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 꽃과 폐업 인사

마을이장 2017.04.10 23:56 조회 수 : 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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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늦어도 4월 30일까지는 화개를 떠날 것이다.

월인정원 작업장 <달의 부엌>으로 시작하자면 대략 20개월, <호모루덴스>로 보자면 딱 1년이다.

12개월이건 20개월이건 나에겐 제법 느닷없는 시간들이었다.

이제 벚꽃을 보며, 이른바 ‘꽃 장사’를 끝내면 남은 큰일은 이사 자체다.

갑자기 지리산닷컴 이장이 카페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엉뚱하거나 실망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잘 꾸며 놓은 공간을 두고 떠나는 것이 아쉽거나 아까울 것 같다는 말씀들을 종종 듣는다.

간명하게 전혀 그렇지 않다. 시작부터 나는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환경과 조건의 무게 또는 부피를 줄이고 싶다고 항상 말을 했지만 더 살찌워 온 엉뚱한 시간이었다.

 

 

 

 

 

화개는 관광지다.

벚꽃 시즌 1주일 정도의 시간 동안 일 년 벌이의 절반을 챙겨야 하는 동네다.

대한민국 지자체 축제 열에 열하나는 금토일에 진행된다.

3월 31일이 금요일이었다. 통상 이때 벚꽃이 70% 진행되는 것이 지난 10년 동안의

관행이었으나 금년은 꽃이 늦었다. 금요일은 고요했다. 전쟁은 4월 1일 토요일부터 시작되었다.

 

 

 

 

 

벚꽃 장사에서 나의 역할은 대략 7~8명의 인원에 대한 두 끼니 밥과 혹시 새참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호모루덴스> 공간에 존재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명이기도 했다. 정신없고 불특정한 손님들 속에

있는 것을 즐길 가능성도 물론 제로다. 물론 나를 제외한 모든 스태프들도 서비스 정신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편이라 대략 적성과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삼일 만에, 저녁밥을 모두 챙기고 카메라를 들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난 해와 같이 역시 밤이다.

 

 

 

 

 

기대했던 금요일은 평일과 같아서 ‘역시 마이너스의 손들’ 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토요일은 정신없는 상황을 처음 맞이했고 일요일은 우리로서는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대목이 대목이니 만큼 선수를 더 투입했다. 귀촌 7개월 차 로제언니와 영후가 바에 있다.

좀 이른 인사지만 3류, 지량, 일탈은 지난 11개월 동안 사심 없이 이곳에서 일하고 놀았다.

네 사람이 커피기계를 잡을 수 있도록 한 것은 교대를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지난 11개월 동안 그런 생각을 간혹 했었다.

<호모루덴스>는 밤이 예쁜 카페다. 절반 정도의 테이블에 일상적으로 사람이 앉아 있는 풍경.

매출그래프를 보면 거친 호흡의 이미지와 같다. 유동 인구가 없는 매장의 전형이다.

예측불가이거나 예측무망이다. 지난 11개월 우리들의 결론은 그렇다.

 

 

 

 

 

지난 해 4월 2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때 우리는 지금의 <호모루덴스> 앞마당에서

소시지를 팔던 노점상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그때 소시지 팔아서 번 돈으로

이 건물을 구입했고 이제 이 건물을 던질 생각이다. 나는 수시로 이렇게 구라를 풀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이나 지리산닷컴의 오랜 주민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노점상 그때도 나는 밥을 했고 딸기 꼭지 수십 박스를 따고 밤이면 지상으로 올라왔었다.

하루가 저물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기분이 다를 뿐이다.

 

 

 

 

 

4월 3일 월요일 밤.

나는 역시 밤이 되어서야 슬금슬금 카메라를 들고 위로 올라왔다.

토, 일요일보다는 쉴 틈이 있었지만 쉽지는 않은 월요일이었다.

꽃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4~5일 늦다. 꽃장사가 조금 더 이어질 것이라는 예보다.

