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당신에게 김장이란?

마을이장 2018.12.24 22:58 조회 수 : 1330

 

 

   

 

 

 

 

13년차 복합영농의 대가는 2018년에도 배추를 심었다.

9월 2일 일요일. 순영이 형네에 연락해서 대량의 숙성 퇴비를 구했다.

농장의 면적에 따라 심대한 자재비용이 들어가지만 농사 성공을 위해 자재비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9월 3일 월요일 장날. 배추모종 21개를 구입했다. 왜 21개냐?

한 줄 7개 포트 세 줄을 잘라서 판매하니 매너 있는 농업인은 20개를 요청할 수 없다.

배추는 대략 초반 4~5일과 2주일 정도 후가 승부처다.

10번 배추가 초반전에는 생사여부가 불투명했는데 어느 듯 위기를 극복하고 어엿한 배추의

풍모를 풍기기 시작할 무렵, 13번과 21번 배추가 시들하기 시작했다.

초반에 약한 놈은 차광막을 해 준다거나 해서 최대한 보호를 한다. 햇볕에 녹아버릴 수 있다.

그리고 2주일 정도면 확실하게 생사여부 입장을 정하는데 벌레와의 싸움이 관건이다.

매일 아침마다 벌레를 잡는다. 10월 중반 넘어가면 벌레의 전성시절은 기후적으루다가

끝이 나기 때문에 한 달 정도는 벌레를 잡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후로는 틈만 나면 물을 준다. 담배 피다가도 주고 물 주다가도 담배를 핀다.

물주기를 한 달 정도 하면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위 사진에서 10월 29일 경이다.

묶어 줄 것인지 걍 둘 것인지 며칠 고민하다가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제 물을 주지는 않는다.

자칫 새벽에 영하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는 비나 눈을 맞으면 된다.

이제 순전히 배추 지 알아서 할 일이다. 지금 시원찮다고 퇴비 주고 해봐야 죽은 자식 부랄 만지기다.

게임 끝이다. 외양은 끝났고 속이 얼마나 차느냐 문제이니 그 속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10월 29일 이후로 배추 상태를 더 이상 촬영하지 않았다.

원래는 12월 첫 주에 김장을 할 생각이었다. 구례는 11월 셋째 주에 제일 김장을 많이들 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미 늦은 상태였지만 원래 12월에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입장이었다.

사람들은 점점 빨리 김장을 하고 있다. 파종도 점점 빨라진다.

11월 20일경부터 11월 31일까지 두 집의 이사 미션을 일단 끝내고 정리 국면에 들어가면서

사실 12월 첫 주 김장이 힘들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배추는 뽑아야 했다.

영하 5도 이하를 이미 넘나들기도 했으니 배추도 언 땅에서 힘들다.

 

 

 

 

 

정말 성실한 인간형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금년에는 열여덟 포기의 배추로 다소 미약한 김장을 할 것이다.

날이 추워지니 배추가 슬러시가 되기 전에 일단 뽑았다.

7번, 13번, 21번 배추는 그대로 두었다. 겨울 동안 푸른 채소로 소용될 것이다.

일단 급한 일들 좀 처리하고 다음 주 중반에 2년 만에 명인의 김치를 만들 것이다.

 

라고 12월 7일에 주절거렸지만 역시 또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사 끝내고 해 주기로 한 일들 두세 가지를 납품하는데 집중하고 많이 지쳤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정도 인생사 이런저런 일들을 목도하느라 사오일은 하루 400km 정도를

이동하는 무리를 했다. 그 이동은 문병과 문상과 여행 아닌 여행이 대부분이었다.

12월 22일은 양산에서 문병하고 해운대로 갔다가 온천장 본가로 돌아오면서 간만에 도시의

정체를 견디면서 체력적으로 제법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눕고 싶었다. 무엇보다 구례로 돌아가서

하루 정도 쉬고 김장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일었다. 저온저장고로 배추와 무가 들어간지

2주일이 넘었다.

 

 

 

 

 

12월 22일 구례로 돌아왔다. 돌아 온 것 만으로 휴식은 가능했다.

23일 아침에 약간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무얼까? 엄니 댁으로 소금을 훔치러 갔다.

그 집 본채 뒤에는 간수 빠진 오래된 소금이 있다.

