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道 / 다시 경주

마을이장 2017.06.22 22:16 조회 수 : 898

 

 

 

경주에 오면,

무엇인가 내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느낌을 받는다.

경주에 오면,

언젠가 이곳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소리를 꼭 한다.

경주에 오면,

씹는 맛이 일품인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이 아련하다.

 

 

 

 

 

 

 

경주에는 현존하는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가 있다.

4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연이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서로 오가며 본다.

3년 정도 나의 발길이 없었고 우발적으로 이번에는 내가 걸음을 했다.

우리는 왜 그 보잘 것 없는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경주는 손님이 오지 않는 한약방 약장 서랍을 남몰래 열어 보는 것 같은 도시다.

경주에서 나는 항상 같은 사람과 같은 기억을 떠 올린다.

거의 자동적으로 당연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우현 고유섭 선생을 생각하고

추령을 넘어 봉길 바다로 향하는 긴 장례행렬을 상상한다.

그리고 생각 길 끝에는 대부분 아버님이 서 계시다.

천마총 발굴 작업 당시 일간지 특파원으로 경주에 1~2년 계셨다.

듣기 좋아 특파원이지 부산에서 좌천당해서 경주로 가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말마다 아버지는 ‘보리빵’을 사가지고 오셨다. 당신이 구입하셨는지 경주의 지인들이

부산 가는 길이라 챙겨준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지금은 황남빵이나 경주빵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때는 보리빵이라 불렀다.

초등학교 시절 몇 번 경주로 갔다. 오래된 여관과 아침에 여관방으로 들여지던 밥상이 생각난다.

그리고 시청 뒤 어느 골목에 자리하고 있던 보리빵을 만들던 타일 붙인 작은 건물.

이번에 그 건물을 다시 찾았다.

 

 

 

 

 

 

 

생각해 보면 경주에서 1박 이상 머문 경우가 없었다.

경주는 다가서면 와락 가슴에 안기고 떠나는 순간 기억나지 않는 도시다.

경주는 경주에 머무는 동안만 존재하는 도시다.

 

내 가장 오랜 기억 속의 대릉원은 공사판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는 경주에 예산을 퍼부었다. 군사정권은 프로파간다 도구로 경주를 애용했다.

예산이 투입된 만큼 원래 경주 모습은 사라져갔다.

 

일요일에 길을 떠나 월요일에 돌아왔다.

화요일 하루 일 하고 다시 수요일에 길을 떠나 목요일에 돌아왔다.

화요일은 다음 날 출발 전에 인쇄물 하나를 끝내겠다고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지만

극심한 불면증으로 수요일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대략 경주를 가면 먹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좀 일찍 숙소로 들어갔다.

 

친구는 항상 호숫가의 같은 숙소를 예약해 주었고

나는 고층 방에서 바라보이는 낯선 호수 풍경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겨울이면 친구 회사의 기숙사에 머물면서 구내식당 밥을 먹고

글만 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하지만 단 한 번도 그리하지 못했다.

경주에 머물면 들고 간 숙제는 미루어두고 경주만 생각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여지없이 ‘꼭 그렇게 한 번 해 보겠다’는 혼자 다짐을 했다.

 

대릉원을 촬영하기도 처음이지만 원래 이번 여행에 딱히 사진을 찍을 생각은 없었다.

그놈에 만병통치약, “다음에 다시 가면” 새벽이나 해질 무렵에 찍어야 제대로 된 큰무덤

사진이 가능할 것 같다. 별 할 말도 없고 피곤하니 아래로 몇 장의 사진을 내려둔다.

날것의 경주를 찍고 싶은데 그러려면 며칠은 머물러야 가능할 것이다.

오늘은 화장한 경주만. 사진이 흑백인 이유는 오늘 찍은 원본이 별 볼 것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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