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읍을 벗어 난지 5분이 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방문이 예정되어 있던 잡지사 팀이다.
그들은 연곡분교를 취재할 것이다. 이미 섭외는 되어 있는 상태이니 꼭 내가 동행할 일은 아니다.
통상은 이런 경우 가이드를 했지만 통화를 하면서 나는 차를 멈추지도, 되돌리지도 않았다.
인간의 언어는 ‘뉘앙스’란 미묘한 감정 전달 옵션을 가지고 있는데, ‘제가 꼭 있어야 됩니까?’ 라는 표현은
상대방에게 나의 의중을 전달하기에 적절한 것이었다. ‘저 지금 힘든데요’ 보다 직접적이지 않지만 결국은
‘니들이 알아서 해라’는 본심도 전달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내 갈 길을 가고 싶었다.
통화를 끝내고 구례군 산동면 현천마을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데니슨 위트머Denison Witmer의 Recovered란 앨범을 CD플레이어에 넣었다.
혼자였기에 원하는 만큼 볼륨을 높였다. 앨범 타이틀곡이 Simple Man이다.
원곡을 부른 그래험 내쉬Graham Nash의 목소리는 청명했지만 데니슨 위트머의 목소리는 나른했다.
“I am a Simple Man~” 대부분의 중년 남자들이 그러하듯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제목 부분만 흥얼거리며
살짝 열어 둔 차창으로 들어오는 봄바람을 대책 없이 맞이했다.
오래간만이다. 나에게 불어 온 바람이 아닌 내가 만나러 가는 바람.











19번 국도는 어쩌면 내 인생의 길일지도 모른다.
5년 전에 이 국도의 밤을 달려 서울을 출발한 이삿짐 트럭이 구례로 내려왔다.
그 보다 십 수 년 전 어느 가을날에 이 길을 달리면서 빛나는 들판과 좌우로 펼쳐진 지리산과 섬진강을 보았다.
아주 힘들었던 시절이었고 언젠가는 단순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삶을 산다면 19번 국도변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연함은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기에
책임을 추궁 받지 않을 수 있었고 머릿속 생각은 발설하지 않았기에 부끄러울 필요도 없었다.
산동면 온천지구 조금 지나서 원촌사거리 쪽으로 내려선다. 꽃은 남아 있겠지만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만개를 지났을 것이란 짐작만 한다.
삼성교를 버리고 어색하게 뚫린 좁은 길을 따라 송평마을 입구에서 좌회전한다.
굴다리를 지나면 현천마을 초입이다. 산동면의 모든 굴다리 아래에서는 육십 몇 년 전 어느 날 양민학살이 있었다.
시간은 피를 씻어 내었고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흔적 위를 차로, 발로 살림으로 흔적을 덧씌운다.
그리고 그 위로 산수유 꽃이 피어 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넘어서 현천마을로 들어선다.











구례에서 살기 시작한 지난 5년 동안 산동에서 산수유를 매년 보았다.
형용할 수 없는 장면도 운 좋게 몇 번 만났다. 하지만 꽃 자체로 보자면 오늘 이 순간이 가장 화려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꽃은 다른 해보다 2주일 정도 늦게 피었고 나의 때 늦은 방문은 마치 그때를
기다린 사람처럼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순간에 도착한 듯했다.
현천마을에 들어서면 거의 정해진 동선이 있다. 마을을 오르면서 오른편으로 휘어진 골목을 따라 내려선다.
이 즈음에서 꽃의 상태에 대한 확신을 한다. 잠시 머문다. 꽃과 햇살은 지천인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에 비가 내렸고 개울물 소리는 또렷하다. 그 물소리는 사람의 부재를 확인시켜 주는 듯하다.
길의 갈피를 잡기 위해 골목길을 살피고 계곡 위를 바라본다. 동선을 정하고 움직일 것이다.
발 길 가는 데로 움직이면 되는데 나는 통상 그러하지 못하다.
그것은 성격이거나 스타일이거나 습관일 수도 있다. 때로 계획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지만.











