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道 /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

마을이장 2016.10.09 14:48 조회 수 : 8658

 

 

* 별로 지리산닷컴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용 글로 인해 쓸데없이 길어질 수 있는 글이다.

  그리고 이 글을 정주행 하고 나면 여러분들의 지갑을 열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미리 해둔다.

 

 

언젠가부터 세상과 싸우겠다는 마음을 지우고 있다.

지리산닷컴이 비실비실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일 것이다.

또는 싸우겠다는 마음을 지워가면서 지리산닷컴은 비실비실해졌다.

맨땅에 펀드건 연곡분교 살리기건 농부들을 살리는 프로젝트이건 마을 일에 참견하는 일이건,

그 모든 행위의 본질은 나의 생각과 다른 세상에 대한 싸움이었다.

싸우고자 하는 분기탱천이 내 안을 좌우할 때에는 해야 할 말이 많았다.

싸움을 거두었을 때, 해야 할 말은 줄거나 사라졌다. 결국 그간 내 말의 목적은 싸움이었다.

싸움을 접는 경우의 수는 세 가지다.

싸움에 이겼을 경우, 싸움에서 완전히 패배한 경우, 싸움에 지친 경우.

지구력 탓인지 나는 세 번째 이유로 스스로 싸움을 접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페이소스와 냉소가 짙어지고 각축한다.

시각은 시야를 결정하고 마음은 닫고 눈은 좁혀진다.

그래서 뉴스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곁눈으로 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세상을 상대해서 가파른 싸움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금요일(10. 7) 저녁.

읍내 축협하나로마트 주차장을 가로 지르는데 “이장니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또 지역유지를 찾나, 하는 약간 거만한 자세로 고개를 돌리는데 차에서 두 박 씨가 내렸다.

페이스북으로만 한 달여 소식을 접하다가 갑자기 구례읍에 실물들이 등장하니 약간 겁이 났다.

나는 그들과 약속하고 계약금까지 받은 일을 몇 개월 째 방치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이 자들이 나를 잡으러 왔구나’ 하는 약간의 당혹감과 위기감을 느꼈다.

더구나 그들은 기자와 변호사 아닌가.

박상규 기자(해발 170cm 이하)와 박준영 변호사(해발 180cm 이하).

박 기자를 통해서 박 변호사를 알았다. 박 기자는 <오마이뉴스>라는 매체에서 밥을 먹다가

사표 내고 구례 토지면으로 내려와서 사는 척 하고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본인들의 직업과 어울리는 외모가 아니라는 점과 각자의 분야에서

마이너리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이외에는 없다.

위 사진은 두 사람이 연출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연기력과 연출력을 동원한 결과다.

(이 사진과 이하 다른 사진들도 박상규와 박준영의 페이스북에서 들고 왔는데

각 잡고 찍은 사진은 ‘이히히훈’ 이라는 분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이 두 모델을 대상으로 이 정도 아우라를 연출해 낸 것은 포토그래퍼의 정신승리다.)

 

여하튼…

마트 주차장에서 선 자세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오후에 전주에서 <삼례 3인조 사건> 재심 공판이 있었다. 박 변호사는 다음 날

경남 김해에서 집안 경사가 있어 이 날 밤 거처를 구례 박 기자와 함께 보내고 다음 날

김해로 가는 것으로 일정을 정한 모양이다.

박 기자가 동아식당으로 가오리찜을 찾으러 간 사이에 박 변호사가 선 자리에서 말을 쏟아 내었다.

 

“오늘 박 기자 화내는 것 처음 봤습니다. 원래 화 안 내는데… 막걸리 한 잔 해야겠습니다.”

 

결심을 앞 둔 공판에서 같은 편에 선 사람들이 ‘돈 문제’를 걸고 나와 공판과 무관하게

박변에게 공격을 퍼 부은 모양이다. 검사와 판사 앞에서. 보다보다 박 기자가 격분한 모양이다.

대략의 맥락을 알고 있는 나는 주섬주섬 몇 마디 하나마나 한 소리를 챙겼다.

