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가짜 현실

마을이장 2017.04.30 16:15 조회 수 : 1251

 

언젠가부터 해외축구 중계를 잘 보지 않는다. 흥미를 잃었다.

아마도 지지하는 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쉬는 시간 포함해서

110분 정도 화면에 집중하는 일이 피곤하다. 단 한 번도 똑같은 게임은 없었지만

스포츠의 공통점은 지극히 단순한 원칙에 따른 동작을 반복하는 일이다.

응원하는 팀이 없는 사람이 아주 간혹 탄성이 나오는 어떤 ‘동작의 아름다움’을

기다리는 일은 지루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른바 A매치, ‘국대게임’은 전혀 보지 않는다.

구경하기에는 해외의 비싼 리그 게임보다 질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나는 국가를 응원하는

마음이 점점 옅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포털에서 해외축구 게임보다 감독들의 ‘경기 후 인터뷰’를 즐겨본다.

그것은 사람을 감상하는 즐거움이다. 출신국가와 개인 성격에 따라, 승패에 따라 그들의

감정은 그대로 드러나고 통상 ‘그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 편이다.

 

 

이 감독을 좋아한다. 콘테(Antonio Conte).

이 사람의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의 느낌을 좋아한다.

어느 월드컵에선가 이탈리아 팀 감독이었는데 그의 집중력과 선수들과의 일체감이

특별해 보였다. 프리미어리그로 취업한 그가 얼마 전 게임에서 패하고 진행된 인터뷰를

보다가 그의 간명한 몇 마디가 역시 마음에 들었다.

책임이란 참 무거운 것이다. 도망가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도망가면 뒤통수가 불편하고 나의 최종적 뒷모습이 추하다.

무엇보다, 언젠가는 결국 나의 뒷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더라.

군말 없이 인정하는 것이 좋다.

 

 

 

 

 

화개 공간을 떠나야 한다. 제법 심각한 노가다를 예정한다는 소리다.

내 건물이 아니니 떠나야 한다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화개 20개월, 2015년 8월부터 공간을 채워 나갈 때 내가 했던 마음의 소리는

‘나갈 때 많이 힘들겠다’는 것이었다.

최장 24개월을 예정했던 공간을 꾸미는데 들인 공을 생각하면 시작부터 불합리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사람은 제법 자주 미련하거나 불가항력이다.

예상되는 ‘까대기 양’과 계단을 생각해서 무얼까?는 이런 장치를 제작했다.

일종의 수동 윈치(winch)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저 노란 박스를 ‘컨테이너박스’ 라고 부른다.

순영이 형네에서 감 수확하는 컨테이너박스 300개를 빌려왔다.

종이박스로는 감당이 힘들고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고 무엇보다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임시로 쌓아두기에 종이박스는 괴롭다.

주변의 가용 가능한 가까운 인력들에게 불똥이 떨어졌다. 이삿짐센터를 부르면 간단하지만

돈은 항상 원수 아니면 은인이다. 부산에서 영후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호모루덴스 임직원들.

루덴스는 비교적 책 중심으로 간단하니 월요일과 화요일에 모든 포장을 끝내고 1차 이동했다.

지리산닷컴 주민들이 기증한 책들은 일단 내가 보관을 한다. 언젠가 용도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니.

포장한 것부터 저 엘리베이터 형 윈치에 4개씩 올려서 지상으로 보내는 작업이 반복되었다.

 

 

 

 

 

호모루덴스의 운송 담당 이사인 핸더기 트럭이 화요일부터 주차 상태로 대기했다.

박스가 올라오면 바로 적재하는 방식이었다. 한꺼번에 적재하는 것 보다 집중 노가다의

하중을 줄이는 방안이었다. 특혜를 주어서 주차비는 받지 않기로 했다.

윈치와 항시 적재 가능한 트럭. 이 방식이 이번 심한 이사를 비교적 수월하게 만든 무얼까?의 묘수였다.

그러나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집중 이사가 진행되었다.

대부분 부실한 체력의 남녀 인력들이 개미처럼 달려들어 이사를 진행했다.

컨테이너 박스 배달 온 순영이 형이 짐을 보고 그랬다.

 

“재밌겠네! 돈 주고도 사는 거이 고생인데.”

 

명언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산더미 앞에서 주눅이 들었는데 형의 그 말은

개인적으로 다시 내 마음을 다독였다. 즐겁게, 빠르게 진행하자.

