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만 육 년째인가.
이곳에서 여섯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정월 보름. 역시 두 마을에 걸쳐 있는 일상이다.
2012년 정월 보름은 오미동에서 보내기로 작정했다.











2월 6일 월요일이 보름이었다. 월요일. 무엇인가를 기획하기에 힘든 요일이다.
진작부터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눈이 아닌 비. 금년 겨울에 구례는 눈 구경이 힘들다.
점심 오곡밥 먹는데 창밖으로 눈발이 흩날렸다. 오후가 되고 비로 바뀌었다.
달집이 걱정이다. 달을 볼 것이란 기대는 진작에 접었고. 많이 오는 비는 아니지만 쉽게 그칠 비도 아니다.
오미동 이장댁(男)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도 오고 어두울 것 같은데 그냥 일찍 불 땡깁시다.”
“그라까요.”
“바람은 안부네.”











오후 다섯 시 무렵에 이장 마이크가 흐린 오미동 겨울 하늘을 가로 질렀다.

“오미마을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아아~”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하루 종일 해가 나오지 않았으니 대지는 완전히 식었다.
점심 먹고 나 역시 아래 위 모두 옷을 한 겹 더 입었다. 몇몇 엄니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달집 행사를 기다리고 계시다. 젊은 것들 준비하는 모냥을 감상하고 계신 것이다.











하루 전인 일요일에 달집을 세웠다.
상사와 오미 두 마을 달집 세울 때 함께 했지만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사진박구를 그만 두고 그냥 일손을 보태는 것이 옳을 듯했다.
그래봤자 주도적으로 일을 할 선수는 아니지만 더 이상 관찰자로 기록이나
남기는 일은 개인적으로 별 의미가 없었다. 난 육 년차니까.
일요일 오후에 오미동으로 넘어 오니 나무만 해 놓고 달집을 세우지는 않았다.
제법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달집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사이즈가 상사보다 거대했다.
상사는 팔십 다섯 가구 일백 칠십 명 정도, 오미는 사십 가구 육십 명 정도다.
상사에서는 대략 십여 명 가까이 나무를 했고 오미동은 대략 정예 요원 4명 정도가 가능하다.
나무 양을 보니 상사보다 많다. 마을이 작다고 기죽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만 넣자. 너무 크다.”
“아 그냥 몽땅 넣어부러.”
“나 원… 오래 타도 문젠데…”

사료용 볏짚까지 구입해서 중앙에 자리했으니 부피와 밀도가 대단히 높다.
비 때문에 달집 무게가 걱정스러워 와이어로 한 번 더 하단을 묶었다.











한 두 사람씩 남자 노인정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조직 결성하고 네 시간 정도 지난 급조 농악대도 채비를 서둘렀다.
점심 먹고 들려오는 이상한 사물소리를 듣고 방향을 쫓았더니 뜻밖에도 마을회관이었다.
오랜 동안 달집 행사가 끊겼던 오미동이고 워낙에 젊은 층이 희박한 마을이라
풍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굿거리장단 기본의 딱 한 가지만 장착했다.
물론 그 조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처음 사물을 잡은 사람들이라 쉽지 않은 일이다.
이 풍물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장치다. 처음 꽹과리와 장구채를 잡은 사람도 두려움 없이
덤비게 만든다. 두드리는 일이라 가능한 것이다. 피아노나 바이얼린이라면 가당키나 하겠는가.
명인은 명인대로 서툰 이는 서툰 그대로 두들긴다. 대단한 음악이다.











완전한 저기압의 겨울 하늘에 도저히 날아오를 수 없는 연을 들고 아이들이 달린다.
꽹과리와 징소리는 조선 사람이라면 내재하고 있는 ‘달 뜬 마음’을 불러낸다.
오미동에 사무실이 자리한지 사 년. 아이들을 보면 지나간 시간을 실감한다.











