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그냥 하는 사람

마을이장 2017.05.21 22:46 조회 수 : 1213

 

 

 

5. 15

좀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루덴스를 접은 이후 가능해진 일이다. 많이 편하다.

어딘가에 묶이지 않았다는 조건은 거의 20개월 만에 나에게 해방감을 회복시켜주었다.

매일 주차하는 ‘나의 자리’에 갑자기 꽃이 보였다. 항상 그렇다. 갑자기.

눈앞의 현상을 근성으로 바라보거나 보지 않는 사람에게 이곳에서의 10년은 항상 그랬다.

뒷좌석에서 카메라를 끄집어내었다. 다행히 밧데리가 남아 있었다.

하나의 밥벌이 일을 진행 중이고 다른 일은 일단 돌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하루 한 번 정도는 한 시간이라도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한다.

그리 되니 그리한다. 특별한 결심이라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다.

여전히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요즘 어디 계세요?” 라는 말이다. 뭔가를 할 것이냐는

질문의 본뜻이 숨어 있는 말이다. 대체적으로 나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 이거나

‘뭔가 또 일을 벌일 것 같은 사람’으로 주변에 인식되어 있는 모양이다.

매번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인식의 기초를 제공한 사람은 나다.

정권 바뀌고 이름 오르내리고 청와대로 가는 사람들 중에 알았던 이들이 보인다.

얼핏 ‘그런 자리에 가고 싶어 할 사람이 아닌데’ 하는 사람이 보이지만,

“지가 하고 싶으니까 가는 것이겠지.” 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한다는 것.

직장이 그런 것 아닌가 싶다. 견딜 만하면 다니는 것이다.

지난 행위에 대한 변명, 지금 결정에 대한 ‘나를 제외한 이유’를 들이대는 것을 바라보면

구차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헛발질 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하루 한 번은 든다.

 

 

 

 

 

5. 20

오미동으로 들어갔다. 백주대낮에 오미동으로 들어간 것은 아주 오래간 만이다.

밤에 두어 번 용무가 있어 잠시 들어간 적은 있지만 야음을 틈탄 것이니 잠입 수준이었다.

할매들이 전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섭섭함을 넘어 분노성 원망 조짐까지 보인다는

다소 과장된 전언을 계속 무시했는데 결국은 외면할 수 없는 곳인데 도망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 토요일을 택해서 들어갔다. 토요일이면 운조루 앞 가판대에 엄니들이 모여 계실

것이니 한 번에 인사하는 효과가 있다.

늦은 아침이라 일단 커피부터 드링킹 해야겠기에 <산에사네> 마당에 주차하고 카페로

들어갔다. 내 알아서 커피 내리고 잠시 앉아서 온전히 한 잔의 커피를 비웠다.

<산에사네>가 생긴 것이 2012년이었나? 벌써 5년 되었다.

공간은 5년차의 향기가 난다. 자연스러운 시간이 내려앉은 공간은 편안하다.

그것은 주인장의 성향과 취향이 결정하는 일이다. 그냥 그리 되는 일이다.

무엇을 꾸미려고 한 공간은 ‘꾸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살다보면 스스로의 ‘문화’를 가진 또는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는 않은 듯하다.

창틀에 <전라도닷컴>이 보였다. 지난 1년 이상 경상도에 존재했던 관계로 <전라도닷컴>을

보지 못했다. 반가운 마음이라기 보다는 약간 엄숙한 마음으로 최근 호 두 권을 집어들고

커피를 마셨다. 징한 사람들이다. 내가 하는 일은 길어야 일이 년 호흡인데 이 징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할 모양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책의 뒷장을 열고 만드는 사람들에 관한 정보를 본다.

새로 들어 온 사람들 있나 하고 보는 것이다. 역시 인력 충원은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페이지의 헤드라인들을 일별한다. 눈으로 스며들어 가슴에 콕콕 박히는 말씀들이 종이에

새겨져 있었다.

 

“풀 매드끼 매야제 이녁 맘도 안 가꾸고 내비두문 배래”

“아무라도 보지런한 사람이 벌어묵어”

“촌사람은 만날 풀하고 싸와. 도시사람은 뭣하고 싸우까”

 

갈피만 넘기는데 커피를 다 마셨다. 책을 닫고 일어서서 운조루 앞 가판대로 향했다.

운암댁, 대구댁, 금강댁, 지정댁, 덕암댁들이 거의 같은 물건을 들고 나와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앵두와 녹두.