<삼례 3인조 사건> 당시 허위자백을 받아 내는데 참여했던 막내 형사가 자살한 사건이

불과 추석 무렵이었다.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가해자건 피해자건

모두 가족이 있다. 스스로 삶을 접은 이는 중학생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그런 장면들이 우리 삶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박 변과 박 기자가 그 장면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기자라고 명함에 새긴 몇몇은 박변에게 전화를 걸어 와서

문상을 갈 것인지를 묻더란다. 기자건 농부건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포유류는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갈까.

따뜻한 말 건내는데 인색한 나는 그때도 ‘중심 잘 잡으라는’ 문자를 몇 자 찍다가

보내지 않았다. 그런 소리 또는 격려에도 지칠 상황이라는 짐작으로.

일단 선 자리에서 헤어졌다. 나와 월인정원 역시 늦은 저녁이었던 탓에 마트에서 김밥과 순대를

사서 집으로 와서 끼니를 때웠다. 마른 김밥을 우겨 넣으면서 아무래도 두 박의 숙소로

가서 이야기를 좀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사람이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흔하지 않기에 일 관련해서 몇 가기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비가 시작되는 늦은 밤에 시동을 걸고 다시 피아골로 올라갔다.

 

 

박 기자의 페이스북 글 두 편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걸쳐 같은 ‘사건’에 관한 글을 올리고 있다.

 

<양보와 스트레스>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활동한 지 2년이 되어 간다. 주변에서 종종 묻는다.

“어떻게 서로 다투거나 싸우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까?”

우리라고 왜 다투거나 싸우지 않겠는가. 가끔 불화가 있더라도 화해, 배려, 존중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다만, 우리에겐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 하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에도,

상대방이 더 이득을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로 챙겨줬다는 거다.

"내가 법정에서 싸우는 변호사니까, 펀딩 금액 내가 더 가질게요.” 라든가

“글은 내가 쓰니까, 내가 좀 더 가지면 안 될까요?” 식의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우린 늘 “고생하시는데, 좀 더 가지세요”라며 서로를 배려했다.

돈 문제에서 욕심을 버렸기에, 항상 서로의 공을 높이 평가하면서 왔기에,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배려와 양보심 많은 박 변호사 탓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

많은 고민 끝에, 그때의 일을 조금 풀어보려 한다.

 

지난 2월의 일이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을 다룬 우리의 스토리펀딩 기획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 모금액이 내 통장에 입금된 즈음이었다.

액면상 전체 모금액은 5760여만 원이다. 이 돈을 다 지급받는 게 아니다. 세금, 수수료 등

약 18% 정도를 제외한 금액이 입금된다. 당시 펀딩 리워드로 책을 내걸었다.

책값과 배송비도 빼야 한다. 모든 걸 제외하니 약 3000여만 원이 남았다.

이 3000만 원을 8명에게 배분해야 했다. 우선 억울하게 누명쓴 3인조 세 분, 사건 피해자,

가족을 잃은 유가족에겐 400만원씩 입금했다. 박준영 변호사, 신윤경 변호사,

그리고 나는 이들보다 적은 350만원을 받았다.

3개월 기사 연재해서 350만원. 그동안의 취재비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적자였다.

솔직히, 이때 기분이 많이 다운됐다. 스트레스도 컸다. 무엇보다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야 했다.

이런 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 변호사는 이 와중에도 3인조와 피해자 등에게

돈을 더 주자고 내게 제안을 했다. 그래서 당시 박 변호사에게 짜증을 조금 냈다.

이런 문자도 보냈다.

"변호사님, 앞으로 이렇게 활동하기 어렵습니다."

자기도 통장 잔고 바닥인데, 그 와중에도 자기 욕심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박 변호사의 마음을 알기에 이해하면서 당시의 어려움을 극복했다.

 

삼례 3인조 사건 재심 공판이 열린 어제. 재판이 끝난 뒤 나와 박 변호사를 너무 잘 아는

어떤 사람이 우리의 이 펀딩을 문제 삼았다. “그 돈 다 어디에 썼느냐”는 식으로 이야길 했다.