마지막 마을방송이 있었고 몇 분 더 모였다.
참여에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케이스다. 몇 명 더 있는 읍내로 나가 있는 주민들이
돌아 올 시간은 되지 않았고 추적거리는 겨울비에 노인들은 많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마을의 현재적 지표이고 출발선이기도 하다.











“하죽에 불 놓았네!”

사람 생각은 같은 모양이다. 다섯 시 절반 지났는데 옆 마을은 불을 댕겼다.
어차피 달 보기는 틀렸고 일찌감치 달집 태우고 실내로 들어갈 심산인 게다.











오미동 보다는 큰 마을인데 역시 날씨 탓인지 줌을 당겨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먼 거린데 대竹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쩍쩍 갈라지는 소리에 괜히 마음이 바빠진다.











제물 옮기고 서둘러 우리도 불을 붙일 준비를 한다.
달집 자리는 운조루 유물전시관 예정 부지라 다져지고 비워진 터다.
논 두 단지, 대략 이천 평 정도 논이 사라지게 된다.











마음속으로 나만 그렇게 부르는 ‘헬로키티’ 할아버지가 뜻밖에 꽹과리를 잡았다.
2007년 5월에 오미동에 사무실이 자리 잡았을 때 노인은 걷지 못했다.
등 뒤로 나무작대기를 수평으로 해서 양 팔을 힘들게 그 작대기에 걸치고 겨우겨우 어깨와 등을 펴는 듯했다.
그런 상태에서 아주 느린 걸음으로 한발 한발 걸었다. 거의 일 분에 십 미터 정도 전진하는 속도였다.
처음 뵌 모습이 그러했으니 나는 속으로 ‘가망 없는 일을’ 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의 걸음을 이 년 정도 지속하면서 노인은 점점 어깨와 허리를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곡괭이를 잡았다. 예상을 했다면 못된 포토그래퍼인 나는 계획적으로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그 자체로 한 권의 다큐멘터리 사진집이 가능했을 것이다.
노인은 마을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편이다. 당신 스스로 마을 모임에 거의 등장하지 않으신다.
노인은 나를 자주 찾았다. 방문 목적의 칠 할은 손목시계 옆면의 이른바 ‘시계밥’을 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항상 시간을 다시 맞추어야 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구형 손목시계의 밧데리 교체 같은 난제를 만나면
노인의 얼굴은 굉장히 허탈해지곤 했다. 그것은 읍내로 나가야 하는 일이고 노인은 내가 아는 한 단 한 번도
마을을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사실 노인의 발소리가 사무실 밖에서 들리면 귀찮았다.
깨금발 소리가 들리고 거친 노크 소리가 그 다음이다. 일단 용건이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반복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귀찮은 것이다. 무엇보다 노인의 말을 알아 듣기 힘들었다.
서러웠을 것이다.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나의 체온은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눈발 날리던 어느 겨울, 노인이 막대기에 의지해서 어깨를 겨우 펴고 종종 걸음으로 마을길을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헬로키티가 새겨진 점퍼의 등짝이 뒤뚱거렸다. 갑자기 왈칵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노인이 당신의 몸을 가지고 이룬 지난 몇 년간의 그 ‘피눈물 나는 몸부림’은 분명 존경할 만한 일이다.
그 노인이 허리를 펴고 꽹과리채를 잡았다.











명숙 씨. 두 아이의 엄마. 삼십 대의 마지막을 즐기게 될 연배.
젊은 사람이 희박한 마을에서 여자 노인정의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직장 다니는 아이들 아빠와 함께 마을의 개발위원 역할을 번갈아 수행해야 한다.
2012년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질 것이다. 현재 급조된 풍물패의 리더.
이전에 잠시 풍물을 배웠다는 이유로.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내년 대보름을 준비하면
될 것이란 생각이다. 마을 스스로 풍물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지 기능이 중요하겠나.











