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우리답게

마을이장 2018.02.03 21:35 조회 수 : 1103

 

 

 

1월이 어찌 지나갔는지 흐릿하다. 아무런 특징 없었던 한 달이었던 것 같다.

기념할만한 일이라면 이제야 말하지만 2년만인가 서울을 다녀 온 것 정도. 그것도 당일로.

1월 첫 주 며칠까지 약간 빠듯하게 원고를 넘긴 이후로 허송세월 같은 시간들이 흘러갔는데,

내 몸이 느끼는 것 보다 더 지쳤던 모양이다. 다시 쓰기로 한 에필로그를 아직 만지지 못하고 있다.

남원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은 5층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지리능선의 북쪽은 한 동안 설산이었다.

시선을 멀리 두고 우두커니 그렇게 산을 바라본다. 상념이 아니라 무념으로 바라본다.

간혹 생각을 하지 않는 나를 인식한다. 공상이나 상상을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보는 것으로 생각을 밀어낸다. 산이건 벽면의 한 점이건

그냥 그렇게 우두커니. 스스로 참 효율적인 인간형이라는 칭찬을 하곤 한다.

 

 

 

 

 

작업장을 옮긴 이후 거리적으로, 정보 공개적으로 이전에 비해 찾는 이가 적다.

커피 소비량으로 그것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낮 시간을

오롯하게 혼자 보내는 날이 이틀에 한 번은 되었다. 그것은 사실 좀 이례적이기도 하다.

광의면 작업장에서 혼자 라면에 떡을 넣어 점심을 해결하는 일은 어쩌면 평화로운 상황이다.

가끔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다. 원고의 재료로 저장해 두고 이번에 사용하지 않은 문장들이 있다.

 

“내가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화해는 불가능하다.”

 

200자 원고지 40매 정도 분량의 글은 대부분 이런 한 줄 말미로부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머무는 글이나 장면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밖에 없다.

저 말을 두고 나는 2개월 동안 생각이 변했다. 내 생각이 변하니 저 말에 기대어

글을 쓸 수는 없었다. 내가 행하지 않을 글을 쓸 수는 없다.

글감에서 제외를 결정한 순간 내 판단은,

 

“그러면 화해는 불가능하다는 소리군.”

 

삶에서 만나는 상황이 백만 개라면 구십만 개는 정답이 없는 경우다.

또는 정답은 항상 두 가지였거나. 결국 결과만 남고 그것만 경험이고 관념은 축적된다.

 

 

 

 

 

1월 25일 오후 2시 무렵 더기가 작업장으로 막 들어섰을 때 전화를 받았다.

남원으로부터의 전갈이었다. 방금 별세하셨답니다. 전언은 짧았다.

하던 일 정리하고 올라가겠다는 짧은 답을 했다.

누구에게나 예정된 일이 누군가에게는 좀 빨리 찾아온다. 나 보다 한 해 위다.

2016년 9월 1일에 구례로 내려왔으니 16개 월 정도 시간이 흘렀나.

하루 전, 나는 이곳에 짧은 글을 올렸다. 그를 향한 응원가였다.

 

유튜브로 두 번째 영상을 보면서 남원에 누워 있는 어떤 남자를 생각했다.

결과를 예단하지 말자. 나부터. 그에게 이 노래를 보낸다.

You'll Never Walk Alone!

 

나의 응원가는 그에게 닿지 못한 모양이다.

남원으로 올라가는 차 안에는 같은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한 동안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편이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그가 생각날 것이다.

병실에서 장례식장으로 그를 모시고 짐을 정리하러 다시 병실로 올라왔다.

냉장고 위에 작은 화병이 ‘우리 사람들 것’ 같아서 단톡방에 사진을 찍어 올렸다.

챙겨야 하냐고. 챙기라는 답이 올라왔다.

 

그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마지막 며칠 동안 그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지만 말 할 수 없었다.

결국 그에게서 보물지도의 위치나 적어도 비상금을 책장 어떤 책갈피에 숨겨두었는지 듣지 못했다.

나 역시 그가 들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그의 손등에 내 말을 집어넣었지만 내 말이

그에게 닿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 생각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에 모두에게 해야 할 말을 남겨두어야겠다고.

죽음의 형식과 그 모든 사과와 원망과 감사를 명확하게 남겨야겠다고.

그것이 부질없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렇다.

 

이 나이에 받는 문자의 절반은 부고지만 지난 9월부터 맞이한 네 사람과의 이별은

나와 내 주변 친구들의 일상에 제법 긴 파장을 남겼다. 몇 개 월 동안 우리는 제법 많은

육개장을 들이켰고 1월 25일부터 1월 27일 동안은 남원에서 십 수 명이 세 끼니를 함께 했다.

누군가는 부고의 경황도 없었고 누군가는 소식을 전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이 소란스러워야 한다는 것은 내 관념이다. 나는 쓸쓸한 장례식을 원하지 않는다.

평생 밥값 내는 일에 인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 밥 한 끼는 마무리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다른 길이 없지 않은가.

이번 장례식에서 우리는 많이 웃었다. 숫자가 작아서 많이 웃었고 이렇게 긴 시간 같이 있어서

많이 웃었다. 서로가 울지 않게 하기 위해 많이 웃었다. 우리는 예의 없는 문상객이자

상주 노릇을 했다.

장을 보고 언 수도를 해결하고 보일러를 고치고… 며칠 비워 둔 집은 한파에 이상이

생겼고 우리는 그런 해결 따위로 며칠을 보내고 살아가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살아 있으니 살아가는 일이 제일 큰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커피를 볶는다. 네 번을 나누어 1kg을 볶는다.

커피를 네 번 볶는 일은 최소한 4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청소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점심을 준비한다. 귀찮은 일인데 그냥 그렇게 커피를 볶는 행위는 나의 일상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스스로를 향한 닦달에 응답하는 일이기도 하다.

책 작업에서 사용하지 않은 다른 문장 한 줄은 이것이다.

 

“모든 새것의 미래는 헌 것이다.”

 

손때 묻은 관계가 소중한 시절이다.

다시 춥다. 다가오는 주는 낮과 밤이 영하다. 보일러 빵빵하게 켜고 수돗물 좀 흘리고

계량기 보온하고 부산스럽게 보내어야 봄을 맞이할 것이다.

밥 한 번 먹자. 우리답게.

 

 

 

 

 

 

fourd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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