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 그에게로 가는 길

마을이장 2009.05.02 21:10 조회 수 : 8165 추천:239





그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1930년대 후반 어느 날,
구례군 문척면 반내골로 돌아가서 어느 까까머리 소년을 붙잡고 물어보아야할까.
1940년대 후반 어느 날,
구례구 역전에서 제복 입은 어떤 젊은 청년을 훔쳐 보아야할까.








* 정령치에서 반야봉을 지나는 빠른 구름을 보다. 2009년 5월 2일 새벽 5시 30분 무렵.


2009년 5월 1일 오후 4시경.
지리산닷컴 사무실에서 소설가 정지아와 마주 앉아 있었다.

이장 / 부모님들의 이력을 언제 알게 되었나.
정지아 /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니네 아버지 빨갱이라메!' 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장 / 어머니의 이력도 그때 알았는가.
정지아 / 아니다. 어머니의 경우는 중1 때 알았다.
이장 / 그 이전에는 정말 몰랐나.
정지아 / 워낙에 징역을 들락거리셨던 탓에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다.
징역은 나쁜 사람들이 가는 곳인데 '우리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으니 이해하기 힘들었다.
4.19 직후에 병보석으로 출감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재수감되셨다.
중3때인 79년에 8.15특사로 출옥하셨다.








* 구례군 문척면 중기마을로 가는 길. 2007년 4월.


이장 / 정지아씨가 태어난 곳은 구롄가?
정지아 / 문척 반내골이다.
이장 / 중기마을?
정지아 / 그렇다.
이장 / 처음 중기 쪽으로 들어갔을 때 '정말 먹고 살 것 없는 동네군' 이라고 생각했다.
정지아 / 그렇다. 아버지는 수감중이었고 읍내(구례) 고모집 사랑채로 옮겨와서 살았다.
이장 / 중간에 서울로 옮기지 않았나?
정지아 /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서울로 갔다.
이장 / 왜?
정지아 / 내가 어머니에게 이사 가자고 했다. 아버지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싫었다.
이장 / 초등학생이 그런 판단을 하는가?
정지아 / 나는 영악했다. 영악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밥을 찾아 먹어야 했다.
어머니는 반내에 있는 비탈 10마지기 정도의 논으로 가시면 며칠씩 일을 하시곤 했다.
도움을 받던 집의 식모 언니가 반찬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눈치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 뱀사골에서 인월로 내려서는 길에. 2009년 5월 2일 새벽 6시 30분 무렵.


이장 / 부모님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언제 들었나?
정지아 / 그보다는 할머니에게 많이 들었다. 서울에서 순천여고로 옮겼다.
읍내에서 반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그때는 없었다. 지금 토금 입구에서부터 걸어서 들어갔는데
그 길에 할머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장 / 아들에 대한 변론으로?
정지아 / 아니다. 할머니는 제대로 교육을 받으신 분이 아니셨다. 그냥 옛날 이야기 하듯이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입장 없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이장 / 정치적으로 부모님들을 이해한 것은 언제인가?
정지아 / 아무래도 대학을 가서 그랬다. 역사책 한 권 읽고 모든 것은 정리되었다.
이장 / 왜 '빨치산의 딸'을 첫 작품으로 택했나.
정지아 /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는 내 성장의 밑거름이다.
물론 이르다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은 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이장 / 언제 많은 이야기를 하셨나.
정지아 / 고3 겨울방학이었다. 두 분 입장에서는 마침내 들어 줄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 반야봉 아래 박영발비트(전남도당위원장)에서 조성봉 감독이 발견한 숟가락.


이장 / 두 분은 그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하셨나?
정지아 / 두 분 대화의 대부분은 山 시절 이야기였다.
이장 / 의외다.
정지아 / 아니다.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아버지는 1948년에서 52년까지 산에서 생활하셨다. 어머니는 거의 54년까지 산에 남아 계셨다.
목숨을 걸었던 시절이었다. 그 분들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그 6~7년 속에 모두 있다.
지리산의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도 지금 사람들의 묘사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아침에 비트에서 산죽을 털고 나오면 흰 눈밭이 햇살에...' 뭐 이런 식으로 말씀을 나누셨다.
이장 / ㅎㅎㅎ

지리산닷컴은 실내 금연이지만 제 각각의 임시 재떨이를 두고 제법 많은 담배를 피웠다.
궁금했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했다.