그러나 금년처럼 축제일과 만개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 얼마나 재료를 준비해야 하는지

우리는 가늠하기 힘들다. 소극적인 재료 준비를 이야기했다.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아니라 방어적 태도였다. 나는 무엇보다 이 바닥 ‘선수가 아닌’ 스태프들의

체력과 지구력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아래층에서 밥만 하는 나도 지쳤기 때문이다.

밥만 하는데 왜 지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작년에도 느꼈지만,

벚꽃 피는 화개 <호모루덴스>는 요사스럽다.

환기에 문제가 많은 붙박이창은 이런 경우 프레임이 된다.

 

 

 

 

 

지친 하루를 마감할 시간이 다가오고 얼핏,

같은 장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는 비가 왔었지.

 

 

 

 

 

즐기는 입장이라면 간혹 방문할 만한 카페다.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가급이면 피해야 할 카페다.

토요일과 일요일보다는 쉴 틈이 있었지만 스태프들은 평소보다 힘든 월요일이었다.

 

 

 

 

 

4월 4일. 화요일은 원래 정기휴일이지만 ‘꽃시즌’에는 문을 열기로 했다.

루덴스 앞은 비로소 만개라 할 만한 상태가 되었다. 벚꽃은 분홍이 사라지고 화이트가 되면

만개로 본다. 그리고 바로 꽃비로 내려선다. 반나절 정도는 이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드물었던 해까지 나왔다. 꽃은 만개했고 평일이다. 꽃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피아골 알바팀들과 영후는 이날 아침 부산으로 떠났다.

뭔 장을 보러 간다는데 별 설득력 없는 소리고 먹방 투어가 본심이지 싶었다.

 

 

 

 

 

방심했다가 정신없었던 하루 전 월요일을 뒤로 하고 화요일 아침은 일단 평화로웠다.

화개천 건너편 천막촌은 여전히 철수를 하지 않고 있었다.

꽃이 늦어지니 한 주 더 장사를 할 모양이다. 건너편에서 바라 보는 천막촌은 벚꽃 기간에도

제법 한산한 분위기였다. 대한민국 지자체 축제 어디를 가건 있는 ‘천막시절’이 한계를 다 한

것인지 일시적인 현상인지 이곳이 그런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선하건 악하건 형편이 좋은 사람들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주일에 한 번 흠뻑 물을 주는 화분은 겨울을 넘기고 이 봄에도 새롭다.

이 공간은 루덴스가 아닌 월인정원 작업장이다. 이 공간을 세팅하는데 훨씬 긴 시간이 걸렸다.

빈 공간만 있는 상태였으니 그러하다. 여러 사람의 노고가 투여된 공간이다.

 

 

 

 

 

괴산에서 들고 온 이 테이블 위에서 참 많은 촬영이 이루어졌다.

햇살과 낡은 테이블은 대략 적절한 사진을 만들어내었다.

 

 

 

 

 

어쩌면 이 공간은 하나의 생각에 대한 쇼케이스 같은 것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막상 나는 이 창가에 긴 시간 앉아 있었던 적이 없다.

 

 

 

 

 

이 창가는 일을 하는 공간이었지 쉬는 공간은 아니었다.

 

 

 

 

 

눈길과 손길의 차이다.

 

 

 

 

 

밤늦도록 천막동네 불은 밝았지만 술을 마시는 객의 실루엣은 희박했다.

음악이라기 보다는 미친 듯 한 박자의 소음과 각설이의 외마디 비명은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박수와 정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 5일 수요일. 흐렸다.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수요일이 가장 한갓질 것 같아서 두 여인을 모시고 화개로 왔다.

온 사방이 꽃인데 ‘뭐하러 귀찮게’ 나들이를 하냐고 말하던 여인은

화개 벚꽃이 역시 다르다며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꽃 아래 노인은 항상 그 자체로 그림이다. 나만 그런가.

 

 

 

 

 

커피 한 잔 마시고 한 바퀴 둘러보고 구례로 모셔다 드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약간 굵은 방울이었지만 자박자박 내리는 차분한 비였다.