웃음 섞인 타박을 들어주고 엄니들을 살펴본다. 10년 전 이 마을에 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너나 할 것 없이 세월로 화장을 하셨다. 그건 나 또한 그러하니.

 

 

 

 

 

대평댁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겨울 시간 대부분을 서울에 계셨다는 소식은 물론 들었다. 대평댁이 오미동을 떠나

있었다는 것은 건강상의 문제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오미동을 떠나서 살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마을 동쪽 대평댁 집으로 갔다. 대문이 세워졌다. 어색하다. 마당에서 마루에 앉아 고구마를

드시고 계신 대평댁을 3초 정도 바라보았다.

똑똑.

화들짝.

멍.

울음 섞인 웃음.

호랭이 뭐라 뭐라…

오전부터 사이다와 두유와 질기디 질긴 쑥버무리가 등장했고 엄니의 말씀을 들었다.

화개를 그만두었다고 하니 잠시 째려보시더니,

 

“퇴끼띠들이 되는 일이 없단께.”

 

대평댁은 내가 망해서 밥줄이 끊어진 것으로 이해했고 당신이 지난겨울에 수술을 하면서

자식들 돈 몇 백만 원을 ‘해 먹은’ 일에 대해 분해하고 계셨다.

문자와 매체에서 돈벌이를 이야기하면 통상 귓등으로 듣는데 엄니들이 불쑥 그런 말씀을

하시면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다. 그들의 실천을 기반으로, 하루 이천 원 모아서

자식들에게 천만 원 전달한 이야기 앞에서는 대꾸가 불가능하다.

대평댁 집을 나와 서쪽으로 가서 청내댁의 상황을 보러 갔다.

중단된 월간 <노력>은 일단 부부의 메인 사진 촬영을 하면 원고는 모두 완료된다.

청내댁의 건강 상태를 살펴보고 ‘다음 주 평일에 찍읍시다이~’ 하고 마당을 나섰다.

오래된 숙제를 마무리하듯 엄니들과의 미팅을 형식적으로나마 수행했다.

오미동은 내가 그곳에 존재하건 하지 않건 내 삶에서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새겨진

아련한 좌표다.

 

 

 

 

 

오후에는 오래간만에 프리마켓 <콩장>이 열리는 읍내 서시천으로 갔다.

다음 場 전에는 <콩장>에 관한 간략한 글 하나 정도는 나갈 생각이기에 그림이 좀 필요했다.

2년이 지났나? 기획자 없이 진행자만 존재하는 콩장. 그것이 콩장의 미덕이다.

무엇인가를 하려는 액션이 없다는 사실. 그것이 2년을 이어 온 핵심이다.

욕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오래간만에 둘러 본 콩장의 셀러 대부분이 모르는 사람들이다.

셀러들의 눈빛에서 참여한 목적이 보인다. 물론 눈빛도 비율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부분의 상황과 일상 앞에 원칙과 기준을 세워 둔 편이다.

또는 그런 것이 우리들 각자를 ‘나’로 만드는 특성이기도 하다.

가급이면 무엇인가를 기획하지 않으려는 기획자인지 참여자인지 진행자인지 여하튼

<콩장>에 대해서 물어보려면 누구와 이야기해야 하나에서는 아무래도 일탈이나 호호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아야겠다. 멀리서 몇 컷의 사진을 찍고 물러나왔다.

약간 나른한 토요일. 몇 가지 숙제를 시도한, 그러니까 토요일 같은 날이었다.

미세먼지와 송홧가루가 이제 좀 잦아들었다. 다음 <콩장>은 6월 3일 토요일이다.

 

TV가 사망했다. 사흘째 켜지지 않으니 그리 판단한다. 조짐이 보였고 그리 되었다.

16년째 사용하던 중이었다. 대부분의 기계를 사망할 때까지 사용하는 편이다.

우리집 TV는 구형 아남 브라운관TV다. 겁나게 무겁다. 남자 두 명이 들어야 하는 무게다.

조짐이 보이기 전에 제법 오래된 물건이다 보니 화질이 당연히 PC모니터 보다 좋지 않아

교체에 관해 몇 번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집에서 TV를 몰아내는 방안을

더 고민했다. 고민이라기 보다는 유혹에 가까웠다. 집구석에서 TV를 몰아내는 것.

늦은 밤에 TV를 켜 둔 채 잠이 든 내가 한심하기 때문이다. 수면보다 비생산적인 일이다.

