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화개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의신으로 가는 첫 버스는 10시 30분이었다.
좀 더 이른 시간을 바랐지만 대부분의 버스는 쌍계사까지 운행했다.
4월 13일이면 꽃놀이도 잦아들 만 한데 여전히 벚꽃을 기대하고 화개의 아침을 찾는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계속 밀려들고 있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약간 여유롭게 햇볕을 즐겼다.
뽑아 든 자판기 커피에서는 군내가 났다. 100년 동안 필터 청소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밝은 햇살 아래에서 찝찝한 표정으로 버스를 기다렸다.











작은 정류장처럼 보이지만 ‘서울서 오는’ 버스가 서는 어엿한 터미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스스로도 의심스러웠는지 화개터미널만 한 사이즈로 ‘화개터미널’이라고 적힌
간판 아래로 버스를 기다리는 몇몇 영감님들이 앉아 있었다.
표를 끊고 나오는 한 아주머니에게 영감님들이 말을 건다.
- 老 / 그… 용강에 녹차하는 그 아줌마 아이라?
- 女 / 용강에 지 닮은 사람 있어예.
- 老 / 아이가? 맞는데…
- 女 / 택시를 타도 묻도 안하고 그 집 앞에 서예. 같이 노코 보면 달라예.
        그 집에는 꼬사리 마이 끊어예. 녹차는 밸로 안해예.
- 老 / 맞는데…
본인이 아니라는데도 불구하고 영감님들의 의심은 좀 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0시 30분이 넘었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월인정원이 한 마디 보탠다.
- 하여간에 남자들이란 동물은 틈만 나면… 저게 다 작업 거는 거잖아.
- 야, 버스 왔다 타자.











의신으로 가는 하동군내 버스는 10분 늦게 도착했고 아무도 그것에 대한 불평불만은 없었다.
10분 정도면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이고 약간 늦게 온 사람도 버스를 탈 수 있는 합리적인 지연이었다.
버스는 갓길에 주차한 차들 사이를 비집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십리벚꽃 길을 찾은 사람들이 인도로 줄 지어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은 나의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상황은 좀 더 한적하고 조용해야만 한다.
그것을 쫓아 이 길이 끝나는 의신마을을 바라고 오르는 것이다.











화개중학교 지나서부터 버스는 조금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정금마을 다리에서 몇 사람이 내렸다.
할아버지 한 분이 닫힌 차창으로 다가서서 느닷없이 “어야, 고생한다!” 라고 말씀하신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게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슬며시 말을 섞는다.
“마이크 주까요.”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다른 영감님이 추임새를 넣는다.
“그 즐믄 기사양반이 참 친절하네. 보편적으로 영화여객 기사들이 문디 개떡 같은데.”
영감님 멘트의 전체적인 문맥은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친절한 기사 아저씨는 개의치 않았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쌍계사에서 내렸다. 우리는 맨 앞자리로 이동했다.
용강마을 즈음에서 아주머니가 앞으로 나선다.
- 女 / 약국 앞에 좀…
- 기사님 / 알아요.
생각했던 그대로 쌍계사 위로 오를수록 벚꽃은 절정의 날을 향해 시간을 다투어 달려가는 중이었다.
내일 아침에는 이 길을 걸어서 내려 올 것이다.
우리가 의신마을로 향하는 이유는 오로지 내려서기 위함이니 지금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잠시 유보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곱구나.