운조루 셋째 부부들. 이장댁 류정수 씨와 여성 이장 곽영숙 씨.
지난 몇 년 동안 정수 씨가 지은 농산물 즉. 밀과 쌀을 이곳에서 판매했었다.
금년에는 지리산닷컴이 논과 감나무 밭을 임대할 것이다. 지리산닷컴이 직접 농사에 뛰어든다.
<맨땅에 펀드>라는 금융 상품을 운영하기 위해서다. 류정수 농부와의 연계 그리고 무엇보다
오미동 마을 전체와의 결합이 중요하다. 이장님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이 작은 마을에서 행정의 중심이다.
따라서 이들 부부와 위의 명숙 씨 연배가 역할과 능력에서 오미동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도망가지 않고 지치더라도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 지리산닷컴의 역할이 될 것이다.
그냥 우리 단순하게 행복해지는 마을이 되면 되는 것 아닌가.
예산이다 지원이다 그런 것은 이미 약속된 것들만 받고 까이꺼 재미지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를 하나라도 말해보라.











지리산닷컴의 2012년은 오미동으로 집중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사례가 될 때까지 두들기는 방식이 될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개인적으로 마을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 왔다. 이제 방침을 정했다. 참여할 것이다. 3년 정도의 신입 시절을 지나
2년 정도의 망설임 시간이 있었고, 세월 더 가기 전에 마을과 함께 움직일 것이다. 나는 6년 차니까.
저기 저 찍사는… 사무장이군. 잘 하고 있다.











돈猪이 돈錢을 물었다.
이런 날은 돼지 입에 파란 종이 몇 장은 물려주는 것이 옳다.
끝나고 저 돈으로 2차 가나? 안된다고? 누가? 이장이 마을로 넣는다고? 젠장.











보통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절을 올리고 봉투를 내는 것이 관례다.
젊은 사람이 많은 마을은 이 날 들어오는 돈이 수백만 원인 경우도 있다.
노인들 관광버스 한 번 타시거나 일 년 마을살림에 보탠다.
2013년에는 달집 행사를 외부로 확대해서 봉투 좀 접수해야겠다.
뭐 연이나 그런 것을 달집에 매다는 형식으로 판매하면 될 것 같다.











“불을 땡긴다.”
“불을 놓는다.”
“불을 붙인다.”

여하튼 여섯 시가 되어서 달집에 불을 놓는다. 내년에는 불쏘시개를 준비해서
참석자 전원이 달집에 둘러서서 불을 놓는 방식이 좋을 듯하다. 언제 불 질러볼 일 있는가.











소리가 하늘을 가르고 모두가 순식간에 타 오를 그 열기와 볼꽃을 기다린다.











그러나 계속 내린 비를 맞은 나무는 쉽게 타 오르지 않는다.











몇 군데 더 불을 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불꽃은 치솟아 오른다.











불은 대나무 몸속을 관통하고 그 열기는 타닥 탁! 빠직 펑! 하는 소리를 내면서 몸통을 가른다.
그 소리가 시원스럽고 통쾌하다. 대나무를 소리를 위해, 소나무는 오래 타기 위해 그렇게 한 몸을 이룬다.
그 소리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자연스럽게 손을 모은다.
노인은 자식의 안녕을,
자식은 자식의 안녕을 비는 것이다.
내리 사랑의 역설적 표현.
孝.











워낙에 나무를 많이 넣었고 튼튼하게 지은 탓인지 달집은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점점 푸른색을 만들어 가고 곧 칠흑 같은 어둠을 이룰 것이다. 달집은 그 어둠에 맞서
더욱 붉게 타 오를 것이고 그렇게 양력과 음력은 교합하며 물고 빨다가 발양發陽할 것이다.
기운을 출산하는 것이다. 불꽃 주변으로 둘러 선 사람들이 그 기운을 받을 것이다.