정해진 산책로를 버리고 마을전망대로 향하는 짧은 언덕길을 오른다.
겨우내 움직이지 않았던 몸은 이 짧은 오름에도 가쁜 호흡을 뱉어내게 만든다. 뒤 돌아 본다.
아껴 둔 과일을 꺼내어 먹듯 힐긋힐긋 뒤 돌아 본다. 반대편에도 전망대가 있지만 해가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현천마을에서는 북쪽 전망대에서 마을 남쪽으로 내려서는 것이 좋다.
역광으로 꽃을 바라보며 걷는 것을 권하는 것이다. 같은 풍경 속에서도 해를 바라보는지,
등지고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광경을 만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사진을 염두에 둔 방문을 할 경우 목적지에서 해의 방향을 염두에 두고 이동 시간을 정한다.











마을 북쪽 언덕길에 올라섰다. 잠시 숨을 고른다.
산수유나무 사이로 촘촘하게 들어 선 사람의 마을을 내려다본다.
구례의 산수유 축제는 보통 위안리 상위와 하위, 반곡과 대평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산수유와 사람의 마을이 어우러진 대표 사진은 바로 이곳 현천마을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현천에서는 꽃구경을 나선 나와 같은 이방인들의 거대한 무리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
한적함에의 갈구. 결국 홀로 나선 길에서 희망하는 것은 고요함이다.
그 가운데서 뜬 구름 같은 ‘그 무엇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유보했던 생각을 끄집어내고
미루어 두었던 고민의 갈피를 넘겨보는 것. 생각과 고민을 객관화해서 내가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길.
그 길을 찾는 것이고 나는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다.











언덕길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선다. 드문드문 늦은 매화가 피어있다.
그 모든 것은 햇살에 빛나고 마을은 꽃을 울타리로 낮게 자리하고 있다.
멀리 맞은 편 산허리를 두 사람이 내려서고 있었다. 실루엣의 느낌은 마을사람들은 아니었다.
한가로운 여행자 이미지였다. 그들도 나를 보았을까. 카메라를 들어 그들의 순간을 잡아둔다.
그들과 내가 마을길에서 마주치더라도 물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 그들의 이미지는 미래에도 같은 모습이다.
그들은 사진이라는 박제 속에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점이다. 모습은 보였지만 소리는 없었다.
그리고 꽃 천지.
이 꽃 천지 속에 꽃향기는 없다. 산수유는 향기가 없다. 그래서 나는 산수유를 벙어리 꽃이라 부른다.
산수유는 꽃 속에서 작은 망울이 다시 터지는 아우성 같은 벌떼 작전을 구사하는 꽃이지만
향이 없으니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이 많은 노랑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햇살은 대단하다. 눈에 모두 담을 수도 없는 저 많은 꽃들 사이를 관통한다.
색色은 빛의 파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색은 결국 우리가 빛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자연의 배려다.











나는 전라남도 구례에서 이불을 덮고 살아가는 스스로 늙은 웹디자이너이고 이제 그 일에 지쳤고 지겹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하다. 지난 12년간 우리 가족이 먹어 치운 밥그릇의 대부분을 책임진 일에 대해
지겹다는 표현은 헤어지는 마당에 할 만한 고운 소리는 분명 아니다.
세상의 모든 밥벌이는 지겹고 숭고한 두 얼굴을 가지고 있기에 밥벌이의 지겨움을 논하는 것은
김훈 선생만이 독점한 것은 아닐 것이다.
3월 들어서 나는 별 다른 대책 없이 더 이상 ‘웹디자인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선언이라는 말이 좀 거창하지만 본질은 이른바 ‘업자’로서 기존의 ‘거래처’에 메일로 통보하고
주변에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내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먹고 살껀데?’ 라는 질문은
필연적이지만 ‘어떻게 되겠지’ 라는 무성의한 답변만 준비해 두었다. 뭐 준비랄 것도 없지만.