11시 10분에 1023번 지방도가 끝나는 의신마을에 도착했다. 화개터미널에서 버스로 30분 거리다.
‘친절한 기사양반’은 경운기를 몰고 지나가던 영감님과 담배 한 대를 피울 만큼의 시간 동안 잡담을
나누다가 빈 버스로 다시 길을 내려갔다. 버스가 떠나고 우리는 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요즘의 여행이란 것이 대개는 목적지의 맛 집과 볼거리를 미리 검색하고 스케줄을 완벽하게 기획한
상태에서 떠난다. 나는 이 날 그러하지 못했다.
‘화개에서 버스를 타고 의신에 도착해서 1박 2일 동안 화개까지 걸어 내려온다.’
이것이 내 계획의 모든 것이었다. 의신마을 이장님 전화번호는 입수해 두었다.
혹시 의신에서 민박을 한다면 필요할 듯 했다. 길 끝을 바라고 올랐다. ‘국립공원지킴터’라는 안내 간판이
보이고 등산로가 시작된다. 삼정마을까지 오를 것인지를 두고 잠시 갈등했다.
국립공원 팻말 아래에서 나물을 다듬고 있는 할머니가 아무래도 공신력을 있을 듯해서 물었다.
- 나 / 삼정까지 얼마나 걸려요?
- 할머니 / 얼마 안걸려.
- 나 / 십 분?
- 할머니 / 십 분은 더 걸리고…











숨이 차오르는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을 사십 분 이상 걸어 올라갔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난감하다. 계속 가야하나 돌아서야 하나. 길 가의 평상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아이폰을 열었다.
검색을 한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심각한 얼굴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 월인정원 / 삼정마을 검색해?
- 나 / 응…
- 월인정원 / 얼마나 더 가?
- 나 / 응…
- 월인정원 / 지금 뭐 봐?
- 나 / …. 박지성이 골을 넣었네. 결승골….
- 월인정원 / 지금 이 산골에서 아이폰으로 축구기사 보는 거야.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뭐 별로 잘 한 건 없지만 그렇다고 뭘 영 잘못한 것도 아닌데….
오 분 정도 더 걸어 올라가서야 삼정마을이 나타났다. 아무것도 볼 것은 없었다.
우리는 산행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돌아섰다. ‘바로 가는 거야?’ 약간 어처구니 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어처구니없음은 조금 전 박지성의 결승골과 이어져 있었고 제대로 된 점심 메뉴를
제공하기 전에는 해결 가능성이 없었다. 이럴 때는 조용히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는 것이 답이다.
“할머니들 시간 개념을 믿는 게 아닌데 말이쥐…”











의신마을은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의 끝 마을이다.
북동쪽으로는 지리능선의 벽소령으로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의 입구에 해당한다. 마을이 형성된 것은
오백 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대개 임진왜란을 피해 골짜기로 숨어 든 경우가 많다.
오래 전부터 화전민들의 마을이었고 일제시대에는 벌목꾼들이 흔했고 전쟁을 겪으면서는 토벌대와
빨치산이 흔했다. 의신마을 위 빗점골은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마지막을 맞이한 곳이다.
현대사로 진입하면서 사람이 온전히 살기 힘들었다. 여순과 전쟁을 거치면서 두 번 전소되었다고 한다.
마을에는 ‘지리산역사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지금은 80여 가구가 살고 있으니 얼핏 보이는 것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2003년부터 농협이 팜스테이 마을로 지정했다.
의신마을로 다시 내려서니 거의 오후 한 시다. 90분 정도 소득없는 헛걸음을 한 것이다. 역시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여행은 미리 기획하는 것이 옳은 모양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예상하지 못했던 준산행이었던 탓에 허기지다. 오후 일정을 생각하면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야 했다.











