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4일 목요일 오전.

 





연곡분교를 들어서면 나는 항상 인기척을 먼저 살펴본다.
본교로 내려가거나 하는 일이 간혹 불규칙적인 경우가 있고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일정이 있어 학교가 텅 비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차하면서 흘깃 2층의 6학년 교실을 쳐다보았다. 천정의 형광등이 켜진 것을 확인했다.
언제나처럼 주차하고 뒷좌석의 실내화를 꺼내어 들고 계단을 올라 교무실로 들어가서
얼굴을 한 번 들이밀고(보통 아무도 없지만) 카메라를 교무실에 두고 학사 일정이 어떠한지
칠판을 일별하고 1층 일사학년 교실로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없다. 아무도 없다. 바깥놀이를 나갔나? 창 밖 멀리 응시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학교 옆 계곡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는데… 찬서 책상 위에는 흔적이 보이고 1학년 책상은 깨끗하다.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텅 빈 교실. 미래를 보는 것인가.











벤치를 지나 뒷마당으로 다가가자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보인다.
텃밭에 모여 있다. 1학년 교실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실내에서 나는 어떤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텃밭 가꾸기 수업이다. 이제 막 수업을 끝내는 중이었다.
손영미 선생님이 나에게 꽃대가 올라오는 열무를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꽃이 핀 열무는 개인적으로 아주 잘 아는 종목이라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

“싹 다 뽑으세요. 꽃 보시려면 좀 남겨 두시구요.”
“그 다음에는 그럼 뭘 심을까요?”
“콩이죠.”

SBS 촬영팀이 작업 중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향하지는 않았다.











커피 한 잔 타서 벤치로 다시 나가 촬영팀 김PD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4일째 작업 중인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방송 시기 문제가 우리들 사이의 실무적인 화두다.
작업 중이지만 프로그램에서 ‘입장’은 배제될 것이다. 학교와 아이들, 선생님들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보여 질 것이다. 연출하지 않는 조건에서 촬영하기로 했으니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그림이다.
수업 중인 6학년 교실로 올라갔다. 카메라를 달고 산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다.
이제 익숙해졌을까?











김미행 선생님이 카메라 철수를 요구하셨다.
어떤 상황극 같은 수업인데 아이들이 카메라를 의식한다.
친구에게 화를 내고 사과를 하고 여하튼 그런 시추에이션이다.
누가 뭐래도 수업이 우선이다. 촬영팀도 나도 조용히 아웃이다.











1학년 교실로 내려왔다.
찬과 은희가 수업 중이다. 찬서는 카메라 밖에서 혼자 수업 중이다.
개인적으로 이 교실의 빛을 좋아한다. 손영미 선생님의 취향인지 낮 수업 중에는
거의 실내 등을 켜지 않는다. 물론 교실은 충분히 밝다.
1학년 교실에서 나는 교실의 연륜을 느낀다. 그것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퇴적층 같은 것이다.
사진 몇 장 담고 물러난다. 이 날은 늦은 오후에 다시 분교로 올라와야 한다.
연곡분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작은 모임이 출범하는 날이다. 저녁에 그 첫 단추다.











오후 4시경에 빔 프로젝터를 싣고 다시 연곡분교로 올라갔다.
모임의 정확한 명칭은, 「연곡분교장 활성화 지원단(준)」이다.
<구례새학교네트워크>라는 모임이 출발점인데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꾸리고 있다.
연곡분교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 모임이 표방하는 목적이지만 눈 앞에 닥친 문제는
학교 활성화가 아닌 ‘유지 방안’일 것이다. 연곡분교에 관심을 가진 몇몇 사람들은 있었지만
모여서 구체적인 방법론을 모색하는 처음인 것이다.
모임은 2010년 연곡분교 졸업생 정나라 양이 하루 전 밤을 새워 만든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구례여중 3학년이다. 새벽 2시까지 만들었다고 모임에 참석한 나라의 어머님이 부연 설명을 했다.
아래 동영상 플레이 버튼을 누르시면 된다.  로딩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음악이 중복될 것이니 그 아래 오늘 음악 버튼은 죽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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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세요.”