몸통을 가른 그 파열의 힘으로 불은 댓잎을 태워 하늘로 뿌린다.
밋밋한 표현으로는 그것을 ‘재’라고 말하고 우리는 마음속의 ‘죄’를 날려 보낸다.
불꽃 속에서 꼿꼿한 대나무는 파르르 떨리며 제 몸의 파편을 날려 보낸다.
그 파편은,











밤하늘을 수직으로 날아올랐다가
그야말로 명멸하는 순간의 빛으로 너울거리며 땅으로 낙화한다. 그래서 불꽃花이다.
그것은 벚꽃 보다 짧은 절정의 순간이며 우주의 시간으로 보자면 우리의 전 생애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고은이가 불꽃의 전 생애를 바라보고 있다.











온 마을을 비추는 큰 불을 밝혔다. 동홰 또는 달집.
달집은 끝까지 무너지지 않았다.
모두가 잘 지은 달집을 칭송하는 덕담을 나누었다.











밥벌이의 대부분 시간 동안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밖으로 보여주는 일을 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무엇을 쓰고 찍고 보여주고 하는 일이란 것에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지난 2년간 조심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야기가 나를 찾아 올 것이다.
그때 그 이야기를 맞이할 것이다.

호시노, 나의 ‘그런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달집은 월요일 밤을 넘어 화요일 오후까지 계속 붉은 재로 이어졌다.
사무장이 보다가보다가 결국 삽으로 수습을 했다.
매서운 바람에 난타 당하면서 일을 하고 사무실로 들어서는 얼굴이 얼어 있었다.

“흙으로 덮어도 아직 타고 있어요. 엇 추워.”

달집을 만드는 장면부터의 이야기는 오미동 사무장의 블로그에 있다.
http://blog.naver.com/andjfrrk











2013년 정월 대보름은 2월 24일 일요일이다.
23일 토요일로 이벤트성 달집 태우기를 조직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때 지리산닷컴 주민들도 오미동에서 함께 달집에 불을 놓자.
지리산닷컴 K형은 저러고 여러분들을 지금부터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기다릴 것이다.
2013년 정월 보름, 오미동에서 만납시다.









4dr@naver.com



공지 지리산닷컴 사진사용에 관해 마을이장 2013.05.24 20339
202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졸업 [54] 마을이장 2013.02.16 7866
201 마을 / 특선영화 -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72] 마을이장 2013.01.15 9168
200 생각 / 雜새 [58] 마을이장 2013.01.06 7743
199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분교로 가는 길 [38] 마을이장 2012.12.30 7074
198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김장, 밥상을 차리다 [30] 마을이장 2012.12.20 7800
197 外道 / 겨울여행 [53] 마을이장 2012.12.12 7816
196 장터 / 책 - 『아버지의 집』고택 송석헌과 노인 권헌조 이야기 [76] 마을이장 2012.11.27 9906
195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2차 학교설명회 [26] 마을이장 2012.11.23 7474
194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단심丹心 [35] 마을이장 2012.11.01 9138
193 장터 / 2012 쌀밥 모임 & 배추밭 투어 [20] 마을이장 2012.10.19 9910
192 생각 / 연곡분교 이야기 - 9+α [23] 마을이장 2012.10.19 8456
191 생각 / 10월이네 [67] 마을이장 2012.10.05 9010
190 생각 / 연곡분교 이야기 - 9월 어느 아침 [54] 마을이장 2012.09.21 8630
189 생각 / 연곡분교 이야기 - 개학, 태풍, 전학생 [36] 마을이장 2012.09.06 8813
188 생각 / 17마 9765와 나 [64] 마을이장 2012.08.27 9341
187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그렇습니다. 감성적입니다 [26] 마을이장 2012.08.20 8150
186 外道 / 영산암에서 [69] 마을이장 2012.08.15 8396
185 생각 / 연곡분교이야기 - 학교설명회와 여름방학 [21] 마을이장 2012.07.28 7523
184 생각 / 뒷담화 Bread n Noodle 2012 [38] 마을이장 2012.07.16 7476
183 장터 / Bread n Noodle 2012 [39] 마을이장 2012.07.08 7074
Copyright© 2007. All Rights reserved www.jirisan.com 4dr@naver.com | 지리산닷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