기능으로 보자면 없어도 무방한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일요일. 집에 있었다. 아주 늦게 일어났고 일요일처럼 되었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 쉬는 생활과 거리가 멀었다. 피곤하다. 누적된 피로다.

그러나 TV가 작동하지 않는 일요일은 다른 대체물을 찾게 된다. 컴퓨터로 일을 하기는 싫다.

페이스북 계정 아웃 이후 아이폰으로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유튜브다.

네트는 광대해!’서 어떻게 러시아 수학자 페렐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여하튼 점심 이후에는 계속 유튜브로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페렐만은 물론 스토리 자체가 매력적인 인물이다. 나는 엉뚱하게도(당연한가?) 페렐만을

보면 권정생 선생이 생각난다. 두 사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가난’ 이 아니다.

‘그 자체’ 라는 키워드다. 누군가 어떤 일을,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돈과 명예가 아닌

그 자체로 즐기는, 보다 정확하게는 ‘그냥 하는’ 사람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들이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허명 여부를 떠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호불호도 그런 것 같다.

그런 선호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본 다큐멘터리는 수數에 관한 것과 삼겹살과 짜장면에 대한 것이었다. 먹방이 아니라

식재료에 관한 다소 무거운 이야기들이었다.

삼겹살 다큐멘터리에서 스페인 이베리아 흑돼지의 행복한 사육 환경에서 전북 고창의

살처분 화면으로 넘어갈 때 마음이 좀 흔들렸다.

개인적으로는 굽는 방식보다 삶은 방식을 선호한다. 나는 모든 육고기를 삶을 때 한 번 끓여서

그 물을 버리고 다시 삶는다. 일종의 습관이다. 공짜로 먹어서 그런지 내 수육을 먹은 사람들은

맛있다는 주례사를 해 준다.

대한민국 돼지 사육 두수는 일천만. 등심과 안심과 다리는 쌓여 있다. 삼겹살만 죽어라 먹는다.

그래서 밀집사육이고 곡물 사료를 먹이고 엄청난 똥이 쏟아진다.

통마리 소비가 답이다. 그러면 삼백만 마리 정도 사육해도 충분히 소비를 충당한다.

 

 

 

갑자기 읍내에 사무실을 조만간 마련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미션과 결부해서

엉뚱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페렐만과 돼지 뒷다리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수육 집을 차리는 상상. 은둔하는 페렐만과 외면 당하는 돼지 뒷다리.

철지난 포스트모던스러운 촌스러운 상호. 페렐만의 뒷다리(Perelman's hind legs).

사용하는 돼지는? 이 대목이 핵심이다.

밀집 사육에서 죽기 직전에 탈출 시킨 돼지를 야산에서 1년 정도 뛰어 놀게 하고 도축한다.

태생적으로 동물복지 어쩌고 해서 태어난 아이들 말고 지옥에서 구해 낸 돼지들.

해지기 전에 읍내 마트로 가서 흑돼지 뒷다리살을 샀다. 4,500원.

두 사람이 제육볶음 스타일로 충분히 먹었다.

 

월인정원의 동의를 얻어 오늘은 개인적인 광고를 좀 해야겠다.

옮길 집을 구하고 있다. 마누라는 구례군 광의면 난동마을로 거의 특정하고 있다.

이번에는 사글세라면 10년 정도, 아니면 영원히 정착할 곳을 구하고자 한다.

무너지는 상황의 구옥도 관계없고 田이나 택지면 좋다. 畓은 사절이다. 이삼백 평이면 족하다.

나는 구례 안이라면 대략 콜이다.

그리고 대략 읍내에서 나의 사무실도 구해야 한다. 10평 이하면 좋다. 사무실은 구옥도 생각이 있다.

사무실은 사글세다. 월 지출 감당 불가면 수육집 할지도 모른다.

여하튼 집과 사무실, 두 개의 공간을 구한다. 구례 사시는 지리산닷컴 주민분들 정보 주시면 좋겠다.

메일로. 4dr@naver.com 아니면 전화로. 번호는… 여기서 알리긴 좀 그렇고.

주변에 저를 아시는 분들에게 문의하시거나 군청 공보계로 문의하시면 알려드릴 것이다.

사용하라는 공간들이 있지만 일단 정중히 사절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이다.

왜 옮기냐?

부유하는 삶을 종식하고 싶다.

 

 

 

 

 

아래 유튜브 하나. 시리즈 2편이다. 1, 2편 순서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23분 정도에 끔찍한 살처분 장면이 나온다.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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