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우리밀 시즌3을 끝내고

마을이장 2011.07.19 00:53 조회 수 : 9007 추천:72








6월 14일. 운조루 밀을 베었다.
이른 논은 5월 말에도 베곤 했는데 2011년에는 전반적으로 조금씩 느리다.
산수유와 매화가 2주일 정도 늦은 이후로 모든 것은 그리 되었다.
진작부터 농부는 수확량이 2010년 보다 많을 것이란 소리를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지난겨울은 혹독하도록 추웠다. 녹차가 많이 얼어 죽을 정도였다.
추위와 적당한 봄비가 밀을 잘 자라게 했는지 만 3년으로 접어든 땅의 힘이 그리
만들었는지는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어느 기업의 사외보 원고 청탁을 받았다.
대부분의 청탁 원고에 응하지 않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마감 있는 원고를 쓰지
않겠다는 제법 오래된 나름의 결심 때문이다. 그러나 사외보 원고는 응하는 경우가 많다.
이 역시 간단한 이유다. 사외보 원고료는 짭짤하다.
여름 음식에 관한 주제였는데 이곳의 ‘뜨거운 콩국수’가 계절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미각으로나 두루두루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를 쓰면서 ‘이 뜨거움을 다른 사람들도 맛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려면 결국 지리산닷컴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조직해야는데…











여하튼 밀은 팔아야하고 2011년에는 지리산닷컴에서 진행할 생각이었다.
2010년의 포장과 배송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는 것이 스스로 일을 자청한 이유였다.
밀을 벤 주 어느 날 밤에 지리산닷컴 식구들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밀가루를 파는 것에
더해서 ‘Bread & Noodle 그리고 이야기’ 라는 오프라인 모임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밀을 주제로 밥상을 차리고 귀농·귀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개략적인 계획이었다.











6월 21일 밤늦게 ‘우리밀 시즌3’에 관한 포괄적인 안내 말씀이 지리산닷컴에서 긴 글로 나갔다.
대략 그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밀가루 장사를 시작하면 장마가 시작된다.
밀을 벤다는 것은 모를 심는다는 뜻이고 모를 심는다는 것은 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상사마을 전 사무장에게 밀가루 주문을 맡길 꼼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백일 지난 아이를 데리고
양가 방문 전국투어를 떠난단다. 일 주일 동안. 나 이뤈. 이건 원래 내 구상이 아니라규!
6월 22일 수요일부터 다시 주문 메일과의 전쟁에 돌입해야 했다.
그냥 다른 일은 접어버렸다. 어차피 정신 산만하고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비와 더위가 교차하는 날들이었고 밀가루는 예상보다 더디게 팔려 나갔다.
그 원인에 관해서 이리저리 가늠을 했지만 딱히 하나의 이유만은 아닐 것이란 가늠만 했다.
양이 좀 많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초반을 지나서도 주문은 꾸준했다.  
콩국수 원고를 주었던 사외보 제작 출판사에서 음식 관련 취재를 오겠단다.
운조루에서의 콩국수 섭외를 부탁했다. 아마도 내가 준 원고가 발단이지 싶었다.
지리산닷컴도 한 번 정도의 리허설은 필요했다.
밀가루 주문을 마감해야 하는 시기였던 터라 제법 바빴지만 음식에 관해서
심하게 헌신적인 가이드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 하루 정도 몸을 던졌다.
인근 식당들을 먼저 취하고 다음 날 점심으로 콩국수를 진행했다.
운조루 어르신이 다시 모델로 등장할 수밖에. 나는 당신의 밀을 요구했지만 엄니는
단호하게 ‘백밀가리’를 요구하신다. 우리밀은 ‘물 잡기가’ 쉽지 않고 풀어진다는 것이
엄니의 주장이셨다. 주방장이 아니라는데 별 수 없다.