들켰다. 엄니는 비닐을 세 장 들고 오셨다.

 

“엄니 한 바가치만 하믄 된디.”

“그걸로 뭔 김장을 하나!”

“배추가 스무 개 안 되는…”

“그라녀. 배추 간에 소금이 그걸로 된디!”

 

정말 나는 한 바가지면 되는데… 딱 열 바가지를 퍼 주셨다. -,.-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는 무얼까? 엄니를 이기기 힘들다.

왜 이 집 사람들은 아들이고 엄니고 나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와서 빈 독에 소금을 부었다. 앞으로 2년 동안 소금 살 일은 없다.

젠장.

 

 

 

 

 

아침부터 날이 급 추워졌다. 꼭 이런 날 일을 한다. 복이다.

세상에 내 배추가 속이 노란 녀석이 제법 있다뉘. 다섯 포기 정도 이번에는 정말 배추처럼 생겼다.

나머지는…

 

 

 

 

 

역시 열 포기 정도는 쪼갤 필요 없는 봄동 자태를 하고 있었다. 유기농이 그렇지 뭐.

의도한 거니까. 진짜다.

김장의 관건은 절임이다. 이건 분명하다. 양념 어쩌고저쩌고는 결정적이지 않다.

김치는 절임이 관건이다. 여기서 명인의 김치는 승부를 본다. 자태를 보라. 명인 맞잖아.

 

 

 

 

 

중형 사이즈 고무 다라이에 사뿐하게 간수 채워 입수시켰다.

날 추우니 하루는 재워 둘 생각이다.

 

 

 

 

 

12월 24일 월요일이다. 우선 아침에 부부는 병원부터 달려갔다.

월인이 독감이다. 나는 무사하나 같은 방에 사는 서식 특성 상 접수를 했다.

읍내 이정회 내과는 야전병원 상태였다. 이 선생이 진료방에서 화장실로 튀어 나오며

흘깃 나를 보고, ‘오후에 오시죠. 3주일째 이러네요.’

2시간 정도 기다리는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했다.

김장 재료 장보기, 전입신고, 택배 찾기.

우선은, 지난 금요일 양산으로 이동할 때 받은 택배사 톡을 처리해야 했다.

“이사했습니다. 제가 찾으러 갈게요.”

오늘이 그날이다. 마산면 냉천리로 가서 택배를 찾았다.

접시다. 내 이름이 새겨진 접시다.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사람들도 참…

전라도닷컴과 연관 있는 자에게 사진 찍어 톡을 날렸다.

 

나 / 저 이런 사람이어요…

그 / 한정판 접시라고 하던데

경쟁률이 높다고 하던데

권력이나 금품 개입 불가라고 하던데

소유하게 될 자의 용모도 따진다고 하던데

계측하기 어려운 품성 뒷조사도 있다던데

……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웠음을 알겠네요.

있어야 할 곳에 가 있네요

접시 이쁩니다

저는 없어요 ㅎㅎ

 

설명을 듣고 나니 내가 왜 선정되었는지 알겠다. 용모를 봤다는 것이군.

 

 

 

 

 

보라, 저 용모를!

서광이 들이치는 가운데 이천 년 전 어느 청년이 태어 난 바로 그 날,

영하의 날씨에 맨손으로 배추를 씻는 저 용자를 보랏!

 

 

 

 

 

물 빼는데는 역시 감 컨테이너박스가 최고군.

배추 씻는 일이 제일 힘든데 이제 김장은 거의 끝났다고 봐야 한다.

이후는 실내에서 그냥 놀면서 즐기는 과정만 남았다.

 

 

 

 

 

쌀가루로 풀을 쑤고 막걸리로 수육을 삶는다.

이런 날씨에는 역시 사무직이 좋은 것이군.

이 무렵 대략 오후 5:30을 지나는 중. 쌀을 씻는다. 밥은 좀 늦겠다.

 

 

 

 

 

계속 달리자. 저녁 좀 늦게 먹지 뭐.

새우젓과 마늘과 양파와 사과와 무 하나 정도는 믹서기에 갈아서 넣었다.

무채 썰고 쪽파 넣고 솔을 넣었다. 전라도에서는 부추를 솔이라 부른다.

김장 시즌 지나서 갓이 보이지 않았다. 없는 대로 하지 뭐. 배도 없어서 사과로.

