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 땅콩죽 - 이장집

마을이장 2011.10.13 23:42 조회 수 : 7872 추천:49








밀림 같은 나의 땅콩농장이다.
다른 집 보다 좀 늦었지만 수확은 필연적이다.
시골에서 농사짓기는 틀린 나의 복합영농 중 중요한 작물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9월 초까지 나는 이 밀림이 그냥 콩인줄 알았다.
배추 심을 때가 되어서 베어버릴 생각으로 물었더니 땅콩이란다.
오 마이 갓! 땅콩이라뉘!











광활한 내 땅콩 농장의 위용이다.
바라보자면 왼편으로 허브 농원의 일부, 오른편으로 방울토마토와 가지 등이다.
0.00016ha. 전문 용어로 반 평이다.
콤바인을 집어넣기엔 좀 무리가 있어서 오늘은 언제나처럼 수작업으로 수확을 한다.
내가 심은 기억이 없는데 왜 저곳에 땅콩이 있단 말인가.
두 여자가 심었다는 이야긴데… 나는 왜 몰랐지.
파종은 몰랐지만 수확은 내가 한다. 원래 복합영농은 좀 정신이 없다.











나에겐 꿈이 하나 있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의 어조 그대로 “I have a dream…” 이다.
서울 시절에 구례로 간혹 내려올 때마다 닷컴 K형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어느 날 아침에 형수는 땅콩죽을 내어 놓았다.
나는 죽을 좋아하지 않고 더구나 땅콩으로 죽을 쑤는 것도 처음 보았다.
약간의 분홍빛이 도는(이후에 당근을 조금 갈아 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아침의 땅콩죽은 정말 내 인생의 밥상 베스트 텐에 결단코 들어간다.
이후로 그 땅콩죽을 내 손으로 한 번 만들어 보는 것은 하나의 꿈이었다.











이미 마을의 후배로부터 땅콩을 얻어 2011년 땅콩 맛을 보았다.
햇땅콩은 물론 이곳에 내려와서 처음 맛보았다. 마을 입구 고택 쌍산재 주인장이
수확한 것을 나누어 주었는데 평생 마른 땅콩만 먹다가 촉촉한 땅콩을 먹어보니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어떤 놈은 엄지 발가락만한 것이 거의 고구마에
육박하는 근기가 있었다. 그것이 3년 전이다.
모래땅에서 재배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쌍산재 텃밭은 황토다. 대략 땅이면 되는 모양이다.
지금 수확하는 땅콩은 마누라의 전언에 의하면 뒷집 할머니가 준 땅콩이다.
앞쪽의 줄기를 살짝 당기니 그냥 일어난다. 고구마 캘 때를 생각했는데 아니다.
얕은 땅에 캐기 편하게 열린다. 약간 힘을 주고 당기면 두두둑 땅이 일어난다.
그래서 모래땅이 편한 모양이다.











'외지 것들'이 텃밭농사에서 감동하는 것은 평생 돈을 주고 사먹던 것을
직접 수확하는 것에 있다. 그래서 수확량이나 농작물의 퀄리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열매를 맺거나 결과가 보이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대파, 쪽파, 상추, 당근, 감자, 고구마,
배추, 들깨, 기타 쌈 류의 채소가 일반적이다. 2년 정도 하다보면 무엇이 쉽고 편한 작물인지
알게 되고 고추와 오이 등 여름을 지나는 밭작물이 ‘약을 하지 않고는’ 대단히 힘들다는
현실을 알게 된다. 아무래도 겨울을 넘기는 작물이 편하다. 풀과 씨름하지 않아도 되고
벌레 걱정도 없다. 그래서 마늘과 양파 등은 땅만 있다면 봄이 즐겁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땅콩을 거의 심지 않는다. 그런 ‘흙장난’을 할 겨를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2011 땅콩 농사’는 새로움과 기념비적인 성격이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복합영농을 완성하는 고난도의 농사이기도 하다. 또한 지정댁이나 대평댁이
접근하지 못하는 하이거시기놀리지적이며 고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특수작물이라 주장한다고
‘지들이 나를 죽이겠어?’에 해당하는 위대한 작물인 것이다.
그런데 일부 사이즈가 삑사리가 나면서 상품으로는 영…










감나무 농장 쪽으로 접근할수록 수확량은 확 떨어졌다. 나무 그늘이 원인일 것이다.
초장 긋발에 좀 수확한 것 이외에는 뒤로 갈수록 잔챙이들이 대세다.
역시 콤바인을 부르지 않은 것이 현명했다. 나는 왜 이렇게 항상 현명한 것일까.
땅에 심어져 있던 것이 땅콩인 줄 알았다면 훨씬 수확이 많았을 것인데 시골에서 농사지을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호미를 들고 수확량을 채워야 한다.
깊이 파지 않아도 되니 역시 땅콩은 마음에 드는 작물이다.
노동력 투자대비 결과물이 완전 마음에 드는 것이다. 구사한 농법이라곤 태평과 방치뿐인데.