돌확에 콩을 갈고 엄니가 원하는 수입밀로 반죽해서 칼로 썰었다.
나도 오래간만에 뜨거운 콩국수를 먹는다. 그리고 이 날, 왜 콩국수를 좀 식혀서 먹는지
이유를 알았다. 간수를 넣어야는데 뜨거운 콩국 상태에서는 순두부처럼 콩이 엉긴다는 것이었다.
고집을 부려서 뜨거운 상태에서 간수를 넣었다. 별 문제없다.
‘Bread & Noodle’ 행사 때에도 그냥 뜨거운 상태로 먹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6월 28일 화요일 오후에는 모든 주문을 종료했다.











작년 가을의 쌀이 많이 팔렸다. 남아 있는 쌀을 수매시키기 직전이었는데 초반전에는 쌀의 특성상
주문량이 많다보니 쌀이 밀가루 보다 더 빠르게 나갔다. 물론 더 일찍 주문을 종료했다. 좀 남아 있었지만
농부와 나도 먹을 것은 남겨 두어야했다. 밀가루 파는데 부록으로 쌀을 붙였는데 쌀이 주인공이 된 꼴이었다.
역시 원인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 가격. 세일을 했다. 가격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생각이 그렇게 정리되자 좀 심란하다. 기존 관행농 쌀의 150% 가격 수준에서 판매를 한다면 줄어 든 생산량과
퍼부은 퇴비 값을 더하면 그냥 수매시키는 것 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 될 것이다.
이 대목은 농부와 이후 문제를 상의해야 할 듯하다.
쌀 배송은 바로바로 끝내었고 이제 가장 골치 아픈 장면이다. 밀을 밀가루로 만드는 일이 남았다.











다시 하동 부계리의 방앗간을 타진했다. 첫 마디에 거절하실 줄 알았는데 시간을 넉넉하게 준다면
해 주신단다. 허리를 숙이고 아저씨 마음 변하기 전에 트럭에 싣고 하동으로 날아갔다.
역시 비가 문제다. 이동 중에도 구례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악양은 비가 온다고 했다. 비는 남하 중이었다.
운을 믿고 그냥 싣고 달렸다. 내려가는 비의 뒤통수를 보면서 부계리 방앗간에 밀 가마니를 풀었다.
옛 사람들은 80kg 가마니를 어떻게 들었을까.











밀가루는 예상보다 많은 양이 나왔다. 밀기울이 나온 양을 보면 알 수 있다. 거의 껍질만 남겨두고
모두 빻았다는 판단이 들 정도로 많이 나왔다. 그것은 주문을 더 받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다시 메일과 한글파일, 엑셀파일을 오가는 손가락질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운조루 농부가 직접 밀가루 주문을 받고 있다. 아래로.
http://www.unjoru.net/bbs/view.php?id=mall&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4

이제 포장이다. 육체적으로 제일 힘든 공정이다. 오미동 마을 아주머니들 세 분을 초청했다.
일이라면 생활의 달인 급에 해당하시는 분들이라 1kg 포장을 몇 번 하시더니 역시 속도가 붙는다.
“엄니들, 밀가리 일 키로 천 개만 담으면 됩니다이!”
점심 먹고 시작한 일은 오후 6시 좀 넘어서 끝이 났다. 원래는 이틀을 예상했는데,
“아, 오늘 끝을 내불자고오~” 주장하시는 엄니들의 분기탱천에 힘입어 공기를 단축했다.