 

 

 

 

 

실질적으로 힘든 이사를 모두 끝낸 목요일 밤.

혼자 화개로 내려왔다. 음식물과 식자재를 정리하고 다음 날 무얼까?와 내가 운반할

소량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체력적으로 방전이었지만 늦은 밤까지 조용하게

설거지를 진행했다. 2시간 40분 정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요청에 따른 촬영을 진행했다.

채워진 모습의 마지막은 비움이다. 엔딩 컷이 필요했을 것이다.

저 벽을 채웠던 수백 개의 병들이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그릇으로 가득했던 주방 선반이 마침내 비워지고 20개월 전에 그렸던 벽화가 나타났다.

호모루덴스 앞의 벚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그릇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을 그림을

왜 그리냐는 물음에 그리 말했다.

 

“이 벽이 비워지는 날 나무가 보일 것이다. 그러면 떠난다는 소리다.”

 

무얼까?가 설계하고 제작한 저 선반은 붙박이다.

아깝냐? 아깝다. 그러나 그리 예정된 일이었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선반과 그림은 사라질 것이다.

포털 메인에서 <윤식당> 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관한 기사 헤드라인 중

‘가짜 현실’ 이라는 표현을 보았다. 기사는 읽지 않았다. 엉뚱하게 지난 몇 년간 내가

어렴풋하게 잡으려고 했던, 내가 했던 일들과 지금도 많은 기획자들이 진행하고 있는

일들의 허상 또는 허망의 실체를 규정하는 적합한 표현이었다.

 

 

 

 

 

<맨땅에 펀드>도 그러하고 내 허망함의 실체는 ‘한 번 해보는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가짜 현실’이다. 기억과 기록 속에 존재하나 과연 그 일들은 필요한 것이었을까?

시골에서 진행 중인 많은 4차산업적이거나 6차산업적인 기획들은 사실 없어도 무방한 일들이다.

그것들은 대평댁의 삶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무엇 하나 제대로 변화시키지도 못한다.

어쩌면 묵묵히 가족과 집을 건사하고 조용히 사는 일이 가장 존귀한 일이다.

그래서 간혹 주변에서 백 가지 일을 하며 힘들게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에

열등감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무현이 유시민에게 했던 말이라던가.

 

"물을 가르며 뛰어 온 것 같다."

 

 

 

 

 

금요일 아침.

사용하지 않은 컨테이너박스 102개를 순영이 형네에 전해주고 돌아와서

윈치를 해체하고 무얼까?의 트럭에 마지막 짐을 실었다. 화개는 완전히 비워졌다.

마음이 매우 가벼웠다. 마침내 다 비웠다. 물론 어딘가에 덩어리로 쌓여 있지만

조만간 절반은 비워낼 것이다. 탈탈 털어내고 싶다. 궁극으로는 완전히 비워내고 싶다.

그러나 생명으로 존재하는 한 최소한의 소유는 필연적일 것이다.

도대체가 최소한에 대한 기준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윤리적 소비에 관심이 있지만 내가 느끼는 윤리가 타인에겐 비윤리일 수도 있으니.

이러나저러나 일단은 가볍다. 새로운 삶을 한 번 살아보자.

이번에는 완전히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결정을 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타인을 덜 괴롭히는 결정일 수도 있다.

5일간의 전투가 끝났다.

 

 

 

 

 

모처의 책상 하나를 점유해서 작업 컴퓨터를 세팅했다.

목표는 2주일, 여의치 않으면 최장 1개월 정도 이곳에서 밥벌이 진행 중인 일을

끝내고 나의 공간을 찾을 생각이다.

화개를 접을 무렵 몇몇 공간 제안들이 있었지만 완곡하거나 단호하게 거절했다.

무료 제공 공간에 볼모로 잡히는 결정을 반복하지 않을 생각이다.

당분간은 서너 평 정도의 공간에 책상 하나 두고 월간 <노력>을 진행하고 끝내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지난 20개월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다. 업종의 특성상.

 

영화 <그래비티>를 켜 두고 잠이 들었다.

우주 유영 중 흘러나온 대사.

 

“우주에서 뭐가 제일 좋아?”

“고요함요.”

 

다시 고백하건데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부유한다. 그런데 떠다니지 않으려면 뭔가 소유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잘못은 감독에게 있습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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