그러나 여행의 첫 끼니는 라면으로 해결해야 했다.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간판은 존재하나 준비된 밥상은 없었다. 마을의 구멍가게 문을 열고 머리만
집어 넣었다. 마을 사람 두 분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주방이 보이고 테이블도 두 개 보였다.
“라면 하나만 끓여 주세요. 식당들이 밥을 안 하네요.”
월인정원은 라면은 먹기 싫다고 했다. 박지성과 삼정마을까지의 헛걸음이 라면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이거 안 먹으면 굶고 걸어야는데…’. 내 목소리는 건강한 남자의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었다. 고개를 뒤로 돌려서 ‘도토리 묵도 하네…’.
배가 고픈데 뭐 가릴 것 있나. 도토리묵과 라면 하나를 시켰다. 월인정원은 생각보다 젓가락을
오래 들고 있었다. 하지만 저지할 명분이 빈약했기에 마지막 라면국물의 일부도 양보해야 했다.
그것은 지극한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남자들에게 물었다.
- 나 / 의신도 여름 한 철 장삽니까?
- 男1 / 그렇지요.
두 사람은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속기록을 펼쳤다.
- 男1 / 겨우살이는 많아. 못가지고 와서 그렇지.
- 男2 / 그라믄… 세 명이서 십 키로씩 지고 내려와.
- 男1 / 그라까. 그라모 한번 올라가지 . 근데 나는 이거 술을 남겨 놓고 가는 거를 배워야는데.
- 男2 / 막걸리 이거는 아무리 먹어도 몸에 지장이 엄써.
- 男1 / 와 그 얼마 전에 동창회 한다꼬 모이따 아이가. 남자 네 명 여자 열다섯이가?
          여자 나이 오십서이나 묵어논께 아따 진짜 무섭더라.
- 男2 / 요 옆에 춘자 있제. 술 주지 말라는 춘자. 춘자는 오십둘이거등. 근데 아직 애기라.
          서른 살 빼께 안되 보이는기라.
- 슈퍼女 / 춘자가 무신 애기라. 그기 다 화장빨이라.

슈퍼마켓 앞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를 보았다. 신흥마을까지 버스를 타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다. 지금은 오후 두 시고 버스는 다섯 시가 넘어서 온다. 원래 생각대로 걸어서 내려가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라면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대략 신흥삼거리까지 4~5km 정도 되지 않을까.
내려가는 길에 봄볕이 따가울 것이다.











급할 것은 없다. 신흥 삼거리까지 해 지기 전에 도착하면 범왕 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서
적당한 민박집을 물색할 생각이었다.











의신에서 신흥까지 내려서는 길은 대부분의 겨울 산 풍경 속에











산벚과 진달래가 드문드문 빛나고 있었다.











도로를 걸어 내려가는 길이라 그렇게 편안한 길은 아니지만 어차피 차와 사람은 드물었다.
간혹 지나치는 차들 속에서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는 눈길들이 많았다.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길 주변으로 좁게 펼쳐진 약간의 평지에서 분봉을 하고 있었고
나물을 캐고 있었다.











가끔 차로 오르내리던 길을 걸어서 내려간다.
대성골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약간 지루했지만 충분히 여유롭기도 했다.











대성1교를 지나 신흥교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90분도 걷지 않았다.
의신에서 삼정까지의 헛걸음이 아니었다면 발바닥에 땀이 조금 날 정도의 평이한 걷기였다.











신흥초등학교 교정으로 들어가서 잠시 쉬었다. 다음 날이 화개면민 체육대횐 모양이다.
화개면사무소의 마이크 소리가 반복해서 들렸다.
“화개 맨 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이 날 만큼은 우리 신흥마을 주민 모두가 동참을 해서
화개 맨민의 긍지와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경상도가 아닌 '갱상도'에서는 면민이 아닌 '맨민'이 맞다.











신흥초등학교 입구의 오래된 푸조나무를 지나자 화사한 벚나무 한 그루가 우리의 도착을 반겨주었다.
골짜기라 그런지 오후 4시가 되지 않았는데 햇살이 가파르다. 시간으로 보자면 마음 급할 일이 없는데
햇살은 사람을 재촉한다. 길 위에서는 사람이 만든 시계보다 햇살의 기울기로 하루를 마감해야 할 시간을
가늠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은 어차피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낮은 낮으로, 밤은 밤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모두가 지금 눈에 보이는 그대로.











멀리 신흥 삼거리 버스 정류장 뒤로 목련이 찬란했다.
그 찬란함은 하루 일정이 끝나간다는 하나의 사인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틀 동안 걸어야 할 거리의 삼분의 일을 내려 선 것이다.