다음 날은 박스작업이다. 나와 운조루 정수 씨, 상사마을 전 사무장이 책임져야 한다.
아침부터 달렸다. 7월 6일 수요일이었다. 수요일에 택배를 출발시키는 것이 안전하다.
아무리 밀려도 금요일에는 도착할 것이다. 99%는 목요일에 도착할 것이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운조루 행랑채 안에서 세 남자는 동일한 분량의 짐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는 짓을 반복했다.
점심 지나서 토지면 우체국 차량이 운조루 마당으로 들어섰다. 일단 먼저 보내고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오후 4시 경에 우체국 차량이 들어왔다. 모든 일이 끝이 났다. 첫 해와 비교하면 많이 단축되었다.
택배용 주소는 모두 엑셀 파일로 우체국으로 넘어가고 영수증만 확인한다. 지친다.
주문에서 택배 완료까지 보름 일이다. 그러나 파는 재미도 있다. 대략 목표량을 완수했으니 이 역시
지리산닷컴 주민들의 배려 덕분이다. 그러나 진짜 이제 밀가루 장사는 직접 하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럼 이제 일이 끝이 난 것인가? 뭔가 남았는데…










‘Bread & Noodle 그리고 이야기’ 그리고 비, 비, 비…

7월 9일 토요일 아침.
비가 내렸다. 엄청나게 내렸다.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에 촉각을 세웠지만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내렸다.
‘Bread & Noodle 그리고 이야기’ 라는 지리산닷컴 최초의 오프라인 모임을 시작하는 날이다.
서른 명으로 참가 인원을 제한했다. 큰 규모의 사이트도 아니고 지리산닷컴의 지리적 좌표는 전라남도 구례군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사는 곳에서 멀다. 간혹 진행하는 지리산닷컴에서의 농산물 소개의 경우와는 다르다.
서른 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 신청할 수도 있는 일이다. 스무 명 이하인 경우에는 행사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란
공지도 올렸다. 그렇다고 막상 행사 자체가 무산되면 좀 거시기하지 않은가.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부터 내 머리 속은 하얗게 비었는지도 모른다.
일단 사람들이 이 비를 뚫고 도착할 수 있을 것인지가 가장 관건이었다. 집결 시간은 오후 12:30분이다.
아침 9시 경에 모든 참가자들에게 일제히 문자를 발송했다. 오시고 계시냐고. 온라인에서의 댓글이 아닌
이미 서로에게 노출된 전화번호로 하나 둘씩 답 문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문자에 답했다.
행사를 하긴 하는 모양이다.
아침에 읍내에서 장을 봐야할 물건들이 있었다. 수육용 고기와 칵테일 얼음 그리고 또 뭔가가 있었다.
나는 그것들에 대한 목록을 지난밤에 작성했고 스텝들이 해야 할 일들도 분류해서 메모를 작성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메모를 해 두었다는 자체를, 또는 기억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메모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일단은 운조루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방침만 정했다. 이것저것 챙기러 뛰어다니다가는 모든 일이 뒤엉킬 것 같았다.
11시가 넘어서면서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비는 여전했다. 오늘 중에 한 번이라도 맑은 하늘이 보일 것이란 일말의
기대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세였다. 네 사람 정도가 좀 늦을 것이란 문자를 보내왔다.
약속 시간이 되기 전까지 나머지 사람들은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운조루를 들어서는 사람들,
굳은 얼굴로 들어서는 사람들, 어색한 웃음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가볍게 우산 받쳐 들고 운조루를 산책할 수 있는
수준의 비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조루 누마루에 앉아서 이름표와 출석부를 확인하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작성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운조루 셋째 며느님의 안내로 운조루 곳곳을 돌아보고
하하호호 시간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돌확(확독)에서 콩을 갈아보는 사람, 밀가루 반죽을 직접 썰어 보는 사람,
끓고 있는 콩국에 면을 던져 넣고 활짝 웃는 사람 등, 너무나 밝고 자연스러워 도무지 처음 만난 사람들 같지 않은 분위기가
꿀처럼 넘쳐흐르는 장면.
