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 김종옥의 손, 그리고 일 년이 지나

마을이장 2011.09.28 23:41 조회 수 : 7274 추천:43





9월 4일





<'김종옥의 손'을 팝니다>는 제목의 글을 지난 2010년 11월 1일에 이곳에 올렸다.
우리끼리 작명하기로는 일명 ‘서리 감 파동’.
그때 칠백육십 분이 김종옥의 손을 잡아 주셨다. 지리산닷컴 사이트 규모로 보자면 비현실적인 숫자였다.
감동적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그 사건’은 분명히 ‘우리끼리 전설’로 회자될 일이었다.
지난 7월 9일 ‘Bread & Noodle 그리고 이야기’ 오프라인 모임 때 김종옥·서순덕 부부가 참석해서
지리산닷컴 식구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했었다. 그날 약간 정신이 없었던 관계로 ‘진짜 김종옥 손 잡기’
순서를 깜박했다. 재미있었을 것인데 아깝다.











시간은 역시 흘러갔다. 위기의 순간은 지나갔고 다시 기회의 날이 임박했다.
초여름을 지나면서부터 형(김종옥)은 금년 농사에 대해, ‘이렇게 잘 된 경우가 없었다’는 표현을 자주했다.
재미 삼아 심어 본 머루가 너무 잘 되어서 사진 찍어 달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지만 나는 결국
형의 머루를 촬영하지는 못했다. 추석이 임박하면서부터 새로이 제작해야 하는 박스에 대한 부탁을
여러 번 하셨다. 박스 안에 동봉할 인쇄물까지를 말씀하시니 카메라를 챙겨 들 수밖에 없다.
단순히 제품 소개 찌라시 말고 짧아도 뭔가 이야기가 있는 종이쪼가리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2011년 9월 4일. 김종옥의 농장을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하늘은 흐렸다.
추석을 목전에 두고 주요한 거래처에서 샘플 감을 요구한 모양이다. 몇 박스 작업을 할 모양이다.
이른 추석 탓에 감을 출하하는 것은 힘들었다. 익지 않은 물건을 내어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색깔이 좀 나온 감들을 따고 있었다. 대봉이 아닌 부유·태추·조추 품종은 당도가 올라오지 않아도
맛은 볼 수 있었다. 사이즈와 당도는 9월말부터 집중적으로 키워진다.
종옥이 형님이 시기별 성장에 관한 서류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했다.

“이거이 9월 6일경에 60mm 정도 나오면 10월 중순 무렵에는 80mm 이상 나오거든.
그런데 오늘이 9월 4일인데 큰놈은 다마가 64mm가 넘어.”(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김종옥·서순덕 부부의 농장은 두 군데로 나뉘어 있다. 역시 우리끼리 ‘구리실 농장’이라 부르는 곳과
‘학교 밑에 농장’이 그것이다. 이 날은 ‘학교 밑에 농장’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곳은 주변이 논이라
평지이고 하루 종일 일조량이 균등하다. ‘구리실 농장’은 완만한 골짜기 지형을 하고 있어 ‘학교 밑에 농장’ 보다
성장 속도가 조금 늦다.
도착했을 때는 작업은 거의 끝이 날 무렵이었다. 하늘도 팍 퍼진 구름 상태라 사진이 어두웠다.
아무래도 한 번은 더 와야 할 듯했다. 감 박스에 소용될 사진이 필요했는데 어쩌면 감 박스에 꼭 감이
들어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키 낮은 감나무 밭 사이로 ‘에스에스 기’는 요리조리 잘도 빠져 나가며 감 박스를 실어 옮겼다.
부부는 수천 그루의 나무 하나 하나를 모두 기억하고 알고 있었다.

“저 짝 다무락 뽀짝 부유 중에 색깔 많이 난 것 있는데.”
“그거 내가 땄어.”

번지와 이름표도 없는데 이런 식의 대화만으로 부부는 작업할 나무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생계를 위한 노동과 운동 삼아 짓는 텃밭농사는 다르다.
시골 사람들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 살면서 노인이 되어서도 몸을 꼼지락 거리니 도시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 뉴스를 보니 결과는 정반대다.
기자 역시 ‘의외로’ 라는 표현을 했지만 뭔 얼어 죽을 의외란 말인가?
‘몸이 녹아 난다’는 표현을 실감한다. 몇몇 농부들과 엄니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경외감을 뛰어 넘어
화가 난다. 돈이 없어 몸을 쓰고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몸으로 번 돈이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힘들다.
며칠 전 옥산식당에서 혼자 오신 아주머니 한 분이 물었다.

