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 영화는 계속 될 것인가? - 면민체육대회

마을이장 2011.04.11 02:01 조회 수 : 6670 추천:101





2011년 4월 9일 토요일.
구례군 마산면 청천초등학교 운동장.
마산면민체육대회다. 나로서는 세 번째 면민체육대회다.
청년회 총무로부터 하루 전날 밤에 선수로 뽑혔다는 문자를 받았다.
마을 선수로 뽑힐 만큼 마을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 정도로 선수로 뛸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축구하면 5분 만에 죽는다. 사진만 찍거나 빠질거다.”











9시에 마을회관에서 청년회는 짐을 싣고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늦잠을 잤다.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인터넷도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얼굴은 보여야 할 것이다.
얼굴 보이고 사진 몇 장 찍고 출석 체크만 할 생각이었다. 얼굴 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뻔히 집 앞에 차가 있는데 이런저런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정도로 나 역시 마을과 관련한 이런저런 행사에 점점 무감해지고 있는 중이다.
벚꽃이 늦은 탓에 4월 9일인데 청천초등학교 벚나무가 장하다.
이삼일 사이에 갑자기 피어버렸다.











10시 30분 경에 도착했으니 당연히 개막식이 끝나고 축구예선 경기를 하고 있어야
했지만 경기는 열리지 않고 있었다. 운동장에서는 냉천마을 농악단이 놀이 중이었고
4개 마을 연합 축구팀의 열한 명은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어야, 산이 형 축구화 줘라이.”
내가 도착하자 빠듯하게 베스트 일레븐이 완성되었다.
“야, 농촌 현실에 맞게 미니게임으로 하자. 찍사는 사진 찍어야제.”
눈치에 허리가 좋지 않은 현덕이가 골키퍼라도 서야 할 판이었다.
그러면 오늘은 정말 카메라는 접어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너는 안된다이. 괜히 무리하지 마라."
전 사무장이 도착했고 선수 교체 불가능한 열한 명이 결국 구성되었다.
대범 씨가 가랑리에서 유일한 선수로 출전했다.
"저는 무조건입니다. 우리마을 젊은 사람은 저뿐입니다. ㅎ"
상사에서 여섯 명이다. 효수, 재원, 관현, 용운, 두선, 용석.
2011년에도 축구는 가능했다. 아슬아슬하게. 와야 할 사람들이 몇 보이지 않았다.
하긴 '와야 할 사람들' 속에 나도 속할 수 있는 것이고 갑돌이와 갑순이가 해당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당연히 참석할 사람'으로 셈을 하지만 간혹 예상이 빗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때에 우리는, 항상 빠지는 사람이 아닌 한 번 빠진 사람을 원망한다.
"선원이 안온가?"
"읍내 가게에 있다고… 점심 전에 못 올 것 같다고…"
"점식이는?"
"일 나갔다는데요."











우리의 상대 팀 황전리는 강팀이다. 선수 출신도 있고 무엇보다 이십 대 젊은 애기들이
몇 보인다. 평균 연령에서 차이가 팍 난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부녀회장니임, 본부석에 상 좀 치워주세요!”
본부 마이크는 경기와는 무관했고 전반전 내내 우리 마을은 슈팅 한번 날리지 못했다.
현덕이와 내가 골대 뒤에서 날린 소리는 주로  이것이었다.
“뛰지마. 천천히 천천히.”
시간을 끌다가 비기면 승부차기가 아닌 제비뽑기로 승자를 결정한다.
전반전 끝나고 작전회의 내용도 같았다. 문제는…
“야, 후반전에 카메라가 어디 있어얄까?”
우리 팀이 공을 넣을 가능성은 희박하니 내가 후반전에 상대팀 골 뒤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을 이유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도의상 계속 나만 상대팀 골문 뒤에
서 있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팀이 골을 넣었다. 나는 찍지 못했다.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는데 찍을 수가 없었다. 상대 팀 골키퍼가 들어 간 공을
주워 내는 장면만 찍었다. 그리고 우리는 내리 세 골을 먹었다.
괜히 상대 팀을 화나게 만든 것이다. 내 뒤로 마을 어르신이 한 분 다가왔다.
“저짝 아아들이(애기들이) 잔잔하다.”
“또 묵었어? 그물 앞에서 놀면 들어가기 마련이라.”
다시 기적적으로 한 골을 더 넣은 우리 팀은 2:3으로 예선 탈락이다.
슈팅 두 번에 두 골이었으니 엄청난 결정력이었다. 두 골 모두 용운이가 넣었다.
“용운이는 A매치 두 번에 세 꼴이네.”











