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 가을 강을 따라 내려가다

마을이장 2011.11.15 00:11 조회 수 : 6963 추천:28








10월 31일 월요일.
아침 7시에는 배를 띄울 생각으로 6시 좀 넘어 집을 나섰다.
군청 앞으로 가서 공무원 K형을 태우고 계산리를 바라고 차를 몰았다.
사위四圍는 어둡고 흐릿했다.











계산리 강변에서 래프팅 보트를 띄울 것이다.
안개가 자욱했다.

“형님, 이래가꼬 사진 되것소?”
“이런 거 찍을라고요. 일단 출발합시다.”











배가 없는 섬진강, 계산리 선착장에 차를 버리고 배를 띄웠다.
구명조끼는 생각보다 불편했지만 래프팅 보트는 처음이고 나는 맥주병이다.











고요했다.
잠잠했다.
짙은 안개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실감을 방해했다.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이 맞을 것이다.











쉽게 걷힐 안개는 아니었다.
어차피 먼 길이다. 구례 구간 섬진강을 따라 내려갈 것이다.
안개도 있을 것이고 미명의 강도 있을 것이고
아침 햇살의 강도 있을 것이고 숨을 곳 없는 중천의 강도 만날 것이다.











발단은 카약kayak을 하나 장만해서 물에서 놀고 싶다는 공무원 K형의
이야기였지만 지난여름에 래프팅 관련 사진을 찍어주면서 강을 따라 내려오는
미션에 대해서 생각했다.











몸으로 노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 시즌에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는 래프팅 보트를 보면서 항상 중얼거린 소리는,
‘돈 주고 왜 저 짓을 하냐?’
그래서 '형님 한 번 탈라요?' 라는 몇 번의 놀이 제안에 대해 시큰둥했다.
나에게로 대입을 시키면 도무지 재미있을 일이 아닌 것이다.
일부러 배를 뒤집고 강에 빠져서 고함을 지르고 구호를 외치고…











구례 구간 섬진강을 끊어지지 않고 래프팅으로 내려올 수 있는지 물었다.
취수장, 보, 수달보호구역, 두 군데 정도의 급한 구간이 문제가 될 것이란 대답.
그렇게 혼자 상상을 해보았다.
새벽에 배를 띄우고 천천히 남도대교까지 내려오는 풀코스.











하루 전이건 이틀 전이건 누군가는 이 강에 뿌려진 모양이다.
그 또는 그녀도 흘러가고 나도 흘러간다.











여름 시즌이 끝이 났고 래프팅 시즌도 끝이 났다.
2011년 여름은 ‘큰물이 많이 져서’ 래프팅 장사가 신통치 않았다.
그런 조건은 비단 금년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강을 따라 내려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부탁을 하면 들어줄 것을 알기에 부탁하기 힘들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몇 사람이 움직이는 일이라 부탁하기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그렇게 강을 여행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노를 잡지 않고 사진만 찍을 것이기에 노를 잡는 이에게 하중이 간다.
모터를 장착하는 안이 나왔지만 새벽에 만나고 보니 두 사람의 가이드가 전부였다.

“모터는?”
“그게 형님, 어떤 구간은 보트를 들고 빠져 나가야는디… 무거워.”











안개 속에서 누군가 강을 걷고 있었다.
밤사이 수확물을 확인하는 몇 안 되는 섬진강 어부다.
물론 전업은 아니다. 나를 제외한 두어 명의 일행과 구면이다.
약간 놀란 얼굴이었다. 이 짙은 안개 속에서 래프팅 보트가
자신을 향해 내려오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따, 난 누구라고…”











어부가 들어 보인 통발에는 참게가 한 마리 담겨져 있었다.
물이 차가우니 길게 말을 시킬 일은 아니다.
그는 계속 강을 걸었고 우리는 강을 따라 내려갔다.











래프팅 보트라는 것을 처음 타 보니 작은 물살에도 온몸으로 강바닥의 상황이 전해졌다.
카메라 때문에 입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조심스러웠다.











수심은 얕았다.
여름인 아닌 이 가을과 봄에도 래프팅이 가능한 것인지 가늠해야 했다.
나는 나름대로 새로운 래프팅 상품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K형은 공무원스럽게 ‘관내촬영’이 목적이고
나는 ‘새로운 VIEW’를 찾는 것이 목적이다.
강변은 많이 지나쳤고 강에서 강변을 보고 싶었다.











마을의 선원 씨 등이 여름 시즌에 래프팅 사업을 시작하면서
‘형님 좀 도와 줘’ 라고 했지만 나는 지리산닷컴 회원들의 성향과 래프팅은
맞질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으로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팔아먹고
사는 일은 어차피 너와 내가 같은데 좀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의미이기도 했다.











래프팅이 액티브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전에 바다를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강을 보면 왜 생각이 많아지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다.











잠시 배를 대고 정훈 씨가 준비해 온 김밥과 국물을 들이켰다.
정말 나는 몸과 카메라, 담배만 들고 나왔다.
겨울 바지를 입을 것인지 여름 바지를 그대로 입을 것인지 생각하다가
겨울바지를 입었는데 아침 강은 추웠다. 조금 식은 국물은 구세주였다.











과정 중에 필요한 물품과 장면이 생각났다.
뜨거운 커피가 간절했다. 정해진 구역에 간이 선착장을 마련하고
버너를 켤 수 있다면 편리할 것 같았다.
담배 연기는 느리게 강으로 흩어졌다.











우리의 이동 속도는 형편없이 느렸다.
사실 시간을 예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강을 따라 내려와 본 경험이 없기는
래프팅 선수들도 한가지였다. 사실 거의 노를 젓지 않았고 아주 느린 유속에
배를 맡겨두고 있었다.











