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지 않게 현실의 제반 몇몇 문제들에 대한 코멘트를 하고 싶다.
그런 소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살다보니 그런 날도 있다.











나를 둘러 싼 주변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이런 현상은 끝이 없다. 2006년 구례로 옮겨 온 그때부터 읍내 오폐수관 공사를 거의 2년 정도
계속하였고 오미동으로 사무실을 옮겨 온 그때부터 오미동 오폐수관 공사를 1년 정도 진행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미동과 상사마을은 녹색농촌체험마을과
행복마을 예산이 투입되어 대략 40채의 한옥을 짓는 공사판이었고 그에 따른 돌담과 토담사업,
장독대 사업 등으로 지속적인 공사판이었다. 그것에 더해서 지금 두 마을은 대략 각 10억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부록으로 운조루 보수 공사는 3년 동안 세 차례 진행되었었다.
지금은 사무실 내 자리 바로 뒤에서 오미동 마을회관 공사의 초반전이라 전기톱 소리가 날카로운 시기다.
곧 기와를 올리기 위해 크레인이 며칠 상주할 것이고 실내 공사 전기톱 소음이 예정되어 있다.
이런 공사판을 피해 지난봄에는 3개월 가까이 컴퓨터를 집으로 옮겨서 작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다시 사무실로 옮겨 왔고 여름은 관광객들로 마을이 붐볐다. 가을이 오고 지금 다시 공사는 시작되었다.
내가 공사판 예정지만 찾아서 다니는 것인지 내가 가는 곳만 예산이 따라다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개발과 예산 투입을 원하는 마을은 나를 데리고 가면 된다.

이러하다보니 사실 나는 사무실이 나의 개인적인 작업에 안정적인 공간이라는 확신을 하지 못한다.
전반적으로 구름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기분이다. 효율이 떨어지고 한두 사람 손님이 왔다가 가고 나면
대략 ‘이왕 일도 안 되는데 밖으로 나가자’는 도피성 외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까지가 지금 나를 둘러 싼 ‘작은 세상’에 대한 묘사다.











해마다 놓치지 않았던 가을 단풍 산행을 하지 않았다.
뱀사골 생태탐방로가 지난여름 폭우로 통제되고 있다는 소리도 있었고 가을 가뭄 때문에 단풍이
‘꼬실러 부렀다’는 풍문이 대세였다. 10월 셋째 주부터 넷째 주 사이 출근길에 멀리 왕시루봉을 가늠하고
단풍의 시간을 예측하였지만 결국 나는 길을 나서지 않았다. ‘바쁘다’는 것은 사실 모든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지 못한 변명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심하게 갈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 맞다.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2011년에는 약했다고 생각한다. 인용하기에는 딱히 들어맞는
장면은 아니지만,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는 <9월이여, 오라>를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다.

<작가들은 자기가 이 세계 속에서 이야기를 고른다고 상상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허영심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이야기가 작가를 골라냅니다.
이야기는 스스로를 우리에게 드러냅니다. 공적인 이야기든, 사적인 이야기든, 이야기는 우리를 지배합니다.
이야기 자신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라고 명령합니다.>

맞다.
그 무엇인가가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지 내가 그 무엇을 인지하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드는 이야기와 사진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50여 일 전에 월인정원이 골절상을 당하면서 ‘별’(풍산개)의 아침산책은 내 몫이 되었다.
더해서 일상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소소한 일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 며칠이 지나면서 미루어 두었던 소소한 업무들을 마침내 처리할 것이란 예감을 했다.
나는 한가할 때는 일을 하지 않고 약간의 강제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면 일을 시작한다.
강제성은 언제나 인간을 자극하는 동기부여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적절한 노동과 적절한 휴식이란,
병원에서 의사들의 처방으로만 가능한 것이지 일상의 인간들에게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막상 그렇게 권하는 사람들조차 그렇게 살기란 힘든 것이 현실이다.
가혹하게 노동하거나 지쳐 나가떨어져서 대책 없이 멈추어 있거나 둘 중에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조절할 잉여의 금과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다가… 별이를 산책시키러 나가던 어느 흐린 아침에 집 앞의 담쟁이 넝쿨을 보았다.
그 초록과 그 붉음이 마음을 움직였다. 느닷없이 시간은 내게로 다가와 ‘지금’을 알려주는 듯했다.
산책이 끝나고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서 몇 장을 찍었다. 아침을 그렇게 시작하면 그날은 대부분 일이 하기
싫은 경우가 많다. 우연히 20년 전의 연인을 길에서 만난 출근 길 뒤의, 일을 시작해야 할 아침 책상 같은 것이다.
창밖으로 고개가 돌려지고 감당해야 할 일상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문구로 정당성을 부여받곤 한다.











