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 겨울 숲

마을이장 2018.02.14 22:57 조회 수 : 1014

 

 

 

2월 14일 수요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화엄사에서 연기암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찾았다.

의무방어전 맞다. 지난밤에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미루던 짧은 글 하나 넘기고

수요일은 쉬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쉬는 둥 마는 둥 했으니 어정쩡한 나날들이었다.

대체적으로 평안했다. 자투리 일들만 처리하거나 집단속과 손님맞이가 주업이었다.

 

 

 

 

 

 

 

지난 해 아버님 기일부터 음식을 해서 부산으로 갔다.

본가 도착해서 음식을 하는 것보다 이런 방식이 홀가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친정이나 내 생각은 같았다. 2월 13일 구례장은 명절과 적절한 간격이었던 탓에

폭발할 것 같은 상태였다. 장이 살아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사는 곳에, 더구나 시골이라면 사망 일보직전의 오일장이 아니라 펄펄 살아 숨쉬는

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을에 대한 자긍심이 제법 올라간다.

 

 

 

 

 

 

 

생선만 보려고 했는데 우엉이 좋아보여서 필요 이상으로 구입했다.

마트에서 두 개 정도 가격으로 실한 놈으로 다섯 뿌리 정도였다.

먹을 일이 좀 난감하긴 하다. 기껏 산적 3장 정도에 소용할 넓은 편 열두 조각이면

되는 일인데 명절 지나고 와서 우엉조림을 좀 하고 나누어야겠다.

 

 

 

 

 

 

 

이 길을 와 본 사람은 모두 이 길을 좋아하지만 이곳에 살면서부터 이 길을 찾은 것은

손가락 안이다. 이상하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하지만 이틀 전에 찾았다면 눈발 날리는

숲 사진이 가능했을 것이다. 오늘은 낮 기온이 영상 10도를 넘어섰다. 눈은 빠르게 녹았다.

 

 

 

 

 

 

 

명절 보내기 전에 한 번 정도 사진 올리고 떠나고 싶었다.

별달리 할 말은 없다. 지난밤에 만든 어느 책의 에필로그 원고 그냥 내려두고

사진 배경으로 讀하시면 될 듯하다.

 

 

 

 

 

 

 

여행, 집으로 가다

 

간혹 영화를 보러 구례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남원으로 간다.

전남에서 무려 도 경계를 넘어 전북으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다.

도시라고 부르기엔 다소 왜소한 남원에는 지정석이 아닌 ‘자유석’이라고 프린팅 된 표를

받을 수 있는 아주 낡은 극장이 있다. 세 번 가면 한 번은 개인영화관을 체험할 정도로 한가롭다.

3D, 4D, 아이맥스 같은 상영관은 당연히 없다. 고전적 2D 상영관에서 차라리 안정감을 느낀다.

 

 

 

 

 

시골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이동하는 행위는 영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한적한 곳으로 여행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결핍을 보충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슨 영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박스오피스 순위권 안의 영화만 볼 수 있다.

 

 

 

 

 

몇 년 전 여름.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를 보고 나왔다.

초여름이면 항상 인류의 미래나 지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전쟁이 벌어진다.

원조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세월이 흘러 퇴행성관절염을 앓는 상태였다.

터미네이터가 처음 나온 것이 1984년이다. 30년이 넘었다. 사람이나 로봇이나 시설이 낡을 만한 세월이다.

시간과 잡초 앞에 장사 없다. 모든 새것의 미래는 헌 것이다.

오래된 마을 낡은 극장에서 늙은 터미네이터를 보는 기분은 제법 그럴 듯 했다.

 

 

 

 

 

늙은 터미네이터는 젊은 시절에 “I'll be back!” 이라는 대사를 남겼다.

사람들은 그 대사에 열광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투자금 회수 때문인지 여하튼 그는 계속 돌아왔다.

그 대사에 대한 정서적 공감대는 무엇이었을까? 임무에 대한 완결성, 헌신성, 의리, 인간과 기계의 우정……

그러나 아무래도 ‘돌아오겠다’는 언어 자체가 지닌 귀소본능에 대한 공감이 정서의 바탕이 아닐까?

근본 없는, 또는 추억 없는 기계에게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위한 좌표를 제공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돌아갈 곳을 그리워한다. 나는 제법 자주 생각한다. 내가 돌아갈 곳은 과연 어디일까.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습관적으로 명확했다. 부산. 태어나고 가장 긴 시간 동안 살았던 곳이니까.

그러나 이제 나는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지난여름, 19번 국도변에 짐승의 사체가 누워 있었다.

보통은 하루가 가기 전에 로드킬 당한 짐승들은 치워지기 마련이다. 해당 지자체 청소 차량이 수거한다.

며칠 동안 방치되어 있던 고라니로 보이는 사체의 사고 지점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선이었다.

짐작하건데 변사체를 맡지 않겠다는 경찰들의 구역 갈등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과 전남 구례군 토지면의 경계선인 그 도로는 여름 동안 낮 기온 36~37도를 기록하던 중이었다.

쉼 없이 달리는 휴가차량들은 엄청난 열기를 내뿜었다. 아스팔트 표면 온도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늦은 아침과 늦은 밤, 매일 그 도로를 왕복해야 했던 나는 이상하리만치 그 사체의 상태를 계속 확인했다.