우리 사정을 잘 알 만한 분이 그렇게 이야길 해서 충격을 받았다.

참아야 했는데, 욱하는 마음에 나도 한마디 했다.

“그 돈 3인조랑 피해자 분들에게 나눠준 거 아시잖아요?!”

오해를 시작한 마음 앞에선 팩트도 무력했다. 그가 내게 따졌다.

“고작 350만원?(실제로는 400이다) 그게 돈입니까?"

마음이 아팠다. 마치 우리가 더 큰 돈을 챙기고, 약자들에겐 적은 금액을 준 것처럼

말을 하다니. 산수 정도의 계산만 하면 뻔히 답이 나오는데….

우리 활동을 잘 아는 사람이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해 마음이 아프고, 참담했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룬 기획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 기획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솔직히(?) 섭섭했지만, 박 변호사의 제안으로 살인누명을 쓴 최성필씨에게

가장 많은 돈을 줬다.

우리, 그렇게 살았다. 이거 알 만한 사람이, 돈으로 공격을 하다니.

충격과 스트레스가 커서 어제부터 오늘까지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 정말 참담하다.

 

 

<참담함>

 

나와 박준영 변호사를 나름 잘 아는 분의 공격은 참담한 감정을 불러왔다.

돈 문제를 지적해서, 특히 객관적 사실-수치와도 맞지 않는 금액으로 문제를 제기해서

더욱 그렇다. 그 분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문서 세 장으로 작성해 지난 7일

‘삼례 3인조 사건’ 재심 공판 때 배포를 했다. 가장 안타깝고 참담한 내용은 이것이다.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는) 이 사건 재심을 청구한 이후에만 각 재심사건의

소송비와 취재비로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약 1억7천만 원을 모금하였는데, 그 비용을

순수 소송비용으로만 사용하였다면 사무실 임대료를 내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을 리 없고…”

 

가난한 사람이 임대료를 내지 못한 사정을 이런 식으로 공격을 하다니.

게다가 1억7000만 원? 도대체 이 금액이 어떻게 도출됐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간단한 산수 정도만 하면 나오는 계산이니, 지금부터 내가 계산을 하겠다.

박 변호사와 나는 약 2년 동안 일명 ‘재심 시리즈 3부작’ 기획을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진행했다. 당시 펀딩 내역은 이렇다.

 

<그녀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 : 21,458,200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 : 49,207,570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 : 57,603,947

총합은 128,269,717원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무기수 김신혜씨 사연을 다룬 <그녀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 기획을 계약한 주체는

나와 박준영 변호사가 아니다. <오마이뉴스>가 계약을 했다. 기획을 시작할 시점에 나는

백수가 아닌 <오마이뉴스> 소속 기자였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와 <다음>이 계약을 했고,

돈 지급과 수령은 두 회사가 알아서 했다.

두 회사가 계약을 했다는 사실은 해당 기획에 들어가 보시면 확인이 가능하다.

더불어 <오마이뉴스> 측에도 연락을 해보면 사실 확인이 가능하다. 회사의 일을 내가

언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니, <오마이뉴스> 측에 직접 해당 사실을 알아보시는 게 좋을 듯하다.

어쨌든, 위 세 기획 펀딩의 액면상 금액을 합치면 128,269,717원이다.

이 금액에서 수수료, 세금 등 18%와 리워드 제공 비용 등을 제외하면 펀딩의 규모는

크게 작아진다. 또 우린 그 돈을 피해자, 유가족, 사건 담당자 등과 똑같이 배분했다.

어쨌든 액면상 1억2800여만 원과, 1억7000만 원은 차이가 크다.

어떻게 1억7000만 원이라는 돈을 계산한 걸까?

아마도 ‘재심 시리즈 3부작’을 끝낸 이후에 진행한 두 기획 <엄마는 오지 않는다>와

<나는 살인범이 아닙니다>를 포함시킨 듯하다. 하나씩 설명하겠다.

 

중곡동 부녀자 강간살인사건을 다룬 <엄마는 오지 않는다>는 펀딩으로 21,745,000원이 모였다.

예상보다 적은 규모였다. 기획에 들어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변호인단만 6명이다.

