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La Dolce Vita - 梅

마을이장 2012.04.01 20:39 조회 수 : 7621








3월 31일 아침 8시 하동역.
구례 집을 나선 것이 아침 7시 20분이나 되었을 것이다. 아들을 배웅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하동에서 창원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서야했다. 칠십오일 정도 아이와 같이 있었다.
스무 살. 열네 살 되던 해에 아이는 부산으로 향했고 우리는 구례로 향했다.
행간에 흐르는 추측과 질문은 그냥 묻어두시라.
하동역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시골 역. 그래 어쩌면 처음 보았을 것이다.
기차를 타 본지 오래되었다. 기차역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고 있었다.
하동으로 내려가는 아침 861번 지방도로에 매화는 향과 빛으로 화사했다.











배웅하고 혼자 구례로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찍었다.
매화를 보러 나설 것이란 예정을 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그 모든 것을
찾아다니고 사진으로 남기는 일에 게을러진다. 지리산닷컴에 뭔가 소식을 올려야 하는
일이 없다면 일부러 매화를 찾아, 산수유를 찾아, 벚꽃을 찾아 길을 나서지 않을 것이다.
토요일이었고 매화는 거의 늦은 만개 상태일 것이니 이 길을 찾을 가능성은 낮았다.
하루 전에 결정된 하동역이라는 변수는 또 나를 매화 향 가득한 이 길로 데리고 왔다.
의지가 없어도 보게 될 놈은 결국 보는 모양이다. 아침 광양 길은 의외로 한산했기에
빠르게 스쳐 지나올 수 있었다.











‘입만 바쁘고 실제로 완료 되는 작업은 없다.’
요즘 주변에 간혹 하는 푸념이다. 아마도 몇 년간 가장 많은 가지 수의 일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작정했고 그렇게 진행 중이다. 예정하지 않았던 밥벌이 일들도 제법 들어와 있는 상태다.
전체 일의 진행에서 대부분의 경우 돈 안 되는 일이 돈 되는 일보다 우선이다.
세상에서 돈을 제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이런 순서로 일이 진행되었던 이유는 아마도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할 일’ 보다 갈급했던 탓일게다.
그 와중에도 내가 지난 칠십오일 동안 가장 우선적으로 챙겼던 것은 아이와 풍산개 별이다.











긴 호흡의 작업을 할 수 있는 마디에서 나는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야했다.
아이 밥을 챙기고 별이 산책을 시키는 일은 스스로 펑크 내지 않기로 작정한 일이다.
사소하고 제법 귀찮은 일들이 나의 일상을 유지시켜 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난 칠십오일 동안 아마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었을 나는,
새벽 서너 시에나 잠이 들었을 것이고 오전 열 시나 되어서 눈을 뜨고 점심 지나서
사무실로 나갔을 것이고 저녁에는 이런 저런 많은 약속들과 손님들을 청했을 것이다.
속옷 빨래는 손으로, 일주일에 두 번의 집 안 청소. 그런 일상들은 밖에서 진행하는 일들과
맞물려 몸을 지치게 만들었고 저녁에는 집에서 책 작업을 할 것이란 계획을 무산시킬 만큼
졸음이 밀려오게 만들었다.
새끼. 기쁨 보다 의무가 먼저 생각나는 존재.
그러나 아이가 없었다면 1997년 이후 내 인생 행로가 얼마나 자유분방하게 날아 다녔을지 상상도 하기 힘들다.
의무는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 때문에 힘들었다’ 가 아니라 ‘덕분에 그 정도라도’ 진행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단 한 번도 나의 의무를 포기한 적이 없는데 멀리서 보기에는
‘제 맘대로 사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모양이다. 심지어 지인들 중 몇몇도 그렇게 보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 지 통장 잔고 제로, 적금이나 보험 여부 제로, 노후 대책 제로인 나, 그런 남자의 아이 등록금을
주변에서 더 걱정을 했었다. 막상 나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에 맞게 돈을 벌거나 강도짓을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아빠를 생각해서인지 아이는 대학을 들어가지 못했다.
지금은 재수중이다. 주변의 걱정은 다시 일 년 미루어졌다. 대학을 가겠다는 결정을 지난 해 5월에
나에게 통보했고 그때나 지금이나 준비는 스스로 해야 하고 지도는 내가 한다.
과정에서 특별하게 돈 들어갈 일은 없다. 금년에는 도시와 시골을 교차하며 그냥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러니 오늘 글로 내 아이의 현재에 대해서 더 이상 질문은 사양한다. 앞으로도 그렇다.
군대를 갈 것이고 대학을 가건 말건 제 인생을 살 것이고 연애를 할 것이고 진로에 대해 고민할 것이고
어쩌면 결혼을 할 것이고 어쩌면 아이를 낳을 것이고 어쩌면 내가 손자를 안고 매화 꽃 향기 속을 거닐 것이고…
대부분의 인생처럼 그럴 것이니 뭐가 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있겠는가.
간혹, 이번에도 아이에게 말했다. ‘나는 너 보다 나를 더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한다. 저녁 뭐 먹을까?’