이장 / 두 분 모두 재혼이셨다. 재혼의 이유가 사랑이었나, 동지애였나?
정지아 / 명확하다. 두 분 모두 95% 동지애로 재혼을 결정하신 것이다.
누군가와 '그 시절'에 대한 말이라도 나누고 싶은데 누구와 가능하겠는가?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의 첫 그 분과도 산 시절에서부터 잘 알고 계셨다.
어머니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날 하루 종일 우셨다. 청춘을 걸었는데...
두 분 모두 군기가 빠지지 않은 상태셨다. 하하...

해가 질 모양이다. 갑자기 아무런 준비없이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더 이상 잡아 둘 수는 없었다.

이장 / 부모님들로 인한 불편함이나 원망은 없었나.
정지아 / 그런 것은 없었다. 다만 그것으로 인한 가난이 더 고통스러웠다.
이장 / 구례로 돌아올 생각이 있나.
정지아 / 물론 그러고 싶다. 하지만 이곳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쉬운 일은 아니다.
이장 / 그만 보내드릴까요.
정지아 / ㅎ









2009년 5월 1일 오후 2시경. 구례 문척 죽마리 조성봉 감독의 집.
더운 날씨였다. 약간 지쳤고 이옥자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냉커피를 마셨다.
두 대의 차량에 나누어 탔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오후는 한가로운 듯 했다. 어머니가 힘들어 하시니 일단 집으로 모셔다 드려야겠다고
정지아씨가 말했다. 그만 일어서자는 신호인 것이다.

이장 / 그럼, 제 차로 읍내로 모셔다 드리고 정지아씨는 저희 사무실로 가시지요."
정지아 / 몇 시간이나?
이장 / 저는 인터뷰하면 보통 하루 종일 합니다. ㅎ
조성봉 / 거부권도 있자나. 권산도 냉커피 천 원 못낸다고 거부했는데...
이장 / 에이...
조성봉 / 숟가락 그거 박영발비트에서 찾은거다.









2009년 5월 1일 오후 1시경.
백운산 한재를 떠난다. 쓰레기 단속하던 그 아주머니가 유난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차를 돌리고 떠나려니 길 위가 페트병 따위 쓰레기 지천이다. 제법 많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좋지 않은 흔적만 남기고 떠났다. 그냥 가자고 했지만 빈박스가
있으니 쓰레기를 좀 담아 가자고 했다. 그리했다.
오는 길이 험해서 쉽게 다시 찾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놈에 사륜구동을 장만하기 전에는 말이다. 그러나 산행 삼아 다시 찾고 싶은 곳이긴 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리능선이 장할 듯 하다. 가을이 좋겠지.
다시 두개골이 흔들리는 가파른 비포장길을 내려가야 한다.









선생님 갑니다.
혼자 찾아오면 쉽게 찾을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잣나무가 한 두 그루도 아니고.
잣나무잎으로 다시 가려야 할 것인데.
먼저 짐을 들고 나서서 확인하진 못했지만 아마도 조감독님이 그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흔적에 그리 집착하진 않을 분들이다.









밥을 먹고 한 구석에서 담배를 피웠다.

조성봉 / 옆집 영감이 어제 말이야, '담배 피는 놈들은 미래가 없어' 그러더라고.
이장 / 그 영감은 끊었나요?
조성봉 / 끊었지.
이장 / (정지아씨를 보며)오늘 하실래요? 그냥...
조성봉 / 뭘?
정지아 / 인터뷰...
이장 / 언제 올라가시는데요.
조성봉 / 내일 올라간다고?
이장 / 개인적인 생각인데, 부모님에 관한 질문 참 지겹지 않나요?
저 같음 그런 인터뷰는 안합니다.