수요일이었지만 꽃은 주말보다 더 화사했기에 역시 피아골 아래 외곡리 입구에서부터

차는 밀리기 시작했다. 지난 1년 이상 이 길을 오갔지만 섬진강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방에는 항상 카메라가 들어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습관이거나 무신경이었다. 가끔 카메라를 열었을 때 배터리가 방전된 경우가 많았다.

벚꽃 주간에는 집중적이지는 않아도 간혹 사진으로 기록할 염두였기에 항상 충전 확인을 했다.

19번국도 공사판 공터에 차를 세웠다.

 

 

 

 

 

19번국도를 세로로 보고 화개골을 가로로 보자면 세로가 가로보다 꽃이 이틀 정도 늦다.

강 건너편 861번지방도의 벚나무도 이제 세월을 제법 먹어서 터널을 이루고 멀리서보면

남의 떡처럼 커 보인다. 구례로 옮겨온 몇 년 동안은 나의 주도로였지만 최근에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곳 사람들처럼 ‘빠른 길’을 선호한다.

 

 

 

 

 

바라보는 풍경은 고요하나 내 등 뒤로는 줄지어 선 차량 행렬이다.

 

 

 

 

 

벚꽃은 비가 내릴 때 더 예쁘더라.

 

 

 

 

 

목요일. 지난 밤 비에 꽃잎은 추락했고 출근길 곳곳에 꽃잎이 낭자했다.

화개천 물살을 보며 지난 밤 산에 내린 비의 양을 가늠한다.

 

 

 

 

 

오늘이 절정일까?

만개와 꽃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그런 날.

그러나 그날은 어제였을 수도 있고 내일일수도 있고 지금일수도 있다.

 

 

 

 

 

평일임에도 역시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십리벚꽃길 위에 있다.

목요일 아침에 화개를 방문한 여행객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매일 복 받은 사람이지만 꽃을 도구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라

스스로의 복을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자의건 타의로 가장한 자의건 2년 동안 평생 볼 화개 벚꽃은 모두 본 것 같다.

 

 

 

 

 

6m 걸어가면 저 계단을 올라 좀 높은 전망대로 갈 수 있는데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월인정원> 작업장 주방 벽에 백 년 만에 붓을 잡고 그려 넣은 벚나무는 바로 이 나무가 모델이다.

 

 

 

 

 

생각했던 많은 기획들을 단 하나도 실행하지 않았다.

오픈식도 없었다.

 

 

 

 

 

인문학, 공연, 요리, 커피… 머릿속에는 시작하면 기관총처럼 자동 발사되는 생각들이

내장되어 있었지만 <호모루덴스>를 위한 단 하나의 기획도 진행하지 않았다.

가끔 지인들이 와서 그런 기획들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에겐 잔소리였다.

 

 

 

 

 

결국 메뉴와 관련한 현수막을 단 한 번도 내걸지 않았다.

두어 번 준비는 하였으나 이상하거나 당연하게도 나는 그런 것을 내걸고 싶지 않았다.

빨간 티셔츠를 구입하고,

“왜 내 티셔츠는 파란색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단색이고 싶었고 결국 그리 되었다. 그래서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같이 하는 후배들은 나를 닦달하지 않았다.

그것이 고마웠다.

 

 

 

 

 

이 글들은 며칠 동안 찍은 사진에 며칠 동안 끄적인 글편이다.

개업식 없었던 가게의 좀 이른 폐업사다.

이것도 하나의 버릇이겠으나 마무리는 해야겠기에 이러하다.

목요일 아침 <호모루덴스> 앞마당은 아름다웠다.

 

 

 

 

 

오후에는 모암마을로 약간 느닷없이 올라갔다.

지난해부터 부탁받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촬영 장소만 확인하고 촬영 시간을 가늠했다.

 

 

 

 

 

금요일. 이른 아침 부산으로 향했다. 어머니 퇴원이다.

굳이 먼 길을 갈 필요까지는 없지만 때로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이 합리적인 경우도 있다.