여기에 필자인 나와 피해자 가족까지 합치면 총 8명입니다.

8명이서 나누기에는 다소 적은 규모의 돈이었다. 박준영 변호사 등 변호인단의 배려와 결정으로,

모든 변호인은 해당 펀딩 금액을 수령하지 않기로 했다. 글을 쓴 나와 피해자 가족이

약 500만원씩 받았다. 변호인단의 배려였다. 세금, 수수료, 리워드 배송 책값 등을 제외하면

그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즉, 이 기획에서 박준영 변호사를 비롯해 변호인단은 돈을 한푼도 받지 않았다.

다른 변호인들에게 확인해 보시면 좋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살인범이 아닙니다>는 여전히 진행중인 기획이다.

당연히 아직 돈을 수령도 하지 않았다. 끝나지도 않은 기획, 수령도 하지 않은 돈에 대해서

말하는 건 많이 성급해 보인다.

특히 이 기획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나는 살인범이 아닙니다> 기획은,

작년 봄부터 여름까지 진행한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기획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를

잇는 후속 보도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작년에 이 사건의 피해자인 최성필(가명)씨에게

가장 많은 돈을 줬다.

내게 미안했는지, 박 변호사는 최성필씨와 기획을 함께 진행하는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에게 사전에 이야기를 했다.

“펀딩으로 얼마가 모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엔 많이 드리기 어려울 거 같아요.

박 기자님이 어렵게 고생하시는데, 그쪽을 좀 챙겨주면 안 될까요?”

공동 변호인단 신윤경 변호사에게도 박 변호사가 미리 이야기를 했다.

“이번 기획에서는 우리 변호인단은 돈을 받지 맙시다.”

이렇게 박 변호사는 활동비 외에 돈을 받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기획을 시작했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마치 아직 수령도 하지 않은 돈을 박 변호사가 받은 것처럼 말하다니.

게다가 “사무실 임대료를 못 낼 정도에 이르렀을 리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다니….

슬프고 안타깝다.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하는 김에 하나 더 풀어본다.

작년 12월, 살인 누명을 쓴 3인조 중 한 분에게 연락이 왔다.

가족이 아파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 퇴원비가 없어서 병원에 붙잡혀 있다고 말했다.

이 분은 맨 처음 나와 박준영 변호사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나와 박 변호사를 공격하는 그분에게 돈 부탁을 했다. 돈 이야기를 꺼내는 3인조,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슬펐겠는가.

하지만 그 분은 3인조에게 병원비를 주지 않았다. 우리에게 이 일을 알리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넘겼다. 살인누명을 쓰고 이제는 병원비도 없어 타인에게 손을 벌리는 그 3인조의 병원비,

박준영 변호사가 빌려줬다. 나도 병원까지 찾아가 현금서비스 받아 10만원을 주고 왔다.

최근엔 또 다른 3인조 중 한 명의 생활이 많이 어려워졌다. 당연한 일이다.

살인누명을 썼고, 지적장애가 있고, 많이 배우지 못했는데,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부자로

살겠는가. 박 변호사가 또 이분에게 300만원을 줬다.

300만원을 주고 나니, 박 변호사의 통장 잔고에는 얼마가 남았을까.

슬프다. 10만원도 남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 어떻게 터무니 없는 금액 1억7000만원을 거론하며

사무실 임대료를 못 낼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할까.

 

우리를 너무 잘 아는 분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서 슬프다.

사실과 다른 내용의 문서를 배포하기 전, 잘못된 내용으로 우리를 비난하기 전에,

나에게 사실 확인이라도 거쳤으면 어땠을까를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우리 관계가 그 정도 사실 확인을 위한 대화는 가능하다고 봤다.

이 글을 올리기 전 "도대체 어떻게 1억7000만이 도출됐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없다.

여러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 여기까지가 박 기자의 토요일과 일요일 글이다.

 

 

 

 

최근 다음 뉴스펀딩의 이 프로젝트로 박준영 변호사가 많이 '떴다'.

1억 목표의 펀딩이 10월 9일 오후 5시 30분 현재 426,357,638원 모금된 상태다.

