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집수리 이야기 9. 13 ~ 9. 16

마을이장 2017.09.29 23:51 조회 수 : 744

 

 

 

9월 13일 수요일.

진폐증 직전인 6일째 되는 날 점심 전에 마침내 그라인더 작업이 끝났다. 그리고 청소를 했다.

그리고 촬영을 했다.

(‘촬영을 했다’는 표현은 카메라로 찍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일상적인 공사 과정 샷은

전부 아이폰으로 찍은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실은 그 조차도 힘들다.)

 

 

 

 

 

미세먼지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방독면과 보안경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오부능선은 넘은 것 같은 일말의 해방감이 있었다. 또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불편함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 6일 동안 집은 제 살을 깎아내었다. 우리의 작업은 집의 뼈를 향해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집 안의 모든 부위를 손으로 더듬어야 했다.

그것은 최초 이 집을 지은 손길들이 지나 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 길 어디즈음에선가 1972년 어느 날의 이 마을 목수 허 씨나 김 씨를 만났을 것이다.

현대적 건축 개념으로 만들어진 집은 수리할 가능성도 낮고 집을 세운 방식과 생각 자체가

달라서 이런 인터스텔라적 느낌은 불가능하다.

 

 

 

 

 

사뭇 약간의 감회가 감돌았다. 멀지 않은 과거와 조우하고 그 시절 이 집을 짓고 살았던

이들의 손길과 만날 수 있는 경험은 말도 안 되는 힘든 며칠을 인내한 보상이었다.

‘집을 만지다 보면’ 무엇을 먼저 짓고 무엇을 덧대었는지 알 수 있다.

 

 

 

 

 

좋은 주전자다. 포트지만 미세한 드립이 가능하여 나의 커피 드립을 책임지는 물건인데

주인을 잘못 만나 공사판에 와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러나 전기가 들어오고 물을

끓여 봉지커피나 사발면을 먹을 수 있고 화개에서 사용하던 낡은 음료냉장고까지 출동했으니

그럭저럭한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이 냉장고와 커피포트 앞에 털썩 앉는 시간은 담배를 피우며 목을 축이는 시간이다.

공사를 시작하면서 담배가 늘었다. 힘드니 자꾸 밖으로 나오고 나오면 핀다.

워킹푸어working poor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봄날인가 싶은 몇 분의 시간이 흐르기 전에 오야지의 오더가 떨어졌다.

벽돌을 씻어라.

왜?

묻지 말고 씻어라.

예.

화개시절 적벽돌을 들고 이사를 했는데 이런 날 사용하는 모양이다.

저놈에 벽돌 옮길 때 워낙 손아귀가 아파서 그냥 포기하고 가자고 했는데

역시 오야지는 한치 앞을 내다보는 개털이다.

 

 

 

 

 

팔토시와 바람막이 두 종류를 번갈아 입는데 날이 좋아 대충 씻어 널었다.

때로 미세 먼지 심한 날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청명한 하늘이다. 연 중 가장 맑은 시절일 것이다.

먼 산의 나무 하나 질감까지 보이는 날은 간혹 카메라를 들고 싶을 때가 있다.

앞 서 살던 어떤 이의 노고로 만들어진 낡은 필요들은 나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장치들이다.

사람들은 필요에 장식을, 디자인을 더하는데 내 감각으로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최소한의

장치보다 아름다운 장식을 느끼지 못한다. 한갓진 시간이 이어지나 싶었는데 역시 다시

오야지가 나를 찾는다.

 

 

 

 

 

젠장. 미세먼지에서 벗어난 1시간이 지났나? 공구리를 반죽하자고 한다.

포대를 뜯고 붓자 가루가 일고 지난 며칠 동안의 냄새와는 다르다. 콘센트에 반죽기를

연결하고 돌린다. 제법 힘을 필요로 하는 장비다. 오야지는 없는 장비가 없다.

그것은 좋은 일은 아니다. 불려 다니게 될 것이라는 예정이다.

 

 

 

 

 

씻어서 그늘에 말려 둔 벽돌을 안으로 들랍시라는 명을 다시 받든다.

이른바 조적을 시작한다. 2단이니 간단하다. 그러나 각은 잡아야 하니 보는 것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부엌에서 작업실로 올라서는 턱이 제법 높아서 일종의 기다란 댓돌을 놓는 것이다.

앞으로는 부엌과 작업실1과 2는 하나의 공간으로 자유로운 동선을 이루게 될 것이기에

적절한 높이의 발판이 필요하다. 일단 구조를 만들어 두고 상판은 실리콘 지압매트 같은

것을 깔 생각이다. 그런 것이 있을 것 같다.

 

 

 

 

 

퇴근이다. 오늘은 반대가리만 하고 오후에는 일찍 퇴근하거나 놀 줄 알았는데

역시 그건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오야지는 모든 과정에 관한 계획을 가지고 있어

프로세스 사이에 휴식 같은 것은 설정하지 않는 타입이다.