마지막 자막에 어른들의 눈과 가슴은 일순간 멈추어 있었던 것 같다.
역시 영상이나 사진이나 글이나 음악이나 사람의 가슴에 울림을 전달하는 것은 진정성이다.
사진의 나라는 2009년 당시 역시 분교의 유일한 6학년이었다.
무엇이 저 아이가 이런 영상을 만들게 하였을까? 고등학교를 준비해야 하는 바쁜 시기다.
모임에는 지금 정나라의 담임선생님도 참석하셨다. 지난달에 전교 1등을 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한솔이와 다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분교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셨다.
모두 구례여중에서 흐뭇한 칭찬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여수에서 올라 온 20회 졸업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분교 20회’와 나라의 영상에서 ‘토지초등학교 83회’ 졸업생이라는 간극은 졸업장에 새겨진 내용의 다름일 것이다.
20회 종럽생들의 졸업장에는 연곡분교가 아닌 ‘토지동초등학교’라고 인쇄되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연곡분교는 정상적인 하나의 본교였다. 20회건 83회건 바로 이곳, 연곡분교 졸업생들이다.
이외에도 여전히 피아골 계곡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졸업생이자 이전 학부모님들도 참석하셨다.
지금 ‘내 아이가’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대의에 공감하는 분들인 것이다.
그리고 나로서는 뜻밖에도 토지본교 교감선생님께서 참석하셨다.











분교가 있는 평도마을 이장님도 참석을 하셨다.

“10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학부형 의견으로 폐교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학부형만 모여서 결정을 할 사안이 아니라서 지역민과 학부형이 같이 다시 논의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결정을 번복시킨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차암~ 어려운 일입니다.”

역시 힘이 된다. 나 같은 외지 것들 떠들어봐야 눈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사실 별 영양가 없는 인사다.
그리고 거의 구례에 거주하시는 선생님들, 특히 분교를 거쳐 가셨던 박상복 선생님, 한상모 선생님 등이
참석을 해주셨다. 토지초교 학부형 몇 분, 관심을 가지고 계신 외부인들 해서 대략 스무 분 정도가 자리를
같이 했다. 학생 보다 훨씬 많다.
나라의 영상이 끝나고 참석자들 소개가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09년부터 최근까지 내가 촬영한 분교의 모습을
125장 보여드리고 간간히 말을 섞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생각에 마지막에 주장까지 삽입했다.
사실 6월 들어서서부터 지난 10일(일요일)까지 분교의 존폐를 둘러 싼 치열한 물밑 접촉이 있었다.











텅 빈 교실. 아찔하다.
모임이 끝이 난 것은 저녁 9시가 넘어서였다. 가실 분들 가시고 인근에서 뒤풀이 자리가 있었다.
김과 손 선생님 사이에 앉으면서 양 옆의 두 여 선생님들에게 말을 던졌다.

“일요일에 두 분이 펑펑 울었다면서요?”
“어머, 어디서 들으셨어요! 그날 오후에 손 선생님이 결국 (눈물이)터져가지고…”