막상 개봉한 영화에서는 하늘은 온통 먹구름이었고 사람들은 내리는 비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이 어색한 침묵인지 아름다운 정적인지 판가름하기 힘들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일단은 정해진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
행사 공지가 나간 것이 6월 21일 밤이었기에 운조루 어르신께는 콩국수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진작에 드렸지만
‘그때 가서 이야기 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차피 기억하시기 힘들다는 말씀이다.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노인은
가장 정확하게 당신의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밀가리는 언제 온가?” 우리밀 반죽을 다른 곳에 맡겼다.
십년 이상 우리밀 칼국수를 만들어 온 냉천리 모 사장님에게 부탁을 해 두었다. 그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참가 인원을 말하자 모 사장님은 필요한 밀가루 분량을 말했다. 일단 하루 전에 10kg을 전달했다.
미리 배포한 일정표에서 첫 끼니는 오후 1:20이다. 밀가루 반죽이 조금 늦게 도착했다. 급하게 끓는 콩물에 면을 썰어서
던져 넣었다. 참가자들이 직접 돌확에 콩을 가는 미션은 불가하니 남겨 둔 콩을 운조루 어르신이 급히 갈아서 마무리했다.
원래는 열무김치만 내기로 했는데 어르신은 깻잎과 무김치를 따로 준비하셨다. 손님상에 달랑 열무김치 하나만 내는 것이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비를 피해서 부엌 뒷문을 지나 누마루 뒷문 툇마루에서 배식을 시작했다.
역시나 운조루 어르신은 조금 식혀야 한다고 주장하셨지만 내가 먹어 본 그대로 뜨거운 상태로 콩국수가 나갔다.
예정에 없었지만 운암댁은 솥을 잡고 있었고 내가 국자를 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양을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대략
넉넉한 한 그릇을 떴다. 대략 배식이 끝나고 나도 한 릇을 차지하고 곁방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먹어야 오후를 버틸 것이다. 사실 나는 맛을 감별하기 힘들었다. 나의 주문대로 거칠게 갈아진 콩이 더해진 것 이외에는
정확한 판단을 하기 힘들었다. 외국에서 참가한 청소년 나이의 아이들도 있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메뉴인지도 걱정스러웠다. 몇몇 사람들이 그릇을 들고 마루를 오갔다. 더 드시는 것이다. 그러면 일단 된 듯하다.
역시 밥은, 모임에 온기를 돌게 하고 활기를 띄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 같이 밥상을 나눈 사이가 된 것이다.
경북 구미에서 참가한 민우 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식사를 끝내고 2시부터 참가자 인사와 방 배정 시간을 가졌다.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대략 3:1의 경쟁률을 뚫고 참석하신 분들이다. 모두 서른네 분이다.
서른 분으로 제한한다고 했지만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있어 인원이 좀 초과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답이 없었던 한 사람의 참가자 대신 들어갈 사람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세 모녀의 참가자가
결정되면서 인원이 늘었다. 참가 신청 접수 메일을 마감한 다음 날,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10년 만에 귀국하는 날이 7월 2일이라 두 딸들에게 한국의 시골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간곡한 참가의 변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참가자를 선정하는 것은 힘들었다. 무조건 선착순으로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래서 간략한 참가의 변을 요청 드렸다. 서른 네 사람 중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다섯 사람 정도였다.
그 조차 한 번 본 사람이 네 사람이었다. 참가 신청 메일을 일별하고 난 이후 ‘개인적인 예상’ 그대로
오래된 지리산닷컴 주민들은 대부분 신청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리산닷컴 그 이전부터 우리는 온라인으로만
존재를 확인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개인적인 예상’ 이란, 직접 보지 않아서 유지되고 있는 ‘지금의 안정감’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을 것이란 짐작이었다.

