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으로 봐서는 비가 올 것이란 것은 확실해 보였다. 오후 1시 무렵,
나는 구례터미널에서 오미마을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1시 30분 버스를 탈 것이다.
나는 구례에 살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내가 군내 버스를 탄 것은 간혹 새벽에 노고단을 오르기 위해서
성삼재행 버스에 몇 번 오른 것이 전부였다. 구례터미널은 물론 아주 익숙한 곳이다.
오고 가는 손님들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일은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일상이다.
그런데 오늘은 차를 버리고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하루 이틀 정도 나는 여행자가 되어 구례를,
오미동과 용두, 금내리 일대를 여행할 생각이다. 터미널에서 운조루 셋째 아들 정수 씨가 내 차를 끌고
오미동으로 먼저 돌아갔다.

“참말로, 이 뭐하는 짓이고. 좀 이따 봅시다. 그라면 오늘은 우리 집에 잘꺼라?”
“아 몰라!”











원래 터미널로 사용하던 공간은 텅 비어 있다. 찾는 이가 거의 없는 두세 곳의 가게들이 문을 열어 두고
있는 것은 일종의 습관적인 행동이다. 산행 길에 나서는 사람들이 간혹 빠뜨린 물건을 사는 경우와
대기 중인 기사 분들이 심심파적으로 마시는 음료수와 담배 정도가 매출의 전부일 것이다.
이 건물은 조만간 해체되고 리 모델링 될 계획이다. 지역 경제를 위해서 삼백 원 넣고 커피를 한 잔 뽑았다.











사람들은 옆에 있는 임시 대합실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평일인데도 산행을 하려는 사람들이 보였다.
산을 오르려는지, 산에서 내려왔는지는 알 수 없다. 조만간 지리산둘레길 구례 구간을 개통할 예정이sl
(2011. 5. 13) 여름 휴가철이 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대합실을 이용할 수도 있겠다.
여고생 무리가 지나간다. 배낭을 멘 산객들을 보고 중얼거렸다.

“아,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 존나 짱나.”

여학생들은 말끝마다 ‘존나 짱나’가 포함된 대화를 나누며 멀어져 갔다.











나는 버스 요금을 몰랐고 언제 요금을 내는지도 몰랐다. 나비 모양의 선글라스가 아닌 굵은 뿔테 안경을 쓴
기사 아저씨에게 요금을 물었다. 천백 원이라고 했다. 요금 함에 돈을 넣으려는데 ‘존나 짱난다’는 표정으로
기어를 넣으며 ‘내릴 때 내세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여섯 명의 사람을 태우고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 앞 유리 찢어진 선팅 저 멀리 구름 속에 화엄사 계곡과 노고단이 있을 것이다.
버스는 냉천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화엄사 방면으로 오르다가 청천초등학교 담벼락을 타고 우회전했다.
길이 좁다. 버스 앞으로 하나 뿐인 차선을 차지하고 전기차를 탄 영감님이 앞만 보고 느릿하게 이동 중이었다.
경적을 울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가는귀가 어두운 게다. 버스에 오를 때부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의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결국 폭발한다.











“썩을 놈에 껏 타고 난리여! 썩을 영감은 저거 타다가 각시도 죽었어. 그란디 저 썩을 것을….”
같은 마을에 사시는 모양이다. ‘썩을 영감’과 말끝마다 ‘썩을 할머니’는 같이 광평리 골목으로 사라졌다.
버스는 다시 출발하고 상사와 하사를 지나 용두에서 좌회전해서 오미리로 들어갔다.
하죽마을 못 미쳐 길을 걷던 할머니가 버스를 세운다.

기사 / 왜 여서 차를 타요?
할머니 / 아, 차가 오니께 타지!
기사 / 정류장에서 타셔야죠.
할머니 / 아니 가는 버스 타는게 뭔 죽을 죄를 지었다고, 기사 냥반은 부모도 없나?
기사 / 아, 왜 그따 대고 부모를 가따 붙여요!