방광마을 직전에 광의철쭉동산로 중간 즈음에 차를 세웠다. 해지기 전 해가 완전한

와불이 되었을 때 빛은 벼 사이로 가장 깊숙하게 스며든다.

 

 

 

 

 

방향으로 보자면 농부는 퇴근이 아닌 출근을 하는 모양이다.

며칠 사이에 들은 많이 익었다. 들판 색이 이렇게 변하는 주말이면 벌초하러 오는

차량들이 많고 주말임에도 인근 식당은 붐비곤 했다.

 

 

 

 

 

항상 느끼고 자주 했던 말이지만 구례의 모든 길과 마을, 들판, 심지어 나무 한 그루도

1년 중 결국 가장 빛나는 며칠이 있다. 360일 정도 못난이로 쳐 박혀 있다가 딱 5일 정도는

제 각각의 화양연화를 사방팔방으로 펼쳐낸다.

다시 하루가 가고 집으로 돌아가면 샤워하고 밥을 먹을 것이니 귀가란 그래서 좋은 것이다.

 

 

 

 

 

하루 건너 뛰어 9월 15일 금요일.

목요일 하루는 7일째이니 혹시 쉬는 날? 아니다. 9월 14일은 부산을 다녀왔다.

특별한 일이 있어 간 것이 아니라 그냥 2주일에 한 번 정도는 본가를 다녀와야겠다는

계획의 습관적이자 의식적 실행이다. 당일 왕복이니 쉬었다고 하기는 억울하다.

혼자 하지 말라고 했으나 무얼까?는 14일도 출근을 하여 혼자서 테이핑을 한 모양이다.

 

 

 

 

 

약간의 몸살 기운이 있었지만 먼지 날리는 상황은 아니라 일단은 나 역시 테이핑 작업이다.

내가 왔으니 무얼까?는 다른 종목으로 뛰어들었다. 테이핑 따위 가벼운 일을 하기에 본인은

너무 아까운 인재라는 자각 때문인지 작은 벽을 하나 허물고 보수 중이다. 현관 또는 마루와

부엌 사이를 구분하던 좁은 벽을 허물었다. 합판이었다. 구옥 수리는 많은 장면에서 허물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는 게임이다.

 

 

 

 

 

9월 16일 토요일. 하루 전과 같이 하루 종일 테이핑 작업이다.

생각보다 오래걸리고 제법 지루한 작업이다. 실내의 모든 나무를 테이핑 해야 한다.

모든 서까래와 모든 기둥과 들보. 벽과 만나는 모든 나무. 칠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일종의 ‘회칠’에 해당하는 핸디코트라는 놈을 모든 벽에 바를 것이다.

도배는 하지 않고 노출 벽면으로 가겠다는 소리다.

목요일 부산에서 구례로 돌아 올 때 영후도 같이 왔다. 아들이 보고 싶으니 며칠 구례로

가서 여행도 하고 맛집 탐험도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일단 노가다판에서

세상의 단맛을 먼저 보게 하는 것은 정말 나의 목적이 아니었다.

 

 

 

 

 

무얼까? 역시 테이핑 따위 지겨운 일은 하지 않고 우레탄폼과 실리콘을 들고

‘틈’을 찾아다니며 총을 쏘았다. 이 작업도 테이핑이 되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면서

계속 우리 부자의 작업 속도를 닦달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여행과 맛집 탐험을 시킬 수 없었다.

순전히 무얼까? 때문에 아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거의 이틀 동안의 지겨운 테이핑 작업이 끝났을 때 우리를 기다린 것은

달콤한 휴식이 아니라 샷시 문짝을 물청소 하라는 오야지의 오더였다. 그라인더 작업 때문에

떼어 둔 문을 이제는 부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계속 공사는 하는데 왜 지금?

그게 뭐 힘든 일도 아니고 지금도 하고 나중도 하고.

예.

제법 묵직한 이중 샷시 문짝이다. 물론 문짝 달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인격모독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토요일 밤. 9월 16일은 화엄음악제 공연이었고 나는 그때까지 여전히 70객실

준호텔의 바지 사장이었다. 화엄제음악제 스태프들과 출연자들의 메인숙소로 기능했기에

며칠 동안 거의 만실 상태였고 문제는 토요일 밤 늦게 공연뒷풀이를 캠프2 데크에서 해도

되겠냐는 요청이었다. 사장과 논의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는데 문제는

심야 설거지 아르바이트 인력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바지사장, 늦은 10시 즈음에 장장 설거지 전투를 하러 업장으로 출근하는 사태.

대략 11시부터 새벽 1시 30분까지 프로 설거질러로 심야근무에 들어갔다.

백 명 정도 집단적으로 술 마시면 정해진 시간에 모두 일어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요즘은 하루가 참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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