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道 / 길 위의 선생들2

마을이장 2017.10.31 22:40 조회 수 : 1607

 

 

막상 11일 만에 다시 같은 곳으로 향할 것이라고 확정하지는 않았다.

토요일 저녁 즈음에 ‘그냥 떠나자’ 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신이 지치면 좀 막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모양이다.

1박의 짧은 여행이지만 긴 시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면 그냥 그렇게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싶은 계절 또는 시간에 보는 것이 좋을 듯 했다. 앞으로도 그냥 그럴 생각이다.

뭔 지구를 구하는 임무 수행 중이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도 딱히 없다.

 

 

 

 

 

물론 돌아와서 지도를 확인했지만,

경북 의성군 금성면을 바라고 국도인지 지방도인지를 따라 오르다가 차를 되돌렸다.

오른편으로 스쳐 지나간 저 창고가 몇 초 동안 눈에 밟혔다.

내가 좋아하는 색감의 창고다. 참 별스럽기도 하다. 내가 생각해도.

 

 

 

 

 

내 감각으로는 조형적으로 완벽한 상태의 창고와 한 그루 나무였다.

신록 아니면 단풍인데 준비된 배우인 것처럼 저렇게 서 있었다.

내가 가지고 싶은 만 가지 중 하나가 바로 저 농협창고다.

 

 

 

 

 

경상북도 군위군 우보면 사답길 9-2

 

 

 

 

 

언제 이 길을 다시 지나갈 일이 있을까 싶지만 신록 때 너를 다시 한 번 보고 싶구나.

 

 

 

 

 

낡은 콘크리트는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다.

 

 

 

 

 

나는 역시 새집 보다 헌집이 좋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 장터에 있는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비빔밥과 칼국수가 분명히 4,500원인데 왜 아주머니는 나에게 기어코 4,000원을 받았을까.

의문은 여행을 돌아 온 후 검색에서 풀렸다. 현금을 드리면 오백 원을 깎아준다.

거의 동네 사람들 장사였는데, 소문 난 맛집도 아닌데.

약간 늦은 점심 먹고 느긋하게 장터를 둘러봤다. 1일과 6일이 장날이라고 한다.

경북 의성군 금성면이다. 면 장날이 열린다. 제법 규모가 큰 면이고 읍과 거리가 멀다는

지리적 특성이기도 하고 이렇게 면場 살아 있는 동네 사람들은 자긍심이 높거나 결기가

드센 경우가 열에 아홉이다.

<탑리 자전차점> 글씨가 단아하다. 전국 돌아다니며 이런 손 간판 사진만 찍어도

전시회는 성립되긴 하겠다.

 

 

 

 

 

 

 

88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군위-의성 거쳐 안동으로 들어섰다.

병산서원. 1998년이었나? 그러면 대략 19년만인가? 젠장. 아냐 뭐 그럴 수도 있지.

먹고 살기 바빴고 생활고에 시달렸으니 그럴 수 있지 뭐.

강을 따라 서원까지의 길이 아직 비포장인 것은 의외였다. 서원 주변은 제법 변했다.

예산 흔적이 보이고 다듬어졌다. 뭐 이 정도 버틴 것도 선방했다고 볼 수는 있다.

오후 4시 20분 월요일인데 사람들이 제법 많이 찾았다. 중국 단체 관광객들도 보였다.

19년 동안 매체에 노출되고 입방아에 오르내렸으니 과거의 분위기를 노래할 수는 없다.

 

 

 

 

 

하회마을 쪽으로 산책로 팻말이 있어 기웃했다가 그냥 나왔다.

 

 

 

 

 

이전에도 길이 이리 통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짧아진 해에 빛은 많이 누웠다.

 

 

 

 

 

강으로 내려서는 길은 확연하게 정비를 한 모양이다.

기억에 없는 길이고 조경들이었다.

 

 

 

 

 

사실 이 강은 내려서기보다 바라보는 것이 적절한 강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강은 수량 조절 탓에 시각적으로 물이 부족하다.

사람이 자연을 조절한다고 한다.

 

 

 

 

 

카메라 없던… 아니, 내가 카메라가 없던 시절 돌아다녔던 곳들의 그림이 아직도 선연하다.

기억에 의존해야 하기에 영상은 선명하고 필사적이다.

사람이 제법 끊이지 않아 몇 컷 누르다가 나왔다.

내 사진에서 포커스가 좁아지면 대부분은 사진 찍기 부적절하다는 소리다.

 

 

 

 

 

 

 

 

 

 

 

 

 

 

 

 

 

차라리 겨울이 좋을까.

가자. 배 고프다.

 

 

 

 

 

 

 

다음 날 아침. 13일 만에 다시 봉정사 길을 오른다.

 

 

 

 

 

단풍, 보다는 낙엽 쌓인 영산암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이곳 단풍은 늦다.

지리산 단풍도 금년에는 좀 늦다. 계절이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충분하다.

 

 

 

 

 

돌아와서 2주일 전의 숲과 비교해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긴 하다.

그러니까… 간명하게 아주 좋다. 단지 그러하다. 그래서 다시 찾았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왔었는데.

저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닙니다.

 

 

 

 

 

그리고 봉정사는 역시 한산하거나 조용하다.

 

 

 

 

 

 

 

 

 

 

색이 참 압도적으로 다양했다.

 

 

 

 

 

나무.

나무는 참 대단하다.

 

 

 

 

 

큰 나무들을 많이 찍었다.

이곳의 나무들은 충분히 농염하게 쇠락했다.

 

 

 

 

 

절집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고 숲도 그러하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풍찬노숙 세월의 노인이다.

 

 

 

 

 

한결같은 망각속에

나는 움직이지 않아도 좋소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소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오.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빛은 자상했다.

 

 

 

 

 

제법 특별한 아침이구나.

 

 

 

 

 

살면서 몇 번은 그런 아침이 있다.

꼭 이런 곳이 아니라도 그렇다.

출근 길 가로수 나뭇잎 하나에도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영산암 계단 앞에 다시 섰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잠시 머뭇거렸다.

감당하기 힘든 아름다움도 있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10년 후 이 아침의 광경은 기억 속에서

신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기억은 이 사진들이 강제하게 될 것이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이 장면 앞에서 좀 더 오래 앉아 있었을 것이다.

 

 

 

 

 

 

 

 

 

 

 

 

 

 

 

 

 

 

 

 

 

 

 

 

 

 

 

 

 

 

 

 

 

 

 

 

 

 

 

 

 

 

 

 

 

겨울에 한 번 올게요.

이번 겨울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지만 여하튼 겨울에 뵈어요.

 

 

 

 

 

 

하루 전 오후. 병산서원을 들리기 전에 한 곳을 더 찾았다.

 

 

결국 왔습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피해왔는데.

 

 

 

 

 

안녕하세요.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안길 57-12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역시 나는 예정했던 그대로 선생의 집 마당에서 많이 힘들었다.

그것은 예상이 아닌 예정이 맞다. 잘 못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집이 회초리다.

 

 

 

 

 

2008년, 선생의 1주기 무렵에 쓴 글 중에 여전히 나에게 비수로 돌아오는 대목이 있다.

 

존경하는 마음을 결정하는 것은 절대평가를 기준으로 하고

내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상대평가가 가름한다.

이것은 권정생을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권정생처럼 살지 않아도

혐오스럽지 않을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된다.

나는 이 두 가지 기준이 하나로 일치되지 않는 한

세상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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