나는 오미동에 내렸고 버스는 기사 아저씨와 읍내까지 말싸움을 계속할 기세의 할머니 한 분만 태우고
사라졌다. 얼핏 빗방울 하나를 맞은 것 같다. 비가 얼마나 올지 종잡기 힘든 하늘이었다. 잔뜩 찌푸리고
있지만 막상 쥐어짜듯 몇 방울 내리고 끝이 날 수도 있고 장대비로 내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버스를 내린 위치에서 몇 걸음 뒤, 임시특산물판매장이란 거창한 이름을 가진 조악한 구조물 안에
대평댁이 있었다. 취나물을 뜯은 모양이다. 요일과 날씨로 봐서는 오지 않을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 쓴 탓인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여그 취 좀 사가바. 좋아 이거. 취나물 알어?”
“엄니 전데요.”

모자를 벗고 씨익 웃었다.

"호랭이 똥 싸것네."

김이 샌 모양이다. 여행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는데.
여전히 나는 이 마을에서 영계에 해당하는데… 그렇다. 나는 내가 사는 마을로 여행을 온 것이다.
잠시 대평댁과 흰소리를 나누다가 들판 사진이 필요할 듯해서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오후 2시 무렵이었지만 빛은 없었다. 들판 끝까지 걸어가면 강이 나오고 그 강을 건너면 오봉산,
그 뒤로 계족산이 이어진다. 비구름은 계족산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들판에 펼쳐진 초록은 밀이다.
햇살이 있었다면 밀밭 사이를 걸었을 것이다. 아니, 시나리오 상에서는
‘오미리에 도착한 오후에 밀밭 사이를 걷는다’는 설정이었다. 나는 지난 3년간 많이 걸어 본 관계로 패스.
바로 운조루로 들어갔다.











최근에 행랑채를 수리해서 민박 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직 손님 한번 받지 않은 방이다.
지난 3년간 개인적으로 줄기차게 반대했던 일이다. 이백육칠십 년 된 고택을 시류에 따라
‘한옥민박’이라거나 ‘고택체험’ 같은 ‘제품명’으로 ‘손님을 받는 일’이 나는 탐탁치 않았다.
민박이 아니라도 ‘운조루 정도의 브랜드’라면 다른 방식으로 ‘돈을 마련’하는 것은 가능하다.
우연히 내가 6주일 정도 사무실을 떠나 집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행랑채 공사를 진행한 모양이다.
어차피 내가 말릴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냉정하게는 국가 지정 민속자료이건 말건 개인의 재산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실 예정된 일을 외면한 내탓도 있다. 변화는 몰려오고 나는 지난 5년간 이어진
그 변화들 앞에서 생각의 많은 부분을 수정했고 도피하려는 중이다. 지리산둘레길도 몰려 오는 변화의
하나에 해당한다. 여하튼 고택은 수리가 되었고 다행스러운 일은 실내에 화장실과 샤워실을 만들지
않아서 그래도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숙박객은 실외의 샤워실과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니 이 또한 불만일 것이다.

“산아, 사진 찍어서 우리 싸이트에 올려주라이. 그거 돈 많이 드냐?”
“형님, 근데 제가 얼마 전에 사이트 만드는 기계를 팔아버려서 이제 사이트 못 만들어.”
“그냐! 그걸 왜 팔아버렸냐?”
“고장이 나서 수리 할려니까 돈도 많이 들고….”

그 날 밤 내가 어디에서 잠을 청했는지는 말할 수 없다. 다음 날 아침은 좀 일찍 서둘러야 했다.











아침 7시 30분. 용두마을 입구에 서 있었다. 이곳은 둘레길 구간이다.
용두에서 오미동으로 넘어가는 둘레길 입구를 찾아서 본격적인 도보를 시작할 생각이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입구 또는 출구를 못 찾겠다.











나는 A와 B 사이에 서 있다. 둘레길 구간에서 차들이 속도를 높여서 올라오고 내려서는 19번 국도를
건너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C 방면으로 가야하는데 갓길도 거의 없는 휘어진 도로변을
따라서 걸어가란 말인가? ‘용두골’ 식당 부근의 ※부근에 둘레길 이정표가 서 있었지만 이정표가 세워진
땅의 밭 임자는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는 나를 탐탁치 않은 눈길로 째려보고 있었다.