어디론가 사진을 찍으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오래간만에 들었다.
그러나 딱히 그 욕구가 아주 강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게 차를 몰고 출근하는 길에
하사마을을 지나면서 차를 멈추고 브레이크를 밟고 그냥 두어 장 여전한 안개를 찍는다.

<전체적으로는 암이 가장 높은 사망 원인 구성비를 차지했지만 10~39세에서는 자살이 가장 높은
사망 원인 구성비를 기록했다. 특히 20~29세의 사망자 수 중 자살자 구성비는 40퍼센트가 넘는 높은
수치를 보인다. 적어도 20~29세에서는 자살(44.6%)이 암(9.3%) 보다 약 5배나 무서운 사망 원인인 것이다.
- 중략 - 자살 충동·시도 원인으로는 ‘경제문제(등록금 포함)’가 57%로 1위를 차지하고, ‘취업문제’가 30%로
그 뒤를 이었다. - 2011. 09. 28 경향>

어느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뭔 이야기를 좀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마을로 온다고 했기에 수락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오기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소재를 취한다고
‘대학’, ‘취업률’ 등의 키워드로 뉴스 검색을 했다. 가급이면 이곳에서 ‘요즘 세상의 관심사’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 아닌 원칙이다. 나 스스로 헤드라인은 피해갈 수 없지만 일상적으로 거의 시사성 뉴스를 읽지 않는다.
읽어봤자 불쾌한 소식이다. 그런 이야기에 시달린 사람들이 ‘다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는 곳이 이곳 아닌가?
막연한 위로가 아닌 ‘구체적 스토리텔링Storytelling과 치유healing’가 이곳의 역할이 아닐까. any튼.
나는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 가는 것을 몰랐다.











내 아이보다 불과 2~4살 많은 젊은 친구들을 앞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소리란 것이 무엇이 있을까.
현실적 상황에 대한 수치와 통계, 현상들은 충분히 암울했다. 통상 전반전에는 이런 ‘우리의 현실’에 관해
언급하고 후반전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30조7326억 원에서 53조2591억 원으로 늘어났다.
증가율이 73.3%에 달했다. 그에 비해 30대 기업의 직원 수는 2007년 말 43만7088명에서 지난해 말
48만1897명으로 4만4809명(1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수익에 비례하는 만큼 신입사원을 채용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수치를 통해 경제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정을 조장한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은 이른바 좌빨로 판정받고 능력껏 쟁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은
보수꼴통으로 먹물이 새겨진다. 성질대로 표현하면 된다. 그리고 통상 희망의 근거는 별로 없다.











문제점에 관한 정보는 넘쳐났지만 희망의 근거로 제시할 기사를 찾는 것은 힘들었다.
창업 성공기나 화제의 젊은이들이 종종 환한 얼굴로 등장했지만 그것은 역시 사법고시 수석합격자의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법을 집행하고 싶습니다’라는 쌍팔년도 대한늬우스적인 면이 있어 개인적으로
감흥을 느낄 수는 없었다.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때 맞춰 정통언론에서는 ‘어른이 젊은이에게 말씀’ 한 방을 날려줬다.

<무식한 대학생들은 지금의 ‘반값 등록금’이 미래 자신들의 연금인 줄 모르고
트윗질이나 하면서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 - 2011. 1. 24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











이미 오래전부터 ‘입장’이 아닌 ‘피아간의 구분’이 명확해지면서 세력은 모두 제 각각의 매체를 통해서
자극적인 소리들을 쏟아내는데 익숙하다. 선거를 이틀 앞두고 다급해진 것이다. 당당하게 꾸짖는 용기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맨날 가는 사이트에서 보는 뉴스만 보는’ 탓에
전문은 보지 않고 트윗을 통한 한 줄을 읽고 성토하고 분노하고 한 시간 후에는 그 글의 댓글만 읽고
동조하거나 조롱한다. 몸통은 없고 손가락이나 발가락만을 보고 평가하고 판단한다. 최초 글과 퍼나름과
감상자와 논평자의 관계는 책임을 거론할 만큼 빡빡하지 않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의 '필연적 헐거움'이다.
객관적 사실 또는 막연하지만 진실이란 것 보다 입장이 우선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충분히 호전적이고 막연히 일방이다.