연곡분교는 2013년에도 문을 연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렇다. 연곡분교는 2013년에도 계속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6월 14일까지 교과부가 제시한 2013년도 작은학교 존폐 여부에 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한이었다. 교육청이거나 학교 측이거나 여하튼 행정적으로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는 입장과 직위가
당연히 있었다. 토지초등학교 전체 학부형회와 논의를 했을 때 의외로 폐교에 반대하는 입장이 많았다.
그래서 비공개적으로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재 분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을
개별 접촉하는 방법이다. 여섯 명의 아이들을 보내는 세 가구다. 2:1이면 폐교건 유지건 결정이 되는 것이다.
일요일 오전까지 명확한 찬성과 반대 1:1 상황이었다. 열쇠는 찬서네가 쥐고 있었던 것이다.
세 명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내년에 하은이가 졸업하면 분교에는 세 명이 남는다.
그 중 두 명이 찬서와 찬이가 된다. 그리고 은희. 찬서 아빠는 자신의 결정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문제로 갈등하고 있었다. 본교에서 일정한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통학하는 아이들에게는 통학비
명목의 지원금이 있다. 매월 삼십만 원정도의 돈이다. 이전의 다른 분교 통폐합 때에도 같은 지원이 있었다.
이번에 결정하지 않으면 이 지원금이 사라질 것이라는 정보를 전달하면서 설득(?)해 온 것이다.
일요일 오후에 서류를 들고 직접 찬서 집으로 방문하기로 한 긴박한 상황이었다.
찬서 아버님이 도장을 찍었다면 연곡분교는 2013년이 있을 수 없었다.
두 여 선생님이 눈물을 쏟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긴박한 순간 백색의 마법사가 등장한 것이다. 오래 된 연곡분교 졸업생들.
그들이 찬서 아빠를 다시 설득한 것이다. 그래서 연곡분교는 6월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드라마 같은 반전이 가능했던 것은 그 사이에 긴박하게 움직인 조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시간을 벌었다. 2013년은 세 명의 아이라도 학교는 계속 될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행복한 상황이 아니다. 외로운 상황이다. 막연히 분교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모임을 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박상복 선생님이 발언했다.

“일단 학생 수가 아닌 학급 수가 중요합니다. 세 학급을 유지해야 합니다.
2013년에는 현재로서는 두 학급입니다. 이대로는 자동적으로…”
“인구조사를 바탕으로 보면 2015년까지 분교로 입학할 아동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여섯 시 모임 전에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데 어떤 여성이 다가와서 ‘이장님?’ 하고 묻는다.
‘아… 사이트 보고 계십니까?’ 경남에서 오셨다. 두 아이를 분교로 보내실 수 있고 빈집을 알아보기 위해서
다시 방문을 하셨다. 모임에 참석하기는 좀 그러하다며 음료수만 놓고 발걸음을 돌리셨다.
연곡분교로 아이를 보낼 수 있고 일가족의 전입을 실행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집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이런 방식으로 연곡분교를 유지하는 것은 힘들다.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고 실현해야 한다.
우선은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지금 제도로는 이곳 아이들이 구례읍으로 전학갈 수는 있지만 구례읍에서
이곳으로 전학 올 수는 없다. 학구제가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 이른바 ‘권장학구제’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것은 구례교육청 결정 사안이다. 스무 명 이하 학급 통폐합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카드를 제시한 교과부
산하의 기관이 이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다음으로 연곡분교 근무 연한을 2년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분교 근무는 벽지학교 가산점이 있어 오랜
시간 머물지 못하게 하고 있다. 가산점을 폐지하면 굳이 이곳에 자청해서 근무하려는 선생님들이 넘쳐날
이유는 없다. 교사들이 스스로 살을 깎는 결정인데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이것은 토지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전결이다.
분교 학부형들의 가장 큰 불만도 너무 자주 선생님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장기적으로는 5년 교육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산골 학교만이 수행할 수 있는 특장을 살린 수업 내용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것은 이후에 자세하게 검토해 보기로 하자. 일단은 단기적 제도개선에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가을에 도와 군의 예산을 획득해야 한다. 옮겨 오고자 하는 가족들에게 주택지원이 가능한 예산을
확보해 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실탄이다. 힐링스쿨이건 생태학교건 평화학교건 우리는 2013년까지
세 학급 이상을 유지할 현실적인 대안 마련을 해야 한다.
학급당 학생 수 스무 명 이하는 강제 통폐합시킨다는 교과부 안 그대로라면 전남, 전북, 강원도 학교의
절반은 사라져야 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수업 중이다. 오후에 다시 분교를 찾았을 때 교무실에 들어 온 찬서는
예의 그 능청스러움과 무심함을 장착한 포스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래간만이네요.”

그래. 네가 6학년이 되었을 때 같은 학년 친구 4명 정도와 함께 있는 사진까지 찍을 생각이다.
그때도 오래간만에 한 번씩 올라 올 생각이다. 찬서야, 힘겨운 며칠이었다.




jirisan@jir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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