400% 이상 달성이다. 최 단기간 1억 원을 돌파했을 때 언론사들이 주목하기 시작했고

박 변호사는 여기저기 매체 인터뷰에 응했다.

그래서 이 두 사람, 박변과 박 기자에 관한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리산닷컴에서의 오늘 글은 이 두 박씨를 모르시는 분들을 전제로 하기에

아래 글과 영상을 일독하시기를 권한다. 그래야 오늘 나의 글에 관한 이해가 정확해진다.

물론 이런 방식의 글 읽기가 피곤하다는 점은 충분히 알고 있다.

탁월한 인터뷰어 이진순 선생의 글로 박 변호사를 이해할 수 있다.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그러나 소금 같은 변호사 박준영」

 

박준영 변호사가 얼마나 무게감 없는지 잘 알 수 있는 동영상은 아래에 있다.

34분 36초 정도 지점부터 보시면 된다.

 

 

금요일 저녁, 마트 마당에서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에 월인정원과 이 두 사람에 관한

임상적 소견을 나누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열렬하게 그들을 지지하게 되었을까?

내가 주목하는 것은 4억 원이라는 액수가 아니라 1만 명이라는 사람이다.

나는 <무한도전>을 이야기했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말이다.

찌질한 캐릭터들이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박 변호사와 박 기자를 지지하는 팬들은 ‘찌질하다’는 나의 표현에 섭섭하거나 발끈할 수

있겠지만 나는 너무나 명백하게 두 박의 무게 없음과 거룩하지 않음, 가감 없는 기쁨에의

표현과 두려움에 대한 너무 쉬운 발설 앞에서 나와 전혀 다른 종의 매력을 느낀다.

그들이 외모로 승부할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두 사람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단순하다. 진정성과 솔직함.

진정성과 솔직함은 사람뿐만 아니라 개, 소, 닭, 지렁이 소나무, 흙, 바위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종種인 사람 중에서 타인의 진정성과 솔직함을 믿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다.

 

피아골로 올라가보니 읍내에서 헤어진 이후 한 시간 정도 지났는데 두 박은 약간

술이 된 상태였다. 술자리의 화제는 여전히 오후에 있었던 ‘참담한 일’에 관한 것이었다.

쉽게 떨쳐내지 못할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법정과 법원 마당에서 그에게 말을 쏟아 내던 사람들은 ‘박준영의 가난’을 인정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작 350만원?(실제로는 400이다) 그게 돈입니까?” 라는 그들의 의심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일요일 자정을 넘기며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중간에 다시 두 박의 글이 올라온다.

박 기자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모양이다.

 

7일 '삼례 3인조 사건' 재심 공판이 끝난 뒤에 발생한 박준영 변호사와 나에 대한 공격은

황당하고 가혹했다. 공격의 당사자는 우리를 잘 하는 분이다.

놀랍게도 그날 그 분의 사위까지 와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 사위라는 분은 우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한다. 공기업에 소속된 변호사라고 한다.

그 사위라는 분이 대단한 진실 혹은 폭로인양 이렇게 외쳤다.

 

"(박준영 변호사가)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내 파산 직전이라고 하는데,

사무실 임대료 그게 얼마나 된다고 그걸 못 냅니까?!"

 

세상에나, 점포 임대료 못내 눈물 참으며 사업을 접는 자영업자가 얼마나 많은데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까. 사위까지 와서 한다는 말이 참으로 놀라웠다.

그 말 듣고 참은 박 변호사의 인내력도 놀라웠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변호사가 있다.

 

박준영 변호사도 속이 많이 헛헛했는지 글을 하나 올렸다. 중에서 한 대목이다.

 

제겐 어머니가 두 분 계십니다. 한분이 28년 전 오늘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 때 눈을 못 감고 가셨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곧잘 눈이 감기던데...

할머니가 한을 위로하면서 아무리 쓸어내려도 눈이 감기질 않았습니다.

그때 어머니 나이 서른아홉 살이었습니다.