정운창 선생님이 먼저 드시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 계신 손영심 선생께도 음식과 술을 올렸다.
이옥자 선생님은 또렷하지 않은 눈으로 비문을 읽고 계시다. 역시 잣나무다.
음복을 겸한 아점을 먹었다. 정오 조금 넘었을 것이다.
주변의 사람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사위는 조용하고 머위쌈은 쌉싸름했다. 된장국에는 남의 살이 들어 있었다.
두릅을 무쳤고 나물도 있다. 아침은 당연히 먹지 않았고 조금 시장했던터에 모두들
맛나게 밥을 먹었다. 밥은 아직 온기가 있었다.









나무들은 굵고 높았다. 잣나무가 많았다.
정오 무렵의 햇살이 숲 속으로 스며들었다.
비포장이지만 지금은 한재를 넘어 광양까지 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50여년 이상 전에는 쉽게 오르지 못할 높이다.
광양과 화개 방면에서 올라오는 토벌군들을 관측하기에도 좋았을 것이다.









오늘 처음 뵈었다.
이옥자 선생님. 남부군 정치지도위원.
할머니, 아주머니, 어머니 등의 표기는 이상하게 적절하지 않은 듯 했다.
자연스럽게 '선생님' 이란 호칭이 사용된다. 그놈에 사륜구동 하나를 더 징발한다고
화엄사 초입에서 잠시 차를 세웠을 때, 나는 의도적으로 '엄니, 저 구례 삽니다.' 라고 인사를 드렸다.
남부군 정치지도위원이기 이전에, 산에서 7년의 시간을 보내기 이전에,
당신은 누군가의 아내였고,
누군가의 며느리이셨고,
누군가의 따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엄니에 대한 인터뷰는 진작에 접었습니다.
이야기거리 하나 챙겨보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일종의 모독이다.
혀도 부끄러움을 아는지라.









하나의 비문이 더 있다.
정운창 선생님으로부터 몇 걸음 옆이다.

"아구사리 동산 고운님들 곁에서 2009.3.27 영심"

아구사리? 생강나무란다.
약으로, 옷으로, 연기가 나지 않아 추운 겨울 화목으로 그렇게 사용했다고 한다.


아구사리 꽃이 피어날 때면
아련히 떠오르는 낯들이 있다.
눈 녹아 흐르는 개울가에서
모진 겨울을 이겨낸 그들이
화살처럼 빛나는 시선을 모은다.
"오메, 아구사리 피었네."

아구사리 잎이 무성할 때면
파랗게 살아나는 얼굴들이 있다.
날쌘 줄달음으로 내달아 가고
환하게 밝은 웃음으로 돌아와서는
합다리 소금죽을 들이 마신다.
"와따, 잠이 쏟아지는걸."

아구사리 단풍이 흩날릴 때면
애처롭게 간장을 썰던 마음들
이 해도 이렇게 저무려는가.
표범 같은 소년이 초소에 서서
바람결에 실려오는 눈발을 본다.
"어쩔 것이여, 집에는 언제 가고."

- 대하소설 <남도빨치산> -


故 손영심.
1931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담양에서 성장했다.
1948년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보성 회천국민학교에서 1년간 교편을 잡았다.
1950년 전쟁 시기, 조선노동당 광주시당에서 일을 했다. 9월 28일에 무등산 입산해서
유격대 활동 전개했다. 오빠 손채만, 남동생 손형만, 외삼촌 양권태 등이 전사했다.
1951년 전남도당 선전부 지도원으로 일했고, 1951년-52년 :제1차 공세 시 전남 백운산에서 활동했다.
1953년은 지리산에서 유격대 활동을 계속했다. 1954년에 지리산에서 생포되었다.









정지아가 잔을 올렸고
나는 역시 사진 따위나 찍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숲으로 몇 걸음 걸어 들어갔다.
잣나무숲이었다. 그는 그곳에 누워, 아니 뿌려졌다.
조감독이 잣나무잎을 걷어내었다.

