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0일 목요일 am 8:45.
대략 아침 8시 30분에 셔터를 올린다고 했다. 업무 시작은 9시부터다.
역시 추운 날이다. 2010년에서 2011년으로 이어지는 이번 겨울은 춥다.
지난 연말에 225,000원을 주고 보일러 기름 한 드럼을 넣었다.
12월 초에 넣을 때는 205,000원이었다. 기름이 아까워서 그런지 이부자리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시골에서는 겨울이면 확연하게 마을 전체가 늦잠이다.
날이 갈수록 다양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자동차의 시동을 켜고
천천히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리고 천천히 텅 빈 길을 따라 이동한다.
청천초등학교 담벼락에서 좌회전을 한다. 항상 주의해야 하는 길이다.
바로 우회전해서 농협 창고 앞에 주차한다. 집에서 2분 정도 거리다.
구례군 마산면우체국. 오늘은 하루 종일 이곳에 머물 것이다.











박임순. 70년 생이니 우리나이로 마흔둘이다.
우체국 근무 16년째다. 마산우체국에서만 11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녀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내레이터narrator다.
우리는 그녀를 통해 시골우체국의 평범한 하루를 관찰하게 될 것이다.
8시 30분까지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한다. 정리하고 나면 6시 20분 경에 퇴근한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렇다.

그녀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제법 오래 되었다.
내가 잠을 자는 마을에 살면서부터, 마산면우체국을 이용하면서부터,
또는 어느날 불현듯 그녀는 내가 '확실하게' 인지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확하게는 우체국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그때마다 나는 '아, 그 사람!' 이라는 인식을 한다. 택배를, 우편물을 부치고
돌아서서 나오면 다시 그 사람은 잊혀진다. 그런 상황은 반복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미 '아는 사람'이 된다. 항상 묻고 싶었던 것을 먼저 물었다.

"원래 목소리가 그렇게 커요?"
"아뇨. 저 원래 여자답고 그랬어요."
"에이..."
"진짠데. 공주꽌데..."











거의 나와 동시에 들어 선 남자 어르신 한 분. 박임순씨가 묻는다.

"엄니 어디 갔어요?"
"대가리 짤러갔어."
"대가리가 뭐요! 하하하. 자른다니까 살벌하자녀."

바로 옆의 유춘자헤어코디로 들어가시던 그 분이 안사람인 모양이다.

봉지 커피는 대부분의 일터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시그널이다.
커피 한 잔을 받아 앉아서 제 각각의 일을 시작한다.
마산면우체국의 인원은 3명이다. 창구의 두 여직원과 우체국장님.
설을 앞두고 우체국은 정중동의 전쟁을 준비중이다.
감과 배가 역시 지역의 특성상 화두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

"감이 없어. 다마가 작아분디 있것소.
"그래도 아무리 안나간다해도 (구정에는)천오백 개는 나가지."

뚜렷한 목적을 가진 방문이 아니라 일상적인 방문인 듯 했다.
물량을 체크하고 동향을 파악한다.











별 생각없이 우체국을 이용했는데 우체국장님과 커피 때리면서
나눈 한담 속에서 '나에겐 새로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시골 면 단위 우체국장은 별정직이다. 국장님 말씀으로는 '영원히 근무' 하고
직책을 '세습'할 수 있는 자리다. 오래 전부터 우편업무는 필요한데 마을마다
우체국을 신설할 예산이 없었던 정부가 민자유입 형태로 면단위 우체국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해당 우체국의 부동산은 개인소유인 것이다. 괜찮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우체국의 공사화 계획이 있는 모양이다. 돈이 되니까.
마산면은 연간 몇천만 원이라도 벌어서 준다. 손실이 발생하면 우체국에서 보조해 준다고 한다.
전라남도 123개 우체국보다 광화문우체국 1개소의 수익이 더 많다.
국장님 曰, '모든 물량은 위로 올라갑니다.' 그것이 물류의 이치다.