나의 도보 계획은 둘레길이 아니다.
오미동 뒤로 이어진 숲길을 걸어서 운조루에 당도한 후 다시 19번 국도를 건너 용두마을로 내려선다.
섬진강 모퉁이의 용호정을 방점으로 뚝방길을 따라 수달관찰대가 있는 봉소정까지 섬진강을 오른편으로
두고, 들과 지리산을 왼편으로 바라보며 걷는 계획이다. 그리고 좀 지루하겠지만 봉소, 신기를 관통해서
다시 오미동 까지 돌아오는 길이다.
그렇게 코스를 정한 이유는 이른바 금환락지金環落地(선녀가 퇴근하다가 실수로 금가락지를 빠뜨린 곳)
라고 부르는 마을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당에 살고 있다고 제 각각 주장하는 세 마을,
즉 오미, 용두, 금내 세 개의 행정단위 리里 마을들을 걷는 것이다. 일종의 풍수벨트다.
이것은 물론 지리산둘레길 구례구간 종점인 오미동을 방문하고 하루 쉬어가는 걷는 자들에게 보너스로
제시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하루 전 그대들이 걸었던 코스가 방광 - 당촌 - 황전 - 상사 - 하사 -
용두 - 오미동 코스였건, 난동 - 구만 - 연파 - 구례읍 - 용두 - 오미동 코스였건간에 지금 내가 제시하는
코스가 결코 뒤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략 7km 전후로 예상. 넉넉잡고 4시간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시급한 문제는 오미동 숲길 입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결국 설명하기는 힘들겠다.











7시 30분에 용두 입구에 도착해서 진입로를 설정하는 문제로 혼자서 30분 정도를 소비했다.
용두골 식당 옆 밭에 세워진 둘레길 이정표를 믿고 산기슭으로 들어서서 헤매다보면 오미제로 이어지는
둘레길 말고 생태 숲 이정표와 사진의 길 이미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젠장.











조금 더 진행하면 그럴싸한 데크 계단이 보인다. 가급이면 저 계단으로 내려서지 않는 것이 좋다.
저 계단을 내려서면 오미제가 나오고 곧 이어 오미동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만나게 된다.
설계된 둘레길 구간은 그 길이 맞다. 그러나 모든 설계가 곧 최선은 아니다.
그리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면 된다. 그러면 너무도 확연해서 도저히 길을 잃을 수 없는 숲길을 걷게 된다.
중간에 나오는 이정표에서 당분간은 ‘운조루 방면’만을 선택해서 걷는 것이다. 물론 운조루에서 출발해서
이곳으로 내려서는 길도 코스는 같다. 더 쉽다. 그러나 나는 이 아침에 서쪽으로 동쪽으로 걷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야 숲 사이로 침투하는 아침 햇살을 맞이하며 걷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멀리 19번 국도와 금내리, 오봉산, 계족산이
사이사이로 보인다.











이 숲길은 지난 2년간 겨울 시즌에 야금야금 손을 보았다.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었다.
농한기에 공공근로와 희망근로 인력으로 동원된 내가 아는 마을 사람들이 만든 길이다.
물론 소나무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았던 길이라 거의 새롭게 길을 낸 것이다.
이전에 나무를 하러 다니던 길이라 흔적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다시 한 번, 이 길은 지리산둘레길이 아니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고 그래서 안타깝기도 하다.
여전히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은 때려 죽여도 하루에 열 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몇 번 이 숲을 걸었지만 그때마다 혼자이거나 일행뿐이었다.












전국이 ‘길 열풍’이다. 올레길, 둘레길, 이 길, 저 길, 그 길, 있던 길, 없던 길, 무조건 길….
이틀 전에 읍내 사회복지관에서 지리산둘레길 구례구간에 대한 주민설명회가 있었다.
각 마을 이장단과 개발위원장, 부녀회장님을 초청한 자리였지만 나는 단지 정확한 지도가 필요했기에
찾아갔다. 군청 담당 부서 과장님은 자부심 만땅 상태에서 앞으로 조성할 ‘수백 억 짜리’ 자연, 생태
관련한 사업에 대해서 한껏 자랑을 했고 사단법인 <숲길>에서 나온 사람들은 과도한 ‘관官의 의욕’을
우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듯했다, 는 것은 나의 느낌일까.