왼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쌍계사로 향하는 내리막길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범왕리 계곡을 따라 칠불사로 향하는 오르막길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는다.
세부적인 여행 계획은 없었지만 동선은 정해 둔 상태였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연을 주요한 대상으로 한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뷰view는 항상 역광이었다.
2km 정도를 더 걸어 올라가야 민박이건 펜션이건 나타날 것이다. 보기보단 경사가 가파르다.
5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갔다. 하루의 마지막 햇살은 눈을 찔렀고 마실 물은 바닥났다.
역시 도착했다는 방심이 문제였다. 범왕교에 도착해서는 더 이상 걷기도 힘들었다.
다리 건너 왼편의 오래된 민박집으로 들어갔다.











오후 5시 직전이었지만 밥을 청했다. 아니, 확인부터 먼저 했다.
“밥 먹을 수 있어요?”
삼십 분만 기다리면 밥을 먹을 수 있단다. 라면에 대한 보상심리랄까, 뭔가 대단한 녀석들을 먹고 싶었다.
닭, 흑염소, 피리매운탕… 산골에서 흔히 만날 수 있지만 거의 주문하지 않던 메뉴로 눈길이 갔다.
- 나 / 아줌니, 저 잘 먹어야 됩니다. 의신에서부터 걸어왔어요.
- 아주머니 / 하이고 세상에 우짜겠노. 시장해서… 산채밖에 안 됩니더.

머물기로 한 아래채 한옥으로 내려왔다. 곧 해가 질 것 같았다. 원래는 한 채 전체를 빌려야는데
손님이 없는 시즌이다 보니 4인용 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오만 원.
월인정원은 잠시 뻗었고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아이폰을 열었다. TV편성표를 확인한다.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 재방송은 10시였다. 위성안테나는 민박집을 들어설 때 이미 보아 둔 상태다.
뭐 늦은 밤에 한적한 민박집에서 오지 않는 잠 때문에 뒤척이다가 TV를 보는 것이 큰 죄는 아니지 않은가?
일단 피곤하니 마누라는 일찍 뻗을 것이다. 만에 하나 늙은 내가 먼저 뻗는다면 낭패지만.
밥이 다 되었으니 올라오란다.











동물성 단백질에의 갈망이 높았지만 밥상은 저탄소 녹색성장의 표본이었다.
그 흔한 갈치 토막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근육질의 멸치볶음이 보였다. 오늘은 살생하지 말고 착하게 살라는
하늘의 뜻인 모양이다. 그런데 왜 하필 10km 정도 걸은 날 그런 깊은 뜻을 펼치실까.
고사리, 버섯, 취, 쑥부쟁이가 센터에 자리하고 뽕잎, 취, 녹차 잎, 가죽 장아찌가 주변으로 포진했다.
김치는 기본, 국은 쑥국. 경상도라 콩잎 장아찌도 보인다.
이런 곳에서 산채 정식을 잘 시키지 않는다. 산골이라 당연한 상차림이겠지만 평소 집에서 먹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 이런 메뉴를 잘 주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음식은 탁월했다. 처음 먹어보는 뽕잎 장아찌는
식감이 특이했고 모든 장아찌가 짜지 않고 담백했다. 조선장에 매실효소가 비결이었다.
밥을 연거푸 세 그릇을 퍼 먹었다. 주인아저씨가 슬쩍 자랑하는 말씀을 하신다.
“해발 사백부텀 칠백 사이에서 채취한 것이 원래 제일 맛난 것이라. 나물이라고 다 같은 나물이 아인기라.”
밥상을 물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기온이 확 떨어진다. 바람이 차다.
“하이고 배 부르네. 오늘은 걷기도 많이 걸었고 일찍 자자.”
월인정원은 밤늦게까지 보지 못한 시리즈라면서 CSI를 연속으로 보고 있었다.
“야, 여까지 와서 CSI가 뭐냐! 고마 자자.”











