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완연하다

마을이장 2018.03.12 23:05 조회 수 : 870

 

 

 

며칠 전 무얼까?가 짬뽕을 먹고 이를 쑤시다가 19번 국도를 지나는 차량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다음 주말에는 움직이기 힘들겠네."

"벌써?"

 

벌써 그리 되었다. 불현 듯 꽃이 다가온 느낌이다. 지난겨울은 제법 추웠으니.

산수유는 피기 시작했다. 시각적으로 확연하지는 않으나 꽃은 완연하다.

이번 주말에는 이른 꽃구경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3월 24일은 되어야 멀리서 보아도

노란세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 시기는 지난 12년 동안의 사진 폴더를 살펴보면 큰 차이가 없다.

 

 

 

 

 

 

 

돈벌이 촬영하는 일이 있어 일요일은 읍내에 있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노고단 쪽으로 미세먼지가 가득했기에 촬영은 여의치 않았다.

읍내 서시천 삼거리에서 신호대기 하면서 간혹 현수막을 폰으로 찍곤 한다.

신문지 쪼가리는 식당에나 가야 보이고 현수막 거치대는 내 관점으로는

대자보거나 신문지 역할을 한다. 이 매체의 특징이자 장점은 아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러나저러나 분명한 것은 현수막을 통해서

지역 상황과 계절, 심지어 정세 전망까지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 구례농민회장이 누구지? 얼핏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동네 일 신경 쓰지 않고 살았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뭐 차이는 없지만.

좌회전 신호 떨어지면 집에서 밥 먹고 좀 쉬다가 부산으로 갈 것이다.

 

 

 

 

 

 

 

부산을 가는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그냥 간다.

2주일에 한 번 간다는 것은 이미 많이 틀렸고 한 달에 한 번은 가려고 한다.

별 표현 없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여전히 기능하고자 한다는 의사 표현은

직접 가는 방법이 최선이다.

얼굴 보는 일이 별 대화 없어도 소통의 정점이다. 아들과 조카들 보라는 뜻도 있다.

늦은 밤 도착해서 형과 말없이 거실에서 TV보다가 자고

다음 날 점심을 좀 준비해 드리고 다시 구례로 돌아왔다.

하동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광양 다압면 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오래간만에 강 건너편으로 올라서서 매화 상황도 한 번 보고 몇 장 건지면

이곳에 간만에 이런 글도 좀 올리고 할 생각이었다.

 

 

 

 

 

 

 

매화는 아직 이르고 역시 이번 주말이면 조금 더 터지겠다.

그러나 청매실 농원 앞으로 축제 행사장은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왜 전국 어느 지자체를 가건 똑 같은 축제장 자세 그대로.

평촌 인근에서 차를 세웠다. 잘 찍지 않는 ‘꽃 한 송이 예쁘게 찍기’를 몇 번 눌렀다.

이런 사진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서 찍었는지 장소의 정체성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전면적으로 피어야 금년 꽃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겠다.

나무들에게 겨울은 혹독했다. 추위와 가뭄이 그랬다.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밭일을 하고 있었다. 퇴비와 질소를 투여하는 중이었다.

감자를 넣기엔 좀 늦은데 남쪽이라 가능한지 모르겠다. 인적이 없어서 다가서면

너무 노골적으로 사진을 찍는 꼴이라 멀리서 잡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이런 날은 꽃 보다 사람이 더 봄에 다가서 있는 광경이라 몇 장 눌렀다.

사는 곳 마을에서도 마늘과 양파는 이미 상황이 좋지 않다.

마늘과 양파 가격 제법 비쌀 것이다. 금년 농사 좋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농부들은 일을 할 것이다. 가늠하고 판단해서 여부를 결정하는 업종이 아니다.

그래서 농사는 어쩌면 다소 문학적이다.

 

 

 

 

 

 

 

 

아침을 깨운 것은 알람이 아니라 메일 도착 알림이었다.

오늘은 제작을 넘길 모양이다. 일단 1권을 제작하고 연이어 2권을 제작한다고 하니

어차피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은 3월 마지막 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2010년의 <구례를 걷다> 2018년 버전이 될 것이고 두 권으로 만들었다.

이번 책은 유난히 나에게 확인을 요구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좀 귀찮고 한편으로

이전에는 너무 대충 훑어보고 오케이 사인을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일전에도 누군가 나에 대한 호칭이 마땅치 않으니 ‘권 작가님’ 이라고 불렀다.

두세 번 듣다가 결국 교정을 시켰다. 이름이나 성 뒤에 붙이는 목사, 교수, 목수, 농부

등의 호칭은 “그것으로 밥을 먹는, 직업에 대한 표현이다.” 따라서 나는 실질적으로

글로 밥을 해결하고 있지 않거나 글이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낮으니

직업을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그게 여전히 가장 많은 밥을 주고 있으니.

아니면 그냥 일반적으로는 ‘이장’ 이라고 부른다. 라고.

자, 금년에는 나도 글이 개인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좀 높아질 수 있도록

거시기 한 번 해보자. 본격적인 책 광고는 두 권 박스 세트 제품이 완료되면

다시 할 것이다.

 

<뱀발>

점심 무렵에 다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활성화시켰다.

책 나올 때 되어서 책 좀 팔아보려고 그랬다.

그리고 대략 30분이 지나서 후회하기 시작했다. 2017년 2월 무렵에 로그아웃을 했으니

1년 좀 넘었는데 사실 ‘그것을 들여다보지 않으니’ 일상이 좀 더 편안했다.

1999년부터 전문 댓글러로 활동했으니 내가 피드백을 열심히 하지 않는 SNS 놀이는

이래저래 좀 불편했다. 결론적으로는 당분간은 답글과 좋아요에 불성실해도 그냥

일단 열어 두는 것으로. 나도 다시 적응 또는 조정기를 거쳐보고.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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