"그리운 이들의 품에 안기다 1928. 7. 2~2008. 5. 1 정운창"

故 정운창
1928년 구례 문척면에서 태어났다.
철도학교를 졸업했고 철도노동자로 일했다.
1948. 5. 10 단선 이후 야산대를 거쳐 유격투쟁 대열에 참가했고 주로 백운산 지역에서 활동했다.
그 뒤 봉두산, 백아산(지구 부책)을 거쳐  6.25 뒤 도당 노동부 지도위원으로 일했다.
평양 유학생으로 선발되었으나 다시 입산했고 활동 중 곡성군당위원장, 도당 조직부 부부장을 맡았다.
그 뒤 지하활동을 위해 하산했다. 활동 중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다.
4.19 직후 병보석으로 풀려나고 투옥되기를 반복했다. 끝내 타협하지 않았다.

부인 이옥자 여사
딸 정지아(작가)









한재(840m).
호남정맥의 끝자락 백운산白雲山(1,218m) 정상을 지척에 두고 있는 험한 고갯마루.
한재는 전남 빨치산들의 연병장이었고, 집회장소였고, 학교였고, 출전기지였다.
정운창 선생께서 이곳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은 정운창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는 장소이다.
정오 전이었을 것이다.









왜 사륜구동을 요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구례 간전면의 끝자락 백운천 계곡을 따라 올라가서 도로가 끝나는 중한치에서
우회전해서 소로길을 따라 올라서면 한동안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지고 그 시멘트 길은 봄날이었다.
잠시 후 제법 긴, 돌이라기 보다는 작은 바위에 가까운 돌팍들이 즐비한 길을 따라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손잡이를 잡았고 두개골이 흔들리는 듯 차는 사람을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게 20여분 올라갔을 것이다.









2009년 5월 1일 노동절 오전 10시 30분.
구례읍 봉성산 아래 어느 아파트 입구.

"어디세요?"
"왔어요."
"예."

하루 전날인 목요일 밤.
최근 동네 유선방송이 채널을 재편하면서 얻게된 보물같은 어느 영화 채널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2003)'를 보고 있었다.
보고 싶었던 영화였던 만큼 땅콩과 오징어를 단단히 준비해 두었다.
벨이 울린다. 시골 사람들은 밤 9시 이후 전화를 잘 하지는 않는다.

"여보세요."
"죽마리 조성봉이요."
"예, 조감독님."
"내일 정운창 선생한테 갈껀데 같이 갈라요?"
"예? 내일입니까! ... 하~ -,.- 미리 좀 연락해 주시지..."
"ㅎㅎ 우리는 미리가 없어."
"... 아 놔... 저는 안되는데요, 선약이 있어서."

영화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영화의 전반전이 끝이 났을 때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며 전화기를 들었다.

"접니다. 내일 몇 시까지 어디로 가면 됩니까?"
"아, 같이 갈래요! 그런데 혹시 차가 사륜구동이요?"








* 정운창의 고향 구례군 문척면 반내골에서 2007년 4월.


2008년 5월 중순 어느날.
가끔 들여다보던 어떤 이의 블로그를 보다가 가슴이 내려 앉는 소식을 접했다.
포스팅 제목이 '故 정운창' 이었다.
소설가 정지아의 아버지. 같은 구례에 살고 있었던.
내가 '빨치산의 딸'을 자료 삼아 읽다가 몇백 미터 윗 마을에 지금 읽고 있는 활자의 주인공들과
같은 마을에서 같은 밤을 보내고 있다는 신기함에 뿌듯해 하기도 했던 그 분.
언젠가는 인터뷰를 할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접근할까?


2007년 4월 어느날.
문척 월평 지나 토금으로 넘어가는 다리에서 잠시 고민을 했다.

"저 길로 한번 가볼까?"

10분 정도 천천히 올라가자 비포장 길이 나오고 길은 끝이 났다.
규석광산을 반대한다는 프랭카드가 길 가에 걸려 있었다.
이곳 저곳 들쑤시고 다닌 구례의 어느 마을보다 척박해 보였다.

"야, 이 동네는 도대체 뭐 해먹고 사나?"

문척면 중산리 반내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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