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집수리 이야기 9. 21 ~ 9. 23

마을이장 2017.10.06 00:19 조회 수 : 664

 

 

 

9월 21일 목요일. 공사 시작하고 열네 번째 맞이하는 아침이다.

점점 일어나기 힘들어 평소보다 늦은 7:50경에 난동에 도착했는데 안개가 여전했다.

안개 짙은 아침이 이어진다. 도착해서 대문 앞 순영이 형 논 아래로 핀 코스모스를 보았다.

 

 

 

 

 

마당으로 들어와서 몇 발 걸어 나가 발아래 마을 입구를 굽어본다.

이 위치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계절을 대단히 정확하게 표현할 것 같다.

봄이 기대되는 요소들로 빼곡하고 신록 또한 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다시 천정을 향해 고개를 쳐드는 일이다.

아침에 프라이머부터 칠하기 시작했다. 오후까지 작업실2 핸디코트 초벌칠을 하는 것이

오늘의 과업 목표량이다. 여성들 작업 때문에 급하게 벽면 프라이머를 먼저 칠하고

천정은 이 아침에 칠하는데 이미 칠을 한 벽으로 흩뿌려진다. 서까래 모서리에서 붓질을

강하게 하다보니 방울이 튄다. 무얼까?가 소리를 했지만 그냥 별 일 아닌 것으로 무시.

 

 

 

 

 

키 높이 이상, 들보 라인 위 작업은 여전히(그리고 끝까지) 손으로 핸디코트를 바른다.

장갑 중지가 집중적으로 구멍이 난다. 그러면 무얼까?가 또 잔소리다. 자기처럼 손가락을

골고루 사용하지 않는다고. 서까래와 모서리는 손가락으로, 평면은 손바닥으로 칠한다.

 

 

 

 

 

그라인더와 사포 작업 끝나면 무조건 천국을 만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해방된 그날 하루

정도의 감정이고 핸디코트도 일주일이 되니 이룬 업적 보다 넘어야 할 산이 더 높아 보인다.

사진으로 분홍색 라인을 그린 저 부위들. 저 부위들이 시간이 더디고 힘들다.

이날부터 나는 어깨 위로 팔을 올리는 것이 제법 고통스러웠다. 누군가에게 힘든 일을 맡기고 싶어진다.

같이 하는 작업에서 능력 안의 일인데 힘들고 귀찮다고 자꾸 도망을 가면 그 작업은 끝이 나도

제대로 남는 것이 없다. 결과에 대한 애정은 과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과정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문제다. 짐을 나누는 일이다. 나의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무얼까?의 짐이 늘어간다.

 

 

 

 

 

퇴근을 서둘렀다. 읍내에서 픽업을 해야 한다.

오늘은 난동에서 면 소재지로 직진하지 않고 당동마을 쪽 길을 따라 내려갔다.

당동길 어느 대목에서 서쪽 방면 역광의 들판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촘촘하게 심어진 가로수 탓인지 예상했던 뷰는 나오지 않았다.

당동길 벗어나서 구상했던 것 보다 좁지만 대략 원하는 빛의 들판이 보여 잠시 차를 세웠다.

 

 

 

 

 

몇 년 전 앉은뱅이 밀을 파종했던 땅이 보여 반가웠다.

이제 그런 파종을 기획하거나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 더 반가웠다.

면 소재지 넘어 용방면이 건너편이고 멀리 고속도로 교각이 보인다.

 

 

 

 

 

몸을 뒤로 돌려 좀 더 강렬한 서쪽 빛을 만난다.

원했던 빛은 이런 빛이 펼쳐진 보다 넓은 들판이었지만 그런 조망은 차를 버리고 좀 더

높이 올라가야 할 일이다. 걸어야 한다. 그건 뭐 앞으로 몇 년간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런 계절 카메라 어깨에 걸고 30분 정도 길을 따라 셔터를 누를 수 있다면 그럭저럭

쓸 만한 시간들이 될 것이다. 물론 나에게 그런 일상성이 생긴다면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생활패턴은 ‘단순한 반복’이다.

 

 

 

 

 

빛은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나 역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빛의 집은 어둠이고 나의 집은 사람들이다.

14일째 날이 저물어 가고 공사를 2주일 만에 끝내겠다는 나의 계획은 역시 헛소리였다.

 

 

 

 

 

9월 22일 금요일이다. 보름째다. 여전히 쉬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일탈과 월인정원은 하루 쉬고 다시 벽에 붙어 있다.

10여일 대부분의 작업을 천정을 보면서 어깨 위로 팔을 뻗어 진행한 관계로

이날 아침 나의 어깨와 팔 느낌은 최악이었다.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다른 때 보다 좀 늦게 출근했다. 그러나 무얼까?는 여전히 어깨 위로 팔을 들어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랑 몸이 다른 종족인 모양이다.

 

 

 

 

 

금요일이 기념할 만 한 날인 것은 인터넷 전용선이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예정보다 빠른 오전 10시 전에 KT 기사님이 도착했고 10경에는 작업이 완료되었다.

노트북으로 확인하고 공유기 작동이 완료되고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와이파이 비번을 발표하겠습니다.”

 

‘와아!’ 하는 환호와 함께 모두 구호물품을 받듯 아이폰을 열어 5G 축복을 맞이했다.

오전 10시부터 작업장에서는 하루 종일 음악 소리가 들렸다.