“여러분들의 아버님 세 분 중 한 사람은 자영업일 것이다.”

자영업의 비율이 30%를 넘어가는 시스템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일은 막연할 수밖에 없다.
그 자영업자 중 30% 정도가 월 수익 100만 원 이하인 시스템을 제대로 된 사회시스템이라 인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내 스스로가 일상적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회의론자에 가깝고 운명론자에 접근하고 일상적인 시니컬을 도피의 스킬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이곳은 도피처가 많다는 장점이 있다. 스며들면 숲이고 내려서면 강이다.
내 중심적으로 치환하면 '치유 가능한 공간'이 많다.

그리하여 세상의 날카로운 말씀의 칼끝에 부상 당한 중년 사슴은 아침 안개가 자욱한 운조루 솔숲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막상 숲으로 걸어 들어가자 해의 조짐이 느껴졌고 안개는 물러가는 길이었다.
그래도 예정에 없었던 짧은 산책은 나름대로 좋았다. 이 길은 지리산둘레길 구간이 아니다.
둘레길 구간이어야 하는데 아닌 것으로 되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인 듯하다.
이제 더 이상 마을 앞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이 길이 둘레길 구간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길 조차 인연이라면 인연 닿는 사람들이 길을 걷는 것이 맞다.











지리산 자락으로 스며 든 사람들을 대하는 시선 중 ‘루저loser’로 바라보는 입장이 있다.
일반적인 귀농·귀촌에 지리산이 더해지면 약간 ‘도사과’로 바라보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곤 한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그런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오랜 시간 나와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의
대부분도 ‘지리산으로 내려갔다는’ 소식 하나에 나에게 ‘지리산에서 도 닦냐?’는 안부를 물어온다.
5년 이상 포클레인 소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하지는 않는다. 당연하지만.
나를 대입시키면 루저論을 인정하는 편이다. 주류 시스템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루저’라는 표현 자체가 오버그라운드 또는 메인스트림의 시선에서 발생한 개념이니 ‘그런 표현’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질문을 차단하기 위해서 ‘왜 시골로 내려왔나?’ 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준비된 답변 역시 ‘서울에서 실패해서요’ 이기도 하다.
<실패失敗 -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특별하게 문제 있는 말이 아니다.











가끔 약간 불편한 경우는, 지리산 자락에 내려와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를 동일한 범주로 묶어서 예단하는 시각이다.
두 가지 경운데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그런 전제일 경우와 내부의 시선도 그러한 경우다.
내부란 귀농·귀촌자들 중 일부도 서로를 지례 짐작 하는 경우를 말함이다. 제 각각의 성격 차이가 있다.
애시당초 귀농귀촌 개념이 없었던 나 같은 경우는 그냥 ‘서울에서 구례로 이사를 온 것’이다.
그래서 ‘저 사람은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야’ 또는 ‘녹차를 좋아하겠지’ 라는 식의 시선은,
양촌리 봉다리커피 예찬론자이자 이틀에 한 병은 콜라를 흡수하고 대략 환경론자가 될 자질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을 타의의 짐작에 의한 실망감을 주는 놈으로 만들기도 한다. 일회용품, 녹차 같은 상징이 전제하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평가할 때 여전히 나는 철저하게 도시적인 생활습관과 사유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고쳐지기 힘들거나 굳이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간명하게 정리하자면
‘나는 외부적 환경이나 평가로부터 가급이면 영향을 받고 싶지 않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 ‘도피성 외면’이라는 판정을 내리더라도 수긍하는 편이다.
운영자의 그런 개인적인 성향은 지리산닷컴의 콘텐츠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다.
지리산닷컴에서 시사적인 쟁점을 소재로 다루거나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석가탄신일이건 성탄절이건 선거를 하건 뭔 촛불집회를 하건 그렇다.
톤이 강하거나 양적으로 우세한 소식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광고가 많이 붙는 뉴스일 뿐이지 객관과 진실의 농도가 높다는 증거는 아니다.
나는 진보건 보수건 매체의 헤드라인을 무시한다.
일례로 지난 7월의 <브레드 & 누들 그리고 이야기> 참가기에 해당하는 게으른꿀벌 형님의
오마이뉴스 기사 제목은 「섹스산업보다 못한 농업... 희망은 '사람'」이었다.
콩국수 잘 먹고 수육도 잘 먹고 비오는 고택의 정취가 좋았고, 이장이란 사람이 나긋하다는 내용의
기사 제목이 그렇다. 그런 제목은 게으른꿀벌 형님의 의지와 무관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뻔하다.
데스크에서 임의적으로 헤드라인을 구성한다. 그런 발상, 헤드라인을 그 따위로 뽑을 수 있는 발상.