2011 땅콩 농사의 총 수확량이다. 현덕이가 아주 쵸큼 맛보라고 건내 준 양 정도는 된다.
갑자기 녀석의 의리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녀석은 금년 나의 총 수확량보다 조금 많은 양을
건내 주었단 소리가 아닌가. 정말 대인배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왜 준다던 흑땅콩은 주지 않는 것이지? 나 치사하게 그것 꼭 먹겠다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가을이라 광활한 농장에서 속속 생산되고 있는 농작물들을 집하 중이다.
개인적으로 농협과 대치중이기 때문에 수매시킬 계획은 없다.
농부를 위해 특수 제작된 구찌 장화의 자태가 새초롬하다.











우연히 알게 된 땅콩 농사의 존재로 인해 마침내 나의 로망 중 하나인
‘내 땅콩으로 땅콩죽 만들기 미션’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충분한 수확량이지만 땅콩죽을 위해서
소비에 절제를 가해야 했다. 나는 땅콩을 비롯한 견과류돌이이며 각종 건어물의 찬미자이다.
그런 사람이 땅콩죽을 위해 욕구를 억제하며 최소한으로 땅콩을 삶아서 맛을 본다.
왜 모든 ‘햇’은 그 맛이 감동적인 것일까.











욕구를 억누르지 못해 하루 저녁은 한 주먹 정도 구워 먹었다.
조금 덜 익었지만 풋풋한 맛이 난다. 사실 ‘生 것의 상태’만 벗어나도 거친 음식은
충분히 맛이 있다. 2주일 전까지 나는 중국산 소금 조미 마른 땅콩을 밤마다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이 감동적인 맛을 다음해까지 연장할 수 없다.
수확량이 0.002톤 정도뿐이기 때문이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오니 육안으로 보자면 땅콩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한 집안 가장의 엄명을 파리 똥집만큼 가볍게 여긴 마누라가 땅콩을 넣고 빵을 만들었다.
‘땅콩 사용 불가’를 선언했는데도 말이다. 분노에 치를 떨며 빵을 먹었다.
아, 그러나 땅콩은 빵에 손을 대지 않던 나를 빵먹게 만들었다. 일전의 명란빵과 더불어
빵도 먹을 만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이제 땅콩은 이것만 남았다. 껍질을 모두 깠다.
하루 저녁 정도 멥쌀과 함께 물에 불려 두라는 K형수의 설명을 따랐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도 나는 땅콩죽을 만들지 못했다.
뭔가 일과 밥과 죽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불려진 땅콩은 다시 냉장고로 들어갔다.











더 이상 거사를 미루는 것은 죽어 간 땅콩에 대한 모독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두어 시간 지나서 불려 둔 땅콩과 멥쌀을 조금 거칠게 갈았다.
다른 죽을 끓이는 과정과 같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약한 불에 계속 저어주면서 끓인다.
시계를 보면서 시킨 대로 20분 정도를 그렇게 끓였다.
뽀글뽀글 몽글몽글.











되직하다. 보기에 적당해 보였다.
멥쌀과 땅콩 이외의 재료는 넣지 않았다. 껍질을 그대로 갈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약간의 컬러가 더해졌다. 햇땅콩이라 껍질째 먹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었다.
이제 시식이다.











음식 디스플레이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진작부터 땅콩죽은 이 그릇에 담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2010년 이 무렵에 광주로 끌려가서 전시회를 했는데 그때 같이 전시를 한
양갑수 형이 구은 그릇이다. 나는 실용성을 좋아한다. 관상용은 사치다.
뒤풀이 끝나고 참여 작가들에게 한 벌 씩의 그릇을 나누어 주길래 냉큼 받아 왔다.











지난 7월의 ‘Bread & Noodle 그리고 이야기’ 축제의 둘째 날 아침 메뉴로
나는 우리밀 빵에 더해서 이 땅콩죽을 구상했었다. 그때 메인 메뉴의 하나였던 콩국수와
더불어 정말 여러 사람들과 경험해 보고 싶은 맛 중 하나가 바로 이 땅콩죽이었다.
7월이었고 국산 땅콩 가격과 기타 등등한 여건 상 ‘과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였다.
오늘 이렇게 땅콩죽을 소개하고 보니 역시 여러 사람들과 이 맛을 중심에 두고
우리네 살림에 관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으로 이 밥상을 나눌 기회를 미루어 둔다. 내년에는 어떤 형식이건 ‘토종종자’와
관련한 일을 시작할 것이고 지금 거의 확보한 쳔여 평의 밭 일부에 땅콩을 심는 문제를
생각 중이다. 작물이 나올 때마다 그와 관련한 음식을 나누는 축제가 좋을 듯하다.

이렇게 다시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또 하나의 밥을 만들었다.
절집에서는 공양供養이라고 한다.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다.
밥의 수혜자와 밥을 가능하게 한 재료, 밥을 지은 사람 모두에 대한 모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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