호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곳, 누구나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아닌,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서울에서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다.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은 모두 구례 출신이기에
옛 강에 대한 기억들을 나누었다. 그 속에는 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사람이 등장했다. 안개 자욱한 강 위에서 하하하…
우리는 모두 제 각각의 사사로운 목적을 잊고 강을 즐기고 있었다.

“저거 다리지?”











거대한 인공물은 우리의 위치를 알려 주는 지표였다.
전주-광양고속도로 교각이 섬진강을 가로 지르고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강을 따라 내려가던 프로도 일행이 지나치던
거대한 인간 왕들의 조각상이 생각났다.











요즘 도로공사는 거의 수평 상태를 유지한다.
산이 나오면 뚫고 강이 나오면 건넌다. 출발한 그 높이를 유지하면서.











30m로 들었다, 60m로 들었다는 주장이 엇갈렸지만 ‘높다’는 사실에 합의했다.
거대한 다리 아래를 지나는 일은 상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구례구 역 앞을 지나 신월리를 돌아서 동해마을까지 강은 완만하게 휘어질 것이다.
사진의 절반은 뒤돌아 찍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훈 씨 뒤통수가 사백 장은 보일 것이다.











바위를 피해서 배는 좌우로 방향을 틀었다.
다리를 지나면서부터 노를 잡고 방향을 조절해야 할 구간이 많아졌다.











시각적인 변화를 느낄 만큼 안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새들이 날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는 것이다.











사진의 왼편은 순천, 오른편은 구례다.











“정훈 씨, 나락은 다 베었나?”
“아닙니다 형님. 스무 단지 남았습니다.”

언제나 깍듯한 말투의 이 사람.
보기 드문 시골 삼십대 가장인데 아이가 둘이다.
일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농번기에 시간을 뺐었다.











“옛날에 문수골에서 저희가 래프팅으로 내려오는데 말입니다 형님.”
“문수골에서 보트를 타고 내려온다고?”
“네 그렇습니다 형님.”
“미친 거 아이가!”
“아닙니다 형님. 됩니다.”











물살이 빨라지고 배를 기슭 쪽으로 몰아갔다.











커다랗게 휘어지는 구간이라 그런지 수심이 조금 깊어진다.
카메라를 손목에 한 번 휘어 감는다.











제법 흔들릴 것 같다.











순천-구례를 오가는 17번국도 교각이다.
동해마을이 가까워졌다는 사인이다.











"어어어!"
“괜찮습니다 형님.”











죽마리 쪽으로 강은 여전히 미지수다.











동해마을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오전 10시가 다 되어간다. 세 시간 정도 배를 탄 것이다.











동해마을 구판장 앞에서 새참을 먹기로 한 모양이다.
선원 씨가 종옥이 형에게 전화를 해 둔 모양이다.
막걸리와 감이다. 이뤈! 나의 주종목이 아니다.
구판장에 커피 자판기가 없다. 가게에 이야기해서 종이컵에 봉다리 커피를 풀었다.











세 사람은 아침 막걸리를 흘려보냈다.
종옥이 형은 순천으로 가고 우리는 다시 배를 띄웠다.
해의 기운이 느껴졌다.











“십만 원은 해야할 것 같다.”

내가 먼저 이 여행 경로에 대한 상품화에 대한 의견을 풀었다.
자격증 가진 래프팅 강사 한 사람은 선두에 배치해야 할 것이다.
작은 래프팅 보트에 네 사람을 태운다. 가급이면 강에 대한 해설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태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인건비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보험도 처리되어야 한다.











중간에 두 번 배를 대고 휴식을 겸한 요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
급한 여행이 아니다. 느린 래프팅이다. 지금까지 소요시간으로 봐서는
남도대교까지 하루는 잡아야 할 것 같다. 너무 길다.











해가 안개를 이기는 그 순간부터 순식간에 풍경은 바뀌었다.
그 순간이 또 다른 사진의 시작점이자 바로 끝이었다.











모두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문척 다리까지에서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는 해가 중천에 오른 상황에서는 그림이 평면적이다.
입장이 바뀌어 선수들은 완주를 주장한다.

“형님, 이거 해보니까 의미 있는 일이라니까!
우리가 언제 이렇게 구례구간 완주를 할 수 있겠소. 그럼 여기서 내리쇼.”
"여기서 내리라니!"











강을 따라 내려오는 여행은 몇 가지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익산국토관리청과 협의를 해서 허락을 얻어야 하는 난제가 있다.
그리고 구례군은 공식적인 간이 선착창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몇몇 구간은 배를 머리에 이고 도보 또는 차량으로 이동해야 한다.
전체가 노를 젓는다면 남도대교까지 스포츠가 아닌 수준에서 7시간은 소요될 것 같다.
조금 더 느리게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구간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과연 이런 방식의 여행을 좋아할까?
나는 좋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시장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무엇보다 새벽에 강으로 내려서려면 하루 전에 구례에 도착해서 이미 1박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뭔가 연계한 스토리가 더 있으면 좋겠다.
끝나고 바로 차타고 서울 가는 것은 좀 아쉽지 않은가.
그러면 2박? 시장이 더 희박해진다.

“돈은 안 되겠다. 다른 의미를 두어야겠다.”
“그래도 한 번 기획안을 잡아보쇼. 재밌자나.”











문척 옛 다리에서 여행을 멈추었다.
12시 30분이다. 다섯 시간 삼십 분 소요했다.
남은 구간은 점심 지나 석양을 보면서 끝내는 것으로 예정했지만 11월 중순이다.

이런 여행 원하세요?

* ‘지리산농부마을’에서 별난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긍께 래프팅 협찬.
   http://www.farmsday.com
   사이트는 개편 중이라 온전하지는 않다. 1주일 정도 있으면 완전히 개편될 듯.









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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