여하튼 마산면우체국의 행정적 개념은 '별정우체국'이다.
대부분의 시골마을 우체국이 그러하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계리직이라고 부르는데 이를테면 10급 공무원이다.
지금의 지역체신청인 우정사업본부에서 시험을 관활한다. 정년은 60세다.
간혹 근무지 이동이 있지만 대부분 관내에서의 이동이고 주로는 업무 특성상
한곳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나 이뤈... 종옥이 형님이 들어선다.
김종옥은 감의 명인이고 우체국 상품으로 납품하고 있는 농부다.

"동상(동생)은 아즉(아침)부터 여기서 뭐 한가?"

오늘 동네사람들 제법 만나게 될 것 같다.
어제 우체국에서 형님 농장으로 주문한 물량이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국장님이 종옥이 형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 양반이 전화 끊고 그대로 망각한 것이다.

김종옥 / 커피를 줘봐. 커피를 묵고 생각해보게.
국장 / 10시 40분에 대께.(우체국 수집 차량을 종옥이 형님 저장고에 보내겠다는 뜻)
김종옥 / 나한테 전달하면 잘 안된단거 모린가?
박임순&유창숙 / 우리는 다 알아! 국장님만 모르지."
김종옥 / 왜 아침부터 혀가 꼬일까... 딱지 줘(우체국 라벨).

곶감 가격이 많이 올랐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좋지 않고 농민들 입장에서는
그냥 그렇고 중간 상인들은 좋을 것이다. 종옥이 형님이 나에게 잠시 설명한다.
대한민국 농산물 중 감이 5천억, 사과와 배가 3~4천억, 나머지가 곶감이란다.
곶감 한개가 감과 배를 앞지른다. 내 생각하고는 많이 다르다. 대한민국 과일의
왕은 감이었다. 이전의 곶감이 아닌 반건시 곶감이 생겼는데 이후로 곶감 수요는
2배 증가했다고 한다.

"곶감 가격이 너무나 오르면 좋지 않아. 수입물량이 생긴단 말시.
곶감 가격 올라봐야 우리는 그렇게 좋을 일 없어. 일단 묵고 살아얀게
있는 물견(물건) 내다 팔긴한데..."

이곳을 보고 계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종옥은 금년에 곶감으로 지난 해의 손실분을
좀 채워야 한다. 얼마 전에 곶감박스를 디자인해 드렸다.

"박스 왔소?"
"오늘 온다는데 와야 오는 거이제."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통장을 '찍고' 입금 확인만 하신다.
그리고 바로 돌아가신다. 아침 햇살이 화사하고 늙음은 확연해진다.
박임순 씨가 냉큼 일어선다.











지난 1년 동안 나에게 인식된 그녀는,
행동이 민첩하고 말씀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기색을 본 적이 없다.
우편물을 개수로 확인하지 못하고 톤으로 오차 범위를 확인한다는
광화문 우체국에서는 불가능한 풍경이다.











처음 구례로 내려와서 이런저런 공공기관에서의 업무 처리 속도 때문에
속을 끓인 일이 여러 차례였다. 이제 나도 그러려니한다.
도시는 도시의 속도가 있는 것이고 시골은 시골의 속도가 있다.
유럽을 여행한 선배가 이전에 북유럽에서 버스표를 끊을 때 풍경을 이야기했었다.
길게 늘어 선 행렬의 대부분은 노인들이었다고 한다. 매표소에서 노인들은
가고자 하는 목적지와 그에 따른 제반 정보를 상세하게 거의 '상담 수준'으로
브리핑 받느라 한 사람이 거의 30분 이상 시간을 잡아먹더라는.
한국에서 간 젊은 여행자는 속이 터질 수밖에 없다.
지연과 지체는 우리 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다.
내가 살면서 느낀 점은, 작은 것들의 장점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밖으로 나와서 담배 한 대 핀다. 멀리 노고단이 추워 보인다.











'매우만족, 구례사랑 마산우체국 박임순입니다.'

박임순 씨의 업무는 아침부터 쉴 틈이 없다.
아침에는 노인분들이 많다.

"커피 한 잔 드리까 엄니?"

대부분 아는 얼굴이라 필요한 경우에는 커피를 권한다.

"아침연속극 다 보고 나왔네. 자재(박스)를 줘.
앞집이고 큰집이고 지난 주부터 나가는디 야덟개짜리.
일다이도 안되고 삼다이 사다이도 안나오고. 이다이 몇 개 되야."
"지금은 차가 안되분디. 점심 지나야는데."
"그럼 안되야."
"경운기 가지고 오시면 지금 실어드릴께요."