“요즘은 짬뽕 한 그릇에 얼마요?”











농사라는 것은 그렇게 온 몸을 던져 마지막 순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지난한 노동이지만
2010년 10월 26일과 27일의 이른 서리는 그 모든 과정을 단 한 번에 허물어 버렸다.
김종옥은 작년의 그 난리를 겪고 밥상 앞에서 말했다.

“산이 동생, 내 복이 딱 이 소주 잔 만큼이다.”

그는 그 즈음에 고생은 이제 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몸이 농사를 짓고 마음이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부부는 잠시 '나쁜 생각'도 했었다.











형수는 지난봄에 구리실 농장으로 구경 오라고 했다.
감나무를 전부 박피 했는데 보기에 너무 예쁘다는 것이었다.
한두 그루도 아닌 농장의 모든 나무를 박피하는 일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의 ‘청소’를 생각했다. 뭔가 환기가 필요할 때 나는 청소를 한다.
또는 그런 날은 텃밭 일을 하거나 여튼 뭔가 몸을 굴릴 일을 찾는다.
나의 사소한 ‘정화 행위’와 전혀 차원이 다르지만 김종옥·서순덕 부부는 감나무 껍질을
벗기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김종옥은 다시 감 농사를 짓는다.
그렇게 할 수밖에 다른 무슨 수가 있겠는가. 일상으로 그의 인상은 비교적 평온하고
약간 나른한 듯 한 얼굴이지만 일을 할 때 그는 다른 사람이 된다.
모든 영역의 일이 그렇지만 특히 농사는 제가 키우는 작물이 예뻐 보이는 사람들의
결과물이 좋아 보였다. 그냥 뿌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항상 나무의 상태를 살피고
그 나무의 지난 시간을 모두 기억한다.











우리에게 영화 '마농의 샘'으로 알려진 Jean de Florette.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 샘을 차지한 세자르와 위골랭의 의식이 진행된다.
‘그대를 꽃의 제왕으로 명명하노라.’
그 머리에 쓴 것이 감관이욘?











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하신다.
일종의 돌연변이로 생겨 난 새로운 종의 감이다. 육종연구소에 품종에 관한 의견과
재배 여부에 관한 결과를 의뢰해 둔 상태라고 한다. 퇴비용 소똥에서 생겨 난 놈인데
모양이 대봉과 단감의 중간 정도 된다. 간혹 그에게서 나무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다. 내 입장에서 그의 지식은 신기하고 재미난 그 무엇이다.
내년에 토종종자와 관련한 일을 시작하면 그에게 물어 볼 것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감을 보지 않고 역시 그의 손을 보고 있었다.











구례에 살면서부터 태추라는 감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 감을 좋아한다.
당도는 좀 떨어지지만 수분이 많아서 배와 같은 느낌이 나는 시원한 감이다.
지나치게 당도가 높은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나는 항상 ‘태추 주세요’ 라고
깡패 짓을 한다. 추석 무렵에 본가로 내려가기 전에 제사용 감을 좀 얻었다.
이른 추석에 귀한 감이다. 비가 오는데 아침부터 몇 개를 딴 모양이다.
추석 지나고 돌아와서 같이 능이버섯을 따러 가자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막상 날이 뜨거워 버섯 행은 무산되었다.








9월 27일





9월 4일 촬영 조건이 좋지 않았기에 다시 촬영 일자를 잡아야 했다.
아침 안개가 짙은 계절이다. 일교차가 십오 도 이상이다. 이른 아침에 물가로 나가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아침에 터미널 들렀다가 ‘학교 밑에 농장’으로 다시 방향을 잡았다.
요즘은 이틀에 한번은 수확 작업을 한다. 조금씩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다.
감나무 아래로 땅에 좋다는 꽃무릇을 많이 심었다.











이미 한바탕 아침 수확을 끝내고 촬영 겸해서 농장을 한 번 더 둘러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감에 색이 들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한 달 정도가 몸집과 당도를 높이는 시기다.
햇볕도 좋고 바람도 좋다. 지금 상황은 태평성대다. 그러나 농부는 노심초사다.











