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응원

마을이장 2017.03.17 00:09 조회 수 :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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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바닥을 쓸고 닦는다.

겨우내 바닥을 쓸고 나면 꽃잎을 버려야했다.

설거지통에 물을 받고 물을 주고 난 후에도 꽃잎은 개수통에 쌓였다.

겨울이 오고 <호모루덴스> 마당의 화분은 <월인정원> 작업장으로 내려왔다.

단지 수동적으로 받았을 뿐이고 화분을 살릴 생각은 없었다.

나는 화분을 수집한 적도, 수집할 생각도, 화초를 잘 키우는 사람도 아니다.

나에게 화분이란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일만큼 불필요하거나 부질없거나 귀찮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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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으니 물을 주었을 뿐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실내는 따뜻했고 창가의 햇살은 거의 하루 종일 가능했기에 나의 의지 또는 무의식과 무관하게

화분은 유지되었고 꽃은 계속 피어 있었다. 피어 있는 꽃은 ‘살아 있음’을 나에게 계속 표현했다.

그래서 화분에 물주기는 겨울 동안 나의 습관이 되었다.

나는 지극히 반복적 일상을 선호하는 사람이라 3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화분은 나의 일상에서

이제는 ‘그렇게 귀찮은 물건은 아닌’ 것이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몇 개월 동안 계속 꽃이 필 수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얼마 전에는 줄어 든 흙을 보충하기 위해 ‘3류’에게 화분용 흙을 주문할 것을 부탁했다.

원래 이 창에 화분은 없었지만 이제 곧 마당으로 올라가면 난자리가 확연할 것 같다.

원래 난자리가 든자리 보다 커 보인다 했던가.

채워 나갈 욕구보다 비워진 다음의 허전함을 생각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쩌면 처음부터 채우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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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둘째, 셋째 주에 구례·부산을 오갔다. 산수(傘壽), 금년이 어머님 팔순이다.

워낙 고령화 사회다. 고령화란 과거와의 비교일 것이고 미래는 지금을 기준으로 할 것이다.

2014년 가을에 치매의심 판정을 받았고 이른바 ‘지연 시킬 수 있는 약’을 복용해 오셨다.

얼핏 보면 치매적 증상의 진행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간혹 보는 나로서는

판단하기 힘든 영역이다. 두어 차례 정도의 입원을 반복하면서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기력’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현대’와 ‘의학’은 그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시도와 노력을 한다. 지난 구정, 오래간만에 뵌 어머니의 기력은 확연히

떨어져 있었다. 거동의 불편함은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여든 해 동안 자식들과의 여행이 거의 전무했던 이력이라 원래는 모시고 짧은 여행을

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지만 당신 스스로 ‘힘들다’는 판단을 하셨다.

그래서 가능한 것은 최소 단위의 가족이 모여서 ‘밥을 먹는’ 일이었다.

그날에 합당한 견적의 식당에서 먼 곳에 사는 딸까지 귀국해서 한 끼 밥을 먹는다.

케이크는 작은며느리가 구웠다. 밥. 식구. 이 단위가 최종적인 ‘우리편’ 범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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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날을 기약하기 힘든 누나를 한 번 더 볼 겸 다시 부산으로 갔다.

팔순은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칠십구 다음이 팔십이다. 사람은 마디에 의미를 부여한다.

밖에서 먹자는 나의 제안은 가볍게 거부되었고 준비된 추어탕과 갈치구이로 저녁을 먹었다.

엄마, 형, 누나 그리고 나. 굉장히 익숙한 조합이지만 오래된 기억이다.

누이가 말을 했다.

 

“이렇게 우리만 밥 먹는 게 얼마만이지?”

 

언제였을까? 할머니가 별세하시고 난 후, 아버지가 늦게 들어 온 날의 저녁밥상을

이 네 사람이 함께 한 것은 내가 고등학생이고 형과 누나가 대학생 시절이었을 것이다.

누나가 먼저 결혼을 했고 형이 결혼을 하고. 그런 시절이면 가족은 분화된다.

아이가 생기고 모든 관심은 손자 손녀 또는 당면한 ‘우리의 삶’으로 집중되고 갈등조차 분화된다.

그래서 이런 밥상을 맞이한 마지막이 언제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당연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어쩌면 그런 날은 기억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 집에서 먹기 잘했다. 그리고 약간 복잡한 기분이기도 했다.

팔순의 그녀는 배추 시래기와 방앗잎을 많이 넣은 경상도식 추어탕의 달인이었지만

이제는 과정이 복잡한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 추어탕은 사서 온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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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예정대로 아버님 산소로 갔다.

내가 운전하는 차에 삼남매만 이동을 하는 것은 역시 처음이다.

어쩌면 우리는 해보지 않은 일이 참 많구나.

차 안의 대부분 시간은 엄마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치매, 요양원, 입원, 기저귀, 자존감, 자식, 돈, 그날은 언제…

딱히 답 없는 이야기를, 답 없다는 현실을 아는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확인한다.

예정된 수순. 겪어야 할 일들을 겪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견 없는 결론이었다.

확인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의식을 치룬 것인지도 모른다.

장남은 장남이었고 딸은 딸이었고 막내는 막내였다.

약간의 웃음과

기억과

차창 밖으로의 먼 응시와

언젠가 우리의 일이 될 것이라는 예정.

언젠가부터 산소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같은 말을 한다. 속으로.

 

“어머니는 잘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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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지 않은 3월은 그래서 나에게 제법 많은 상념과 포기와 차분한 의지를 안겨주었다.

때로 관성의 법칙에 삶을 맡기는 것도 한 방편이다.

많은 것들이 늦어졌지만 걸어 갈 것이다.

걷다보면 길 끝에 당도할 것이고 길은 다시 갈라질 것이고

우리는 다시 선택과 결정을 할 것이다.

같이 늙어가는 지리산닷컴 주민들.

이장의 게으름을 이해해 주시기를.

한 번은 날개를 펼 것이다.

바다에서 아이들이 돌아오는 날.

우리의 삶에 응원을 보내자.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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