제 어머니는 생전에 빚에 쪼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별명이 ‘빌리’였습니다. 돈 빌리러 자주 다녔거든요.

 

박 변호사는 중학교 때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를 모셨다. 아버님도 2000년 무렵에

세상을 떠나셨다. 변호사가 된 이후 그는 수원으로 새어머니를 모셨다.

‘그때는 돈을 제법 벌 때’였고 그는 새어머니 덕분에 자신이 ‘사람이 될 수’ 있었기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오후의 ‘참담한 일’을 말 하면서 그는 새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수원으로 모시고 한 동안 거처와 생활비를 ‘당연히’ 마련해 드렸지만

재심 사건에 전념하면서 수입이 끊기고 어머니에 대한 그의 도리도 바닥이 났다.

변호사의 새어머니는 나라에 생활보조를 신청해 두고 계신 상태라고 했다.

단장(斷腸). 창자가 끊어진다. 이런 상황을 참고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우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돈’에 관한 비난을 받고 상처받았다.

우선은 화가 치밀 것이다.

그리고 억울할 것이다.

인생을 조롱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무기력해 질 것이다.

이 싸움을 지속할 자존감이 맨땅에 패대기쳐진 것이다.

 

“돈 문제로 저를 공격하는 것은…”

 

최초로 세상에 이 사건을 알린 사람들이 화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충분히 상황을 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말 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차피 성사될 일’ 마지막 순간에 박준영 변호사가 숟가락을 슬쩍 올렸다는 생각과 분노일까.

어떤 사람들에겐 박준영은 주인공이어서는 안 되는 사람일 것이다.

박 변호사는 더구나 고졸 아닌가.

어찌해야 할까. 박 변호사는 그의 일을 열심히 했고 매체는 그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주연 배우에서 하차하겠다고 말 한다면 영화를 중단할 수 있을까?

매체는 왜, 지금 주인공은 사건 팔아 잇속 챙긴 가난뱅이 코스프레 변호사라는 주장을 하는

다른 준비된 주인공들의 주장에 주목하지 않는 것일까.

 

 

 

 

 

박상규 기자가 2015년 초에 구례로 거처를 옮겨 왔을 때 나는 반갑지 않았다.

주변으로 ‘마이너스의 손들’은 이미 충분한 상태였다. 더구나 박상규 기자는 그것에

더해서 돈 안 되는 일을 계속 벌이는 중이었다. 결국 나의 반갑지 않음은 그 파편이

나에게 튀는 경우의 수 때문이었다. 전투력을 상실한 사람 주변에 전투력으로 충만한

사람이 들락거리면 ‘나의 고요’는 방해 받을 것이다. 나의 고요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타인의 싸움을 짐짓 외면하거나 무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체로 부담이다.

따라서 박상규는 나에게는 악재였다.

결국 박상규와 박준영 두 문제 어른들은 자신들의 싸움을 체계화하고 지속할 구조에 대한

고민을 들고 왔고 나는 ‘서울에서 돈 주고 만들라’는 대답을 했다.

그러나 특히 박 기자는 ‘변방에서 시작하는 의미’ 라는 전혀 설득력 없는 이야기를 했다.

공적이거나 엔지오적이거나 운동권적인 일과 단체의 일을 거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견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 ‘다시 논의해서 연락하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간다.

그러나 ‘당연히 돈을 주고 일을 의뢰한다’는 박 기자의 물적 토대 없는 자신감은 계속 되었다.

겨울 끝 무렵 어느 날, 서울에서 견적을 받았는데 ‘기획만 오백만 원’ 어쩌구 하는 소리를

박 기자가 하던 날, ‘미쳤냐? 여기서 만들자’는 대답을 했다. 돈을 받고 형식만 만들어 주고

두 박 씨 사람의 일을 끝내면 되는 일이지만 한 발 담그면 그 다음은 무릎까지 늪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 예측되는 시나리오였다.

사실 나는 박 기자가 구례로 자리를 잡는다면 지리산닷컴의 한 부분을 맡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전투력 고갈 상태의 나는 서서히 빠져 나가는 모양을 구상했었다.

그러나 젠장… 오히려 되치기 당할 형국이 되어 가고 있다.