마산면은 배 농장이 많이 있다. 아마도 배에 관한 이야기인 듯 하다.
대화 중간에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을 물어 볼 틈이 없다.
일다이('단'이겠지) 삼다이... 는 과실의 등급이겠지.

할머니들의 걸음이 많다. 돈을 찾으신다.
폰뱅킹이나 인터넷뱅킹, CD기를 이용한 입출금은 이곳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기능이다. 고전적인 입출금 용지를 주로 사용한다.

"잘 쓰셨어요."
"못써."
"성함을 잘 쓰시니까 계좌번호하고 금액 쓰시면 나머지는 제가 쓸께요."

창구 업부의 대부분은 방문한 사람이 100% 해결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돋보기를 챙겨드려야하고 무엇인가를 쓰야할 경우는 안내하고 입력할 칸을
확인해 드리고 대필하기도 한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할아버지가 들어 오신다.
할아버지가 불쑥 내 민 용지를 살펴 본 박임순 씨.

"편지온거 할머니 드렸어요. 긍께 이거 필요없어요."
"우체국으로 가야하까?"
"할머니 드렸데!"
"우체국으로 가야하까?"
"갈 필요없다까! 할머니한테 물어봐!"
"우체국으로 가야하까?"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신다. 그런데 헬멧까지 쓰고 계시니 내가 보기에는
상황이 더 답답하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대화가 몇 분간 계속되었다.

"알았어. 미안혀이."

이것이 우체국을 나서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그 말씀이 슬펐다.
진정으로 이해를 하신 것은 아닌 듯 했다. 어르신 스스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을 종료하신 것이다.
이 장면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노인일 것이다.

"어르신들한테 아무리 설명해도 전달이 안되면 어떻게 합니까?"
"해결 못하고 결국 그대로 끝이 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녀는 대한민국 우체국 창구 업무의 최전방에 근무하고 있다.











계속 할머니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공통적으로 고지서 여러 장을 들고 오셔서 설명을 구한다.

"이거는 전기요금. 자동납부영수증이고. 전화요금, 유선방송, 건강검진 팔천팔백 원이네요."
"돈 부쳤다고 전화를 해?"
"예. 지금 들어갔어요."
"긍께 지금 갔어잉?"
"예, 전화하세요. 지금 찾을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침부터 이어지는 '통장 찍고' 돈 찾는
광경이 궁금해서 물었다.

"오늘이 뭔 날입니까?"
"노령연금."
"아, 20일이 수령일입니까."

그래서 아침부터 돈이 들어왔는지 확인하러 나오시는 것이다.
어련히 돈은 들어왔겠지만 노인들의 특성상, 또는 종이로 뭔가를 확인해야
안심하는 세대의 특성상 걸음을 하셔서 확인을 한다. 그리고 몇만 원의
돈을 찾아서 돌아가신다. 며칠 후 장날에 소용하실 것이다.











30분 전에 방문하셨던 할머니가 경운기를 가지고 오셨다.
박임순 씨가 제일 많이 구사하는 표현의 하나는,
'제가 다 해드릴께요.'다. 용수철처럼 일어나서 우체국 옆 창고문을 열고
박스를 밖으로 내어준다. 과일박스는 무겁다. 일손이 빠르다.











잠시 후, '제가 다 해드릴께요' 박임순 씨는 우체국 오전 택배수집차량에
몸을 던졌다. 김종옥의 저온저장고로 오늘 우체국으로 주문이 들어오는
김종옥의 감을 수령하러 직접 이동한다. 우체국장님이 가겠다고 했는데
기어코 '제가 다 해드릴께요' 여사는 무조건 출동이다.

"원래 이렇게 가지러 와야 합니까?"
"아뇨. 원칙적으로는 생산자들이 딱지 작업까지 해서 우체국으로 들고 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지 왜 이렇게 합니까?"
"원칙대로 하면 일이 안됩니다. 농부들은, 어르신들은 정신이 없습니다.
그냥 직접 처리하는 것이 일 중복도 안되고 여러 사람 편합디다."