간혹 개인적인 질문들을 메일로 해 오는 경우가 있다.
‘당신은 아이 이야기가 없는데 자식이 없나?’
‘당신의 아이는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나?’
대략 이 두 가지다. 아이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당연히 내 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특별한 교육 방법도 없었다. 우리는 지난 6년 간 시골에서 살았고 아이는 도시에서 살았다.
홈스쿨링이나 언스쿨링 같은 개념 없다. 대안교육이나 뭐 그런 주제로 치열하게 토론할 생각이 전혀 없고
주요 관심사도 아니다. 솔직히? 그냥 두 사람이 생활하니 편했다.
그리고 이제 아이는 성인이 되었으니 제 알아 결정하고 살아갈 일이다.
그 과정에서 지원해 주어야 할 대목만 책임지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조차 형편에 맞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머리카락을 잘라서 아이에게 어떻게 해 주고 하는 일은 옛날이야기라고 직접 전달했다. 나는 머리털도 짧다.
내 아이가 탁월하다는 사실을 빨리 증명해 주기를 바라는 조바심이 없다면 아이와 부모 모두 편안한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서른에 지금의 오십을 걱정했다면 이 따위로 살 수 있었겠는가.











매화가 만개한 광양 861번 지방도로에서 멈출 이유는 없었다.
같은 날 같은 곳에 줄 서는 차량들이 몰려들기 전에 다압면의 이미지는 차창에만 남겨 두고 곧장
매각마을로 올라섰다. 거의 남도대교에 접근한 위치이니 도로 정체로 고생할 일은 없다.
동쪽으로 해는 이미 제법 올랐고 원했던 빛 상태는 아니었다. 뭐 그래도 관계는 없다.
어쩌면 내 머리 속에는 혼자 기차 여행을 하는 아이의 기억에 다른 그림이 하나 더 새겨질 것이란 생각과
며칠 혼자 지내는 시간의 시작에 앞서 대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각과 비 때문에 하루 전 산책을 못 한 별이가
똥오줌이 급할 것이란 생각과…
별 기대 없이, 단지 몇 장의 바탕화면 용 사진만 건지면 되는 십 분 정도의 상황이 좋았다.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 나의 셔터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진다. 매각마을 언덕길에서 불과 오 분 정도의
시간 동안 이백 장 정도의 사진을 찍었다. 그런 몰입 상태는 순간적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짧다.
그 짧은 순간 ‘달콤한 인생’이란 제목을 생각했다.











금요일은 하루 종일 비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틀 정도 집에서 쉬고 싶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이 시골에 앉아서 수면부족이었고 진행 중인 일들을 분산시키지
못한 상태였기에 마음은 조급했다. 그 조급함을 비에 핑계를 두고 잠시 미루고 싶었다.
오후에 문춘자 헤어코디를 두 번째 방문했다. 앞 손님이 두 사람 있었다.
육십 줄의 여자와 남자. 그리고 구경하는 이웃 여자와 들락거리는 이웃 여자.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 메모장에 그들의 이야기를 훔쳤다.