전체 인사를 진행하면서 약간 예상 밖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전체 참가 중 7명 정도의 인원이 지리산닷컴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가족 참가자들의 두 꼬마를 포함하면 아홉 명 정도가 된다. 신청 메일을 넣은 한 사람은 지리산닷컴을
이해하고 있지만 함께 온 사람들은 대부분 사전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라고 봐야했다.
인원을 선별하면서 한 두 사람 그런 경우가 있을 것이란 짐작은 했지만 이 상황은 예상보다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모임은 낯선 땅이다. 나에게도 그런 느낌은 같다. 보다 간절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번에 참가하시는 것이 힘들겠다는 메일을 탈락된 분들에게 보내고 난 이후 답신이 거의 없었다.
사이트에서도 별 말씀들이 없었다. 그 침묵만으로 나에게 그 분들의 서운함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오후 3시 30분에 홍순영 형님 http://www.ecosoon.com 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행사에 참여하시게 되었다. 미리 전화를 드렸을 때 “구 일? 안되는데. 가족 모임이 여수서 있으가꼬….”
이번 행사를 통해서 그 동안 지리산닷컴에 등장하셨던 인물들을 직접 소개해 드리고 싶었다. 더구나 저녁 밥상의 쌀은
홍순영의 쌀로 진행할 것이기에 생산자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순영이 형님의 가족 모임은 어쩐 일인지 취소가 되었고 3시까지 오시라는 약속을 지켜 운조루로 찾아오신 것이다.
“나 운조루 첨 와 봐. 와~ 좋네.”
서울 사는 김 서방 남산에 가보지 않은 것과 같은 일이다. -,.-











이 날 나는 사진을 거의 찍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은 충분히 예상했기에 군청 K형님에게
부탁을 해 두었지만 다시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행사 이틀 전에 K형님의 아버님이 별세하셨다. 막상 행사를 끝내고
다른 사람들이 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일별해 보니 이번 글을 위해 필요로 하는 장면들이 많이 없다.

농부 홍순영의 이야기는 화면에 질문을 띄워 놓고 홍순영이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미리 질문을 보내 드릴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리하지 않았다. 꼭 정답같은 답변만 들을 수도 있겠다는 지례 짐작 때문이었다.
이 대목 즈음에서 나에게 불현 듯 다가 온 숙명적인 단어가 있었다. 수육.
저녁 밥상의 수육은 내가 담당이었다. 이 시간 즈음에는 수육을 만들고 있어야 했는데 나는 자체를 망각하고 있었다.
수육의 재료는 이곳 운조루가 아닌 잠을 자는 마을 상사마을회관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삐융삐융~ 머릿속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다음 순서는 고영문&꽃마리 http://www.jirisanshop.com 님의 귀농 경험담 순서였다.
전북 고창 출신이고 구례로 귀농하기 전까지 광고쟁이로 살았던 고영문 씨의 이를테면 좌충우돌 귀농 체험담을 배치한 까닭은,
고영문&꽃마리 님 부부의 경우는 어마어마한 농사가 아니라서 실현 가능해 보이고, 다짜고짜 농산물만 파는 사이트가 아닌
이야기가 있는 사이트 운영을 하시고 계시니 권장 사례로서 적절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죄송스럽게도 나는 소개까지만 진행을 하고 운조루 부엌으로 뛰어 내려왔다. 수육을 삶아야했다.
장작불은 준비되어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갑자기 요구해도 가마솥에 장작불 같은 것이 쉽게 준비된다는 점이다.
정신없이 커피와, 된장과 소주와 뭐와 뭐를 솥에 투척하고 잘 섞이도록 휘젓고 고기를 투하했다. 70인 분으로 준비했다.
옆에서 바라보던 운조루 형님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 고 절규를 했지만 시간 관계상 설명을 할 수는 없었다.
하긴 그 아까운 30도 소주 댓병을 두 병이나 솥에 붓는 장면을 실견 했으니 형님 입장에서는 애간장이 녹을 수밖에.
저 아까운 소주를…