딱지 붙이고 개수 확인하고 트럭으로 운반하는 것까지 처리한다.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는데 역시 공주꽈 박임순 씨의 목소리가 울린다.

"아, 사진만 찍고 구경만 할꺼요!"
"아 예..."

카메라 둘러 매고 같이 박스를 옮긴다.
뭔 공주가 이렇게 거칠지...











"문맹율은 어느 정돕니까? 잘 아실 것 같은데."
"15~20% 정도?"
"에이... 더 될 것 같은데요."
"일단은 무조건 모르신다고 하십니다. 귀찮은 것이지요.
그래도 일단 거의 이름 석 자는 모두 직접 쓰게 합니다."

뒤에 있던 우체국장님이 거든다.

"돌라묵었다(횡령이나 갈취)고 그럽니다.
글 모른다고 우체국에서 노인들 돈을 어떻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이요?"
"자식들이 그럽니다."
"에이, 뭐 그런 의심을 할까요. 찍어보면 다 나오는데."
"아닙니다. 그럽니다. 저희도 몇 번 고발당했습니다.
그러면 통장 찍고 사본까지하고, 4~5개월까지는 카메라(CCTV)꺼정 들이댑니다.
노인분들이 글을 모르시거나 기억을 못하시니..."

옆에서 역시 '종우떼기'에 뭔가를 적고 있던 젊은 할머니가 말씀을 하신다.

"어제는 밥솥에다 된장을 넣었당께. 정신이 없어. 한심해 내가."











종옥이 형님 저장고 일이 끝나고 트럭은 다른 곳으로 갔고
나는 잠시 집으로 돌아와서 메일 확인 등을 했다. 답하지 않을 메일과
답을 해야할 메일을 일별하고 지리산닷컴의 댓글을 일별한다.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왔다. 박임순 씨는 트럭 위에서 짐을 내리고 있었다.
짐의 임자는 아래에서 짐을 받고 박임순 씨는 트럭 위에 있다.
이런 정도까지 보아하니 박임순 씨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공주였다.

"시기적으로 언제가 가장 바쁩니까?"
"농산물 나올 때는 항상 바쁩니다. 4, 5월 빼고는 항상 바쁩니다."
"그때도 바쁘제(옆 자리의 유창숙 씨)."
"그래도 곡우 무렵이면 그래도 좀 덜하다고."
"구정은 언제 쉽니까? 저도 구정 무렵에 택배 보낼게 좀 있어놔서."
"빨간 글씨 빼고 모두 근무합니다. 집배원들은 어쩌면 2일까지."
"오전하고 오후 중에 언제가 더 바쁩니까?"
"오후가 더 바쁩니다."
"아침에 할머니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은데."
"오후에는 일같은 물량들이 많습니다. 결산도 해야하고."











점심시간이다. 식사는 교대로 한다.
옆 자리의 유창숙 씨가 먼저 식사를 하러 나갔다.
이 즈음에서야 겨우 차분하게 질문을 할 시간이 확보되었다.
박임순 씨는 구례읍에 살고 있다.

나 / 마산면이 고향입니까?
박 / 용방면 신도가 고향입니다.
나 / 물론 결혼은 하셨을 것이고 아이들이...
박 / 5학년(남), 2학년(여) 두 명입니다.
나 / 남편 분은?
박 / 공무원입니다.

대략적인 신상정보가 나왔다.

나 /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합니까?
박 / 그러죠. 하지만 보통은 관내에 있거나 한곳에 있습니다. 저희 일이 그래요.
나 / 이 일을 하시는 이유는?(바보같은 질문이다)
박 / 생계유지죠.
나 / 힘들지 않아요? 이 일.
박 / 힘들다 생각하고 살면 나만 힘들죠. 나는 그렇게 살기 싫어요. 나만 힘들제.
나 / 쭈욱~ 구례에 계셨어요?
박 / 용방초 - 구례북중 - 광주에서 고등학교하고 대학교를 나왔어요.

그녀의 대답은 빨랐다. 두 가지 경우에 대답이 쉽다.
모두 준비된 경운데, 일관된 생각을 가진 경우와 숨길 것이 없는 성격을 가진
사람의 경우가 그렇다.