영화 <바람과 라이온>이었는지 <사막의 라이온>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겠다. 개인적으로 자주 인용하는
대사가 있다. 미국인지 유럽인지 여튼 서양 군대가 사막의 베두인Bedouin 마을을 휩쓸고 주민들을 학살한 후,
베두인들은 당연히 복수를 다짐하며 무력을 집중시키려 할 때 지도자가 말한다.
“그들은 우리의 교사가 아니다.”
따라하지 말라는 말 아닌가. 같은 방법으로 다른 목적에 도달하려는 생각에 대한 일침 아닌가.
절대적인 명제이거나 답은 아니겠지만 나는 일상의 많은 장면에서 이 대사를 상기한다.
인터뷰나 기사의 가장 선정적인 대목을 잡아 와서 느닷없이 제시하고 글의 본질을 무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원해서 '선의의 낚시질'을 했다? 조중동과 오랜 시간 싸우다보니 조중동을 닮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시사적인 뉴스를 본다.
그것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발생한 시기에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헤드라인에 걸려든다.
가급이면 무념무상 하고 싶은데, 그 흉내를 내려고 하지만 역시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둘러 싼 세상이다. 나를 둘러 싼 실재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 세상.
통상 적극적인 개입은 적극적인 외면보다 책임 있는 자세라는 평가를 받는다.
나란 존재의 의지라는 것은 나란 존재의 여부를 내가 결정하지 않았기에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만 작동되고
평가 받는다. 따라서 뭐라고 대가리를 쳐들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그것은 일종의 무기력감에 해당한다.
그런 증상을 가진 환자들은 나뿐만이 아니라 많이 있다. 그런 증상을 가진 환자들은 현상에 대해 일희일비하는
소모를 원하지 않는다.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외면과 냉소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아니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싸워야 한다. 그럴 자신은 없는 것이다.
내 삶의 시간은 유한하고 작은 실패의 반복된 경험은 나를 이타적 인간으로 진화시키기 힘들다.











<1937년에 윈스턴 처칠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나는 아무리 오랫동안 개가 여물통에 누워 있었다 하더라도 그 여물통을 차지할 최종적인 권리가
그 개한테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아메리카의 홍인(紅人)들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흑인들에게 큰 잘못이 저질러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강한 인종, 더 수준 높은 인종, 그리고 더 세상일에 밝은 인종이 와서 그들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나는 이들에게 어떤 잘못이 행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서 이스라엘 국가가 취할 기본적 자세를  정해주었습니다.
- 아룬다티 로이 ‘9월이여, 오라’ 中>

중동 문제는 완강한 국제 정치 프레임 중 하나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무렵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미지에 현혹되었고 다시 자폐적인 최면술을 걸면서
미국 지도자가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이란 기대를 품었다.
그 무렵에 장난스럽고 냉소적인 지리산편지를 한 통 작성했다.