마을 할머니들은 고운 옷 입고 운동장 주변에 포진 중이다.
경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음식을 드신다. 항상 궁금한 것은 왜 몇 걸음 밖
초등학교운동장으로 나들이 하시는데 아껴 둔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가 하는 것이지만
어차피 평생 여자의 언어를 평생 남자가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긴거 아닌가?”
“졌어요. 아 경기도 안 보세요.”
“조금 전에 박수치길래.”
“끝났다고요.”
이어서 진행된 마산리와 냉천리 경기는 무승부로 끝이 났다. 본부석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마산 대 냉천, 냉천 대 마산 경기는 심지 뽑기로 마산리가 결승에 올라갔습니다아~”
사진 속의 할머니들 중 세 분을 내 차로 모셔왔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들은 여전히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할머니들에게 나는 부평초와 같고 부평초는 나무로 변하고 싶지만 그때까지 함께 살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냉천리 농악단이 마을마다 자리한 천막을 순회 중이다.
농악단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짐작하건데 남자들보다
삶이 더 팍팍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몇 개의 천막을 지나쳤고 술은 제법 올랐다.
“하이고 재미지네. 계속 혀!”
제 흥으로 논다.











옆 마을로 시집갔거나.











옆 마을로 시집왔거나.
이녁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듣지 않아도 아는 것이고…











남자 노인 승부차기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손사래를 친다.
“난 못혀.”











처음에는 사양한다.
그렇게 한두 사람씩 모여든다.
재미가 있는 것이다.











오래 된 친구의 힘없는 다리가 웃음거리지만
정작 나서지는 못한다.











비켜 봐. 내가 해 볼텐께.











어째 산가?
뭐가 어째, 사는 대로 살제.











마음대로 안 돼. 그게 되가니?











왔는가.











저거 완죤히 ‘공 굴러가유~’ 구만. ㅋㅋㅋ











아, 그걸 못 막나.
몸이 말을 안 들어.











“내가 시선을 이쪽으로 뒀어.”
우리 마을 이장님은 골을 성공시키고 살짝 의기양양.











아이고고~
왜 저게 정면으로 가부냐.











승부차기 바로 뒤에서는 청년회의 족구 예선이다.
우리 마을 청년회장 효수가 오늘 고군분투다.
아무리 사소한 직책이라도 맡으면 책임이다.
그래서 세상에 사소한 직책은 없다.











2년 전에도 마산리와 족구 예선이었다.
2년 전에는 우리 마을이 종합 우승을 했다.
축구와 족구 등 대부분의 종목을 휩쓸었다.











오늘 같은 팀 하사마을 정훈 씨는 비교적 조용하다.
2년 전에 그는.











2009년 4월 9일에 그는 이러했다.
짧은 시간인데 우리는 항상 변한다.
2011년에 그는 구례군 농민회 신임 사무장이다.
그의 어깨는 조금 더 무거워졌고 그것이 세월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농민 조복선 형님은 마산리를 응원하고
젊은 농민 정훈 씨는 사도광평연합팀을 응원한다.











오늘은 조복선 형님의 날이다.
언젠가는 인터뷰를 해야 할 그.
몇 년 전 수매 싸움 때 트럭을 몰고 읍내 농협중앙회 정문으로 돌진했던 불량농민 조복선.
법정에서도 말대꾸 하다가 무려 1년 6월을 살고 나온 조복선.
볼 때 마다 왁자지껄한 조복선. 듣기로 문제아, 내가 봐도 문제아 조복선.
형님, 아직 인사도 드리지 않았지만 기둘리셔요.
언젠가는 청천카페 평상에서 마주하고 형님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
그의 응원 추임새는 화려하고 감동적이다.
“어짤라고?”
“아조 좋아.”
“뭐여?”
“갔어. 끝났어.”
경기장으로 자주 난입하는 조복선 형님 때문에 옆 마을 형님이 열 받았는지
심판에게 따지고 곧 시비가 붙는다.
육두문자 기본에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결승까지 끝나고 불과 삼십 분 전에 한바탕 붙을 것 같았던 두 사람.
“복선이 성! 미안 혀, 원래 오늘 같은 날은 그라는 거이여.”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황전리 천막 아래로 막걸리 마시러 가더라.











다시 본부석 마이크. 여자 줄다리기 순선데 여성들이 못한다고 버티는 모양이다.
“녀자들이 줄다리기가 힘들다고 하니까 좀 전 맹키로 승부차기로 할지
모여서 논으해봐야 알것습니다. 각 마을 부녀회장님들은 본부석으로 와 주세요.”
그렇게 느닷없는 여자 승부차기가 시작되었다.











못 보던 젊은 아주머니들이 간혹 보인다.
하긴 내가 이천 명이 좀 넘는 마산면민 전체를 알 수는 없겠지만.











여자 승부차기 무대의 주인공은 선수가 아닌 농악단의 이 엄니.











들어갈 것 같지 않은 공은 들어가고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공은 막는다.











“그것도 못 막어!”











