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주절거리다

마을이장 2011.03.08 02:20 조회 수 : 6569 추천:130








한 달 정도 이곳의 긴 이야기가 조용했다.
그냥 별 일 없다. 또는 우리의 일상이란 것이 별 일의 연속이기도 하다.
주절거린다. 특별한 일도 없는데, 꽃도 아직 피지 않았는데, 누군가를 인터뷰한 것도 아닌데
그냥 주절거린다.











2011년 2월 13일 일요일.
대보름은 17일이었지만 청년회 회원들이 비교적 시간이 가능한 일요일에 미리 달집 장만을
위한 소집령이 내려졌다. 나갈까 말까 생각하다가 이부자리를 벗어났다.
마을 뒤 똥매산 쯤, 청내 배밭 못가서 어디쯤에선가 나무를 장만하고 있다고 했다.
씩씩거리면서 산길을 오르는데 정식이 형님 트럭이 올라오길래 냉큼 올라탔다.
몇 명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일은 해야하는 것이고. 다른 마을 사람들도 같은 곳에서 나무를
장만한다고 나름으로 장소에 대한 은근한 각축이 있었다.

“지들 마을 냅두고 왜 여꺼정 와서 난리여?”

그래봤자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다.
1톤 세 차 이상의 분량을 작업하고 모두 철수했다. 일을 하다보면 한두 사람씩 올라온다.











작업이 끝나는대로 내려 보낸 나무는 달집 장소로 정한 마을입구 논에 당도하고
그곳에서의 작업은 늦게 나온 청년회 회원과 마을 어르신들이 함께 바로 달집을 세우는
방식으로 시간을 단축했다. 그런 일이 있으면 대략은 나와서 한 마디 말참견이라도 보태는
것이 마을 분위기다. 나무하던 청년회원들이 최종적으로 산에서 내려와서 나무를 부리고,
회관에서 점심을 겸한 먹자타임이다. 원래 찍사는 노역에서 제외 분위긴데 이 날은 조금
일을 했다. 일손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 막걸리 테이블에 참석한 노가다하지 않은
회원들에게 몇 마디 불평을 했지만 대부분은 한쪽 귀로도 듣지 않았다. 아님 말고.











제84회 토지초등학교 졸업식을 맞이했다. 2011년 2월 17일 정월대보름 날이었다.
토지초등학교 다목적실 오전 10시 30분. 조금 늦게 도착했다.
연곡분교에서는 김찬우, 김진우, 한서효 세 녀석이 졸업이다. 그 세 녀석을 보러간 것이다.
식상해서 인상적인 축사가 이어졌다.
‘작심삼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졸업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송사와 답사는 영상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연곡분교를 잊지 마."

하은이의 영상편지가 가슴에 남았다. 하은이는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졸업식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한 녀석이 울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눈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11년 아닌가. 몇몇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졸업식장을 빠져나왔다. 졸업식을 촬영하면서 연곡분교에 대한
1년 기록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 이야기를 기록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17일 밤은 대보름이었다. 아주 추웠고 그 추위는 바람 탓이었다.
추위 때문에 대보름 행사를 서둘러 끝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신밟기도 다른 해와 비교하면 훨씬 짧게 끝이 났다. 달집 태우는 것만 보고 일찍 들어왔다.
아이가 와 있었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학부형이라 가오리 연에 이름 하나 적고 준비한 봉투를 내고
달집에 던져 넣었다. 아이가 이제 고3이다. 그리되었다.
다음 날 천은사를 찾았다. 며칠 머무는데 밥만 먹고 제 각각 할 일만 하고 아이를 보내기는
좀 섭섭했던 것이다. 며칠간의 어느 밤 또는 천은사 숲을 거닐때, 한번 정도는 고3이 된
아이에게 학부형스러운 소리를 하고 싶었거나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입시와
관련한 소리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이상하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아이가 그려 온 몇 장의 그림을 보고 몇몇 화가들을 권해주었다.
벡신스키Zdzislaw Beksinski라는 작가에게 빠져있었다. 게임 캐릭터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이미지에 익숙한 아이에게 당연한 결과로 보였다. 고야의 ‘검은그림’ 시리즈와
브리겔의 그림들, 터너의 풍경화가 네가 구하는 이미지와 연관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를
해주었다. 입시와는 무관한 이야기였다. 소설 ‘장미의 이름’도 권했다.
뭐랄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의 몇 %나 아이들에게 전달이 될까?
우리들 대다수가 생각하는 아이의 성공이라는 것은 거의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유형의 성공을 경험해 보거나 실견한 적이 거의 없다.
우리사회는 거대한 것들이 자신보다 작은 것들을 외소하게 만들고 그것을 점령하고 포식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이대로 굴러간다면 결국 가장 큰 하나만 남게 될 구조다.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양산하는 사회시스템이다. 마을 입구 골목의 구멍가게는
슈퍼마켓에 밀렸고 슈퍼마켓은 중형마트에 밀렸다. 중형마트는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경제적으로 더 큰 실패를 경험해야했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아이가
승리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 이왕이면 내 새끼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처럼 살고 있는 유형의 부모까지 아이에게 그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마음 어느 한 구석이 답답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항상 나의 입은 열리지 않고 기본적인 방침이나 방향은 변하지 않는다.
“네 방식으로 행복하면 좋겠다. 내가 내 방식을 찾은 것처럼.
지금 우리는 이렇게 천은사 숲을 거닐고 있다. 지금.“











2월 25일 금요일 상사 마을회관.
마을에 사는 홍영기 교수님을 모시고 두 번째 마을 강좌를 열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마을 주민들이 자리를 했다. ‘우리마을과 매천선생’이라니! 구한 말의 우국지사 매천 황현의 처가가
이곳 상사마을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15m 앞 집 대문으로 매천이 걸음하였을 것이다.
그때는 복개를 하지 않은 자연하천 상태였을 것이다.
100년 전에 자결했으니 마을 길 어디에 당시에 있었던 나무가 남아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마을에 100년 된 나무 한 그루조차 없는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100년 전의 흔적 하나 남을 수 없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변화에 무감하다.
지금의 마을회관은 2년 전에 지어졌고 40년 전에는 서당이 있던 자리다.
그 현판조차 남겨두지 않았으니 다시 한 세대가 지나면 사라질 이야기다.