 

지난 5월 마지막 날 저녁, 갑자기 박 기자와 박 변호사가 구례로 왔다. 다음 날 전주에서

이른바 <삼례 3인조 사건> 재심 공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전주에서 공판 준비를 하는 것이

효율적인 밤이었다. 그날, ‘참담한 일’의 전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례로 숙소를 옮겨서 밤을 새워 공판 준비를 해야 했다.

오미동 <산에사네>로 급하게 방을 잡았다. 양성철 변호사까지 왔고 가짜 살인범 세 사람도 왔다.

지적장애가 있는 세 사람이다. 단 한 번도 두 박 씨가 진행하는 법정으로 가 본적이 없는 나는

그날 처음 이른바 ‘3인조’를 만났다. 첫 인상은 다소 건강하고 거칠어 보였다.

그러나 한 시간 정도 그들의 이야기와 노는 모습을 보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최근 박 기자가 프로젝트 기사로 올린 글에 사용된 박 변호사의 난닝구 사진이다.

그날 밤, 박 변호사의 미션은 다음 날 법정에서 3인조들이 검사의 질문에 쫄아서 불필요한

발언을 할 것에 대비한 일종의 리허설이었다. 3인조에게 요구되는 예습은 간명한 문장이었다.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이 한 줄 문장을 위해 밤을 새워야 했다.

사법부를 향한 이 싸움은 정말 말 그대로 지난至難해 보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스스로도 표현하듯이 ‘많이 떴다’.

박상규 기자 ‘글’ 없는 박준영 변호사의 부각은 힘들었을 것이다.

박준영 변호사가 없었다면 박상규의 글은 허공중의 메아리로 날아다녔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 관계를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로 이해한다.

지난 금요일 밤에 두 박 씨는 동침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깨고 막걸리 병을 머리에 이고

다시 피아골 어느 지인의 집에서 동침을 했다. 그날 밤 폭우가 쏟아졌다.

다음 날, 왜 다시 동침을 했느냐는 나의 물음에 박 기자는,

“계곡 물이 불어서 집으로 건너 갈 수가 없었다.”는 대답을 했다.

그런가.

그러나 혹시 헛헛한 가슴으로 내리 붓는 계곡물 소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지난 60여 일 가까이 나는 두 박 씨의 펀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내가 ‘펀딩 기사를 공유도 하지 않는다’고 역시나 무게감 없이 쫑알거렸다.

그러나 나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그들의 부탁을 완수할 무렵에 언급하고 화력을 집중시키고 싶었다.

그 시기는 지금 진행 중인 뉴스펀딩의 끝자락이라고 예정했었다.

이를테면 나는 돈을 모으는 전략과 전술에 관한 상투적인 시기 조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며칠 헛헛한 가슴의 두 박 씨를 보고 생각을 고쳤다.

보급투쟁은 그냥 상시적으로 항상 열심히 하는 것이 진리다.

 

화제의 펀딩이 초단기간 1억 원을 달성하고 매체들이 박 변호사에게 달려들던 9월.

마침 청와대와 검찰의 실세들이 수임료와 권세로 세간의 주목을 받던 시기였다.

어느 아침, 진보적이라는 매체에서 박 변호사 이야기를 메인 꼭지로 띄운 헤드라인은

선과 악의 대비로 장식되어 있었다. 물론 박준영은 선한 역할이었다. 내가 볼 때 그 기사는

박준영을 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험하기 위한 소재로서 박준영이었다.

제법 오래간만에 혼잣말 육두문자가 새어 나왔다. 박 변호사에게 5월 이후 처음으로 전화를 했다.

다소 힘든 주문을 했다. 인터뷰 할 때 명함에 새겨진 직업, 기자가

‘최근 법조 비리에 대한 견해’ 어쩌고 하는 질문을 하면,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말고 당신이 질문한 그 내용을 직접 끝까지 취재해 봐라.

원래 기자의 일이 그것 아닌가? 나는 변호사 일을 하고 당신은 기자로서의 일을 하고.”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고 부끄러웠다.