하루 전,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지루하게 끌어오던 사이트 디자인을 끝낼 수 있었다.
물론 수정 요구가 있겠지만 당장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약속한 두 가지 정도의
사이트가 남아 있지만 연이어 작업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쉬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3월 말이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매화가, 북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산수유가 화전花戰의
절정을 치닫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구경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이러니다.
꽃 필 때 꽃놀이하고 단풍 들 때 단풍놀이 하려고 서울을 떠났는데 사람 사는 장소가
일상의 여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갈수록 놀이에는 게을러지고 벌이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인간은 ‘성실과 근면’에게 항상 열등감을 느끼도록 유전자 조작이 된 것이 분명하다.
스스로 제일 우스꽝스러운 것은 일이 끝난 늦은 밤에 ‘산동 산수유’, ‘광양 매화’ 같은 검색어로
꽃의 상황을 체크하는 내 모습이다. 남북으로 20분만 달리면 그곳에 당도하는데 ‘오늘 날짜 포스팅’을 한
서울 사람들의 꽃구경 이야기로 내가 사는 곳의 꽃소식을 가늠한다.











돌아서서 마을 북쪽 전망대로 향했다. 걸음을 멈추는 경우가 많다.
불야성을 이룬 큰 도시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면 ‘저 많은 불빛 속에 내 집 하나 없단 말인가?’라는
자조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이런 마을을 내려다보며 ‘어디 빈 집 없나?’ 하는 상상은
미래를 채근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멀리 마을 가운데 길로 마을 주민 한 분이 걸어간다.
집과 차는 보았지만 사는 사람은 처음 본다. 그리고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 현천玄川마을. 구례군의 북쪽 끝에 있다.
서쪽으로 견두산을 넘어서면 곡성군 고달면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전북 남원 시와 맞닿는다.
화순 최 씨가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조선 초기였을 것이다.
마을 뒷산인 견두산이 '현(玄)'자형으로 되어있고 마을에는 풍부한 내川가 흐르니
산과 물의 아름다움을 빗댄 마을 이름일 것이다. 우리말로는 '개머내'라고 부른다. 예쁜 이름이다.
거리로 보자면 구례읍 보다 남원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남원과 구례에 속하기를 반복했다.
산동 사람들은 그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도 토박이 산동 사람들은 구례와 산동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물론 우리 근대사의 질곡을 피해가지 못한 산동의 아픔이 워낙에 깊었기에 그 구분은
공격적이라기보다 방어적인 속내가 있다.











산동면은 산수유山茱萸다. 꽃은 구경하는 것이고 돈은 열매가 담당한다.
열매는 주로 한약재로 나간다. 산동사람들의 경제에서 산수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높다.
몇 년 전에 현천을 처음 방문했을 때 산수유나무를 두고 ‘대학생나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큰 산수유나무 한 그루면 자식들 등록금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산수유 열매의 값은 빛깔과 육질로 결정된다. 맑은 붉은 빛이 도는 것을 최고로 쳐준다.
껍질이 두꺼워야 살집이 풍부하다. 중국산이 들어오기 전에 산동 사람들 주머니가 두둑하고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었던 원동력도 산수유였다.