알다시피 몇몇 사람들에 의해 ‘길 만들기’는 시작되었다. 그것이 예기치 않은 흥행을 했다.
마치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의 흥행질주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문제는 독립영화는 독립영화정신이라는 것이 있는데 과도한 관심은 독립영화를 블록버스터로
만들어보려는 억지를 부릴 때부터 발생한다.
길은 원래 누가 시작했건 어느 개인의 것도, 어느 집단의 전유물도 아니다. 길은 어차피 노정路程이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길路이 화두다.
‘그 길이’ 우리 마을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그 길이’ 제발 우리 마을을 비켜가게 해 달라고.
제 각각이다.











우선 개통된 남원 구간이 아무래도 몸살이다.
<숲길>의 설명에 따르면 70km에 이르는 남원 구간을 다녀간 사람은 지금까지 47만 명 정도라고 한다.
숙식을 기준으로 75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다.
인월-금계 구간 사이에는 ‘파전에 막걸리’ 정도를 먹을 수 있는 노점이 서른 개 정도 된다고 한다.
순례길이 아닌 술酒례길이란다. 없던 다툼이 잦아졌고 주민들은 이전보다 많은 수입을 챙겼지만
더 가난해진 모양이다. 다른 사람 손에 쥔 떡이 커 보이는 것이다.











TV프로그램 <가족오락관>에서 몇 사람이 귀를 막고 돌아서 있고 첫 번째 사람이 ‘코끼리’ 그림을 보고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놀이 같은 형국이다. 코끼리는 시금치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강령적 수준의 조직관을 유지하는 집단이 아닌 무차별적 대중을 대상으로 한 경우 최초의 의도란 것은
원래 무의미한 것이다.











사단법인 <숲길>에서도 새로이 설계해야 하는 구간의 마을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개최할 때
‘수익이 증가할 것’이란 뉘앙스를 풍긴 것도 사실이다. 주민들이 그것에 제일 혹할 것이란 것은
뻔 한 것이다. 살고 있는 마을에서 1년 전에 개최했던 공청회에서 나는 그런 것을 느꼈다.
‘아, 저 사람들이 좀 쉽게 가려고 그러네. 왜 그러지…’
그 여행은 착한여행이기 때문에 과정상 약간의 오류는 괜찮다는 생각?
최초 제안자는 단순 소박한 삶을 제시했는데 중생들이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범주가 넓어지면 의도는 희박해진다. 원래 길은 주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랏돈, 예산을 받아 진행하면 거의 마가 끼어든다.











1년 전까지 흙길이었는데 생태숲을 만든다고 시멘트를 깔았다.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가면 운조루 옆으로 나온다. 일반적인 코스 설명은 그렇게 내려서는 것이
쉽고 편하다. 그러나 나는 운조루 뒤 대숲을 지나 대평댁 집 쪽으로 걸어 나갈 생각이다.











조금 있으면 죽순이 올라 올 것이다.











운암댁 집 뒤 감나무 잎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지정댁 마당으로 들어섰다. 모판 작업 중이었다. 지정댁 역시 오래간만에 나를 보고 오버했다.

“모판 사진 찍을라고 왔남.”

그리고 역시 지정댁 답게 묻지 않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기 시작한다.

“논 두 단지를 내 놨어. 농조에다가. 양교가 짓기로 하고.
나이에 따라 한 달에 21만 원썩 나오고 연말에 150만 원 나온다네. 그란데 논을 내 놓고 낭께 잠이 안와.
아, 아부지 하고 논 산다고 고생한 거슬 생각헌께로.”
“뭘 논 판 것도 아닌데 그러세요. 그럼 모판은 조금만 해도 되겠네요.”
“요놈만 해. 백이십 개만. 광주 사우가 낼 비 온당께로 일을 못한게 도와주러 온단께.
“녹차는 좀 하셨어요.”
“일 키로 팔백인데 칠만 이천 원 준다네. 녹차가 없데. 값이 좋아.”

