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집수리 이야기 9. 29 ~ 10. 3

마을이장 2017.10.10 00:03 조회 수 : 673

 

 

 

9월 29일 금요일. 이십이 일째다.

물감을 다시 꺼내었다. 오랜 시간 이런 것 볼 일 없었는데 2015년 가을에 화개 작업장

공사 당시 벽에 낙서를 하면서 다시 구입했다. 이후로 <호모루덴스> 인테리어 때에 몇 가지

추가해서 구입하고 그때 물감이 아직 남아 있다.

새로운 월인정원 작업장 천정과 일부 벽에 간략한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아직 정하지는 않았다.

여하튼 오늘 아크릴 물감이 다시 차출된 것은 H빔과 몇몇 서까래 보조 각목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H빔 컬러를 원래는 매우 원색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레드와 올리브그린 계통으로.

처음 빨강을 몇 번 칠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조색을 했다. 온통 화이트와 나무라

부분적인 원색이 맛깔 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날리는 결과였다. 결국 승복하고

전반적으로 어울리는 컬러로 선회했다. 짙은 고동색이라고 할까.

 

 

 

 

 

무얼까?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철거하면서 나온 나무 중에서 결이 살아 있는 것으로 몇 개 골라서 바닥 중 일부 시멘트

작업을 할 거푸집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철거하지 않을 거푸집이다. 450kg 오븐을 감당할

예정지는 아궁이 쪽으로 ‘달아 낸’ 바닥이다. 보강이 필요하다. 고강도 시멘트가 다시 투하될 것이다.

 

 

 

 

 

 

 

9월 30일 토요일. 이십삼 일째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주말에 쉬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오야지에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상적인 직장에서나 있는 일이지 ‘단지 빨리’ 라는 납기일만 있는 봉건제 사회에서는

사치스러운 질문이자 요구다. 날씨는 차암 좋아요.

 

 

 

 

 

반항적으로 늦게 출근했는데 무얼까?는 무언가 다시 진행 중이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오븐은 스팀 기능이 있고 기타 등등 블라블라 가는 호스가 연결된다.

오븐이 들어오던 날 테스트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연결했던 수도를 정식으로, 또는 무얼까?스럽게

다시 연결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주방 배관에서 이동 거리가 5m 정도인데 무얼까?는 가급이면

시각적으로 그 연결선이 보이지 않기를, 또는 최소한으로 노출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가 일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차암 성격이 차분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복선 없는 있는 말 그대로다. 진짜로.

 

 

 

 

 

그 다음으로 하루 전 만들어 둔 거푸집 안으로 시멘트를 투하하는 과정이다.

작은 면적인데 두껍게 공구리를 치려니 여러 번 반죽을 했다. 거의 일곱 포 정도 들어간 것 같다.

이것을 비비는 반죽 작업이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다. 이 시멘트는 입자가 조밀한 것이라 더 그렇다.

처음에 두 포 한꺼번에 비비다가 반성하고 한 포씩 반죽했다. 옮기고 둘이 들어서 붓고.

그러니까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작업이다. 수평몰타르가 아니기 때문에 최대란 눈으로 확인한다.

자세 안 나오는 각에서 재료의 성격 상 미장이 되지 않지만 미장을 한다.

이렇게 시연하고 나면 나는 관심이 없는데 무얼까?는 재료의 특성과 한미관계의 특수성에

대해서 썰을 풀곤 한다. 누가 물었나?

 

 

 

 

 

10일 이상 양생을 할 것이다.

몇 번 무얼까?가 말했다. 시멘트는 말리는 것이 아니라 굳히는 것이라고. 물 속에서도 굳는 것이

시멘트라고. 그래서 간혹 물을 뿌려준다. 말리건 굳히건 나는 궁금하지 않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러면 저 덩치를 너하고 나하고 둘이 옮기는 거야?

 

 

 

 

 

노가다들은 점심 먹고 한 잠 때리는 것이 전통이다. 일주일 정도 전까지는

점심 먹고 잠시 누워 있곤 했다. 박스를 깔고 눕건 어디건 적당히 말 그대로 몸뚱아리

누일 수 있는 곳에. 그리고 봉지 커피 한 잔 먹고 오후를 달리는 것이다.

공구리도 쳤고 토요일인데 일찍 가나?

 

 

 

 

 

그럴 리가 있나. 세상은 넓고 무얼까?의 장비는 다양하지.

전기다. 전기공사를 시작한다. 이번 전기공사의 컨셉은 ‘안전한 전기 라이프’다.

통상적으로 가정용 전기공사에 사용하는 전선과 콘센트 방식이 아니다.

‘오바하자!’

차단기가 내려오는 이유는 전력량 과부하고 있지만 전선이 감당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카더라. 그래서 사용하는 전선과 기타 등등 부품들은 모두 닭 잡는데

소 잡는 도구를 동원하는 개념이다. 일단 전기를 출발시켜 놓고 퇴근하겠다는 사인이다.

 

 

 

 

 

그렇다면 나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니…

뒤로 달아 낸 서까래를 보강한 각목들이나 칠해야지. 저렴한 착시효과.

각목에 나무결을 그렸다가 해안초소 같아서 지웠다.

 

 

 

 

 

오후에 일을 하다가 무얼까?가 무심히 던졌다.

 

“추석 전에 홍수 형한테 못 가겠네.”

 

잠시 생각을 했다.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겨를이 없었다.

 

“오후에 좀 일찍 마치고 가자.”

 

 

 

 

 

읍내에서 소주와 막걸리, 황태포를 하나 사 들고 파도리 언덕으로 올라갔다.

학생. 그렇다. 홍수 형은 벼슬을 하지 않았으니 學生이다.