헉! 여섯 시 내 고향 삘이다.











1958년 生이다.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에서 나고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했다.
“일 시킬라꼬 나만 공부를 안 시켰지.”
“조사해 봐야 진실을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4남 2녀 중 위로 형님과 누님 한 분씩이다.
“한번도 밖에서 사신 적 없어요?”
“군대 가기 전에 딱 한 번 객지 생활을 했제. 자동차 정비하고 이런저런 장사.”











“콤바인이 나락 벨라고 나다니네.”

감을 바라보는 눈이나 다른 이의 들판이나 가을은 매한가지다.
너의 가을과 나의 가을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가을이다.











군대 갔다 와서 스물네 살부터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다. 시작은 역시 논농사.
이앙기移秧機 작업을 구례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다. 천 마지기 이상을 했다. 물론 임대농이다.

“우리 집 논은 스무 마지기도 안되었어. 시골 농사가 다 그렇제.
기계화 영농단이라고 있었어. 팔팔영농단이라고 했제.”

그 손의 이력은 그렇게 시작된 모양이다.











빚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빚은 점점 늘어났다. 액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가 아니라 1년에 3천은 할부금과 이자로 나갔다. 식구 중 한 사람이 사고를 내었다.
피해자는 노인이었다. 두 번 수술하고 14일 만에 사망했다. 병원비와 보상으로 당시 돈으로
일천칠백만 원이 나갔다.
남원까지 가서 콤바인으로 수확을 했다. 기계가 부족한 시절이었으니 거리를 마다않고 달려가서
몸으로 돈을 벌었다. 수매를 칠팔백 가마씩 했다. 임대농을 하면 한 마지기에 쌀 한 가마니를 받았다.
수매를 칠팔백 가마니씩 했다면 그가 얼마나 노동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보통 농가의 수매란 것은 백 가마니 내외다.











“땅 한 평에 4~5천 원 할 때 사고가 나니까…
연체 이자가 14~17% 정도였단께. 최고로 막 21%까지 오른 적도 있어. 농협 먹여 살렸지.”

이 부부가 빚과 씨름한 것은 1989년부터다.
부부는 쇠꼴을 베다가 소를 먹였다. 열아홉 마리까지 그렇게 먹였다. 통상 감당할 수 있는
노동량이 아니다. 전두환 동생이 수입소고기와 살아 있는 외국 소를 들여 온 시기가 그때였다.

“전경환이 때문에 폭삭 망했어. 이백오십만 원씩 하던 소끔이 삼십오만 원까지 내려가고.”
“열심히 살았어요. 하루에 3~4시간 밖에 못잤어요.”

아무리 일을 해도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부부는 농약을 챙겨서 산으로 갔다. 종이컵이 아니라 플라스틱컵이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컵 바닥이 녹아서 빠져불더라고… 그라고 일 하고 살았제. 징그라워.”











‘구리실 농장’으로 가자고 청했다.
논 한가운데 ‘학교 밑에 농장’보다 구리실 농장이 그림이 된다.
구리실 농장은 1991년에 구입했다. 물론 빚으로.
어떤 늙은 농부가 3천 평만 과수원을 가지고 있으면 ‘요 짓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요 짓’ 하기 싫었던 김종옥은 그래서 농장 터를 구입했다. 그 어른이 권유한 것은 배였다.
김종옥은 감나무를 심었다. 처음에는 그냥 방치했다.











그가 감 농사에 본격적으로 뛰어 든 것은 1997년부터다.
1996년경에 경상도로 견학을 갔다. 감 명장의 농장이었다. 집으로 돌아 온 그가 말했다.

“갈치 뼈다구 모냥으로 감이 났더라.”

평생을 시골에서 살았는데 감이 그렇게 탐스럽고 잘 정리된 상태로 열린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의 노력이란다. 그렇게 나무를 키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방치되어 있는 구리실 농장의 나무에 부목을 대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자 나무가 곧게 펴졌다. 4천 평 땅에서 2천만 원 수입이 났다.