지난 겨울 날씨 때문에 녹차 나무가 많이 얼어 죽었다. 금년 녹차 시세가 비쌀 것이다.
그래봤자 녹차란 것은 먹는 사람만 먹는 것이니 시장에 별 다른 영향은 없겠지만.











그럭저럭 비가 흔한 봄이라 오미동 개울에 물이 풍성하다.
지정댁의 감나무 잎은 절정의 색감이었다. 비 온 뒤라 전반적으로 풍경이 깔끔하다.











다시 운조루로 들어간다. 아침 사진이 좋을 듯 해서 하루 전 오후에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사랑채 앞으로 철쭉이 만발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안채로 들어섰다.
목련이 어느새 꽃을 떨어뜨리고 잎으로 다시 피어났다.
개인적으로 역시 안채에서 가장 안온한 느낌을 받는다.











지리산둘레길 구례 구간 종점은 바로 이 자리다. 운조루 앞이 될 것인데 마을안내도가 서 있다.
내가 그린 것이다. 개성 있는 마을지도를 만들려고 나름대로 많은 공력을 들였다.
그러나 주변과의 조화를 생각하면 과연 앞으로도 이런 짓을 계속 해야 할지, 고민이 아니라 고통스럽다.
있는 듯 없는 듯한 27인치 모니터 사이즈의 낮은 안내판도 가능하지 않을까?
가까이 와서 보면 되는데 이런 식으로 경관을 막아 선 안내판은 문제가 있다.
예산이 투입될 수록 사인물은 증가할 것이다. 공적비라 그러하다. 오미동은 10억 원이 더 들어올 것이다.











운조루에서 곡전재를 향해서 걸어 내려온다.
1929년에 지은 집이다. 높은 담장 아래로 정원이 있고 주변으로 철쭉이 장하다.
연못에는 팔뚝만한 놈에서 장단지만한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다.











물에 비친 철쭉을,
철쭉에 비친 물고기를 잡느라고 연못 한 가운데서 위태하게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잠시 19번 국도로 내려 서서 걷는다. 멀리 오미동의 새로운 한옥을 바라본다.
이십칠팔 년이 지났다. 내가 이 마을을 처음 찾은 것이 그렇다. 이후로 몇 년에 한번은 오미동을 찾았다.
마을의 모습이, 이상하게 나와의 인연이, 살고 싶었고… 결과론적으로 막상 내가 오미동에 자리한 이후의
3년 동안 가장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내가 알던 오미동의 절반은 이제 사라졌다.
무엇을 염원할 일은 아닌 모양이다.











용두. 노고단에서 지맥을 따라 내려와 형제봉을 척추로 한 산의 머리가 섬진강에서 물을 마시는
형국이라고 한다. 그래서 용두다. 물론 길지를 찾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은 마을이고 그렇게
형성된 마을이다. 인위적인 변화는 비교적 적었다. 길 아래라 그럴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19번 국도
아래 마을들을 ‘길 아래’라고 표현한다. 강이 가까워 안개가 흔하다. 이미 오전 10시가 가까워 온다.
조금 더워진다.











구례 읍내 서시천을 따라 올라온 둘레길은 이 마을을 관통한다. 담벼락에 기대어 앉은 아주머니는
최근에 세워진 저 이정표가 이 마을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예감하고 계실까.
사람과 생명, 성찰과 순례의 길이라는 지리산둘레길.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이 길을
많이 걷게 된다면 그들에게 분명히 최소한 일상의 환기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원래 그 길이 지나는 마을의 사람들, 농약은 좀 뿌렸지만 원래
단순 소박했던 마을과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삶과 정반대의 국면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1960년대부터 농촌은 도시의 풍족함을 위한 종잣돈이었다. 2011년 현재, 쓰러질 듯 그렇게 살았던
시골마을은 다시 도시인들의 성찰을 위한 무대로 기능해야 한다. 지리산둘레 마을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중
몇 사람이나 자신들의 마을을 지나가는 길이 사람과 생명, 성찰과 순례의 길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마을 수익이 증가할 것이란 기대감만 유일한 공감대일 것이다. ‘그들이’ 농촌을 떠나갈 때에도,
‘그들이’ 시골로 찾아올 때에도 ‘원래 살던 것들’은 결정을 위한 실질적인 주체가 아니었다.