막걸리와 소주 좌우로 시립시키고 찰랑찰랑 부어서 절 올렸다.

 

“담배도 너 하나 나 하나 두 대 붙이자.”

 

 

 

 

 

<맨땅에 펀드> 당시 감나무 밭 위가 형의 자리다. 전망 하나는 정말 좋은 곳이다.

오른편으로 금내리 들판과 한 발 나서면 읍내까지, 중앙으로 섬진강이 굽이돌고

오봉산과 계족산이 순서대로 포개지고 왼편으로 백운산 자락이 유장한 자리다.

가을볕이 들판과 강과 산과 나무와 풀 위로 가루로 쏟아지고 있었다.

 

 

 

 

 

왜 세상 떠나기 이틀 전에 우리 앞에 나타나셨소.

 

 

 

 

 

그만 내려가자.

 

“가요, 형.”

 

 

 

 

 

 

 

10월 1일 일요일. 이십사 일째다.

주 2일 근무하는 3류가 근무하는 일요일이라 차출했다.

오늘 미션은 주변 정리와 창고 청소다. 앞 선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많은데 박스와

파지 대부분을 아궁이에 집어넣기로 했다. 불 피우기 싫어하는 남자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집은 두 것 정도의 아궁이가 살아 있는데 내 사무실로 사용할 것으로 구상되는

작은방은 아궁이 이외의 난방 방법이 없다. 그래서 고민이다. 나는 5년 정도 나무 난로와

관계가 있었고 이후로 나무로 난방하는 문제에 대해 약~간 강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

 

 

 

 

 

몇 개 월 불을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방 보호 차원에서 연기 한 번 피워주는 것이 좋다.

굴뚝은 환풍기가 달려 있다. 시작할 때는 전기로 환풍기를 돌려준다. 비가 부슬거렸고 기온도

제법 떨어진 시기라 아궁이 가동하기 좋은 조건이긴 하다.

 

 

 

 

 

이날 3류를 초청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창고를 물청소하기 위함이다.

말 그대로 디스이즈창고다. 4평 정도나 될까? 어쩌면 5평. 지극히 단순한 모양.

그래서 면적에 비해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는 지난 10년간 퇴적된 빵순이

물건들의 빈티지샵 같은 용도로 사용할 것이다. 샵이라기 보다는 수납공간.

그러나 그놈에 “예뻐야” 한다는 전제는 뭐 들어보나 마나다.

 

 

 

 

 

세차장 수준의 고압 살수기를 빌려왔다. 사이즈는 작지만 능히 ‘껍떡을 벗겨버릴’ 수준이다.

시멘트 바닥에 가까이 대고 정조준 하면 시멘트 세척하는 수준이다. 주의할 사항은 계속

뿌리면 모터가 탄다. 본체에서 모터 소리 시간을 들은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두어 번 들렸다.

젠장. 더러워서. 노인들이 그럴 수도 있지.

거미줄, 벌레집, 묵은 때 할 것 없이 모두 쏘아서 퇴치시켰다. 마음에 든다.

사진 모델은 3류지만 내가 거의 90% 했다고 보면 맞다. 누가 나 좀 찍어주면 열심히 일하는

나의 모습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을 것인데.

 

 

 

 

 

일단 몇 십 년 만에 샤워를 했다. 하루면 마를 것이다. 일단 이것은 그리되었고.

일단 페인트칠을 한다는 것 이외에 정해진 것은 없다. 스티로폼을 빼 낸 천정은

샌드위치 판넬인데 보기에 아름답지 않으니 단열 등등 생각해서 접착보드 계통으로

마감할 것인지 페인트로 전체 해결할 것인지 등등. 고뇌가 깊다. 싸게 처리한다가 요점.

 

 

 

 

 

물론 그는 결근하지 않았다.

 

 

 

 

 

내부 전기 작업 중이다.

전기적 장치에 프로그래밍을 더하는 영역은 무얼까?의 가장 강점 분야 중 하나다.

이번 공사에서 프로그래밍이 더해지는 영역은 없다.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길 위에서 옛 <호모루덴스> 이사진들이 뭉쳐 다니는 차를 발견했다.

옛 대표이사가 이리 노가다 중인데 한가로이 추석 쇼핑 따위를 핑계로 몰려 다니고 있었다.

난동으로 모두 불려 왔다. 경을 칠 일 아닌가. 경을 치기 위해 오전 동안 왕창 데워 둔

쪽방에서 찜질방 수준의 구들 고문을 시켰다.

추석 냄새가 나기 시작한 날이다.

 

 

 

 

 

10월 2일 월요일. 이십오 일째다.

이날 나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무얼까?에게 미리 알렸다.

주변 추석 인사와 돌려막기와 주고받기를 해야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부산으로 출발하기 위해

차례 음식 재료 다듬기와 장보기에 돌입해야 한다. 마트 계산대가 이미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아침에 받은 전화 한 통으로 예정보다 이르게 문을 닫았다.

 

 

 

 

 

10월 3일 화요일.

꿈속인 듯, 현실인 듯 그렇게 정해진 순서를 따라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일을 수행했다.

낮에 사 둔 조각 케이크와 길 가에서 꺽은 꽃다발을 마지막으로 올렸다.

집으로 돌아 와서 샤워하고 밥 먹고 차례 음식 챙겨서 나선 것이 저녁 8시나 되었나.

부산까지 고속도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피곤할 것이니 운전 조심하시라는 문자가

두세 통 들어왔다. 그렇다. 많이 피곤했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분노한 사람의 눈으로 어둠을 노려보며 헤쳐 나갔다.

살아간다.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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