이를테면 전반전이 끝났다.
5시 30분부터는 개인 휴식시간이다. 이런 시간에 마을 산책을 한다면 적절하겠지만(실제 그런 구상이었고) 비는 여전했다.
스태프들에겐 이 시간이 황금같은 시간이자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같은 날, 오미동에는 다른 단체 방문객 45명이 있었다.
저녁시간부터는 오미동 마을회관에서 진행을 예정하고 있었다. 다른 방문객들은 저녁 6시에 식사시간, 우리는 7시다.
그러나 다른 방문객들도 이 비 속에서 별다른 수단이 없었기에 마을회관에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고 자연스럽게
식사 시간은 지연되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한 음식 마련을 다른 곳에서 했야만 했다.
모든 음식이 실외를 통해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음식을 준비 중인 지리산닷컴 K형 집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형수는 살짝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별 수 없다. 인해전술이 답이다. 참가자들이 찬 그릇 하나와 우산을 받쳐 준 상태로 음식을 운반했다. 대략적인 시간과 미션은
지켜지고 완료되었지만 계속 조마조마한 상태라고나 할까.
스태프와 참가자들이 같이 밥상과 음식을 셋팅했다. 그 동안 나와 사무장은 빔 프로젝트와 마이크 시스템을 체크해야 했다.
물론 이틀 전에 확인은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원래는 채식 식단을 준비하려고 했다. 한 번 정도는
그럴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메인 요리로 생각했던 두부 준비가(마을에서 직접 만든) 며칠 전에 무산되면서 급하게 돼지수육이
결정된 것이다. 엄나물, 표고버섯 등 나물류, 생김치, 열무, 샐러드, 두 가지 전, 쌈 채소, 아욱 국 등 10여 가지 찬을 준비했다.
밥은 홍순영의 홍미와 흑미, 현미, 백미 그리고 이번 햇 통밀을 더해서 오곡으로 지었다. 가능하면 모든 식재료는 구례에서
구한다는 원칙이었다. 이 대목은 거의 지켜진 듯하다. 상투적인 시골밥상 스타일을 차려내고 싶지는 않았다.
준비한 음료는 비정제 흑설탕으로 담은 유기농 매실효소와 탄산수, 얼음과 원두커피였다. 두 대의 케멕스를 준비했지만
제빵 팀이 식사를 위해 도착했을 때에야 서빙이 가능했다.
사전 준비회의를 할 때 ‘우리들 몇몇이 모여서 먹는 그대로의 퀄리티’ 라는 과제를 설정했었다.
문제는 대략 50인 분 정도라는 것이었지만. 그리고 역시 스태프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밥상 사진을 찍지 못했다. -,.-











늦은 8시부터 지리산닷컴이 준비한 이야기를 프레젠테이션했다.
나 역시 식사시간 끝 무렵에 밥을 먹었지만 음식 맛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짙은 커피를 한 잔 청해서 마시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랄까… 나는 하루 종일 날이 서 있었지만 차분하긴 했다.
이 시간이 끝나면 편하게 술 한 잔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루를 끝내게 될 것이다.
리허설은 없었지만 PT 자료 백여 장을 준비하면서 이야기의 절반은 준비가 되었기에 나로서는 별 문제없이
풀어나갈 수 있었다. 비교적 심각한 주제를 쉽게 풀어야 했다.











왜 오늘과 같은 밥상을 차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대다수의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식재료와
오늘 먹은 식재료의 비교했다. 그 이야기는 이미 지리산닷컴에서 나갔던 이야기들을 축약한 형식이었다.
운조루와 지리산닷컴의 우리밀 이야기가 시작된 날로부터 지금 우리가 먹기까지의 과정을 보여드렸다.
그리고 우리 종자 문제를 짚고 흔히 말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에 관한 생각을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귀농·귀촌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 직전에 이미 50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몰랐다. 이야기의 후반부는 감성적으로 풀어나갔다. 그 동안 사이트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조금 곁들였다. 간혹 주변 사람들에게 넋두리 하곤 했던  ‘말하지 못한, 그래서 결과론적인 거짓말’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생각했던 더 많은 이야기들을 충분히 전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 시간이 아닌 두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밤을 넘겨야 했는지도 모른다.
먼 길을 오셨고 모니터에 나타난 글씨가 아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만남이니 뭔가 더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었지만 충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을 지키고 싶었다.