박 / 고등, 대학 동창들이 애들 데리고 구례 여행오면 놀랍니다.
'너 이렇게 변했냐?' 진짜 원래는 내성적이었거든요."
나 / 아이들은 도시로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박 / 잘하면 가고 못하면 남고. 그런 것이죠. 억지로 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전화가 온다.

"예, 언니. 내가 오늘 안바쁜데 바쁘네. 겁나게."

박 / 애들이 큰도시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램은 있어요.
나 / 구례를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박 / 아뇨. 밥값만 되면 계속 살껍니다. 근데 아이들은 하숙이나 기숙사에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출퇴근하는 일이 있더라도 같이 갈겁니다.
나 / 애들이 혼자 있고 싶다면?
박 / 무시하고. ㅎ
나 / 점심시간이?
박 / 한시부텀 두시까집니다.
나 / 같이 식사하시죠. 약속 없으시면.
박 / 데이트가 있어요.
나 / 아이들 챙기러 가셔얍니까?
박 / 눈치 빠르시네요.

그녀는 집으로, 나는 중국집으로 갔다.











오후 2시 넘어서 다시 박임순 씨의 업무가 시작되었다.
오전보다 확실히 방문객과 업무량이 증가했다. 왜 오후는 오전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일까? 인생의 후반이 그러한 것과 같은 이치일까.
여하튼 우체국의 오후는 거대한 말씀의 도가니 속이었다.
나의 수첩은 알 수 없는 난수표같은 암호문들로 채워졌다.

"고객님 주소 한번 줘 보시겠습니까?"
"분실? 일절 그럴 일 없습니다. 밖에까지 CCTV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전화하셨어요? 아 그래요. 언제쯤 전화하셨을까요? 정기예금?
며칠인지 몰라? 잠깐만요. 주민등록번호 불러주세요. ******-*******
마산리 안계십니까? 어디 계세요? 얼굴 뵌지가 오래된 것 같은데.
제가 바로 전화드리께요."
"점심은 드셨습니까?"
"아침을 늦게 먹어요."
"대체 이해가 안되네.(반복) 비밀번호가 당췌 기억이 안나."
"고객님 수화기 들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어제 그제요? 그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박**님. 맞아, 황전리 사시죠?
제가 바로 조회해서 전화드리께요. (잠시 후) 시흥시 알파테크,
어제 5시 넘어갔는데 문이 잠겨서 오늘 다시 가지고 나갔습니다.
예? 배달하는 순서가 있어요. 어제 오후 5시 넘어갔다고 오늘 아침에
가란 법은 없어요. 예, 감사합니다."
"제가 다 해드릴께요."
"예. 예. 예. 다 발송됐어요. 어떡해! 아침에 1차 발송했는데. 지금은 배가 없어요."
"내용물이?(스님에게)"
"글. 종이."
"요고, 통장정리를 좀 해줬으면 좋것어."
"결산이자만 들어왔네요."
"다달이 우체국으로 들어온게 글케 빠져나가제. 전기세, 위성방송까지 했어.
전화세도 자동납부허게."
"도장하고 주민등록증 가져오셨어요?"
"아이고 팬지가 맨날 날아와쏴."
"여기다가 성함 하나만 쓰시겠어요?"
"여가다가?











"토지청년회서 왔는데요. 감사장하고..."
"예, 전화받았습니다. 제가 해 드리겠습니다."
"이 종우떼기는 버려도 된가?"
"알아서 하십시요. 제가 버리라마라 못하네요."
"그라믄 돈 띠러 안와도 되죠잉?"
"돈만 주고 가께요."
"공과금 이거 같은 날 나오면 안되나?"
"이거는 한나가 뜯어져버렸네요."
"그거이 뭐여? 유선방송? 또 나와야겠네. 정신없어 큰일났네."
"자동납부를 하시죠."
"아이고 그거는... 십오만오천오백육십 원? 육십 원이 어디 있을텐데..."
"서울 강동구 암사동 롯데캐슬아파트... 맞습니까?"

한바탕 우당탕 바람이 불고 잠시 휴전이다.