알람을 아침 7시에 맞추어 두었다. 조금 힘들게 일어났다.
축구를 보고 잠이 든 것이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다리가 뻐근했다.
대충 샤워를 하고 마실 물을 채워서 민박집을 나섰다.
아침 햇살이 계곡과 마을의 집들 사이로 깊숙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아침 공기는 차가웠지만 몸은 저절로 깊은 호흡을 요구했다.
쌍계사를 방문하지 않는다면 길은 화개터미널까지 무조건 내리막이다.
해를 왼편에 두고 끝까지 내려가게 될 것이다.











여덟 시 조금 넘어 신흥 삼거리에 도착했다. 16시간 전과 다르게 컨디션은 최고조에 도달해 있다.
하루 전 오후에 걸어 내려왔던 의신 방면을 흘깃 바라본다. 어쩌면 어제의 길은 지금부터의 길을 위해
먼저 출연한 조연배우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살짝 미안하기도 하다.
이 바닥에 조연은 없다. 모든 길은 하나의 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스태프staff다.
다음에 이 길을 찾을 때는 아마도 차를 타고 빠르게 오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걸어야만 이 길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쌍계사 입구까지 한 시간이면 내려갈까? 익숙하지만 처음 보는 영화가 시작되려고 한다.
왼편으로 화개동천이 흐르고 화랑, 모암, 맥전, 계원, 목압, 용강마을을 좌우로 지나치게 될 것이다.
하루 전 아침 버스 안에서 예고편은 보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특징은 예고편보다 본 영화가 더 장할 것이란 사실이다.











조조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텅 비어 있었다.
영화는 서사와 서정성을 고루 갖춘 근래에 보기 드문 명화였다.
흥행성도 높았지만 사람들은 이 영화의 개봉관에 관한 정보를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박 난 영화만 상영하는 멀티플렉스 상영관 제일 아래 층 창구에만 몰려 있었다.
단 두 사람이, 관객 없는 극장의 대형스크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흘깃 앞으로 전개될 영화의 필름을 바라본다.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의 꽃들은 늦게 핀다.
그래서 빛나는 연두색과 꽃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다.
몇 개 월 동안 제대로 된 연두색을 보지 못했다.











겨울은 길었고 그래서 건너 편 산의 연두는 더 빛난다.
그것은 차마 바라볼 수 없는 빛나는 광채를 뿜어내고 나는 기필코 뜬 눈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길은 아래로 또 아래로 이어지고











차마 정면으로 바라 볼 수 없는 색을 훔쳐본다.











화개동천 동편의 가파른 산허리를 따라 야생 녹차 밭이 이어진다.
자연이 말미를 제공했고 사람이 그것을 가꾸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멈추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계곡을 가로질러 와이어가 연결되어 있었다.
줄은 사람의 노동을 건너편으로 옮기는 수단이다.











길벚 사이로 산벚이 인사했다.
연두가 그 시선을 이어 주었고 햇살은 그 모든 것을 조율했다.











간혹 차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집들이 보였다. 마을과 마을 사이의 집들.
길은 완만한 내리막을 이루면서 느리게 이어졌다. 아니 우리가 느리게 걸었다.
이 영화는 필름을 다시 되돌릴 수 없거나 일 년 후에나 재상영이 가능하기에
천천히 음미하면서 걷는 것을 권한다. 아껴 먹는 것이다.











반복되는 장면은 없었다.
계곡은 맥락을 가지고 확장되면서 멀어지거나 가까이 다가왔고











길은 음률을 가지면서 휘어지고 잦아드는 듯 사라졌다가











다음 모퉁이에 당도하면 끝나지 않을 듯 이어졌다.











간혹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가 나무와 꽃과 계곡과 산이 만들어 내는 영화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행인1에 불과했다.











해는 성제봉을 넘어 선 모양이다. 햇살은 점점 또렷해졌고 각도는 예리해졌다.
잠시 길에서 몇 발 벗어나 계곡과 맞은 편 산을 보고 다리를 뻗었다.











나에게 이 길은 익숙한 길이다. 물론 항상 차를 타고 있는 상태였다.
100년 전에는 의신에서 벌목한 나무를 이 길을 따라 운반했다. 우마차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마꾼의 노고 위에서 이 길을 스쳐갔고
누군가는 가마에 탄 상전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이 길을 타박했을 것이다.