일곱 시 사십 분에 집에서 시동을 걸었는데 화개 부춘에서 악양 입구로 이어지는 길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절정을 지난 벚꽃은 역광의 아침빛과 함께 정면으로 쏟아졌고 강가의

대숲과 배밭은 군영의 깃발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차를 세울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 아침은 그냥 가슴에 새겨둘 수밖에 없는 아침이었다.

 

 

 

 

 

부산에서 다섯 시간 정도 머문 것 같다.

점심 먹고 본가에서 봉지 커피 한 잔 마시고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일어섰다.

부산의 교통 상황을 생각하면 퇴근 시간 전이 아니면 밤이 늦어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아침의 그 길에서 반대의 빛과 대면하면서 구례로 오르다가 차를 세웠다.

아침보다 아쉽지만 그래도 이 조차 외면하면 카메라가 썩을 것 같은 하루의 마지막 빛이었다.

 

 

 

 

 

벚은 져서 배밭으로 쏟아지고 있었고 그것은 일종의 교대의식처럼 보였다.

꽃들의 계주였다.

 

 

 

 

 

배나무는 그 수만큼의 농부가 서 있는 듯 정연하다.

배나무를 볼 때 마다 억제된 힘을 느낀다. 나무는 나무의 의지로 자랄 수 없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배밭은 촬영하지 않았다.

 

 

 

 

 

루덴스를 들릴 것인지, 저녁밥을 만들고 퇴근이 늦을 것이란 뜻이다.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간명하게 많이 피곤했다. 지난 한 달 동안 부산을 네 번 다녀왔다.

지난 일 년 동안 게으른 자도 쉬는 날이 없다보면 피곤하기 마련이다.

 

 

 

 

 

계속 우연히 살기는 힘들 것이다.

우선은 화개 이후의 공간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다.

혼자, 조용히, 조신하게… 이런 키워드를 준비 중이지만 운전 중에 이런저런 궁리를

세우고 무너뜨렸다. 눈앞에 닥친 일만 처리하자. 하루만 살자.

 

 

 

 

 

하루의 거의 마지막 빛이 꽃잎을 붙잡고 있었다.

 

 

 

 

 

원래 3일간의 꽃 전투에 집중하면 비상 상황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3일 분량의 식단표를 준비해서 월인정원 작업장이자 나의 주방 냉장고에 붙여두었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식수인원’을 하루 한 번은 체크했다. 스태프들과 이른바 ‘이사님들’

이라는 준고정 인원들이 밥을 먹기 때문이다. 적을 때는 세 명, 완전 많을 때는 열 명.

그래서 쌀을 담그기 전에 그날의 食口 수는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함께 먹은 밥상의 횟수가 관계를 정의한다. 은인이건 웬수건.

어찌되었건 3일 동안을 예정한 나의 플랜은 꽃에게 개무시 당하고 8일째 밤에도

저녁밥을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9일 동안 대략 108그릇의 밥을 장만했다. 백팔번뇌다.

우리들 대화의 팔 할은 밥 먹으며 먹는 이야기하는 것이다.

 

 

 

 

 

4월 9일 일요일. 꽃 전쟁의 마지막 날이다.

윗마을 관아다원에서 부탁한 사진은 자신들의 차밭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대략 모암 마을 가장 위에 해당하는 지점이었다. 화개천 건너편 도로에서 늘어진

벚꽃을 좌우로 걸고 물 건너 반달 모양의 산허리에 무질서하게 펼쳐진 녹차밭을 찍는 일이다.

역광을 선호하니 아침 9시를 염두에 두었다.

꽃의 마지막 날이라 아침부터 화개골로 차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사진도 사진인데 잘못하다간 <호모루덴스>로 돌아가는데 두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일상적으로 차로 10분 거리다. 그래서 운전하는 마음이 좀 급했다.

 

 

 

 

 

꽃이 남아 있을 때 미션을 완료해야겠기에 서둘렀는데 빛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일단 1차 시도를 완료하고 모암마을로 내려오다가 차를 멈추었다.

2011년 4월, 이 길을 걸어 내려오던 그 특별했던 아침이 생각났다.