나무의자에 앉아 잠시 지리산을 바라보다가 일어섰다. 길이 아닌 길로 들어섰다.
비로소 강이 보인다. 밭 사이로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다가 강둑으로 올라섰다. 이제 강을 따라 걸을 것이다.











이 시멘트 길이 바로 지난 해 연말에 이곳에서도 한번 언급했던 ‘자전거도로’의 잔해다.
4대강 사업 예산으로 시멘트자전거도로를 만들려고 했던 시도는 일단 저지되었다.
그러나 예산 문제로 이 시멘트를 걷어내지 못한다. 특수폐기물로 분류되어 부어진 시멘트 비용보다
더 많은 철거 비용을 필요로 한다. ‘수달서식지생태·경관보전지역’ 이라는 사인물은 철거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지 않을 것 같은데. 시멘트나 보전지역이라는 간판 둘 중에 하나는 빨리 철거해야 하지 않을까.
시각적으로 우습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
이 글은 이 글의 사진을 찍은 1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쓰기 시작했다.
글을 그렇게 늦게 작성하는 것은 나에게는 이례적이다. 3일 이상 지나면 여행의 온도가 차갑게 변한다.
그리고 1주일 정도 글을 깔고 앉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쓸 수 없는 글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를 걷는 동안 나는 별로 즐겁지 않았다. 목적지로 염두에 둔 봉소정 까지 거리가 얼마나
줄어 들었는지만 관심사였다. 쓰여 질 수 없는 글을 붙잡고 앉아 있는 스스로의 꼬락서니가 한심스러웠다.

두 권의 책을 두 시간 동안 난독했다. 잠이 오지 않아서.
한 권은 스스로 다시 읽고 싶어 들고 온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이야기였고
한 권은 국내 여행서였다. 두 권을 손에서 놓고 나의 문제가 명확하게 보였다.
국내 여행서는 거지같은 글이었다. 결론적으로 스스로의 업적에 관한 긴 나열이었다.
품위라고는 파리 똥집만큼도 없는 쓰레기 글이었다.
호시노 미치오의 글과 추천사의 어떤 대목에서 나는 많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국내 여행서의 어떤 필자와 같은 쓰레기 글을 만드는 중이었다. 왜 그랬을까.
연말이면 대학생이 될지도 모르는 아이의 등록금이 원인이었을까.
내년이면 오십이 되는 중년 남자의 조급함이 근본 원인일까. 분명한 것은 그 족쇄는 스스로 채운 것이다.
문제를 깨닫고 정답을 알았지만 제대로 된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제한된 범주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적응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
또는 ‘내가 잘된다는 것’의 모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최선이건 차선이건 ‘나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글은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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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마을 / 행복마을은 행복한가? - 2011 오미동 대동회 [22] 마을이장 2012.01.15 8449
170 마을 / 행복마을은 행복한가? - 2011 상사마을 대동회 [16] 마을이장 2012.01.10 7904
169 장터 / 구라 for 청국장 [28] 마을이장 2011.12.23 8712
168 생각 / 소식 [18] 마을이장 2011.12.09 7289
167 생각 / 뒷담화 - 2011 쌀밥에 고깃국 그리고 이야기 [27] 마을이장 2011.11.22 7372
166 그곳 / 가을 강을 따라 내려가다 [23] 마을이장 2011.11.15 6955
165 생각 / 나를 둘러 싼 모든 것, 세상 그리고 가을 [15] 마을이장 2011.11.10 6827
164 장터 / 2011 쌀밥에 고깃국 그리고 이야기 [26] 마을이장 2011.10.31 6653
163 1박 2일 프로그램으로 변경한 일에 대한 말씀 [6] 마을이장 2011.11.02 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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