같은 길, 같은 나무, 같은 꽃을 두고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논했고
누군가는 가슴에 한을 한 겹 더 새겼을 것이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건너 편 산의 복사꽃과 살구꽃은 그때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100년 전 이 길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길은 항상 변한다.
길 스스로 변하기도 하지만 길은 어차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 시간 정도를 걸었다.
이 아침, 지금까지의 한 시간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삼십 분 정도는 특별한 경험이자 특별한 아침이다.











정체불명의 그들이 나를 끌고 가서 결박시키고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거듭하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아침’을 자백하라고 닦달한다면 실토하고 말 것 같은 경험이었다.
다시 이 길 위에 서고 싶은가?











다시는 이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하다.
다만, 간혹 이 아침의 기억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곱씹을 것이다.
그것이 이 길을 가슴에 새기는 가장 가혹한 방법일 것이다.
이런 아침을 경험했다면 그 정도 고통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공평하다.











나무에게 산에게 물에게 꽃에게,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선우(이병헌)가 했던 대사를 던졌다.
“말해 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모암을 지나 목압마을 앞 다리에 당도했을 때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넘어섰다.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영화 상영은 끝이 났다. 내가 만든 영화가 아니니 범죄는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영화를 상영한다는 소문을 내지 않았으니 미필적 고의라는 혐의를 받을 수는 있다.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걸은 모양이다.
속을 비운 상태에서 걸었다. 걷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빨라진다.











도착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던 쌍계사 입구에 도착했다. 9시 21분.
이미 많은 관광버스들이 주차장에 도열해 있었다.
우리는 정해진 길을 따라 마음속으로 정해 둔 식당으로 직행했다.











단야식당 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10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20분 정도 그렇게 두런두런 사방을 구경하며 앉아 있었다.
식당 앞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아침부터 부지런히 쌍계사로 오르고 있었다.
각 식당에 재료를 배달하는 트럭들이 쉼 없이 드나들었다. 그렇게 지켜보니 이 식당, 저 식당
재료는 같은 것이구나. 똑 같은 도토리묵, 똑 같은 취나물, 똑 같은 두부, 똑 같은….











식당 <단야>는 워낙에 이름 난 식당이다. 들깨 국수와 산채정식이 일반적이다.
지난밤에 산채정식을 먹었기에 들깨 국수를 시켰다. 오전의 국수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뜨겁고 걸쭉한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매끈한 면발을 빨아들인다.
바람 시원한 마당에서 말린 표고와 채 쓴 호박을 씹는다.
이른 시간 식당은 점심을 준비하는 손들로 분주하다.











나누어서 걸었지만 평소에 걷지 않는 사람에게 어제부터의 16km 정도 도보는 다리를 뻣뻣하게 만든다.
늦은 아침은 몸을 나른하게 만들었고 잠시 쌍계사에서 화개터미널까지 버스를 타는 것을 생각했다.
어차피 이번 도보 여행의 백미는 조금 전 지나 온 신흥 삼거리에서 목압 까지 90분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걸어갈 길은 이미 인파로 붐빌 것이다.
편안함과 꽃비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그냥 끝까지 걷기로 했다.











내려설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쌍계사를 향해 올라오는 중이었다.
꽃잎이 길 위로 흩날렸고 사람들은 간혹 환호성을 지르거나 아쉬워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윗마을에서 상영 중인 영화의 내용에 대해 스포일러spoiler를 유포하지 않았다.











테이크아웃 한 잔을 손에 들었다.
주인장은 익숙하지 않은 손길로 커피를 만들었고 맛은 역시 별로였다.
길에서, 특히 도저히 커피를 팔 수 없을 것 같은 길에서는 항상 짙고 괜찮은 커피가 아쉽다.











하지만 때에 따라 그냥 ‘커피가 있다’는 사실만 중요할 때도 있다.
늦은 꽃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지금이 그러할 것이다.