청명하기는 그날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제법 탁했지만 화개천 건너편의 복사꽃은

더 장하게 피어 있었다.

 

 

 

 

 

돌아와서 2011년 사진과 비교해 보니 저 나무는 훨씬 많이 자랐다.

매년 같은 나무와 눈 맞추는 일은 애틋한 감정이다.

살아 있구나.

나도 그러하다.

내년에도 보자.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꽃 핀 다음의 이 첫 연두색을 가장 좋아한다.

칭찬은 고래를 건방지게 만든다는 생각을 가진 회의론자이거나 운명론자인 나를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만드는 첫 연두.

 

 

 

 

 

쌍계사를 지나면 훨씬 더 많은 종류의 꽃과 색을 만날 수 있는데

하루 수만 명의 방문객은 쌍계사 아래에서 차와 발길을 돌린다.

 

 

 

 

 

이 즈음이면 주변은 정말 시간을 다투어 변신을 한다.

그것은 지극히 직선적이자 일관된 운동이다.

봄이면 나는 항상 미당의 몇 구절을 생각한다.

 

아니면 머언 산(山)들과 나란히 마주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분면(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의 어둠 속에

이것들이 잦아들어 돌아오는 아스라한 침잠(沈潛)이나 지킬 것인가

 

 

 

 

 

모암마을 앞에서 전경을 찍었다.

꼭 찍고 싶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찍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 이 순간 닥쳐 온 큰 파도 앞에 선 어떤 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왕 올라 온 김에 평소 염두에 두었던 포인트로 걸어서 이동했다.

 

 

 

 

 

도로에서 화개천으로 걸쳐 있는 저 벚나무. 맑은 날 저 나무는 유난히 빛이 났다.

그러나 오늘은 원하는 빛 조건이 아니다. 그러나 내일이 없기에 담아 두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산이 강에 닿는 지점에 해가 위치하고 저 나무만

유독 빛이 날 것이나 그 시간 동안 기다릴 수는 없다. 차가 밀리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몸을 낮게 하고 셔터를 눌렀지만 평범한 포커스다. 두리번거렸다.

 

 

 

 

 

수로다.

발밑을 확인하고, 물은 흐르지 않지만 제법 축축한 좁은 수로로 내려섰다.

며칠 전에 운동화를 씻었는데…

 

 

 

 

 

다층적이다. 많은 표정이 나온다. 좋아하는 그림이다.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살릴 것인지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이런 경우 이상하게 마음이 바빠진다.

 

 

 

 

 

차들이 계속 지나갔기에 이동하는 타깃을 향해 총을 쏘듯 셔터를 눌렀다.

이 수로에서 5분 정도의 시간 동안 백 컷 이상을 눌러댄 것 같다.

 

 

 

 

 

오래간만에 조바심 내며 찍었다.

조바심 날 때 사진은 잘 나온다.

 

 

 

 

 

금년 벚꽃 사진의 마지막 컷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음 날이면 꽃은 사라질 것이고 나는 다른 꽃을 찍기 위해 이동할 성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순간 저 나무가 세상에서 유일한 벚나무다.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진다.

숨이 턱 막힌다.

무엇인가 콧구멍 속으로 들어왔다.

날파린가?

코를 풀었다. 나오지 않는다.

손가락을 넣었다.

 

 

 

 

 

오십오 년 만에 처음으로 콧구멍 속으로 벚꽃 잎이 날아들었다.

젠장.

 

 

 

 

 

2017년 4월 9일 오후 5시 52분.

폐업하기 전에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었던 짓을 입구에 실행했다.

Sold out!

 

<호모루덴스> 4월 23일이 마지막 영업일입니다.

개업식이 없었던 관계로 폐업식도 없습니다.

일상인 듯 무심하게 그냥 그렇게 오시면 되겠습니다.

일상인 듯 무심하게 그냥 그렇게 있겠습니다.

폐업과 동시에 지리산닷컴의 ‘호모루덴스’ 메뉴도 삭제할 것입니다.

조금 이른 인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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