나 / 일하시다보면 몇 년 사이에 외지인들이 많이 증가했습니까?
박 / 외지인들? 증가한 건 확실하지만 육칠십대 은퇴형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 / 젊은 사람들은 드문니까?
박 / 있긴한데... 첫번째 일 망하고 두번째 일 시작하기 직전? 심란한 분들이네요.

젊은 분(사십대로 추정)들이 우체국으로 들어선다.

박 / 우리 예쁘신 분들 어째 오셨을까요. 커피는 드셨을까?
젊은언니들 / 하하호호 와글와글 이리저리 $$#%^%&(&$#%&*^^*
(박임순 씨의 창구 명패를 보고)
젊은언니들 / 뽀샵을 이렇게 했냐?
박 / 이거 뽀샵아냐! 10년 전에는 이랬어. 내가 이렇게 살아서 그렇지. 아무튼 매일 들리십쇼.











오후에는 CD기를 사용하는 젊은 사람들이 오전보다 많았다.

<원하시는 거래를 선택하십시요.
카드와 명세서를 받으시면 현금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정상처리 되었습니다.>

기계에서 나오는 이 소리를 들을 때면 말없이 네온사인으로 점멸하고 사라지는
거리의, 지하철의 문자들이 생각난다. 그것은 말씀이 아닌 신호.
같은 신호 앞에서 누군가는 마지막 남은 만 원을 인출하고,
누군가는 넉넉하게 남은 잔액을 확인한다.
기계는 제 앞에 선 사람의 감정을, 표정을 인식하지 못한다. 다행이다.

<마.지.막.만.원.입.니.다.힘.내.세.요.>

'헉! 육십네 개 들어왔네.' 창구 손님이 잠시 없었는데 박임순 씨의 헉소리가 들린다.
주문 택배 상황이나 물류 이동 상태를 계속 모니터링해야 하는 모양이다.
오전에 없었던 배 주문이 제법 반가운 물량으로 접수된 모양이다.

"같이 해야제. 업체에서 다 못해요."

휴전도 잠시, 늦은 오후 택배 접수와 창구 손님으로 다시 우체국은 시끄럽다.
냉천댁이 들어선다. 자세가 좋지 않다. 겨울이라 요가 수업을 중단하고 있는데
엄니의 자세가 점점 몇개 월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여그서 뭣허요?"











4:12
"살이 더 빠지셨습니다. 3,300원 주시면 됩니다."
"뭐 찾으세요? 제가 포장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깜딱하믄 다시 올란가 모르겠습니다."

4:29
약간 불쾌한 듯 한 자세로 막 통화를 끝낸 박임순 씨.
나 / 방금 받으신 전화는 뭔데요?(이제 사사건건 참견이다 -,.-)
박 / '사도리 이 누구집에 바우처카드 오면 나한테 전화하라.'
도우미 아줌마가 표준말을 쓰길래 내가...
(좀 더 따끔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 / 바우처카드가 뭡니까?
박 /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 뭔 복지카드 같은건데요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이를테면 독거노인 같은 경우 도우미(사회복지사겠지)를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기록된 카드다. 도우미들을 고용하고 있는 업체들은 이 카드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자체 수익의 주요한 수단인 모양이다.
표면적으로는 '노인분들이 무엇인지 잘 이해를 하지 못하시니' 라는 이유지만
지속적으로 바우처카드 활용 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것이 본심일 것이니
배송 시기를 알면 해당 노인들에게 바로 전화를 할 심산인 것이다.

4:55
박 / 아! 빨간색이 떴잖아. 광집(광주우편집중국)에.
허둥지둥 수화기를 든다.
박 / 구례 마산우체국인데요. 지금 빨간불 보이시죠? 지원 좀 해 주세요.
잠시 후 전화가 온다.
박 / 매우만족, 구례사랑... 네! 송치증 등록 확인 전에 차가 출발했어요.
지원 좀 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나 / 빨간불이 뭡니까?
박&유 / ㅎ

