 떨고 식당 간 것이 행위의 전부였다.

골치 아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사실 나는 말 같은 말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나의 말 구 할은 농담이거나 흰소리다. 관찰은 한다.

 

 

 

 

 

손님들을 터미널에서 배웅하고 작업장 텃밭의 감자를 수확했다.

또 뿌린 것 보다 적게 수확했다. 제일 큰놈 사이즈는 큰 자두 정도다.

사실 나는 감자가 심어진 자체를 몰랐다.

 

 

 

 

 

순천 병원을 오가는 일은 6월 13일에 끝이 났다. 2박 3일 손님도 떠났다.

많이 지쳤다. 그러면 나는 뭔가 상황을 정리하거나 단락을 종료하는 의식을 선호한다.

거의 매일처럼 찬거리 보러 퇴근길 마트에 갔다가 배추를 골랐다. 이천오백 원.

아주 오래간만에 김치를 담기로 했다. 그것은 실용과 주술적 행위로 적합해 보였다.

더운 날이라 3시간 정도 소금물에 절이고 자정 무렵에 김치를 담았다.

다른 재료 없이 마늘과 고춧가루 새우젓과 액젓만 넣고 만들었다.

평소보다 고춧가루 많이 넣고 맵게 담았다. 퇴원한 환자가 아직은 미각이 없어

강한 마늘 향을 풍기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나는 나침반 바늘처럼 비틀어진 나의 일상을 정좌시키려는 성향이 강한 것 같다.

내 안에는 그 반대편의 부랑자적 성향도 강하게 존재하는데 아직은 정좌 성향이 이긴다.

그 균형이 무너지면 나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데 가끔 유혹은 느낀다.

수경은 바위 옆에서 졸다 죽었을까.

 

 

 

 

 

지난 1년 동안 가끔 밥 먹는 동네 친구 열두 명이 있다.

무얼까?의 현장에 일곱 명이 모였다. 인해전술을 필요로 하는 핸디코트의 날이다.

이런 날도 일상을 환기하는 정좌의 의식에 해당한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하는 것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자연의 설계다. 울력은 임금 노동보다 분위기가 좋다. 갑을이 없기 때문이다.

 

 

 

 

 

읍내 병원에서 처방전 받아 약국에서 기다린다.

대부분은 정기적으로 처방전을 받는다. 혈압, 당뇨, 고지혈, 심장, 관절…

순천병원 첫 통원 치료하러 간 날. 대기 중인 할머니 한 분이 손목 관절의 통증을

이야기 했다. 퇴원한지 제법 되었는데 아직 아프다고.

저녁마다 회관에서 화투를 치고 나면 손목이 붓는다고 하신다.

손목 돌아가는 모양이 끗발에도 좋지 않으신 모양이다.

그러나 끗발 따지지 않고 계속 해야 하는 일이 ‘사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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