산동면은 구례군에서 유일하게 면 단위 오일장場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도시 사람들의 눈으로는 ‘이게 장이야?’ 라는 말이 나올 만큼 소박한 규모지만 중요한 것은
여전히 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일과 7일이 산동장날이다.
산동장의 시작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산동에서 구례를 가나 남원을 가나 어차피 오십 리 길이다.
마을 수로 보자면 산동면은 오십팔 개의 자연부락을 거느린 구례에서 ‘질로(제일) 큰’ 마을이다.
그래서 독자적인 장이 가능했을 것이다. 전라도닷컴 김창헌 기자의 이전 기사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산동이나 되니까 여태 장이 서고 있는 거여.”
현천마을은 산수유 이외에 감과 밤, 양봉을 많이 한다.
꽃이 이렇게 지천인데 벌이 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전망대를 떠나 마을 안 길로 내려선다.
현천마을이 산동의 다른 마을보다 마음 속 깊이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산수유 때문만은 아니다.
산동면 전체가 3월 중순 이후로 노란색 천지다. 현천의 매력은 마을입구를 제외하고는 별 다른
‘예산’이 투입하지 않은 탓에 비교적 마을의 원형을 보전하고 있는 것이다.
돌담이 흔하고 마을길들은 구불하다. 청복淸福이란 것이 현세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이런 마을길을 걷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거리는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마을 할머니들의 말씀은,
“여가(이 마을이) 뭐가 그리 좋쏘?” 라는 것이다.
꽃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적인 사람의 살이다.











현천마을 주민들은 외지인들의 방문에 익숙하기도 하고 무감하기도 하다. 마을은 산과 좁은 밭에
의지하고 있고 비료를 옮기느라 분주했고 그래서 마을 안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골목길에 어르신들이 경운기와 걸음으로 느릿하게 들어서는 것을 보니 점심 무렵인 모양이다.
비교적 젊은 아주머니 두 분이 좁은 돌담길을 걸어 올라오는 나를 내외하며 지나친다.
여인들은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한다.
“오늘이 우리 장인가? 갈치 쪼가리라도 거시기 혀얄텐디.”
우리 장. 구례읍내 장과 구분하는 것이다. 역시 산동이고 현천이다.
꽃은 만발하고 아는 사람만 아는 그 까칠함이 좋다. 그것이 산동의 속 깊은 매력이다.











현천마을 남쪽으로 걸음한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지나 방문객이 들어서면 안될 것 같은 산수유 군락지로 스며든다.
깊숙하게 걸어 들어가 몸을 돌려 해를 마주한다. 오래되었지만 여전한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낮은 돌담의 눈높이에서 하늘로 뻗은 산수유나무를 바라본다. 나무는 각질이 두텁고 거칠다.
자체로 그로테스크하거나 고대적 풍모가 느껴진다.
그 거친 각질 속에 이렇듯 화려한 꽃을 품고 있을 줄이야. 인기척이 들린다.
산수유 숲 속에서 나물을 캐고 있는 아주머니다. 더 이상 들어서지 말라는 사인이었던 모양이다.
이방인은 이즈음에서 숲을 벗어나는 것이 예의다.











숲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개울을 두고 마을길을 내려간다.
멀리 산이 병풍으로 펼쳐진다. 지리산이다. 노고단 서쪽 경사와 산의 북서쪽 능선인 만복대를 지붕으로 이고 있다.
이런 장면 앞에서는 대개 호흡을 깊게 한다. 겨울이 오면 현천마을에서 백발의 산을 대면할 것이다.
2004년 통계로 보자면 현천은 마흔일곱 가구 일백스물세 명이 살고 있다. 절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여순사건과 6.25 동란 때에 80여 가옥이 전소되었고 국군에 의해 23명이 사망했으며
6.25 때는 북한군에 의해 3명이 사살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지리산 자락에서 5년째 살아오면서 지리산을 거의 모르고 살았다.
어쩌면 꼭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사는 것 자체로 위로받았다. 나의 일상은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머리를 돌려 동쪽을 바라보면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때로는 거대한 흰색으로 때로는 연약한 연두색으로 때로는 짙은 초록으로 때로는 불타는 홍조로
때로는 그 모든 색으로 그렇게 서 있었다.
나는 산의 서편 자락에 기대어 있었고 산은 사방과 팔방으로 뻗어 있었다.
그 둘레로 다섯 개 시군이 있다. 구례, 남원, 함양, 산청, 하동이다. 대략 이십여 개 읍과 면,
백여 개의 마을이 큰 산에 기대어 살림의 터전을 마련해 온 것이 천 년이 넘었다.











