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개학을 했다.
생각보다 개학이 빨랐고 방학 중에 아이들이나 선생님 두 분과 인터뷰 할 것이란
계획은 역시 지킬 수 없는 나와의 약속이었다.







신발이 많다.
은희는 방학 시작하면서 본교로 내려갔는데…









찬이 이제 좀 까분다.
모든 식구가 모였다. 개학 다茶모임을 하는 중이다.
전학생 두 명이 있다. 개학과 동시에. 6학년 다현이와 4학년 다인이 자매.
8월 광복절 지나고 어느 주에 피아골로 이사를 왔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일곱 명이다.











처음 만나는데 카메라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 생각보다 교양 있는 늙은이다.
방학 중에 ‘내 의자’를 옮겼네. 캠핑 온 사람들 때문일까. 나는 원래 자리가 좋은데.
다음에 올라오면 김 주무관님을 한 번 꼬셔봐야지.











부분적으로 글씨가 떨어져 나갔던 학교 간판에 새로 만든 목공예 글씨가 붙었다.
다현, 다인 맘이 직접 만들어서 준 것이다. 이미 지난 7월에 붙여 둔 ‘새로운 간판’이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6월 14일 ‘연곡분교지원단’ 첫 모임을 꾸리던 날 다인이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것이다.
잠시 스쳤다. 집을 알아보러 나가시는 길이라고 했다.
“이 사람은 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귀농귀촌과 관련한 방문을 받는 경우 ‘온다, 안 온다, 못 온다’는 예측을 하곤 한다.
다인이네는 1초의 고민도 필요 없이 ‘온다’였다.











그렇게 몇 번 이곳을 찾았고 임시방편으로 피아골 꼭대기 마을에 집을 구했다.
‘집을 구해야 한다’는 전제가 워낙에 강력한 스타일이었다.
need가 강렬하면 조건을 까다롭게 살피지 않는다. 일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대목이다.











여름 동안의 비로 피아골 계곡의 물은 많이 불었다.
우당탕탕 내려가는 물을 보면 무섭다.
1985년에 지리산 법계사 쪽 계곡을 건너다가 물살에 휩쓸려 내려간 적이 있다.
배낭이 바위에 걸려서 목숨을 건졌다. 보기에는 그렇게 거센 물살이 아니었는데
여름 계곡의 물은 그렇게 위험했다.











태풍 덴빈이 막 구례를 통과한 오후에 연곡분교로 향했다.
오미동에서 하늘이 열리길래 출발했는데 19번 국도를 내려가자 비가 흩뿌렸다.
외곡리 초입에서부터 도로는 심란했다. 나무와 돌맹이가 어지러웠다.
원래 오르던 길을 버리고 신촌에서 다리를 넘어 분교로 향했다.
오른편으로 계곡은 거센 물살이 넘실거리면서 산을 떠나고 있었다.
계곡 주변의 집들이 위태해 보였다.











학교로 들어섰을 때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이미 도로를 따라 올라 올 때 주변 계곡 산의 나무들이 심하게 상한 것은 보았지만
학교의 상황을 더 참혹했다. 반송盤松의 가지가 부러진 것은 차라리 약과였다.
주변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쓰러졌다.











넌 이 상황에서 책이 읽히니?











나무들은 학교를 향해 누워 있었다. 이곳 바람의 방향이 그러하다.
그래도 역시 자연이 하는 일은 우리들의 상상 밖에서 진행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계란 역시 인간의 범주일 수밖에 없다.











사용하지 않는 식당 위의 장하던 나무는 도끼로 팬 듯 쪼개졌다.
얼마나 흔들면 저것이 가능하단 말인지.











이 장면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전반적으로 지리산 서편 계곡의 숲들은 이런 식으로 피해가 막심하다.
마치 성냥개비인 냥 톡톡 나무의 중단을 잘라 낸 것이다.
영화의 어느 장면을 위한 설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직실 아래 나무도 쓰러졌다.
작은 건물을 덮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구례 한전은 전화를 계속 받지 않았다.
사실은 이전부터 공식적으로 나와 있는 번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태풍과 함께 전 군민들이 알게 되었다.
김미행 선생님은 받지 않을 번호로 이틀째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김 주무관님이 조금 전에 구례읍 한전으로 직접 내려갔다고 한다.
나에게 있는 ‘받는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통화가 되었고 학교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30분 후에 한전 긴급복구 차량이 분교로 들어섰다.











정전은 지하수를 사용하는 분교의 단수를 뜻하고 학교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멈추었다.
아이들은 진작에 집으로 돌아갔고 선생님 두 분만 남아 학교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시골은 한전 직원과 자격업체가 같이 작업을 한다. 며칠 동안 만난 한전과 전화국 직원들은
완전히 녹초 상태의 얼굴이었지만 ‘받지 않는 전화’ 때문에 엄청난 욕을 얻어먹은 상태였다.
일은 현장에서 하고 욕도 현장 사람들이 얻어먹는다.
30분 후에 학교 복도가 환해졌다. 내일부터는 수업을 할 수 있겠다.
지랄 같은 시스템 때문에 엄청난 욕을 얻어먹었겠지만 이번 태풍에
정말 수고하신 분들은 현장의 한전과 전화국 사람들이다. 감사합니다.