읍내 서시천 다리에 연곡분교 유치부와 신입생 모집 플래카드가 며칠째 걸려 있다.
약간 의외였다. 학교측에서 통상 저런 플래카드를 제작할 것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한 장의 플래카드는 뜻밖에 마음을 스산하게 만들었다.
지난 겨울(2010. 12) 어느 날,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귀촌을 결정한 부부였는데
유치부와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아이를 두고 있다고. 혹시 연곡분교가 있는 마을에
빈집이 있다면 알아봐 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런 정보는 알아보기 참 힘들다.
'내 살 집도 마련치 못하고 있는데' 이런 부탁을 실행할 마음의 여유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조만간 기별 드리겠다는 건성의 답신을 보내고 그 메일을 잊고 있었다.
서시천에 걸린 연곡분교 관련 플래카드 앞에서 내 마음이 스산했던 것은 결국 나의
불성실함이 바탕으로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학교가 사라질까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누가 플래카드를 걸었을까?

3월 2일 오후에 한상모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토지면 본교로 옮긴 줄 알았는데 읍내 중앙초등학교로 배치 받았단다. 전화한 김에
바로 찾아갔다. 한 선생님은 분교를 떠나왔지만 분교 상황에 대해서 물었다.
찬서 3학년 한 명, 유림이, 하은이 5학년 두 명, 김한솔, 김연호, 김성환, 김진희 6학년 네 명이다.
입학생이 한 명 있었지만 본교로 내려와서 다니기로 했단다. 유치부는 결국 사라졌다.
3명이 있었지만 2명은 자진해서 본교 유치부로 옮겼고 찬서 동생 찬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3, 5, 6학년 모두해서 7명이 2011년 연곡분교 아이들이다.
한상모 선생님과 바람 부는 학교 주차장에 서서 10분 정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서시천 프랭카드는 학교에서 달았어요?"
"아뇨."
"그럼 누가 달았어요?"
"제가…"











전반적으로 2010년의 피로감이 남아 있었다.
도시에서와 다르게 이곳에서는 간혹 대책 없이 퍼질러 앉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여전히 슬럼프에 빠져 있는 상태일 것인데 이미 완료했어야 할 일들에 대한 압박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오늘(3월 7일) 오후에 며칠 만에 사무실이 있는 오미동에 발을
들여 놓자마자 예산사업을 나에게 맡긴 형님과 마주쳤다. 진작에 나를 닥달했어야 하는데
간만에 본 나를 보고 말문을 여신다.
“(사이트)언제 연다고 하까?”
“군청에서 연락와요?”
“잉.”

더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떤 긴장감으로 나를 몰아세우기는 힘들 것 같다. 뭐랄까, 생활의 일관된 자세 같은 것.
그것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순간의 집중력으로 파도를 넘는 방식은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일요일은 늦은 장을 담구었다.
수평댁이 보이길래 소금과 물을 맞추는 것에 대한 코치를 부탁드렸다. 이 역시 음력 정월달을
넘긴 일이니 정해진 시기를 놓쳤다. 그러나 담아야 하는 일이다.
농부. 농부의 움직임이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면 오십을 바라보는 현업 디자이너의 작업이란
것은 힘들 것이다. 영화 <마농의 샘>에서 이브 몽땅이 한 대사가 생각난다.
‘농부는 곱추가 될 수 있지만 곱추는 농부가 될 수 없다.’
농부가 된 디자이너. 농부처럼 된 디자이너.
장을 담고 집 뒤 산수유 나무와 매화나무를 바라고 카메라를 들었다.
월인정원에게 ‘살짝 피었다’는 소리를 들은 다음이다.











3월 7일 월요일. 역시 일은 하지 않았고 연곡분교를 향했다.
유치부 교실 앞 수납장이 없어졌고 아이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2010년 찬서와 하은, 유진의 교실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들린다.
교실을 옮기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면 1층에 3명의 아이가 있고 2층에 4명의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전부다.
잠시 머물다가 그냥 떠나왔다.











오를 때 봐 두었던 곳에서 차를 멈추었다.
오를 때보다 오후 빛은 더 기울어 있었다. 흙의 색을 보면 계절이 보인다.
땅이 풀리고 농부는 경운기로 산 위의 농장을 오르내린 모양이다.
구불하게 이어진 선연한 흙길을 바라보니 조선 사람들은 황톳길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끼도록 유전된 모양이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지금 보고 있는 이 장면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마지막이다.
외곡리에서 남산마을까지 군데군데 포클레인만 네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잠시 황톳길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많이 불었고 햇살은 따스했다.


술 잘 먹는 사람

우리 아버지는
술을 잘 잡수신다.
어른들은 우리보고
커서 술을 먹지 말라고 하는데
술 먹지 말라고 한 사람이
술을 더 먹는다.

사북초등학교 5학년 하대원 /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 보리출판사 2006년


아이에게 '늦게 자지 마라'고 말을 했다.
나는 오늘도 늦게 글을 만들고 있고 내일 또 늦잠을 자겠지.
장날이네. 반찬을 좀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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