먼 나라에서 시집 온, 후배 친구의 어린 아내도 선수로 나섰다.
그래서 축구는 전 인류 보편적인 게임.











시선은 한 곳으로.











누군가는 이기는 것이고











드디어 결승전.











의외의 긴장감이 흐르고











야신Lev Ivanovic Yashin은 앞치마를 두르고 환생했다.











마지막 승부.











매 순간 인간은 간절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기고 싶은 것이다.











이것만 막는다면…











“야, 일뜽이나 이등이나 같어?”
“일뜽은 김치통 다섯 개, 이등은… 다섯 개…”

이제 마지막 게임만 남았다. 여자 줄넘기.


























파인더 속으로 들어 온 얼굴은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
2년 전에는 10명이 줄을 넘었고 오늘은 8명이 줄을 넘었다.
10명을 구성하기 힘든 마을이 있었다.
2년 전 줄넘기 속의 얼굴과 다른 얼굴들이 제법 보인다.
불과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오늘 본 얼굴이 2년 전에도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몇몇 얼굴은 분명히 2년 전에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다른 마을 사람들의 눈에 유난하듯 새로운 얼굴들도 같은 것이다.
마산면의 인구는 2년 전보다 스물 몇 명 남짓 늘었다고 한다.
원래 나는 오전에 얼굴만 보이고 사진 몇 장 찍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끝까지 남았다. 운동장이 쓸쓸했기 때문이다.
인구는 늘었다는데 날이 갈수록 운동장 주변으로 자리하는 원래 살던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자리의 주인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그것은 서글픔이기도 하고 기쁨이기도 하다.
10년 후에, 20년 후에 오늘과 같은 영화는 계속 상영될 수 있을까.
영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그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 영화의 주인공들은 오늘처럼 마을 이름이 새겨진 천막을 세우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까.
그때까지 이 학교는 존재할 수 있을까.











빛의 속도로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세요?











육십오 세 이상 어르신들은 본부석 앞으로 나오시라는 방송이 있었다.











김치 통이다.
'소쿠리 타 가세요'는 거의 영원불멸의 행사 아이템이다.











황전리였나?
우승팀의 향방은 우승 마을을 제외하고는 관심이 없었기에 우승기는 쓸쓸하게 퇴장했다.
이제 남은 순서는 면민노래자랑이다.











모두들 본부석 앞으로 모였다.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인다.
염불은 가수가 하고 모두들 잿밥에 최종적인 관심이 있다.
오늘도 사회는 황전리 BBQ 형님이다.











그러나 잿밥이고 염불이고 간에 무조건 이 순간을 즐기는데 몰입하는 주민들도 있다.
하루는 길었고 이제 저물어 간다.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아, 이리 나와 보랑게!”
“나는 춤은 당췌 안된당께! 하이고 죽것네.”











마산댁은 들리는 노래를 따라하며 결전의 순간을 기다린다.
경품 추첨의 백미는 자전거고 마산댁은 진심으로 자전거를 원하고 있다.
낮에도 ‘자전거 타믄 이십만 원 아치는 술 산당께’를 연발했다.
경품 번호는 도대체 몇 장을 들고 있소?
재미를 위해 면민 보다 많은 경품딱지를 찍었다.
지난밤에 재원이가 손으로 스탬프 돌려가며 찍은 딱지다.
조금 먼저 운동장을 떠나며 마산댁에게 내가 들고 있던 경품딱지를 넘겼다.
“마산떡 잘 보쇼~ 삼십구 번에서 사십팔 번까지거든요. 아, 번호 잘 챙기란게!”
늦은 밤 마무리 술자리에서 들었는데 사십사 번으로 마산댁이 자전거를 손에 넣었단다.
“성은 기임~ 이름은 지에서어~”











청천초등학교 몇 횐가 동창회를 한 모양이다.
서울, 광주, 대전, 부산… 전국 각지에서 온 동창생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누군가는 고향을 떠났고
누군가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누군가는 처음부터 고향에 남았고
누군가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다.
벚꽃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난분분亂紛紛 흩날리고
우리는 지금,
그때 그 학교에 모여 있다.











우리는 같은 곳을 보고 있는 것일까.
물론 같은 곳을 바라 볼 필요는 없다.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마을은 변화할 것이다.
그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변화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내 마음과 다르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마을길의 풀 하나 베더라도 대가 없이는 힘든 정서다.
몇 년간 공공근로 또는 희망근로라는 이름으로 일자리 창출 예산은 지출되었고
마을은 이제 그렇게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하다.
울력과 품앗이는 이제 ‘귀찮거나 예의에 어긋난 일’이다.
더 이상 ‘같이 한다고’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다.
면민체육대회가 쓸쓸해지는 것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왜 사람들은 점점 공동체 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쓸쓸함이다.