9월 5일 아침에 분교로 올라갔다.
분교 취재가 가능한 나의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9월이다.
교정의 쓰러진 나무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처리되어 있었다.
하루 전에 장비를 동원한 업체에서 학교 주변의 쓰러진 나무들을 철거한 모양이다.
벚나무는 쓰러진 것은 없는데 가지 손상이 많다.
분교로 올라오는 길 주변 계곡의 숲들이 이미 색이 바랜 모습이다.
뿌리째 쓰러진 경우, 가지가 손상된 경우, 잎 자체가 상처가 난 경우 등으로 인해
볼품없는 단풍이 지고 난 산의 조짐이 보였다.
어쩌면 금년 지리산 서편의 나무들은 일찍 영업을 마감했다.











그래도 수업은 계속 된다.
며칠 동안이지만 1학년 찬이가 조금 외로워하는 것은 숨길 수 없다.
은희는 본교에서 잘 지내기도 하고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흔히 있는 일들로 인해 간혹 울기도 한다는 소식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겠지.











찬서 옆에 동급생이 앉은 것은 찬서 평생에 처음이다.

“찬서는 좋아해요?”
“아직은… 둘 다 약간 독특한 스타일이라… 다인이가 찬서하고 비슷해요.”
“아! (마이웨이 - 방백)”











6학년들은 1층에서 보건선생님과 수업 중이다. 2주일에 한 번 올라오신다.
다현이의 등장은 6학년들에게도 낯선 풍경이긴 하다.
떠나는 아이들은 보았지만 새로이 오는 친구를 보는 것은 사실 처음 아닌가.
나 역시 조심스럽다. 새로 온 친구들이 볼 때 간혹 수업 시간에 카메라를 들고 자신들을
촬영하거나 뭔가를 기록하는 빡빡이 아저씨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여전히 분교로의 전학을 문의하는 전화가 온다.
두 명이 전학 왔다고 하면, “그러면 8명이네요?” 라고 묻는다.
선생님들은 일곱 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지키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TV에 나왔던 두 여 선생님이 내년에도 계시냐고 묻는다고 한다.
한 분은 내려가실 것이다. 그 사실 역시 제도적 결함인데 역시 미안하다고 한다.











2학기 학생회장 선거가 오후에 예정되어 있다.
전학생 다현이가 입후보했다. 직접 준비한 선거벽보가 정성스럽다.
전학이라는 ‘변화’는 아이에게 힘든 조건일 것이다.
그런데 용기를 내었다. 의지를 가지는 것이다.











공사가 다 망해서 아이들의 선거를 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다茶모임 시간 즈음에 김미행 선생님에게 문자를 날렸다.

“출구조사 결과 알려주세요.”
“다현이가 회장, 하은이가 부회장에 당선되었네요.”
“아!”

교정의 장한 벚나무 아래로 이끼가 가득하다.
태풍이 지나간 나무 사이로 개미들이 분주하다.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큰 바람은 개미들의 사회를 엄청난 혼란에 빠뜨렸을 것이다.
간혹,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접하면
나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어제 하던 일.”

개미학교 연곡분교 2학기가 시작되었다.

 

 

 


 

 

 

 

jirisan@jirisan.com

 

 

 

 

공지 지리산닷컴 사진사용에 관해 마을이장 2013.05.24 20364
209 생각 / 옴니버스 - 그녀에게 [18] 마을이장 2013.04.26 13684
208 생각 / 그들은 행복한가? - 윤하네를 보내며 [106] 마을이장 2013.04.23 14590
207 생각 / 봄, 어느 날. 둘 [63] 마을이장 2013.04.10 12140
206 생각 / 봄, 어느 날. 하나 [48] 마을이장 2013.04.10 10926
205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이렇게 또 인사를 하게 되네요.” [43] 마을이장 2013.04.05 10510
204 그곳 / 梅, 가슴을 베이다 [88] 마을이장 2013.03.22 9818
203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새로운 시작 그리고 끝 [66] 마을이장 2013.03.06 8694
202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졸업 [54] 마을이장 2013.02.16 7873
201 마을 / 특선영화 -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72] 마을이장 2013.01.15 9177
200 생각 / 雜새 [58] 마을이장 2013.01.06 7746
199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분교로 가는 길 [38] 마을이장 2012.12.30 7083
198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김장, 밥상을 차리다 [30] 마을이장 2012.12.20 7809
197 外道 / 겨울여행 [53] 마을이장 2012.12.12 7823
196 장터 / 책 - 『아버지의 집』고택 송석헌과 노인 권헌조 이야기 [76] 마을이장 2012.11.27 9932
195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2차 학교설명회 [26] 마을이장 2012.11.23 7477
194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단심丹心 [35] 마을이장 2012.11.01 9151
193 장터 / 2012 쌀밥 모임 & 배추밭 투어 [20] 마을이장 2012.10.19 9914
192 생각 / 연곡분교 이야기 - 9+α [23] 마을이장 2012.10.19 8465
191 생각 / 10월이네 [67] 마을이장 2012.10.05 9017
190 생각 / 연곡분교 이야기 - 9월 어느 아침 [54] 마을이장 2012.09.21 8636
Copyright© 2007. All Rights reserved www.jirisan.com 4dr@naver.com | 지리산닷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