논평과 소감을 말하는 것은 참 쉽다.

그러나 그 논평과 소감이 발생할 수 있는 결과를 생산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더구나,

목적한 결과를 생산 하는 것 즉,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천 번의 포기를 씹어 삼킨 사람의 몫이다.

더구나,

그 싸움이 개밥그릇 쟁취가 아닌 들어는 봤지만 실견은 하지 못한,

없는 것들 입장의 ‘정의’라는 영역의 일이라면 누군가는 인생을 건 싸움을 한 것이다.

더구나,

한 번의 정의가 아닌 지속적 정의를 요구하는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싸움꾼이 있다면

문 밖으로 걸어 나가 싸움판으로 향하는 그의 손에 돌과 낫을 쥐어 줄 일이다.

 

어느 날 오후였을까.

법원을 나서는 두 사람은 후줄근하고 지쳐 보인다.

멋있어 보이지도, 거룩해 보이지도 않는다. 싸움꾼의 몸매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름의 싸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좋은 기술은 아니다.

이길 때까지 싸우는 방법이다.

 

지금 진행 중인 아래 펀딩은 ‘어느 사건’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인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에게 건내는,

정의를 부탁하고 짜증스럽지 않은 세상 만드는데 1g 기여하라는 대가를 바라는 촌지다.

그 돈으로 소고기를 사 먹었네, 피해자들에게 넘겨주었네,

라는 둥의 간섭은 사절이다.

해 가기 전에 두 박 씨를 화개로 모셔서 공개적으로 회포를 푸는 자리를 마련할 생각이다.

그때 막걸리 값은 물론 더치페이다.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가 여전히 진행 중인 뉴스펀딩은 아래다.

펀딩 마감은 2016년 11월 11일이다. 아직 30여일 남았다.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로 달려가서 그들의 싸움에 동참하기

 

 

 

 

 

 

 

jirisan@jirisan.com

 

 

 

공지 지리산닷컴 사진사용에 관해 마을이장 2013.05.24 20311
294 생각 / 그냥 하는 사람 [17] 마을이장 2017.05.21 1281
293 생각 / 가짜 현실 [33] 마을이장 2017.04.30 1323
292 그곳 / 꽃과 폐업 인사 [58] file 마을이장 2017.04.10 2663
291 생각 / 응원 [28] file 마을이장 2017.03.17 1382
290 外道 / 남도 서쪽 바다 [33] 마을이장 2017.02.15 2150
289 생각 / 또 보내다 [22] 마을이장 2017.02.07 1987
288 그곳 / 눈 [42] 마을이장 2017.01.21 2303
287 월간 <노력> - 003 / 최광두-작업 중 이야기 [12] 마을이장 2017.01.13 1396
286 월간 <노력> - 002 / 최광두-단장(斷腸) [18] 마을이장 2017.01.06 1409
285 월간 <노력> - 001/ 최광두-말씀을 받다 [21] 마을이장 2016.12.25 2115
284 外道 / 남도 몇 걸음 [21] 마을이장 2016.11.24 1784
283 그곳 / 게으른 가을 풍경 몇 컷 [43] 마을이장 2016.11.14 2152
» 外道 /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 [27] 마을이장 2016.10.09 8658
281 그곳 / 섬진강에서 어느 밤과 낮 [20] 마을이장 2016.08.29 2412
280 생각 / 안부 [23] 마을이장 2016.08.23 1816
279 그곳 / 노고단 음력 7월 5일 밤하늘 [22] 마을이장 2016.08.08 1756
278 老力 / 제 부모님은 보잘 것 없는 분들이셨습니다 - 구독신청 [26] 마을이장 2016.07.27 2502
277 생각 / 형, 빛을 잃은 것 같아요 [39] 마을이장 2016.07.25 1798
276 그곳 / 노고단 7월 23일 아침 - 공무원 K형 [10] 마을이장 2016.07.23 1385
275 老力 / 월간 <노력老力> 기획안 발표 [50] 마을이장 2016.07.10 1981
Copyright© 2007. All Rights reserved www.jirisan.com 4dr@naver.com | 지리산닷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