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계획, 고민, 몇 가지 알림

마을이장 2011.02.06 17:01 조회 수 : 7924 추천:150








1월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1월은 2010년 12월의 연장이었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했다.
일상은 지켜질 수 없었고 계획까지는 아니었지만 팍 놀고자 했던 구상은 무망한 것이 되었다.
두 종류의 곶감박스를 디자인해서 급하게 전해주어야 했고 다른 몇 가지 소소한 일들을 처리했을 것이다.
나는 광주와 구례, 구례와 구례 속을 바쁘게 오갔다.
결과론적으로 별로 많은 일을 하지 못했고 놀지도 못했는데 바쁜 일상이었다.
지난 12월에 일로부터 탈옥하기 위해 제주도 행을 계획했지만 1월로 미루었고 1월에도
그것은 공상에 불과했다.











1월 2일 오후에 오미동 숲길을 산책했다. 그렇게 목적없이 걷는 일은 드문 일이다.
추운 겨울이다. 구정 무렵부터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으니 사무실에 물이 나온 것이
한 달이 넘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어떤 마감이나 휴식을 원했었다.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도 남들처럼 재충전도 하고
뭐 그런 과정을 거치고 싶었다.
서류상으로 정해지진 않았지만 2011년에 나는 최소한 세 권의 책을 쓰야한다.
이제까지와의 양상과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야 하고 내 스스로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에 걸맞는 절차와 과정은 역시 사치스러운 구상이었다.
지난 가을에 누군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왔고 답했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 글은 언제 쓰세요?"
"납품하기 전에요."











청국장, 김부각, 구례를 걷다로 인한 돌발 변수는 일상의 시간배치에 약간 타격을 주긴했다.
가급이면 직접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또는 가능하면 일을
벌이지 않으려고 한다. 대책없이 만들어 놓은 마을회관의 청국장과 김부각 사태의 원인은
'사회적기업' 이라는 신종 새마을운동이다. 이 정권이 권장하는 정책의 하나다.
이를테면 막연한 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니 수익창출과 영업활동을 진행하는
'시골마을법인'이 생기는 것이다. 출자금도 있고 몇 년간의 인건비 지원도 있다.
실적을 보고 그 다음 해에도 해당 마을에 인건비를 지원할지를 결정한다. 그러다보니
이미 스타트라인에 들어선 시골마을들은 뭔가를 팔아야 한다. 청국장이나 된장, 고추장 등은
마을 엄니들에게 익숙한 상품이고 전국의 모든 엄니들에게도 익숙하다는 장단점이 있다.
'지원사업' 열 개 중 열한 개의 공통점은 마케팅계획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리산닷컴이
나섰던 것이지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행스럽게 여전히 재구매 의사가 있을 정도로 맛은 좋았던 모양이라 진땀은 면했다.
마을에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한다고 마을의 자생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약속한 정도만 팔고 중단했다. 청국장과 김부각은 더 있다. 공식판매는 종료했지만 여전히
지금도 하루 한두 건의 메일을 받는다. 언제까지 내가 그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벤트 성격으로 판매한 청국장의 콩은 내 눈 앞에서 키운 콩이지만 판매량이
많아질 경우 결국 콩을 구입해야 한다. 그 원재료까지 지리산닷컴이 보장할 수 없다.
오미동마을사이트가 만들어지면 그곳에서 주문하면 된다. 그런데 그 사이트는 내가 만들어야
하고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다. 예산사업의 데드라인은 2월 28일이다.

포토에세이 '구례를 걷다'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일부 배포를 시작했지만
특정사이트(지리산닷컴) 주민들에게 집중 배부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전에 유가지로 추가 제작하는 방안을 관련자들 식사 자리에서 논의했었다.
추경예산으로 가능할지 2012년사업으로 추진할지는 모를 일이다.
일부 블로거들에게는 배포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잠을 자는 상사마을. 나는 다시 마을개발위원이다.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변명인지 모르겠지만 고사할 방법이 없다. 선원이는 감사로서, 효수는 청년회장으로서
당연직 참여고 전 이장님 철수는 한 해는 마을 일을 쉬고 싶어했다.
현 이장님은 우리마을을 '문화마을'로 꾸미고 싶어한다. 예측과 심중의 발언은 많지만 함구한다.
나는 퇴행을 원하고 우리 이장님은 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고 싶어하신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나를 '개발론자' 또는 '발전론자'로 확정하겠지만 틀린 생각이다.
나는 이제 반성장론자에 가깝다. 2011년은 이런 나의 생각과 마을이 가고자하는 방향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이제 극단을 쫓아 인간관계를 쫑내기에는 내 나이도 적지 않다.
분명한 것은 오미동이나 상사마을이나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상사마을에서 대보름 행사를 한다.