2009. 1. 6

AP, UPI, AFP, 로이터,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NBC, ABC, CBS, BBC, 연방준비은행, 그린스펀,
IMF, BIS, 세계은행, 엑슨, 모빌, 스탠더드, 로열 더치 셀, 텍사코, 브리티시 패트롤리엄(BP), 월 스트리트,
조지 소로스 및 헤지펀드의 50%, 노벨상 수상자의 30%, 세계 100대 기업의 40% 그리고 그 무엇보다
세계 5대 곡물회사의 대부분….
이 모든 것은 유대인 소유이거나 유대인이 만들었거나 유대인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들이다.
오바마는 승리 연설에서 자신의 측근인 데이비드 엑셀로드의 공로를 치하했다. 오바마의 친유대계 네트워크를
담당한 인물이다. 미국 내 유대계의 78%가 오바마를 지지했다. 오바마는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라움 임마누엘을
지명했다. 정통 유대계 자손이다. 임마누엘은 AIPAC(미, 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의 핵심적인 인물이다.
임마누엘은 지난 선거전에서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루빈(전 재무장관), 워렌 버핏(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윌리엄 도널슨(전 증권거래위원장), 서머스(전 하버드대 총장), 티모시 가이스너(뉴욕연방은행총재),
폴 볼커(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의 유대인 또는 친유대계 인물들을 영입했다.
오바마는 후보자 시절 AIPAC총회 폐막식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이스라엘의 안보는 신성불가침이며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그 반대편에 GAZA지구의 하마스가 있다. 하마스는 '용기'라는 뜻이다. 전체 상황을 정리하면 가자지구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정도인 듯 하다. '용감하게 죽는다.'와 '뜻하지 않게 죽는다.'가 그것이다.
시오니즘zionism의 초심은 알 수 없지만 현실에서 그 정신의 핵심은 '싹쓸이'다.
지정학적 차이점을 제외하면 세상을 움직이는 맥락은 같은 모양이다. '방송통신법개정'같은 것이
이를테면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新시오니즘neo-zionism이다.
지리산닷컴을 중심으로 지구방위대를 결성할 때가 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후로, 지금까지, 앞으로도 지리산닷컴을 중심으로 한 지구방위대를 결성할 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나는 케이블 채널에서 <아이언맨>을 재방송하면 졸면서도 켜두고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미국산 슈트를 입고 악당을 물리치다보면 꿈속에서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마을 이장님 아침 방송에 잠에서 깨어난다.

“제 말씀이 아무리 개소리 가타도오~ 제발 개를 풀지 맙시다아~
나락 말리는데 개가 똥을 싸며은~…”

마을의 개똥 문제는 이사를 온 3년 이상의 시간 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이것도 나를 둘러 싼 작은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완강한 프레임이다.
프레임은 자체로 스트레스다. 그러나 그것이 없다면 세상은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질서에 답답해 하고 질서가 사라질까 불안해 하기도 한다.

<국기(國旗)라는 것은 정부가 처음에는 국민들을 바보로 만드는 데 사용하고,
그 다음에는 죽은 자들을 위한 수의(壽衣)로 사용하는 색깔 있는 천 조각입니다.
- 아룬다티 로이 ‘9월이여, 오라’ 中>

공감하니 인용한 것 맞다.











현천마을 입구에는 버드나무가 있다.
큰 나무는 대부분의 경우 어느 마을의 랜드 마크이자 기억의 원형을 구성한다.
시골에서 살아보니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것은 나무였고 가장 강인한 것은 풀이었다.
먼 길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멀리 당산나무의 실루엣이 보이면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기억은 공동의 기억일 것이다. 평생을 도시에서 살았던 나에겐 존재할 수 없는 기억이다.

아이에게는 공동의 기억이 없었을 것이다.
헤드라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경향신문 기사,
「자살 중학생 “아이팟을 함께 묻어주세요”」
네이버 메인에서 헤드라인을 보았지만 의식적으로 읽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K형의 컴으로 프린트를 하기 위해 앉았을 때 책상 위에 프린트해서 올려 둔 기사를 보았다.

<“아이팟을 함께 묻어달라.” 가족 대신 그 아이가 함께하고자 했던 마지막 하나는 바로 음악을 들려주는
손가락만한 기계였다. 그렇다. 이 아이들에게 소비는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결핍을 메우는 것이다.
- 정희준|동아대 교수·문화연구>










내가 바보겠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은 함께 80년대를 아스팔트 위에서 보낸 친구들이 이 사회를 주도하는 연령층이
되었는데 왜 학교교육 문제와 사교육 문제는 더 악화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아스팔트 출신 중 많은 사람들은
적정한 밥벌이 구축기를 놓치고 몇 년간의 방황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새끼를 낳고
책임의 개수를 늘려갔다. 많은 이들이 결국 골목 학원가로 진출하거나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밥벌이의 지겨움과 모든 밥벌이는 숭고하다’는 동전의 양면이었고 책임의 증가는 내가 내 생각과 다르게 살아도
되는 면제부의 개수도 증가시켜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완고한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고 프레임의 종사자가 되었다.
그리고 형편없는 몸매와 목적 없는 눈매를 가진 중년이 된 것이다.
지리산닷컴 주민 중 가장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사십 대. 이들의 공동기억은 무엇인가?
마을 앞의 당산나무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 세대는 바로 우리들이다.
87년 6월 어느 날 명동성당 앞에서, 남포동에서, 충장로에서 굵은 뿔테 안경에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던,
'독재타도'를 외치고 어쩌면 끌려가서 고문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던 그 청년의 새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타당한가. 당신의 세대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던졌는데 당신의 아이들은 결핍으로 인해,
외로움 때문에 목숨을 버린다. 당신 아이의 눈에 당신의 20년 전이 보이도록 하는 것이 진보다.