와이파이는 이제 대한민국 공사판의 필수 환경이다.

젠장.

 

 

 

 

 

그리고 다시 하루 작업은 지극히 단순하다.

여전히 계속 핸디코트 작업만 유효하다. 초벌 칠 하고 벽을 옮겨 다니고

마르고 난 뒤에 다시 2차 작업을 한다. 이 끝없는 짓을 계속 하다가 배 안에서

거지들이 준동하는 시간이면 <청룡식당>으로 내려가고 다시 올라와서 같은

작업을 대략 오후 5시 퇴근을 기준으로 계속 한다. 코앞의 벽이나 천정만 바라보기

때문에 막상 작업 중에는 우리가 어느 정도 일을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것이 좋다. 그냥 수양하는 마음으로 코앞의 벽을 매립해 가는

단순한 행위만 반복한다. 끝을 가늠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결국 끝은 날 것이다.

 

 

 

 

 

이미 아침부터 천정 작업이 힘들다는 몸의 징후가 온 이후 나는 핸디코트가 아닌

프라이머를 챙겨 들고 마지막 작업지 ‘잠방’으로 홀로 들어갔다. 토요일로 예정된

추가 인력들이 작업할 수 있도록 밑 작업을 미리 하는 것이다.

팔 문제로 수직 벽면만 작업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사다리를 챙겨들고 천정 꼭대기부터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핸디코트 보다 프라이머는 가벼운 재료고 사다리를 충분히 올리니

팔을 높이 쳐들지 않아도 되어서 천정 작업이 가능했다. 어차피 원할한 벽 작업을 위해서

천정 초벌칠이 선행되어 한다. 흰벽 칠 한 다음에 천정 프러이머 칠 하다가 흘려서

벽 작업을 두 번 하게 만든 전과가 있기도 하다. 오후 5시가 넘었다. 또 집에 갔다가 오자.

 

 

 

 

 

15일째 노가다 퇴근길은 온동을 지나 <우리밀공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해가 남아 있어 그쪽 좁고 길쭉한 들이 서쪽 마지막 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어쩌면 이쪽 들은 아침빛이 더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오후 4시경 적절할 수도 있겠다. 이러나저러나 이제 자주 볼 들판이다.

 

 

 

 

 

산이 높으니 골과 골 사이 들판도 제법 해 먹을 것 있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구례 들판을 모두 소유해도 만석꾼은 나오지 않는다.

 

 

 

 

 

9월 23일 토요일이다. 십육일 째다.

오늘은 핸디코트 끝장을 볼 생각이다. 속도로 봐서는 가능해 보인다.

나와 무얼까?의 보직은 물론 천정이다. 천정은 우리의 운명이다.

저 작업대는 안정적이다. 그래서 무겁다.

한 번 위치를 잡았을 때 그 방은 끝을 내는 것이 최선이다.

저 작업대가 밖으로 나가는 날이 좋은 날이다. 완료는 아니어도 심각한 노가다는 종료라는 신호다.

 

 

 

 

 

토요일은 인원이 보강되었다.

일탈과 월인 그리고 1년에 일백 가지 알바를 뛰는 달려라 호호. 핸디코트 경험자다.

미개척지 ‘잠방’으로 여성인력들이 모두 투입되었다. 끝을 보고 말리라는 굳은 맹서와 함께.

호호의 공법은 우리와 좀 달랐다. 초벌에 많이 바르는 기법, 모서리를 나중에 하는 기법.

이 역시 문파에 따라 검법이 달랐다. 결과적으로 호호의 시공 방법이 인력 차이 탓인지

효과적으로 보였다.

 

 

 

 

 

9월 8일 처음 그라인더를 들고 천정으로 붙을 당시와 비교하면 분명히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해 왔다. 아는 사람은 안다. 이 과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얼마나 곤피한 일인지.

저녁이면 사진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지나간 과정을 일별한다. 오늘도 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위로다.

 

 

 

 

 

오후에는 덕이덕이가 호호에게 불려왔다. 열일하는 덕이덕이까지 동원할 생각은 없었는데

덕이덕이에게 아로니아를 받지 않은 유일한 일인 호호는 감정의 앙금이 많았던 모양이다.

 

 

 

 

 

“오늘은 사람이 많네!”

 

출근부 도장을 찍고 있는 순영이 형님이 오후에 방문했다.

나는 온통 그의 농사 영역에 포위당해 있는 지정학적 위치라 이제 하루 한 번 형을 만나고 있다.

현장에서 그는 항상 긍정적이고 그래서 당연히 밝다. 농부 홍순영의 장점은 ‘밝다’ 이다.

 

 

 

 

 

‘잠방’을 초벌 수준에서 끝내고 두벌까지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할 만큼만 하자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다. 무리할 필요 없다.

목표량을 완수하기 위해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반대다. 단지 ‘완수하지 못했군’ 하고

물러서면 되는 일이다. 그것이 스스로 더 지치지 않게 하는 최근 몇 년 동안 내 자세의 변화다.

재미삼아, 궁금함에 완료된 부분 테이프를 조금 뜯어봤다. 예쁘다.

 

 

 

 

 

피곤하여 식당밥을 먹지만 이틀만 먹어도 역시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다.

냉동실에 은신 중인 가자미 두 마리를 구웠다. 뼈 발라 낸 가자미가 서까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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