장 담그기와 정월 대보름 행사1박2일프로그램 안내
- 1차 간장  담그기   당일 행사: 2월 17일(목)13:00
16:00 - 17:00 섬진강 낙조를 바라보며 마을길 산책하기 (이장 안내)
19:00 - 20:30 정월 보름 행사 참석 (달집태우기/풍물놀이)
21:00 - 마을회관 숙박가능 (고로쇠 약수물 시음회)
18(금) 07:30 - 08:30 조식가능 / 마을 농산품 판매, 명승지 탐방 (오산 사성암)

집집마다 내어 놓은 메주가 많지 않아 스물일곱 덩어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장 담그기와 정월 대보름 행사를 함께 참여하는 가족단위는 10가구 미만이 가능하다.
대보름 행사 참가는 보다 더 많이 가능하겠지만 마을에서 숙박 가능한 집이 많지 않아 걱정이다.
자세한 것은 아래 마을사이트를 참고하시고 결국은 마을사무장님과 통화를 해야 정리가 될 것이다.

http://www.jangsuchon.net/bbs/view.php?id=eventProgram&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3

이 역시 내 입장은 좀 거시기하다.
왜냐하면 마을사이트를 알고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래도 지리산닷컴을 통해서인 경우가 많은데
결국 내 손님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작년에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소식을 전하니 뭐 별 것 있나. 귀촌과 관련한 생각이 궁금하신 가족분들은
위 마을사이트로 가셔서 신청하시면 된다.
만약 신청하시고 오시는 분이 있을 경우 업소 입구에서 사진박구를 찾으시면 된다.











사무실을 다시 들었다. 두번째 이사다.
1월 22일 하루 종일 크레인은 세 번 약속을 어겼고 결국 오지 않았다.
길바닥에 컴퓨터를 놔두고 돌아다닐 수 없으니 하루 종일 차에 컴퓨터를 잔뜩 태우고 다녀야했다.
내 재산이 데이터 말고 뭐가 있겠나. 우연히 지리산닷컴 사무실을 발견하고 방문할 가능성은 확 낮아졌다.
오프라인 만남에 관한 뉘앙스를 풍기는 댓글을 간혹 접하는데, 같이 늙어가다보면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행사가 아닌 지리산닷컴 스스로 주도해서 대규모 만남을 진행할 계획은 당분간은 없다.
사무실은 여전히 오미동이다. 몇 년간 오미동에 사무실이 존재할 것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제대로 된 지리산닷컴의 오프라인 공간이 마련되어도 나는 저 컨테이너 박스 속에서 일을 할 것이다.











상황이 지나치게 답답했던 1월 어느 날 두어 번 정도 바람을 맞으러 나갔다.
이미 2월인데 나는 눈 쌓인 마을 두 군데 정도 취재하려는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여행이 아니라 거처를 구하러 돌아다니는 일이다.
두 마을 모두 몇몇 사람들이 이곳을 보고 있지만 나는 새로운 거처를 구하고자 하는 생각을
숨기지 않겠다. 어쩌면 나의 생각 이전에 헛소문은 이미 나돌고 있었던 것이고.
아주 강력한 의지로 새로운 거처를 구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집이 있다면' 옮기고 싶은 것이다.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좀 조용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이브 길에는 자연스럽게
눈길이 처음 보는 마을로 간다. 조건은? 개발 가능성이 없는 마을. 가구 수가 적은 마을.
젊은 사람들이 없는 마을(그래야 기획이 없다). 풍광 좋은 마을을 쫓다보면 예산이 뒤따라 오는
경우가 많다. 풍광 좋은 곳은 그 시기에 놀러가면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개인적으로 '빈집 정보'를 원하는 메일을 더 이상 나에게 보내지 않았으면 한다.











2010년 12월 21일 연곡분교.
상사마을 전 사무장네(아, 음력 12월 31일에 득남했다)가 기증할 도서가 있어 연곡분교를 찾았다.
한상모 선생님과 아이들(3학년 유림이, 하은이 2학년 찬서)이 체육수업을 진행중이었다.
치고 받고 달려야는데 인원이 안된다. 그래서 공을 치기만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재미있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무장이 긴급 투입되었다.
사무장이 치고 아이들이 받는다. 최소한의 팀이 구성되었다.