5:35
덤요?
제가 한번 졸라볼께요. 잠시 후에 전화드리겠습니다.
(며칠 전에 수십 박스 과일을 주문한 고객이 이제사 덤을 요구한 모양이다.)
보통 4~50개에 한 개 정도 이야기해요.
2개? 3개까지는 저도 부담스럽고요. 예, 감사합니다.
(다시 전화를 걸었던 '덤고객'에게 전화를 한다.)
구례마산우체국인데요, 5kg 2개만 드릴께요.
내일... 금요일이니까 월요일에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보아하니 일을 미루는 경우가 없다. 우리들이 일상으로 자주 사용하는 말,
'내가 일아서 할께', '밥 한끼 하자', '다음에 보자' 등의 말이 우리들에게
큰 구속력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박임순 씨에게 '말은 곧 약속'이었다.
업무적 특성상 '다음으로 미루면'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 원칙에 충실했고 그것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나는 항상 작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부러웠다.

면 단위 우체국의 택배접수 마감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다.
구례군은 7개면인데 최종적으로 읍으로 물류가 집결한다.
지리산우체국(산동면)을 출발한 차량 한 대가 모두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산동면은 마감시간이 조금 더 빠르다.
수집트럭의 마산면 도착시간이 오늘은 좀 늦다. 5시가 넘었다.
창구에서 택배와 우편물 담당인 박임순 씨의 하루도 저물어 간다.
마지막 짐을 옮긴다. 오늘 더 이상의 택배는 없을 것이다.
이제 마감 결산을 해야하는 시간이다.

"이왕 늦은데 커피 한잔 하고 가세요."

그녀는 수집트럭 아저씨에게 기어코 커피를 권한다.











수집트럭이 떠나고 난 다음에 우체국은 정적이었다.
그 많았던 사람들은 빠르게 돌리는 영상물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미지로 남았다. 나 역시 코를 쳐박고 계속 귀로 날아오는
말씀들을 받아적어야 했던 시간을 마감했다.

"이제 뭘 물어보셔도 저는 암것도 못 듣습니다이."

그녀는 모니터에 집중하고 결산을 시작했다.
나는 하루 종일 받아적은 말씀들을 일별하고 전화기로 지리산닷컴의
댓글을 살펴본다. 댓글이 많다. 사람들은 음식사진에 항상 반응이 높았다.
우리는 하루 종일 노동하고 그 결실을 먹는다.











6시 20분.
박임순 씨가 마산면우체국 셔터를 내린다.
비교적 '한가한 날'에 속하는 2011년 1월 20일의 마산면우체국이었다.











최근의 청국장과 김부각 발송을 이곳 마산우체국에서 했었다.
물론 가격비교 다음에 그리 결정한 것이지만 박임순 씨의 존재가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한 주요한 요인이었다.
오후에 이전 이곳 우체국에서 26년을 근무하시고 정년퇴임하신 분이 방문하셨다.
지나는 길에 커피 한잔하러 들어오신 것이다. 그 분이 말씀하셨다.

"예금, 보험, 대체, 우편, 택배... 잡다하게 다 해야지요.
시골우체국 창구에서 일하는 사람은 시골의원하고 같아요.
그래도 우체국은 즐거워야 합니다."

청국장과 김부각 배송을 마감한 날에 박임순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하필 상사마을 분이 우체국으로 오셨다.
수십만 원의 택배비를 지불하는 모습을 보셨고, 오늘(1. 20 목요일) 다섯 분
정도의 마을사람들이 이곳에 앉아 있는 나를 보았으니 어떤 창조적인 헛소문이
마을에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사진박구가 택배사업을 시작한 모냥이데."
"나도 봤구만."

박임순 씨에게 이런 예상 시나리오를 이야기했다. 그녀는 웃었다.

"헛소문은 빨리 나는데 바로 잡는 소문은 안나더라구요."
"그걸 아시는 것 봉께 촌사람 다 되얐네요."











내려진 셔터 안으로 큰소리로 인사를 날렸다.

"저 갈께요. 오늘 감사합니다."
"예, 내일 커피 드시러 오세요."

2011년 1월 20일 목요일 pm 6:20.
대략 저녁 6시 20분에 셔터를 내린다고 했다. 업무 시작은 9시부터다.
오늘은 하루 종일 이곳 마산면우체국에 머물렀다.
내일부터 우체국에 들어서면 박임순 씨가 말을 건낼 것이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마산면우체국에 가면 항상 그녀가 있다. 박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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