화개로 내려설수록 꽃잎은 나무보다 길 위에 더 많이 내려 앉아 있었다.
단체여행을 온 젊은 친구들은 길가의 나무를 흔들어 꽃비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긴 누군가에겐 지금 이 길의 이미지가 ‘내 인생의 아침’일수도 있을 것이다.
풍경 앞에서 선 사람의 상황과 처지가 그 풍경에 스토리를 부여한다.











사람들은 이 봄에 다시 꽃 마중을 나왔다.
어떤 이는 조금 늦어 마중이 아닌 배웅을 하기도 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냥 그렇게 꽃그늘 아래를 걷는다.











지는 벚꽃을 보고 가슴이 스산해지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지는 꽃잎은 우리네 마음의 환부를 드러내고 바람에 날려 그 상처를 씻어낸다.
그래서 쓰라릴 것이다.











정오에 화개터미널에 당도했다. 스물두 시간만이다.
차들은 여전히 오가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영화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야, 차 빼!”






* 길을 걸으며 이상하게 조니 미첼의 2000년 발매 앨범 ‘Joni Mitchell’에 수록된 버전으로
  ‘Both Sides Now’를 듣고 싶었지만 이 밤에 파일을 잡아들이기 쉽지 않다. 며칠 구례를
  떠나 있을 것인데 돌아와서 다시...




4dr@naver.com



공지 지리산닷컴 사진사용에 관해 마을이장 2013.05.24 20205
153 생각 / 시골에서 집을 구하고 싶다고? [43] 마을이장 2011.05.17 22248
152 지리산둘레마을 / 솔숲에서 강까지 걷다 - 오미동에서 금내리까지 [11] 마을이장 2011.05.11 7535
» 지리산둘레마을 /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 의신에서 화개까지 [21] 마을이장 2011.04.20 9110
150 그곳 / 연곡분교에서 [20] 마을이장 2011.04.13 7669
149 마을 / 영화는 계속 될 것인가? - 면민체육대회 [9] 마을이장 2011.04.11 6620
148 지리산둘레마을 / I am a Simple Man - 구례군 산동면 현천마을 [25] 마을이장 2011.04.06 8282
147 사람 / 아들, 계속 칼을 만들다 - 형제食刀 곽태섭, 곽상호 父子 [25] 마을이장 2011.03.20 17654
146 생각 / 주절거리다 [6] 마을이장 2011.03.08 6569
145 생각 / 계획, 고민, 몇 가지 알림 [28] 마을이장 2011.02.06 7889
144 사람 / 우체국에 가면 그녀가 있다 - 구례마산우체국 박임순 [20] 마을이장 2011.01.25 10198
143 장터 / 청국장, 김부각, 포토에세이 - 구례를 걷다 [109] 마을이장 2011.01.09 10063
142 마을 / 포토에세이 - 구례를 걷다 [41] 마을이장 2011.01.06 8605
141 마을 / 다섯번째 겨울 - 마을과 나 [23] 마을이장 2010.12.31 6829
140 外道 / 못난 나무가 마을을 지킨다 - 권헌조 옹 가시는 길에 [36] 마을이장 2010.12.24 9364
139 장터 / 살림을 계속하자 - 유기농 쌀 팝니다 [13] 마을이장 2010.12.20 6682
138 外道 / 아버지의 집 - 경북 봉화 송석헌 이야기 [31] 마을이장 2010.12.08 12821
137 생각 / 편지 좀 쉽니다. 그리고 몇 마디 변명... [8] 마을이장 2010.11.28 6131
136 생각 / '김종옥의 손' - 마음이 조금 복잡한 에필로그 [32] 마을이장 2010.11.08 8240
135 사무장의 여전히 끝나지 않는 에필로그 [5] 마을이장 2010.11.10 6694
134 장터 / '김종옥의 손'을 팝니다 [55] 마을이장 2010.11.01 13088
Copyright© 2007. All Rights reserved www.jirisan.com 4dr@naver.com | 지리산닷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