아이들이 웃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나도 경기에 참가했다.
몇십 분 동안 치고 달리기를 반복했다. '상대'가 있어야 아이들의 승부욕도 생기는 모양이다.
'천국의 아이들' 이라는 수식은 어른들의 감정이고 아이들은... 외롭다.











2011년 유치부 인원이 1명 또는 2명 부족하다. 1명이 흔들리고 있어 그렇다.
이 날 방문했을 때 이 사실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날의 사진을 보면 내 가슴도
먹먹하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알리지 않았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작은학교는 계속 되어야 한다' 이지만 아이들과 학부형들의 생각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딜레마다. 나는 지난 2개월 동안 간혹 이 문제를 생각했다.
학교와 아이들, 부모님들의 허락을 구한다면 나는 연곡분교이야기를 기록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진행 중에 만약 폐교라는 결정을 만나게 된다면 내 마음이 아주 힘들어질 것은 분명하다.
유치부가 존속하지 못하면 그 다음 해 신입생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한 해 정도 시간이
지나면 폐교는 필연적이다. 오늘 이곳에서 연곡분교 유치부에 입학할 학생을 구하고자 한다.
문제는 귀촌 의사가 있는 가족이 있어도 집이 문제다.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줄 여력은 없다.
시간은 촉박하지만 일단 비어 있는 민박 등을 임대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고 구례에 거주하면 된다.
문의는 연곡분교로. 월요일이 개학이다. 졸업식은 2월 17일이다. 데드라인은 2월 28일이다.
최근에 이곳에 가입하신 분들이 연곡분교를 잘 모르신다면,

http://www.jirisan.com/bbs/view.php?id=mountain&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33

오후에 연곡분교 한상모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한 선생님은 본교로 내려갈 것이고 다른 선생님이 분교로 임직할 것이다.
학교전화 061-782-6124, 손전화 010-8824-2916











2월 5일 오전 10시 신월리 신촌마을.
설날 점심 무렵에 부산에서 출발했고 7시간 30분만에 구례에 당도했다.
4일은 거의 하루 종일 뻗어 있었다. 그렇게 뻗어 있기도 오래간만인 듯 했다.
하지만 며칠 전 읍내에서 보았던 포스터는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신월리 잔수농악이 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뭔 행사에서 쬐끔 들었던 그 '소리들'이 탁월했다. 제대로 한번 보고 싶었다.
당산제만굿과 마당밟이굿을 진행했다. 물론 모두 마을사람들이다.
마을농악대로는 대규모다. 삼십 인이 넘어 보인다.
농악은 관객이 없어도 '두드리다보면' 제 흥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놀이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이 날 행사의 대부분을 지켜보았다. 촬영은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
영상기록팀이 대규모로 와서 작업 중이었고 나는 이 날 '감상'이 주요한 목적이었다.
제 흥으로 끝없이 놀 수 있는 농악. 스스로를 위한 樂이다.











연로한 상쇠를 보조해서 도보 중에는 주로 세컨드 상쇠가 일행을 이끌었다.
쇳소리가 메마른 겨울 하늘을 가로질렀다. 청량했다. 그는 그의 소리에 스스로 빠져있었다.
소리는 간명했다. 간명해서 멀리 날아갔다.

내 나이 금년에 마흔아홉이다. 아홉수다.
뭔 길흉에 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홉수에 힘들었던 기억이 서른아홉 때였다.
그해 가을에는 줄창 해운대 바다사진만 찍었었다. 막상 마흔이 되었을 때에는 별 느낌이 없었다.
쉰의 문턱에서 금년 내 가슴앓이가 제법 있을 것이란 예감을 한다. 그래서 좀 더 간명해지고 싶다.
작년 가을에 책을 낸 이후 이곳의 주민 평균 연령이 낮아졌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장 뜨거웠던 시절에
우러렀던 조각가 김복진 선생과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이 세상을 떠난 나이보다 10년을 더 살았다.
내 인식 속에 그 분들은 세상의 큰 스승이자 어른인데 그들의 마지막은 마흔이었다.
이곳에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우리들은 같이 늙어갈 것이다.
2011년은 좀 더 매정하게 일을 거절하고 제 흥으로 즐거운 시간이어야 한다는 계획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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