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 흔들리다

마을이장 2018.04.03 01:26 조회 수 : 934

 

 

화요일 새벽에 하동으로 가야 했다. 벚꽃이 아닌 배꽃을 염두에 두었다.

배꽃 중에서도 만지들 배꽃이 아니라 섬진강가의 배꽃을 염두에 두었다.

요청이 있었고 가야했고 내일은 흐리고 비가 예보되어 있어 오늘이 유일한 날이었지만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이틀 동안 밥벌이 일로 모니터 앞에서 진이 빠져버렸다.

알람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것이 이틀 전 소린지 오늘 새벽 소린지 모르겠다.

이미 늦어버린 아침이라 화개에 있는 후배에게 19번 길에 대해 문의하고 하동 행은 포기했다.

 

자고 일어나니 4.3이다.

나는 의식하지 못했으나 검색어에 등장한 4.3은 오늘이 4.3임을 알게 해주었다.

제주에 사는 가수가 낭송한 시를 ‘보았다.’ 제주를 이야기 한 시에서 구례를 보았다.

시의 어느 대목이 이곳에서 내가 항상 느끼거나 염두에 두는 이야기였다.

이곳도 꽃잎 누운 자리 아래 사람이 누워 있다.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바람의 집」중에서 / 이종형

 

 

 

 

 

 

 

딱히 꽃구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당연히 이곳의 이름 난 꽃길을 찾을 생각도 없다.

그곳의 사진들은 이미 많이 있고 차와 사람 가득한 그 길 위에서는

사진을 찍고자 하는 전투력도 사라진다.

이기적 발단이나 가급이면 꽃길 위에서는 ‘혼자 있고 싶다.’

3월 30일 해질 무렵, 다음 날이면 꽃 몸살을 앓을 것이기에 읍내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절정 전의 섬진강으로 나갔다. 해질 무렵, 딱 이날까지만 한적할 그곳을 보고 싶었다.

 

 

 

 

 

 

 

구례도 화개와 같이 벚꽃 대목 날을 4월 7일로 정했다고 한다.

구례건 화개건 4월 7일이면 꽃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 딱히 따질 곳도 없다.

 

 

 

 

 

 

 

취향의 차이가 있겠으나 새벽과 해질 무렵 이 빛을 제일 좋아한다.

삼각대 같은 것 없는 일개 디카족인 내가 사진을 건지지 힘든 빛이기도 하다.

최대 30분 정도의 빛이 주어질 것이고 사진은 흔들릴 것이다.

어쩌면 그 흔들리는 느낌을 더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폴더를 일별해 보면 2007년 이 길의 나무들보다 지금은 훨씬 많이 자란 상태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 길은 동네 사람들의 산책로였다.

이 길은 나에게 항상 차가운 기운을 전달했다. 단지 해가 짧은 길이 전달하는 느낌 보다

더 짙은 차가움이다. 생각해 보면 꽃나무 많은 길은 대부분 서늘했다.

 

 

 

 

 

 

 

꽃이 기쁨을 숨길 리 만무하다.

 

 

 

 

 

 

 

꽃길만 걸어가라는 소리는 우리의 앞길이 정해진 가시밭길이라는 소리다.

 

 

 

 

 

 

 

짙은 색감,

부는 바람,

좋아하는 조건이다.

여러 겹의 셀cel들이 겹쳐지고 그 중앙 즈음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러면 내 감정은 좀 복잡해진다.

사람이 있다.

 

 

 

 

 

 

 

언제부터 저 비닐을 걷고 있었을까.

꽃이 피건 바람이 불건 사는 사람들은,

특히 ‘그녀들은’ 항상 무엇인가와 당면하고 있다.

그것이 지극한 가시밭길은 아닐지라도 꽃길 아래 그녀에게 꽃은 단지 계절이다.

 

 

 

 

 

 

 

흔들린다.

바람에 꽃이 흔들리고 그녀의 비닐도 춤을 추고 내 감정도 흔들린다.

맥박수가 올라가고 비로소 사진을 찍는 기분이 든다.

시야는 확보되지 않고 빛은 기울어 가고 셔터는 조급해지고,

이 사진이 딱 내 마음이다.

아직 나도 받아보지 못한 이번 책의 2권 <여행, 집으로 가다>를 쓰면서

가장 많은 마음을 쏟아 부은 대목은 ‘그녀에게’ 라는 목차였다.

인쇄 직전까지 사진 두세 장을 빼고 넣고 하는 갈등이 심했다.

이 사진이 있었다면 사용했을 것인데…

 

 

 

 

 

 

 

‘그녀에게’는 이렇게 시작한다.

 

엄마는 프라다를 입지 않는다

대평댁은 나이가 많아서 더는 노인 일자리를 받지 못한다. 노인에서 정년 했다.

평생 구례에서 살았고 그녀 집 마당에는 지금 감나무 잎과 살구 잎이 돋아나고 있다.

그녀는 더는 소녀도 아니고 처녀도 아니고 여인도 아니고 노인도 아니다.

그녀는 단지 엄마다.

 

 

 

 

 

 

 

사진보다는 많이 어두워졌다.

해가 서산을 내려가면 모든 것은 순식간이다.

사람만 지는 해를 붙잡자고 아등바등이다.

 

 

 

 

 

 

 

생각해 보면 힘겨워서 살만 했다.

 

 

 

 

 

 

 

생겨나서 사라질 때까지

힘겨움은 살아갈 수 있는 화수분 같은 밥이다.

장모는 ‘지금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맛있는 것도 먹고

가끔 영화도 보고

꽃도 너무 많고.

 

 

 

 

 

 

 

어쩌면 저녁에 일을 하기 위해 나선 길이다.

집중해서 해야 할 일 앞에서 점점 많이 힘들다.

자기방어적 반응일 것이다. 무엇인가에 집중하면 급격하게 지친다.

역시 무엇인가를 참아내지 않으면 살기 힘든 것이다.

 

 

 

 

 

 

 

바람과 어둠이 빛을 흔들었다.

집으로 가야겠다.

 

 

 

 

 

 

 

저녁밥은 자셨소.

 

 

 

 

 

 

 

차를 기다리며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한 시간 전과 똑같은 동작과 음성으로 지하주차장을 뛰어다녔다.

아무런 수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혈관은 핏빛 분말로 채워졌을 것 같았다.

그녀에게 하늘, 산, 강, 나무 같은 것은 개념이지 실체는 아닐 것 같았다.

그녀의 세상은 거대한 지하주차장이었다. 이천 원을 주었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은 이제 막 들어서는 차를 향해 있었다.

권산 포토에세이 <여행, 집으로 가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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