외면해도 비켜갈 수 없는 것이 정치다.
나는 이전에 이곳에서 이미 그 이유에 대해 스스로 설명했다.


2009. 7. 9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대량의 농약과 화학비료가 등장했다. 이른바 녹색혁명이었다.
소들은 들판에서 공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닭들은 평생을 가장 맛있는 몸무게가 한계인 사이즈의 박스 속에서
사육되고 있다. 밀집된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이 투입되고 있다.
그 오폐수로 땅과 물은 또 썩어간다. 자연은 이런 무차별적인 항생제의 공격에 맞서 스스로 내성균을 만들어
인간에게 대항한다. 광우병이나 신종 인플루엔자가 그것이다. 그리고 막상 그렇게 생산된 곡물의 많은 부분은
인간이 아닌 가축의 사료로 소비되고 있다.
우리는 늘상 착색료, 에틸렌, 파라핀, 조미료, 방사선 등의 화석연료로부터 뽑아낸 유해 물질 덩어리의 밥상 앞에 있다.
이런 음식물을 공급한 곡물회사와 식품회사, 유통라인을 잇는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오늘도 우유가 몸에 좋다, 백밀가루가 몸에 좋다는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광고의 홍수 속에
뉴스 형식으로 정보를 조작한 그들의 마케팅 전략에 속거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유전자변형 식품을 지구 구석구석 판매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을 만들고 무역장벽을
철폐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자는 곡물회사에서 통제하고 있고 힘없는 나라는 자신의 종자 조차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의 어딘가에 배치되어 노동하고 월급을 받고 밥 먹고 산다.
그리고 오늘 보다 내일은 조금 더 비싼 것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란 꿈을 먹고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조절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정치다.










일전의 보궐선거를 앞두고 시골사람들도 서울시민들의 선택에 대한 방담을 나누곤 했다.
“아마도 군수건 대통령이건 내가 다시 투표를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간접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회의론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범주일 것이다.
냉소의 뒤끝은 그렇게 개운하지는 않다. 더 이상 그런 일의 결과에 내 기분을 휘둘리는
꼴을 당하지 않겠다는 말초적 소리지만 어차피 참여와 거부 모두에게 돌아오는 현실적인
결과는 동일하다.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바그다드 시내를 가로질러 날아 간 미군의
총알은 스스로 반미주의자인 어른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거 같은 것 말고’ 또는 ‘선거 같은 것에 참여하건 말건’
세상의 프레임을 뒤바꿀, 아니면 흠집이라도 낼 수 있는 ‘다른 방식의 도구’를 찾고 있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대형마트를 거부하게 하는 설득력 있는 방법,
농민들에 대한 농협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방안,
마을 사람들이 군청이나 도청 눈치 보지 않고 예산을 거부하게 설득하는 방법,
무엇보다 내 어머니가 내 삶의 태도를 이해하실 수 있게 설명하는 방법(거의 불가능하지만 -,.-),
같은 것이다. 이런 고민의 반대편에는 항상 ‘프레임’과 ‘불안’이 버티고 있다.











<제 인생은 꿈이 있기 때문에 불안정하죠. - 다큐멘터리 ‘K2’ 中 어느 산악인>

스스로 느끼는,
스스로 확신하는,
스스로 착각하는,
‘지금의 안정’을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으면 프레임은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금 더 불안정해지기’를 권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싸움 방식이다.
언어 정렬 방식의 모순이지만 ‘이타적으로 싸우자’. 그 말이다.
마흔 아홉. 꿈꾸기엔 너무 늦은 잠인가.
어머님이 아시면 화 내 실텐데…











“니 요새도 데모하나?”
“가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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