나의 이야기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김종옥 형님 내외가 참석하셨다.
2010년 이른바 서리 감 파동 당시 한 사람의 농부였던 김종옥은 2011년에는 구례군 농민회 회장님이 되었기에
초대는 했지만 참석 여부를 장담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역시 늦은 시간임에도 결국 참석해 주셨다. 혹시해서 준비해
두었던 몇 장의 자료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참석자들에게 ‘김종옥의 손’을 소개했다.
“58년 개띱니다” 라는 투박한 말씀으로 인사를 하셨다. 뒤에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지난해의 소회를 말씀하실 때
형수님이 울먹하신 모양이고 잠시 숙연했던 모양이다. 여하튼 지리산닷컴으로는 사이트에서 소개했던 두 농민이
모두 참석했으니 그 장면은 스스로 생각해도 좋았다.











구례 막걸리를 예정했는데 청양군 막걸리가 도착한 관계로 그 술을 비우기로 했다. 참석자의 2/3가 여성이다.
주류 후보로 하우스 맥주도 거론되었지만 아직은 준비 중인 관계로 막걸리로 낙점했다. 도토리묵과 과일이 다시 차려졌다.
그리고 마이크를 돌렸다. 모든 분은 힘들어도 정해진 시간까지는 가족과 부부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우선 마이크를 돌렸다.
다섯 쌍의 부부와 세 가족 분들이 참가하셨다. 친구가 손잡고 참가한 경우가 여덟 분, 나머지는 개인 참가자 분들이다.
교사, 공무원, 부부 소방관, 사업가, 직장인, 약사, 의사, 바느질, 바리스타, 프로그래머, 도서관 사서, 아동상담, 전업주부,
자칭 브로커… 다양한 직업군이었다. 마이크 잡은 모든 분들이 말씀들을 잘 하셨다. 역시 시간을 넘어섰다.
늦은 11시가 일과의 끝이었는데 결국 30분 정도 초과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일정이 오미동 숲 산책이었기에 7시 기상이었다.
무한정 달릴 수는 없었다. 주방과 회관을 대략 정리하고 모든 불을 끄고 하루를 끝내었다. 비는 여전했다.
집이 아닌 읍내로 차를 몰았다. 담배를 사 두어야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누우려니 새벽 2시다.











7월 10일 새벽 4시 30분 상사마을 제빵실.
제빵 팀은 새벽부터 작업을 해야 했다. 월인정원의 1기 워크숍 참가자 분들이 제빵 스태프로 참가했다.
역시 대략 50인 분의 빵을 주문했다. 때로 인연이란 것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여섯 시로 알람을 설정해 두었지만 내가 눈을 뜬 것은 일곱 시가 넘어서였다. 창밖으로 빗소리는 여전했다.
참가자들에게 일곱 시가 아닌 여덟 시에 운조루에서 만나자는 문자를 보냈다. 지난 밤 빗소리에 잠을 제대로 청했을지,
모기는 극성을 부리지 않았는지, 운조루에 머문 25명 정도의 인원이 그 늦은 시간에 모두 샤워를 했을지…