농장의 깊숙한 곳은 멧돼지들의 놀이터다. 김종옥 농장의 키워드는 풀이다.
풀을 뽑지 않고 키우고 순차적으로 베어서 땅으로 되돌린다. 멧돼지는 그런 땅을 파헤친다.
프로필 사진이 필요했다. 부부는 내가 감 사진을 찍기를 원했고 나는 감 사진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감을 판다는 것은 어차피 안다.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감의 안부가 아니라 감을 키우는 사람의 안부다.











2000년 들어서서 농장은 자리를 잡았다. 연간 사천만 원 매출이 소원이었다.
2003년부터 소득이 오르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팔천만 원이 되고 그라고 최고로 일억 이천까지 오르더라고.”

빚잔치는 2009년에 끝이 났다.  구리실 농장을 2009년에 농지은행에 팔았다.
지금은 지가의 1%를 지불하고 임대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부부의 피땀이
배어 있는 땅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빚을 청산하는 전략을 택했다.
10년 후에 재구매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빚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이 더 갈급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상사마을에 새로이 터를 마련하고 집을 지었다.
좋은 조건의 새로운 빚으로.

“그건 얼마 되도 안혀. 이전꺼에 비하믄.”
“왜 상사마을로 왔어요? 평생 광의 살던 사람이.”
“내가 곁방살이를 좀 오래했어.”











2009년에 일단 빚잔치를 끝내고 부부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었다.
그리고 2010년 10월의 그 이른 서리로 그는 1년 농사의 대부분을 잃었다.

“산이 동생, 내 복이 딱 이 소주 잔 만큼이다.”

그의 이 말은 이런 이력 속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고 부부는 구리실 농장에서 작년보다 환한 얼굴로 서 있다.











탑푸르트는 감 하나의 무게가 250g 이상, 컬러 4도 이상, 당도 15브릭brix 이상 나와야 한다.
현재 예상으로는 이런 탑푸르트 요건의 감이 전체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할 것 같다.
10월 15일 이후로 본격 출하될 예정이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까지 왔으니 조금 이르지만
‘김종옥의 손’이 아닌 ‘김종옥의 감’을 소개해 보자.

탑프루트 단감 5kg – 28,000원(택배비 포함)
탑프루트 단감 10kg – 50,000원(택배비 포함)
일반 단감 5kg – 18,000원(택배비 포함)
일반 단감 10kg – 30,000원(택배비 포함)

주문은 일단 전화로 가능하다. 아직 소문낼 만큼의 출하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후
두 곳 사이트에서 온라인 주문도 가능하다. 그것은 그때 가서 다시 이곳에 알릴 것이다.

주문 사이트(며느님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 http://www.naturalgarden.kr
주문전화(가급이면 위 사이트에서. 작업 중이라 메모하기 힘듭니다...) / 서순덕 010-6626-3486
* 2010년에 ‘김종옥의 손’을 구입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면 10% DC가 될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씀 드렸지만 여튼 그러하다.











우연이건 필연이건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 아이는 그 사랑에 비례하는 투자와 노력을
보장받고 종교화된 사회적 관례에 따른 경로를 쫓아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 또는 힘 있는 자리에 위치한다.
그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그들은 무수한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고 그 과정에서 ‘우월한 인력’으로 검증받고
인정받았다. 사회적으로 우월함은 곧 바름이었다.
각론에서, 대화에서 그들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세련되었다.
그렇게 바르고 우수한 그 인력들이 세상을 엉망으로 경영한다.

내가 아는 한 농부는 1989년부터 2009년까지 빚을 갚는데 거의 모든 노동력을 투자했다.
그는 ‘우월한 인력’으로 분류될 만한 영역에 단 한 번도 속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지금은 살만하다고 말했고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만인을 위한 세상은 없다. 아직 내 생각은 그러하다. 그리고 화가 난다.











작두콩 삶고 감 몇 조각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가 불편한 몇몇 대목에 대한 질문도 했다. 왜 농민회 회장을 하느냐고.
나는 김종옥이 한 사람의 탁월한 농부일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형이 농지은행에 맡긴 구리실 농장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그는 땅에 투자하는 사람이 아니라 땅을 일구는 사람이다.
그것이 땅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바름’이다.
세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못난 것들’이 그렇게 자리를 잡고 서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 사진을 인쇄물의 메인 이미지로 사용할 생각이다.
물론 김종옥·서순덕 부부는 색깔 잘 나온 감 사진을 사용할 것이라 믿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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