짐승의 부피는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이 그은 경계선에서 죽은 짐승은 그렇게 조금씩 흔적이 사라져 갔다.

부피가 사라지자 존재도 사라졌다.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사오일이었다.

 

 

 

 

 

고라니가 산을 내려와서 향한 곳은 강이다.

강변에는 좁고 긴 텃밭들이 드문드문 이어지고 사람이 가꾸는 텃밭 채소는 부드럽고 밀집되어 있어

산짐승들에게는 마트의 신선야채 코너 같은 편리함이 있었을 것이다.

로드킬 당하는 짐승 열에 열은 그들 세계에서 편리함을 추구하던 아이들이다.

개체 수로 보자면 도로로 내려서는 산짐승의 수는 아주 적은 편이다.

아스팔트를 건너 강으로 내려서는 행위는 러시안룰렛(Russian roulette)게임 정도의 생존 확률일 것이다.

고라니는 산과 강의 경계가 아니라 허락받은 공간과 불가침 영역의 경계선에서 죽었다.

과연 그 길을 건너야 할 만큼 절박했을까. 겨울도 아닌 여름에. 단지 유혹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나라면 산을 내려서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의 경계를 넘나든 터미네이터는 항상 돌아왔고 인간의 경계를 넘나든 고라니는 돌아갈 수 없었다.

터미네이터가 돌아와서 기뻤고 고라니가 산으로 돌아가지 못해서 슬펐다.

나는 항상 경계선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경계선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못한다.

또는 나의 서식지를 찾지 못해서 항상 경계에 서 있는 것일 수도 있다.

..................................................................................................................................................

그리고 원고는 더 이어지나 나중에 책 팔아야 하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모바일에서 이곳 글을 읽기 피곤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줄 바꿈을 자주해서 그렇다. 지리산닷컴은 PC 중심의 사진과 글 편집 방식을 취하고 있다.

모바일에서는 별 의미 없는 큰 사이즈의 사진들이다. 오늘 사진은 가로 폭 1600픽셀이다.

모바일은 대략 700픽셀 정도면 된다. 그래서 과잉이다.

지난 연말에도 각 가정 별로 테스크탑 보유율 하락과 인터넷 이용 기기의 변화에 관한

기사를 유의미하게 읽었다. 인터넷 사용자의 70% 이상이 모바일을 주로 이용한다.

정부나 정당의 입장은 아니나 개인적인 생각은 수년 전부터 정해져 있다.

시대의 흐름을 따를 생각이 없다. 수년 내에 지리산닷컴은 자연스럽게 소멸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잘 알고 있으니 이장에게 모바일 중심의 어쩌고, SNS 어쩌고 하는 소리들

하지 마시라. 아는 채 하지 마시고 가르치려 하지 마시라.

연명 치료 거부하는 사람에게 신약광고 하실 필요 없다.

그러나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다음 주에나 뵈어요.

나긋.

 

 

 

 

 

 

fourdr@gmail.com

 

 

 

 

 

공지 지리산닷컴 사진사용에 관해 마을이장 2013.05.24 20443
321 그곳 / 흔들리다 [31] 마을이장 2018.04.03 1039
320 장터 / 책장사1 - 꽃은 눈을 헤치고 달려온다 [68] 마을이장 2018.03.25 2515
319 그곳 / 꽃은 눈을 헤치고 달려온다 [22] 마을이장 2018.03.21 1214
318 그곳 / 중얼거리다 [28] 마을이장 2018.03.19 1065
317 그곳 / 우중산책 [22] 마을이장 2018.03.15 1284
316 생각 / 완연하다 [20] 마을이장 2018.03.12 883
» 그곳 / 겨울 숲 [14] 마을이장 2018.02.14 1014
314 생각 / 우리답게 [29] 마을이장 2018.02.03 1708
313 생각 / 시무식 [49] 마을이장 2018.01.09 1948
312 생각 / 집수리 이야기 – 다소 불친절한 AS [28] 마을이장 2017.12.05 1662
311 그곳 / 11월 30일 섬진강 [10] 마을이장 2017.12.01 1145
310 外道 / 길 위의 선생들2 [28] 마을이장 2017.10.31 1932
309 外道 / 길 위의 선생들 [50] 마을이장 2017.10.20 1782
308 .생각 / 집수리 이야기 10. 7 ~ 10. 11 [13] 마을이장 2017.10.12 1573
307 생각 / 집수리 이야기 9. 29 ~ 10. 3 [14] 마을이장 2017.10.10 913
306 생각 / 집수리 이야기 9. 27 ~ 9. 28 [22] 마을이장 2017.10.06 1099
305 생각 / 집수리 이야기 9. 24 ~ 9. 26 [4] 마을이장 2017.10.06 642
304 생각 / 집수리 이야기 9. 21 ~ 9. 23 [6] 마을이장 2017.10.06 841
303 생각 / 집수리 이야기 9. 17 ~ 9. 20 [8] 마을이장 2017.10.01 859
302 생각 / 집수리 이야기 9. 13 ~ 9. 16 [14] 마을이장 2017.09.29 876
Copyright© 2007. All Rights reserved www.jirisan.com 4dr@naver.com | 지리산닷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