결국 오미동 숲 산책은 무산되었다. 이틀 째 비의 힘은 여전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자세로 내리는 비를 보며 지난밤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9시 무렵에 제빵팀이 빵을 가지고 운조루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일사분란하게 빵과 잼, 오일과 꿀을 서빙했다.
햇 감자를 넣은 포카치아를 준비했다. 여기에 사용한 올리브와 오일, 발사믹 식초는 구례산이 아니다.
나머지는 이 아침 빵의 재료 역시 구례산이다. 꿀은 김종옥 형님의 내어 놓은 양봉 꿀이다.
이른바 벌밥(설탕물)을 주지 않은 꿀. 감꽃과 찔레꽃, 아카시아 등을 주로 먹은 벌들이 생산한 것이다.
그리고 감말랭이도 내어 놓았다.
월인정원의 설명이 있었다. 빵은 실패했노라고, 원인은? 밀이 지나치게 힘이 좋아서 과발효 되었다.
정점을 지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날씨. 빵과 발효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40% 상태의 빵이지만 밀 자체의 풍미로
즐기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커피를 내렸고 그 상태에서 정리 형식의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얼핏 하늘이 열려 산책을 시도했지만 100m 전진 후 바로 후퇴해야 했다. 결국 시작에서 끝까지 비였다.
드리기로 한 밀과 책을 나누었다. 한 분씩 제 각각의 시간에 맞게 출발했다.
바쁘게 출발하신 분도 있고 저녁 7시 무렵 기차로 떠나신 분도 있다.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상투적이라 꼭 하려했던 것은 아니지만 단체 촬영도 하지 못했다. 하지 못한 탓인지 아쉽다.
나는 모든 분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에 살펴보니 우리가 만난 시간 동안 구례에는 대략 240mm의 비가 내렸었다.











7월 13일 수요일. 결산과 평가를 위해 지리산닷컴 식구들이 다시 모였다.
삼백삼십오만 원의 참가비를 받아서 삼백일십팔만천 원을 지출하고 남은 돈으로 우리는 하동 갈사포구로 향했다.
직장회식이다. 원래 이런 정도 수익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했다. 7월이고 이른바 ‘하모’ 갯장어 철이다.
하모와 농어회를 앞에 두고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고 위로했다.
첫 오프라인 모임을 끝내고 전반적으로 약간 멍한 상태였다. 스태프들의 자체 평가란 아무래도 문제점을 위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자체적인 평가는 문제투성이였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평가는 예상 밖이었다. 물론 설문조사라는 뻔한 한계를 가진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10항의 선택형과 2항의 서술형 설문지를 마련했었다. 질문 성격에 따라 복수의 답을 할 수 있게 했다.
설문 06번 문항의 결과가 궁금했다.

▶ 이번 행사 중 가장 좋았던 대목은?
1. 콩국수  2. 저녁밥  3. 아침빵  4. 귀농귀촌이야기  5. 오미리  6. 운조루  7. 산책
스태프들의 예상을 깨고 열다섯 분의 선택을 받은 운조루가 1위였다.
우리는 그 비를 원망했는데 고택에서 듣는 빗소리가 제일 좋았다는 분들이 많았던 것이다.

설문 08번 문항의 결과는,
▶ 전체 행사 진행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1. 매우 그렇다 – 14
2. 그렇다 – 8
3. 보통이다 – 4
4.아니다와 5.매우 아니다를 선택하신 분은 일단은 없었다.
그러나 응답하지 않으신 분들의 답변은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설문 10번 문항의 결과는,
▶ 앞으로도 지리산닷컴 주관 행사에 참여하실 의향이 있습니까?
1. NO  2. YES
NO를 답하신 분은 없었고 서술형으로 의견을 주신 몇몇 분들이 계셨다.
나머지 YES를 선택하신 분들은 25명이었다.











행사는 끝났다.
개인적인 가장 큰 아쉬움은 서른 분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진행하고 몸을 움직이는 조건에서 그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는 이후의 행사는 마을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
물론 행사 전에도 이번 행사는 마을과 함께 준비하는 이후의 프로그램을 위한 일종의 실전 리허설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설문에 서술하신 어느 분의 의견처럼 이번 참가자 중에서 스태프를 지원받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행사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이후의 몇 가지 오프라인 계획에 관한 구상을 말씀드렸다.
그 날 드린 말씀이 모두 실현될지는 장담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가능하도록 방법을 찾을 것이다.
마음속에는 그 비를 뚫고 100% 참석하신 분들의 진심을 담아 두었다.
참가자 여러분들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드린다.
또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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