 

 

 

 

 

어두워져서 물 뺀 배추 안으로 넣고 고춧가루 두 근 반 정도 풀고 멸치액젓 넣고

쌀풀과 다시물 넣어서 소금으로 간을 본다.

 

 

 

 

 

봄동 모양의 배추는 쑤셔박기와 돌리기로 처리하고 일사천리로 김장을 끝낸다.

맛은 보지 않는다. 뻔하다. 아마추어들이나 맛을 보는 것이다.

 

 

 

 

 

양념이 제법 남았다. 역시 두 근이 답이었다. 남은 양념은 겨울 동안 각종 탕과 전골

다대기로 소용될 것이다. 작은 김치통 네 개를 채웠다. 친정과 시댁으로 각 한 통씩 갈 것이다.

이미 무얼까? 엄니의 김장과 홍순영네 김장 등으로 나는 세 통의 김치통을 확보하고 있다.

 

 

 

 

 

낮에 마트에서 생대구를 보았다.

수육은 남은 문어 때문에 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흑돼지 앞다리살의 자태를 보고 충동구매했다.

며칠 전 대구 손님들 방문 때 삶은 문어를 해동시켰다.

대구탕은 곤이 풍부해서 곰국 같았고 맛이 깊었다. 수육은 뭐 수육과 김장신동으로 이미

인근에 소문이 자자하니 평가는 불필요하고.

이렇게 늦은 저녁 밥상 앞에 앉았다. 하루가 끝나고 한 해가 끝나가는 시간이다.

한 해 쉬었던 김장을 했다. 김장은 한해 살림을 마무리 하는 방점이다.

이사를 했고 김장을 했고 지리산닷컴을 퇴사하는 12월이다.

김장을 하면 마음이 정갈해지는 기분이다. 마치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은.

이제 돈만 벌면 된다. 젠장.

당신은 김장을 하는가?

당신에게 김장이란?

나에게 김장이란 빨랫줄에 휘날리는 빤스 같은 의미다. 살아 있고 살아갈 것이란 표상이다.

 

 

 

 

fourdr@gmail.com

 

 

 

 

공지 지리산닷컴 사진사용에 관해 마을이장 2013.05.24 20527
224 그곳 / 赤·雪·量 - 공무원 K형 [35] 마을이장 2013.11.19 8118
223 마을 / 오미동 아침 숲에서 [27] 마을이장 2013.11.06 9173
222 마을 / 마을 또는 움womb [34] 마을이장 2013.10.28 9055
221 그곳 / 여덟 사람, 뱀사골을 걷다 [40] 마을이장 2013.10.23 8904
220 마을 / 가을아침 오미동 산책 [52] 마을이장 2013.10.16 10512
219 外道 / 목덜미 [81] 마을이장 2013.10.09 11474
218 마을 / 愛之重之 -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김 [47] 마을이장 2013.09.25 11713
217 생각 / 없는 것들. 또는 생각을 구하다 [37] 마을이장 2013.09.09 12337
216 생각 / 배추모종 앞에서 생각하다 [46] 마을이장 2013.09.03 12625
215 생각 / 안과 밖 [65] 마을이장 2013.08.24 13202
214 外道 / 보내다 [42] 마을이장 2013.07.07 16173
213 생각 / 내일에게 물어 볼 필요는 없다 [76] 마을이장 2013.06.22 15518
212 생각 / 빵긋 - 5월의 빵테이블 [79] 마을이장 2013.05.29 16201
211 外道 / 더 맛있고 더 올바르며 더 행복한 커피 - 커피 리브레 서필훈 [54] 마을이장 2013.05.12 24094
210 생각 / 완장 [58] 마을이장 2013.05.02 14125
209 생각 / 옴니버스 - 그녀에게 [18] 마을이장 2013.04.26 13708
208 생각 / 그들은 행복한가? - 윤하네를 보내며 [106] 마을이장 2013.04.23 14642
207 생각 / 봄, 어느 날. 둘 [63] 마을이장 2013.04.10 12164
206 생각 / 봄, 어느 날. 하나 [48] 마을이장 2013.04.10 10973
Copyright© 2007. All Rights reserved www.jirisan.com 4dr@naver.com | 지리산닷컴은?