“딸이 세 갠데 두 개는 보내고…”











문이 열리고,
“볼 일 좀 볼라고.”
잠시 후,
“고마워이잉.”











거울 앞에 앉은 영감,
“살짝만 자를라요.”











“솎아야 돼. 나는 숱이 많아 가꼬.”











“왜 그 술보 있제, 시방 살아 있능감?”











“경래 저거매(경래 어머님) 아즉 안 죽었제?”
“칠십 야덟인가… 아직 각시제. 짱짱해가꼬.”











“어 나여. 시방 이발하고 앉았어. 아 이 사람아 쬐께 예삐게 해 가야제.”











“안센떡! 내가 한 십 년 된가? 정미소 관둔제.”











좀 마땅찮은 표정.
“넘나(너무) 많이 잘라버렸네. 솎아얀당께…”
“이게 정확하게 합의헌 다음에 혀야는데 서로 의견이 맞들 안했네요.”











조용해진 미장원.
두 번째 온 것이 기특했는지 더 신경을 쓰는 문춘자 헤어코디.
“쳐 올려요?”
“예? 예…”
무슨 뜻이지… 9mm 머리카락도 그라데이션이 가능하다는 신공을 보여주었다.
거울 속에 늙은 해병대가 한 명 앉아 있었다.











미장원을 나와서 마누라에게 문자를 날렸다.
“바리깡 하나 주문해라이.”











매각 바로 위 염창마을로 차머리를 돌렸다.
빨리 구례로 올라가야 하는데 뭔가 시각적인 아이템이 부족하다는 생각이었다.
섬진다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차를 세웠다. 지나는 길에 한 번 들러 차 한 잔 하시란
말씀을 기억하고 있지만 다음으로 미루었다.
황톳길을 보면 자연스럽게 카메라가 향한다. 좁은 황톳길은 항상 상상력을 자극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두고 온 내 미래가 있는 듯하다.
수평은 부인할 수 없는 내 디자인의 DNA 코드였다. 바다를 보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구례로 거처를 옮기면서 지리 능선과 마을들로 이어지는 완만한 곡선을 보았다.
그 곡선의 중심에 섬진강과 길이 있다. 이제 시각적 기호로부터 영향 받기엔 늦은
나이지만 기회가 되면 이곳의 곡선을 표현해 보고 싶다.
조각보와 색실로 디자인 한 표지와 판화지 같은 두툼한 종이에 수채화 스타일로 인화한 한정판
A3 사이즈 사진집 같은 것. 솜씨 좋고 마음 통하는, 손으로 책을 매는 이가 있어 끈으로 장정을 하고
오래된 활판 서체로 드문드문 글을 새긴 그런 책. 호사지.











눈앞으로 꽃잎이 쏟아졌다.
그런데 왜 나는 마음이 바쁜 것일까.











그만 머물고 구례로 돌아가자.
내려다본다. 항상 펼쳐진 것을 좋아했다.
한 그루 당 만 개의 꽃잎이 팔을 벌렸고
수백 그루, 백만 개의 꽃잎이 동시에 팔을 벌렸다.











전깃줄. 오직 그것만 거슬렸다.











강물에 걸쳐 진 전깃줄을 지웠다.
그리고 바탕화면용 사진에서는 모든 전깃줄을 지워버렸다.
글을 쓰는 지금은 저녁 아홉 시도 되지 않았는데 눈이 감긴다.
자야겠다. 달콤하고 깊은 잠.

 

 

* 4월부터 바탕화면용 사진 사이즈를 변경했다.

- 1280 * 1024 사이즈. 4:3 비율 모니터를 위한 사진.

- 1366 * 768 사이즈. 노트북을 위한 사진.

- 1920 * 1080 사이즈. 와이드 비율 모니터를 위한 사진.

 

 

 

 

 

 

 


jirisan@jir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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