산수유 꽃그늘 아래에서 그 길고 깊고 무한한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행을 생각했다.
이곳 구례를 떠나 시골버스와 도보로 지리산 둘레 300km를 사계절 일별하며 여행하는 것은
분명 5년 전 서울을 떠날 때에는 ‘당연히 해야지’ 라고 염두에 두었던 미션이었지만
결국 아직까지는 미션임파서블이다.
그 여행을 2011년 지금부터 시작하자. 때로는 길동무도 부르자. 지금까지 지겹도록 보았던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이면 피하고 만나기 힘들었던 독립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자.
할 수 있을 거야. 당신이 아닌 나를 위해.











나만 그런가? 대개 마지막에 들었던 노래를 자동적으로 흥얼거리게 된다.
현천마을을 걷는 중에 계속 흥얼거리고 있었다.
“I am a Simple Man~”
나는 이제 더 이상 여행을 미룰 이유가 없다.







위 플레이어를 멈추고 아래 Graham Nash의 동영상을 잠시 감상하면서
원곡과 비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뱀발>
오늘 이 인간 글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이 글을  보는 사람과 내가 지금 처음 만나는 관계란 설정 때문일 것이다.
아래로 그 날 현천에서의 찬란했던 산수유 사진을 내려둔다.












































































































































































































































































































































































































































































































현천마을에서 먹고 자는 문제
현천마을에는 숙박시설이 없다. 그 흔한 펜션도 민박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마을 분위기가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숙박을 원한다면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산동면의 온천지구와 위안리 상위와 하위마을의 민박과 펜션을 이용할 수 있다.
아니면 아예 버스를 타고 구례 읍내로 돌아오는 것도 한 방편이다.
산동온천 때문에 산동면 소재지와 온천지구에 많은 식당이 있지만 영락없는 관광지 식당의 전형이라
딱히 권할만한 곳은 없다. 온천지구 입구 오른편 '은행나무집'의 흑염소 탕이 권할 만 하지만
모든 사람이 열광하는 메뉴가 아니라 좀 거시기하다. 갈치조림 등의 메뉴도 있다. 미리 전화하는 것이 좋다.
061-781-6006. 2011년 현재 염소탕은 12,000원이다. 부추와 들깨가 듬뿍 들어간다. 수육과 전골도 있다.





현천마을을 벗어나서 늦은 점심을 읍내에서 먹었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제일 자주 가는 식당이라고 보면 된다.
<5일시장작은길 14번지 ‘가야식당’>.
읍내로 들어와서 사람들에게 ‘장터 고추전 거리 팔각정이 어딥니까’ 물어보면 된다.
새벽 다섯 시에 문을 연다. 아침과 점심까지 밥을 먹을 수 있고 저녁밥은 팔지 않는다.
메뉴는 거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들어서서 ‘밥 주세요’ 또는 ‘시락국 주세요’ 하면 된다.
시래기 국 백반이다. 얼마 전에 인상되어 5,000원이다. 저녁은 막걸린데 정해진 안주는 없다.
그날 아침에 들여 놓은 놈이 그 날 안주가 된다. 낙지일 수도 있고 꼬막일 수도 있다.







각설하고 가야식당 시래기 국은 명품이다.
취향에 따라 청양고추를 뿌려 먹거나 이곳 사람들은 젠피 가루를 넣어 먹기도 한다.
반찬도 냉장고에 누워 있던 것들이 아니라 대부분 아침에 무쳐 둔 나물 등속이라
집에서 먹는 느낌 그대로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미 ‘집에서 먹는 맛’을 상실한 시절을
살고 있으니 이런 식당에서 그 향수를 논하는 것이다.
이 날은 조개젓이 짭조름했고 파김치는 알싸했고 취나물은 향긋했다.
상추가 많다고 덤으로 주셨는데 결국 밥 한 그릇을 더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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