정부 농정의 본질은 폐농이 목적이기에 농사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지원이 활발하다.
마을이 원하는 시설은 조금 버티면 보조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해결되곤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싸구려 지방자치제는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둔 브로커들의 경연장이기에
‘골고루, 공평한 척 먹이는 일’이 사또들의 주요 관심사다.
대한민국이 누리는 풍요의 구 할은 오십 년 전부터 농촌을 쥐어짜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제국은 식민지를 수탈할 수 있었지만 식민지는 고향을 쥐어짤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농촌은 허허로워졌고 농사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었고 농촌은
필요한 국회의원 수를 유지하기 위한 지역구로 존재했고 필요에 의해 항상
금을 다르게 긋는 놀이를 했었다. 농촌은 그 대가로 융자와 지원을 받았다.
사람도 적게 사는 농촌에 퍼부어지는 예산이 아깝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가.
그 예산들이 예나 지금이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있는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곳에 투여되고 있는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나 하는가.
단순하게 귀농과 귀촌 인구가 증가하는 것으로 농촌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생각이다. 시골이 어떤 가치와 문화로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은 없는 듯하다. 맞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함과 당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함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쌀을, 농사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지금과 같은 성격의 변화와 속도를
유지한다면 인구가 증가해도 우리가 알고 있었던 시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건 진보건 이곳을 새로이 찾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내가 들은 이야기의 공통점은
‘우리 모두 삼성이 되자’ 라는 것이었다. 일등이 되자는 것이었다. 특색이 있어야 하고
브랜드 화 되어야 하고 이제 마을도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면 끝장이라는 시각이었다.
그것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으로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면 단연 독보적인 마을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보수와 진보 모두 ‘오래된 미래’ 그 책의 종말을 향하긴 한가지였다.
이룩한 일등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하고 경쟁해야 하는 마을이라…
그런 마을에 살고 싶은가? 2년여 전까지 나는 왜 그리 바보였을까.

시골에서 살고 싶은가?
대부분의 당신들이 넘치고 흘러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이곳 사람들은 알고 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경쟁과 일등이 아니라면,
그 경쟁이 지긋지긋해서 그곳을 떠나왔다면,
단지 면민체육대회에 참석해 주면 좋겠다.
그 오래된 영화의 엔딩크레딧 제일 마지막 어디 즈음에 ‘지나가는 행인 3’ 정도로
당신의 역할이 한정되어도 불만이 없다면 좋겠다.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생각을 토로하는 것이다.











너의 영화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생각이니.
아저씨는 이 곳 언저리에서 영화를 마무리할 생각이다.









4dr@naver.com



공지 지리산닷컴 사진사용에 관해 마을이장 2013.05.24 20374
191 생각 / 10월이네 [67] 마을이장 2012.10.05 9021
190 생각 / 연곡분교 이야기 - 9월 어느 아침 [54] 마을이장 2012.09.21 8638
189 생각 / 연곡분교 이야기 - 개학, 태풍, 전학생 [36] 마을이장 2012.09.06 8826
188 생각 / 17마 9765와 나 [64] 마을이장 2012.08.27 9351
187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그렇습니다. 감성적입니다 [26] 마을이장 2012.08.20 8156
186 外道 / 영산암에서 [69] 마을이장 2012.08.15 8403
185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학교설명회와 여름방학 [21] 마을이장 2012.07.28 7536
184 생각 / 뒷담화 Bread n Noodle 2012 [38] 마을이장 2012.07.16 7482
183 장터 / Bread n Noodle 2012 [39] 마을이장 2012.07.08 7078
182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산행 [95] 마을이장 2012.07.01 8103
181 생각 / 연곡분교, 어느 일요일 오후 [35] 마을이장 2012.06.19 7254
180 생각 / 연곡분교 Healing Camp를 생각하기 시작하다 [41] 마을이장 2012.06.03 7388
179 마을 / ‘나의 두 번째 고향’ - 서울 동부병원과 오미동의 자매결연 [49] 마을이장 2012.05.29 7495
178 생각 / 연곡분교 5월 어느 날 [37] 마을이장 2012.05.24 7333
177 생각 / 연곡분교 - 그런데요오~ [37] 마을이장 2012.04.17 7685
176 생각 / La Dolce Vita - 梅 [25] 마을이장 2012.04.01 7621
175 생각 / 연곡분교 3교시 [35] 마을이장 2012.03.15 9770
174 생각 /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고 싶다고? [37] 마을이장 2012.03.02 17040
173 생각 / 예고편 - '맨땅에 펀드', 우리는 왜? [44] 마을이장 2012.02.22 8665
172 생각 / 온 마을을 비추는 큰 불, 동홰 - 여섯 번째 정월 대보름 [25] 마을이장 2012.02.09 7939
Copyright© 2007. All Rights reserved www.jirisan.com 4dr@naver.com | 지리산닷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